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 일거수,일투족,일개구.

작성일
2004-04-12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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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5화] 일거수(一擧手) 일투족(一投足 일개구(一開口)




요즘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낭월이다. 세상도 어수선해 보이고, 스스로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고, 앞으로의 희망도 생각해 보고 그래서 그렇잖아도 생각이 많은 바탕에 더욱 많은 생각들이 겹쳐드는가 싶다. 그리고 어쩌면 벗님도 그러시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왜냐면 같은 시대를 호흡하고 살아가는 공통적인 운명체라는 것을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팔자가 좋거나 모자라거나, 혹은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모두 나름대로의 짐을 그만큼 짊어지고 또 그렇게 느끼게 되는 것이 아마도 공동운명체일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1. 손 한번 잘못 들게 되면.....




그러한 생각을 해보게 된 것은 탄핵결정에 손을 들고 나서 곤욕을 치르는 의원님네들을 보면서 해본 생각이다. 그 순간의 그 당당하고도 힘찬 모습, 그리고 생사의 기로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손을 들었다는 기분으로 일을 진행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무래도 손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들을 하시는 모양이다. 그리고 끝까지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던 충청도 의원들도 마지못해서(낭월의 생각으로는....) 손을 들었는데, 또한 후회가 막급하지 않았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으리라고 짐작만 해본다.




손은 사람에게만 주어진 도구라고 해도 되지 싶다. 그리고 그 손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도 하고, 파괴를 시키기도 하니 이것도 아마 음양의 법칙일게다. 음양법은 그렇게 한쪽으로만 치우지는 법이 없다고 해야 하겠다. 그러니까 항상 길한 작용이 50이면 흉한 작용도 50인 모습으로 지구살림을 꾸려 가는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 손으로 어떤 사람은 만인이 즐거워할 글을 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람의 생명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니 이 또한 음양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의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만큼 손의 역할은 또 달리진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초부(樵夫)의 손가락질은 그냥 ‘몰라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되지만, 유명인의 손은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기도 하니 말이다. 전에 야구선수라는 친구가 모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손을 한번 들었다고 해서 또 설왕설래했던 것도 생각이 난다. 또한 손과 연관된 일이니 자신의 손은 뭘 하고 있는지 잘 생각을 해 봐야 할 모양이다. 심지어는 암암리에 주고받은 돈 봉투로 인해서 곤욕을 치르는 사람들도 참 적지 않은 모양이다.




인터넷에서도 그렇다. 손(가락)을 잘 쓰면 많은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기도 하지만, 또 잘못 쓰게 되면 온갖 비난을 받게 되기도 하니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늘 손으로 인해서 길흉사가 발생하는가 싶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개인의 운과 연결시킬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통찰력으로 저울질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공연히 시시비비를 만들고, 남의 일에 끼어들기 쉬워서 남을 비방하다가는 스스로 곤경에 처하기도 한다. 그러니 늘 조심하지 않으면 재앙을 불러오는 손에 대해서 쉽게 생각을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정말 손의 주인은 깊은 생각을 해야 할 모양이다.




2. 발을 어떻게 옮기느냐에 따라서......




그렇다면 손과는 좀 다른 발은 어떨까? 손이야 인간의 특권이라고 하지만 발은 움직이는 생명체에게는 모두 주어진 것이니 특별하다고 할 것은 없겠다 싶다. 그러면서도 자꾸 추미애 의원의 발이 생각난다. 여인의 몸으로 아스팔트에서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해야 할 정도로 허물이 많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도 또한 손을 잘못 든 자신의 손과 소속의 인연으로 그와 같은 발을 움직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혼자만 떠안아야 할 것만은 아니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또 자신의 생각대로 유세장으로 발을 움직이고 있을 적에 그녀는 삼보일배의 길을 간 것인데, 그에 대한 효과는 적지 않았다고 판단이 되는 모양이다. 과연 사람의 마음은 인정에 동요되기 쉬운 것이니 원래 바탕이 선하다는 말이 설득력을 갖을 수도 있겠다.




발을 빼지 못하고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무리들 중에는 몸을 팔아서 살아가는 여인들에게서 많이 들려오는 소리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늘 쉽게 하는 말로 ‘발 한번 잘못 들여 놨다가 신세 망쳤다’는 말이 있고 보면 그냥 손보다는 못한 표현력을 갖고 있는 발이라고 무시를 할 것이 아니라 오늘 자신의 발이 뭘 하고 있는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늘 생각해야 할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한국의 군인들이 이라크로 걸어가야 한다고 하니 또한 죽음으로 가는 발이라고 한다면 군인에 발을 들여놓은 인연으로 구렁텅이로 빠져들어 갈 수도 있다는 염려도 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아마도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벗님도 같은 생각이실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듣자니까 자원하는 군인들에게는 상당한 보수를 제공한다는 말도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혹 선택을 한 군인들 속에서는, 취업도 어려운데 (요행히) 자신이 죽지만 않으면 한 밑천 잡아서 장사라도 해봐야 하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결정을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자원자의 경쟁력이 대단했다고 하니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하는지 산골 화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하튼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 이라크로 발을 옮기겠지만...... 그래도 참 걱정이다. 자꾸 베트남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베트남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면서 모두 같은 인간이라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전에 그 문제로 군대에 아들을 보낸 불자어머니가 밤중에 전화를 했다. 아들이 이라크로 가겠다고 전화를 했는데, 어떻해야 하느냐는 이야기였다. 이런 경우에 종교인은 뭐라고 해야 할지를 순간적으로 혼란이 생기기도 했다. 당연히 신도 댁의 아들을 무사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그래서 무조건 불가하다는 말을 해주라고 했지만, 참으로 현실과 개인의 관계에서 쉽지 않은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3. 입을 열어 말하기는 쉬워도......




