[235] 노래방 컴플랙스

작성일
2004-09-28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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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5화] 노래방 컴플랙스




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참으로 반가운 계절이다. 특히 올 여름의 더위를 겪고 난 다음의 가을바람이라 더욱 반가워서 순간순간이 너무도 안타까운 시간들이다. 그래서 서점만 보이면 욕심 사납게 책 쇼핑에 눈독을 들이는 시간이 많아지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1. 담론(談論) 체질(體質)




밤을 새워서라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은 낭월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이야기에 흥이 나서 자신의 마음을 주체할 줄을 모르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쯤이면 이것이 행복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문득 그 틈바구니를 파고 들어오기도 한다.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이라도 서로의 궁금한 점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즐겁고, 그 상대가 맘이 맞는 사람이라면 이것은 더 말을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시간(時間)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이야기 속을 유영(遊泳)하는 기쁨에 잠기는 대화삼매지경에서 무아(無我)를 느끼기도 하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들이 흔한 것은 아니지만 실로 중요한 것은 대화의 수준이 아니라 대화의 감정이다. 같은 위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이 좋아서 그야말로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와 이야기를 나눈다면 얼마나 기쁘겠는가’이다. 그렇지만 벗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벗이 아니라도 배우고 나누는 순간이라도 주어진다면 또한 그에 못지않은 즐거움으로 가득한 시간이 된다는 것이 현실의 상황을 이해하고부터 스스로 즐기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희한한 것은 이렇게 마음이 맞기만 하다면, 참으로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도 그 이야기 속에서 진리(眞理)의 모습을 발견하고 함께 즐기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참 묘한 일이다. 종종 그러한 벗들과 나누는 시간이야말로 너무도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들이기도 하다. 하물며 상담실을 찾아와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인 답을 구하는 방문자에 대해서조차도 짐시나마 잊을 수가 있다는 것도 함께 덤으로 주어지니, 전화가 오거나 급하다는 메일 상담이 밀렸거나 잠시 잊어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가보다.




더구나 이렇게 가을이 깊어가는 길목에서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를 바라보면서 바위에 걸터앉아서 고인의 흔적을 더듬으면서 향기에 취해 있을 즈음이면 이렇게 순간순간을 느낄 수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조용히 가을의 소리를 느끼면서 그 가운데에서 성성하게 자신의 존재를 느끼고 있는 순간일 적에는 그대로가 희열감으로 온 몸의 신경세포들이 충전되는 것 같은 감정에 전율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참으로 자유의 행복이라고 해야 하겠다. 이런 때에는 자연과의 대화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슬쩍 스치고 지나가기도 한다.




2. 노래방에 가자고.....?




오늘은 중추절(仲秋節)이다. 중국식으로 부르는 추석(秋夕)인데, 무턱대고 중국 것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추석이라는 것은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들고, 중추절이라는 것은 뭔가 풍성한 느낌이 들어서 이게 더 좋지 않은가 싶은 생각을 해 봤다. 가을의 저녁이라고 하면 이제 곧 추워질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쫓기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중추절이라고 하면 뭔가 풍성함이 느껴지는데, 가을의 한 복판이라는 것이다. 복판과 끝은 느낌에서 좀 다르다고 하겠고, 사주쟁이가 봐서는 음력으로 7,8,9월이 가을의 초중말이라고 한다면 8월은 그 중간에 해당하니 당연히 중추(中秋)가 되어야 하고, 더구너 그 중간 가을인 팔월 중에서도 한 가운데인 15일이니 중추절이 오히려 철학적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추석이라는 말에 보다 깊은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생각하기에 그렇다는 말씀이다. 각설하고.....




모처럼 처제들과 동서들이 모였다. 그리고는 저녁을 잘 먹은 다음에는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마구 드는 것이다. 누군가의 입에서 노래방 이야기가 나오고 논산이니, 공주니 하는 말이 나오는 폼이 자못 심상치가 않은 것이다. 모처럼 만났으니 노래방을 가야 한다는 것이고, 그 중에서 낭월은 맏이에 해당하니 뭐라고 도망을 갈 구실이 늘 빈약하여 처분만 바라고 있는 상황이지만, 속마음으로는 부디 돌발상황이 발생해서 노래방 이야기는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말이 나오기만을 빌게 된다. 물론 오늘 저녁에는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도리없이 도살장으로 향하는 소와 같은 마음으로 차에 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벗님은 이런 마음을 이해 하실란지 모르겠다.




