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발우공양

작성일
2000-11-08 00:00
조회
5619
발우공양


제80화
-
발우공양  (2000.11.8.)


 


이번에 모처럼 법륜종의 사미계 수계를 위한 행사에 동참을 하여 참으로 오랜만에 발우공양을 하게 되어서 나름대로 옛
추억이 떠올랐다. 장소는 목포의 보현정사라고 하는 법륜종 총본사에서 시행하게 되었는데, 그 사미계를 주기 위한 계단이 마련되면서 교육과정에서
법공양을 하는 교육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과정을 벗님들께 소개해 드림으로써 스님들은 한 그릇의 밥을 어떻게 먹는가를 알려드리고자
한다. 물론 대중처소에서는 아직도 발우공양을 하고 있는데, 낭월이가 혼자 감로사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까 그럴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통도사에서 나온 이후로는 별로 발우공양의 기회가 없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사미계는 처음으로 출가를 하여 행자의 과정을 거친 사람이 이제
비로소 스님으로 입문하는 과정에서 열 가지의 계율을 지키도록 서약을 하는 것으로 이해를 하시면 되겠다. 어찌보면 '아직은 수행이 덜된 스님'
정도로 해석을 해도 되겠다. 그럼 낭월이와 함께 마음으로나마 법공양을 동참해 보시기 바란다. 또한 새로운 이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 공양을 먹을 준비


 

우선 발우(또는 바리때)는 스님들의 밥그릇을 의미한다는 것을 설명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4개의 그릇이 한 조를
이루는데 맨 가의 그릇이 가장 크고 그 안으로 들어가고 또 들어가서 포개지도록 만들어 놓은 것으로 통상 스님들의 소유물이라고 한다면
'삼의일발(三衣一鉢)'이라고 해서 옷 세 벌과 발우 한 벌을 말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옷 세 벌이라고 하는 것은 인도에서 부처님 당시에 정해진
법으로 부처님께 법문을 들을 적에 수('입는'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천을 두루룩 말아버리는 것이라 입는다고 하기도 어렵다.)하는 큰 가사와 나들이
할 경우에 수하는 중간 가사, 그리고 일을 할 적에 수하는 작은 가사를 두고 하는 말인데 인도는 더운 나라이므로 많은 옷은 필요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발우도 한국의 스님들 것과는 좀 다른데 원래 인도에서는 큰 발우 하나만 사용하였다. 그 하나의 발우에 밥도 얻고 찬도
얻어서 나눠먹었는데, 한국에서는 집단으로 수용생활을 하니까 발우의 구조에서도 변화가 생겼던 모양이다. 여하튼....


원래는 발우(鉢-발)의 글자를 봐서 쇠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겠지만 요즘은 주로 나무로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으니
글자를 바꾼다면 '木+本'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부는 도자기 발우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발우를 한 벌 얻어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미리 출가의 경력과 수계(受戒)의 품수에 따라서 자리는 마련된다.


 

2. 전발게(展鉢偈) - 밥 그릇 펴는 노래


 

如來應量器 我今得敷展 願共一切衆 等三輪空寂


여래응량기 아금득부전 원공일체중 등삼륜공적


 

옴 발다나야 사바하(3번)


 

'부처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그릇
내가 지금 얻어서 펴게 되었네


원하건데 일체의 모든 중생들이여

주는이와 받는이와 주고받는 공양이

모두다 평등하여 공적함이 되고저'

 

공적이라는 말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공허하고 적적하게 되라는 말로써 깨달음에 도달하는 경지에 이르라는
발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봤다. 여하튼 밥그릇을 펴는 염불이 이렇게 생겼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싶다. 그냥 '반찬이 뭐 이래~!
투덜투덜~~~' 하면서 밥을 먹을 수도 있으련만 이러한 마음으로 먹게 되니 투덜거리고 반찬 푸념을 할 겨를이 없다고 해야 하겠다. 큰스님들의
지혜로운 처방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마음으로 밥을 먹고자 하는 자신에게의 다짐이라고 생각을 하고 싶다.


 

죽비 세 번 소리에 이렇게 염불을 외우고는 밥그릇을 펴놓게 되는데, 우선 맨 큰 그릇을 왼쪽 무릎 앞에 놓고는 맨
작은 그릇을 꺼내어(그것도 두 손의 손가락을 이용해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그 앞에 놓고 다음 그릇은 그 옆에 놓고 또 나머지 한
개는 오른 무릎 앞에 놓게 된다. 그림으로 그린다면 다음과 같이 된다고 보겠다.