깨달은이들의 말은 한결같다. ‘구시화문 필가엄수(口是禍門 必可嚴守)’라고 했다. 그야말로 입은 재앙을 만드는 문이라는 의미로 봐야 하겠는데, 실로 깊이 공감을 하게 되는 금언(金言)이다. 특히 근래 정동영 의원이 한 마디의 말로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면서 정말 입을 움직인다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낭월도 또한 말품으로 삶을 꾸려가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말을 해야 하니 혹 자신의 말로 인해서 본의 아니게 남의 삶에 오류를 발생시킬 수도 있기에 더욱 깊숙이 파고드는 말이다.




요즘 오랜만에 강의를 다시 시작한 도올선생에 대해서 낭월에게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너무 늦은 시간에 하는 관계로 낭월이 직접 들은 경우는 없지만, 들려주는 이야기들로 봐서는 좀 치우친 견해를 피력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봤다. 이미 노자와 21세기를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셨지만, 이번에 하신 이야기는 시비구설이 종종 발생하는 것으로 봐서 그 분도 사람일진대 마음의 고통이 적지 않으리라는 짐작은 되지만 오늘 아침에도 뉴스의 자막을 보니까 인터넷으로 어느 판사가 걸고넘어진 모양이다. 아마도 법과 연관해서 무슨 말씀을 하셨던 모양이다.




여하튼 입으로 인한 결과가 좋다면 물론 더 말을 할 나위가 없겠지만, 혹여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그 화는 적지 않다고 보겠으니 예전에는 입 한번 잘못 놀려서 간첩도 되고 빨갱이도 되는 시대가 있었던 것을 4~50대 중년이시라면 알고 계실 것으로 생각이 되기도 한다. 찬양고무죄를 없애느냐 마느냐를 놓고 설왕설래하는가 싶기는 한데, 중요한 것은 참으로 옳은 말만 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느냐는 생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구시화문은 틀림없는 금언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력을 해서 구시복문(口是福門)이 되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속담에도 한마디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고 보면 항상 하나의 말에는 두 의미가 있는가 보다.




4. 따지고 보면 모두가 다 해당되네요.




그렇겠다. 손과 발과 입만이 아니다. 눈알도 잘못 굴리면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겠고, 본 것이라고 해서 봤다고 하기도 어려운 시대라고 한다면 정말 주의해야 할 것은 너무나 많다고 하겠는데, 이러한 것을 잘 사용하게 되려면 천상 마음이 명경(明鏡)과 같아야 할 모양이니 이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수행을 한다고 하지만 막상 현상에 부딧치게 되면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늘 생각하곤 한다. 범부의 시행착오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끝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구제불능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사주에 타고난 심리가 그래서 어쩔 수가 없다고 하여 될 일이 아닌 것으로 생각이 되는 것은, 손 한번 들고, 단어 하나 내 뱉았다고 해서 거대한 단체가 휘청거리는 것을 보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하겠다. 그러니까 운만 놓고 길흉을 논하는 것은 그야말로 숙명위주의 발상이라고 해야 하겠다는 점이며, 그래서 인생은 타고는 숙명에다가 연마하고 가꿔야 할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서 완성이 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내 뜻과 상관이 없이 태어나서 얻은 것이 사주라고 한다면, 그러한 재료를 갖고 뭔가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내는 것은 자신의 노력과 안목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러니까 나무를 한 도막 얻었다고 한다면 피노키오를 만들어야 하겠고, 돌덩어리를 얻었다면 절구통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재료를 잘 알아서 어울리게 사용하면 되겠고, 그 과정에서 연장으로 손 발 눈 입이 모두 사용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마다 받은 재료가 각기 다르며 또 같은 재료라고 하더라도 명품이 되느냐 아니면 졸작이 되느냐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라는 점을 생각하고 참으로 잘 가꿔야 하겠다는 다짐을 오늘도 하고 있는 낭월이다. 손과 발로 허물을 만들지 않고 혀로 재앙을 부르지 않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 봤다. 침묵이 금이라고 한 말도 아마 그런 뜻이라고 봐도 되겠다. 그렇다고 말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니 난제 중에 난제다.




“함께 노력해 보십시다.”




         2004년 4월 11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