원래가 내성적인 낭월은 남들 앞에서 기예를 뽐내는 것은 고사하고, 뭔가 비슷하게 불러보려고 하는 것조차도 잘 되지 않는 것이 아무래도 무슨 병인가 싶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남 앞에 나서는 것이 쭈뼛거리고 어색하고, 괜히 기가 죽는데 이것은 나이를 먹어도 크게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본성이 어딜 가겠는가만 내심으로 좀 변했으면 싶으면서도 실제로 상황이 발생하면 참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으니 이것도 참 난처한 일이라면 난처한 일일게다. 어머님께서도 어려서 장 말씀하셨다.




“노래를 부르는 것을 한 번도 못 보네.... 사내가 그럼 되나...”




그래서 늘 틈만 나면 그러한 곳은 피하려고 노력을 하게 되고, 오히려 남들이 흥겨워서 즐거워할 적에 자신은 뒤에서 책이나 잡고 있는 것이 더 편했기도 한데, 지금도 이러한 것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을 보면서 세 살 버릇이 과연 변하지 않아야 정상이라는 위로를 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렇지 이제 머지않아서 나이 오십을 바라다보는데, 좀 대범하게 나서서 윗도리도 흔들어보고, 엉덩이도 좌우로 내밀어 봐도 좋지 않겠느냐고 자신에게는 잘 말을 하지만 정작 주체인 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움직이질 않으니 참으로 생각 따로요 몸 따로라는 것이 정답이겠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자신의 심사(心事)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관찰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3. 노래방에서의 자신 모습




일단 마지못해서 끌려가지만 그래도 사나이가 뺀다는 말은 듣기 싫은 것이 솔직한 심경(무슨 심경씩이나 하시겠지만....)이다. 그래서 내색을 하지 않고 일단 노래방으로 들어간다. 예전에는 갑사 아래에 있는 원다리 노래방으로 가더니만 요즘은 또 계룡의 계룡노래방으로 옮긴 모양이다. 낭월에게는 어느 노래방이나 다 같지만 놀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뭔가 다른 느낌이 있는 모양이다. 우야든둥 노래방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 것까지는 잘 하지만 가능하면 구석으로 찾아든다. 그 이유는 남들이 볼 적에는 숨으려고 한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절대로 그러한 것이 아니다. 흔들거리면서 흥겹게 노는데 거리적 거리지 않으려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마음을 헤아려 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서열(?)이 앞이다 보니, 노래의 선택 순서도 거의 3순위 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여하튼 뭔가 지정을 하기는 해야 한다. 그리고 두툼한 선곡 책을 오래 들어다 보고 있어봐야 신통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대략 차에 오르면서 결심을 한다. 오늘은 뭘 해야지 하고 말이다. 그런데 정말로 공교롭게도 앞에서 선택을 하신 분이 그 노래를 골랐을 적에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늘 유비무환이라고, 만약을 대비해서 하나를 더 골라 두기도 한다. 그리고 참으로 오랫동안(아마도 대략 17~8년 정도는....) 나훈아의 ‘해변의 여인’으로 버텼다. 가사가 좋고 바다가 나와서 그 노래를 은연중에 좋아했던 모양이다.




때로는 분위기가 뽕짝으로 흐르면서 흘러간 노래로 가는 상황이 발생해도 어쩔 수가 없다. 사실 손뼉 치면서 함께 부르기에는 정당하지 않은 것인 줄도 잘 안다. 그렇지만 그게 마음대로 된다면 뭐하러 노래방공포증이라고 하겠느냔 말이다. 아마도 어떤 벗님은 그 심정을 모르실끼라......




일단 노래에 해당하는 번호를 골라서 신청은 한다. 그래놓고 한곡이 지나갈 때마다 점점 왼쪽으로 이동하는 숫자에 따라서 숨이 차오르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가 급기야 ‘다음곡’이라는 안내에 이어서 해당노래가 찍히게 되면 가슴이 괜히 벌렁벌렁하고 주눅이 들어서 자꾸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누가 내 노래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지 궁금해지는 것이 아마도 관중의식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그런데 남들은 참으로 흥겹게 펄펄 뛰거나 온 몸을 흔들거나, 손뼉을 치면서(그것도 매우 신명이 나서) 장단을 치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기가 죽는 것은 도대체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다.




마침내 전주곡이 울리게 되면 마이크는 어김없이 돌아오고, 전주의 시간은 우째 그리도 긴지 말이다. 사실 박치인 낭월은 언제 시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포증이 늘 도사리고 있다. 자막이 뜨고 노래가 시작되는 것에 딱 맞춰본 적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염불 외우듯이 가사를 읽기에 급급하니 노래의 즐거움을 느낄 순간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공자님은 음악도 잘 하셨다는데, 이거 아무래도 음률을 즐기기에는 애초에 소질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우물거리면서 노래가 끝나면 정말로 군대를 제대하기라도 한 냥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으니 정말 낭월을 노래방에 끌고 가지 못해서 안달인 처제들의 마음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러한 속사정도 모르고 참으로 잘들 논다.




예전에는 노래방을 가야할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부처님은 가무(歌舞)를 금한다고 하는 말로 얼버무리기도 했는데, 그것도 한두번이지 자꾸 써먹을 수가 없이니 때로는 이렇게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근래에는 그나마 레파토리를 바꿨다. 사실 자신이 생각을 해봐도 너무 오래도록 한 가지로 버틴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기야 하다. 그래서 근래에는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겨우 기본적인 분위기만 익혀서 부르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족히 써먹을 수가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또 모르겠다. 이것도 가사가 중년의 사나이에게 잘 어울린다 싶어서 맘에 들었다. 노래를 하고 나면 막내 처제는 항상 묻는다.




“도라지 위스키가 뭐예요?”




아마도 그 가사를 쓴 사람은 애숭이는 아닐터이다. 적어도 인생의 절반을 넘긴 사람일게다. 그리고 이런저런 곡절도 많이 겪어보면서 좌충우돌로 반 평생을 살아온 다음에 문득 허전해지는 자신의 여정을 돌이켜 보는 분위기인 것 같기도 하다.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이라는 부분이 참으로 맘에 든다. 실연의 달콤함이라니..... 얼마나 씁쓸하고 안타까운 달콤함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그렇게 ‘실연의 씁쓸함이야 있겠냐마는’을 바꿔서 달콤함이라고 한 것은 가능하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는 중년인생의 타협이 보여서 좋다.




4. 그래도 길은 가야지.....




사노라면 노래방으로 끌려가기도 하고, 마음에 없는 여행을 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러한 과정도 또한 삶이려니’하고 가능하면 적응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자신을 생각하면서 이것도 날카로움이 둥글음화 되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보곤 한다. 그래도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더욱 감사한 낭월이라고 스스로 생각을 한다. 그리고 평소에 흥겨운 나날을 보내다보니 노래방에서 달리 흥을 풀 것이 없다는 말로 묘하게 자신의 ‘신명없음’을 변명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궁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달리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다들 2차전으로 고스톱판을 벌린 틈바구니를 사알짝~ 빠져 나와서 모처럼 한담 한편 쓰고 있다. 그래도 그것은 사람이 많이 필요치 않아서 오늘은 순번이 돌아오지 않는 모양이다. 어떤 때에는 그것도 빠져나가지 못할 경우가 있는데 말이다. 하다못해 광이라도 팔아야 한다고 떼쓰는 처제들 바람에 그래도 대략 무엇을 집어와야 계산에 이익이 되는지는 겨우 뗐다고 해도 되겠다. 참으로 유흥에 소질이 없는 낭월인 모양이다.




이번 추석에는 중국어학원 선생님을 청해서 함께 보냈다. 겨우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나온 애송이 외동딸을 걱정할 엄마를 생각하면서 함께 송편도 만들고, 산소에 가서 절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했다. 아마도 새로운 경험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늘 공부는 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잠시 시간이 있어서 하건충님의 팔자심리추명학과 선생아가씨의 사주를 놓고 식신(食神)부분을 펼쳐줬더니 줄줄줄 읽어간다. 낭월은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옥편과 자전을 펼쳐놓고 얼마나 고심을 했는데, 그 장면을 보니 너무 억울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마구마구 드는거다. 물론 읽고 나서는 자신의 생각과 완전히 똑 같다면서 감탄을 한다. 그래서 신명나게 한참을 설명하기도 했는데, 벗님의 공부도 크게 발전해서 술술 읽어가듯이 공부가 깊어지시기를 기원드린다.




              2004년 9월 28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



[추석날 저녁에 마당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다. 노란티를 입은 사람이 학원 선생님이다.]


 



[한국말도 열심히 배우는 중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모두가 아름답다.]



[밤나무 뒤로 해가 기운다. 모처럼 가족이 모여서 시원한 가을 밤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