발우공양

 

3. 천수물 돌리기


 

발우를 펴고 나면 찰중이 죽비를 한번 친다. 여기에서 찰중은 대중을 살핀다는 의미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 맡은
역할인데, 신호에 의해서 모두가 진행이 되고 입은 아무도 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조용하게 진행이 된다. 정해진 순서대로 어른 스님부터 밥을
나누기 시작하는데, 맨 처음에는 밥이 아니고 맑은 물을 골고루 따른다. 이 물을 천수라고 하는데, 하늘에서 내린 물이라는 뜻이 아닌가 싶은
생각만 하고 있다.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 받고 나면 발우를 좌우로 흔들어서 그만 따르라는 신호를 하는데, 이때에는 1번 발우에 물을 받게 된다.
그렇게 불을 받아서는 그릇에 골고루 흔든 다음에 2번 발우에 쏟고 다시 흔들어서 4번 발우를 적신 다음에 최종적으로 3번 발우에 물을 담아
둔다. 이 물은 밥을 먹는 도중에 마실 수도 있고, 다 먹고 나서는 설겆이용으로 쓸 물이기 때문에 다 먹어버리면 곤란한 일이 생긴다. 또 그
이면에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도 깃들어 있지만 해당 항목에서 설명을 하도록 한다.


 

4. 밥 돌리기


 

주로 배식은 하판(급수가 낮은 스님들)에서 맡아서 돌리게 되어 있다. 낭월이도 처음에 통도사 강원에 들어갔을
적에는 이러한 일로 인해서 밥을 느긋하게 먹어볼 수가 없었다. 바쁘게 물을 돌리고 또 조금 먹다가 숭늉 달라는 죽비 소리를 들으면 숭늉도 돌리고
하느라고 늘 밥은 자리에 앉자마자 2번 발우에 쏟고 반찬도 함께 부어서 뒤적거려서는 마구 퍼 넣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소화가 참 잘 되었던
것을 보면 역시 젊어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여하튼 밥을 담는 큰 발우를 내밀고는 합장을 한다. 밥은 세모로 날을 세워서 딱 한번
퍼담게 되어 있다. 그리고 참고로 알아 둘 일은 처음에 천수물로 헹굴 적에 몇 방울의 물을 남겨두지 않으면 밥을 배식하는 스님에게 속으로 욕을
먹게 되어 있다. 그렇게 약간의 물방울은 주걱에 부어서 밥알이 엉겨붙지 않는 용도로 쓰이기 때문이다. 순서대로 밥을 돌리는 사이에 짬이 나는
스님은 반찬 상을 당겨 놓고서 자신의 4번 발우에 먹을 만큼의 찬을 덜어 놓는다. 상이라고 했지만 상이 아니고 쟁반에 양재기로 수북하게 담긴
반찬 서너 가지이다. 여기에서 자칫 욕심을 내어서 많이 담았다가는 모두 먹어야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몰라도 조금만 익숙하면 자신이 먹을 만큼의
양을 잘 조절하게 된다. 그리고 맛이 있는 것이라고 해서 많이 먹어도 비난의 화살을 받게 된다. 골고루 적당하게 나눠 담는 것이 몸을 위해서나
대중을 위해서 현명하다고 해야 하겠다. 그러면 밥을 먹을 준비는 다 되었다고 해도 되겠다.


그런데
만약에 이 시간에 객승이 찾아 온다면 어떻게 할까? 여분의 밥이 있다면 그대로 나눠주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부득이 밥을 한 숫갈씩 덜어야 한다. 이것을 가반이라고
하는데, 밥통을 들고 한 바퀴 도는 사이에 밥 한 그릇이 금새 만들어진다. 그래서
'십시일반(十施一飯-열이서 베풀면 밥 한 그릇이 된다)'이 마련되는 것이고, 이 말은
절에서 유래된 것이다.


 

5. 밥을 먹기 전에 염불


 

찰중이 다시 죽비를 한번 친다. 그러면 다들 합장을 하고 외우는 염불이 있다.


 

五觀偈(오관게)




計功多少量被來處 忖已德行全缺應供


防心離過貪等爲宗 正恩良藥爲療形枯

爲成道業應受此食

 

계공다소량피래처 촌이덕행전결응공


방심이과탐등위종 정은량약위료형고

위성도업응수차식

 

'공덕의 많고 적음과 이 공양이 온 곳을 생각해보면
덕행으로 공양에 응하기는 참 부족합니다.


마음이 허물과 탐욕 등으로 흐르는 것을 방지하고

올바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좋은 약으로 알아서

몸이 마르는 치료약으로 삼아야 할 것이며

도업을 이루기 위해서 이 공양을 받아먹습니다.'

 

이어지는 정식게(淨食偈-음식을 깨끗하게 하는 노래)


 

五觀一滴水 八萬四千蟲 若不念此呪 如食衆生育


오관일적수 팔만사천충 약불념차주 여식중생육


옴 살바나유타 발다나야 반다반다 사바하(3번)


 

'다섯 가지로 한 방울의 물을 보니


팔만사천의 벌레가 있구나

내가 이 주문을 외우지 않는다면

중생의 고기를 먹는 거나 같겠구나'

 

제대로 해석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미는 대략 이와 같을 것으로 생각이 되겠는데, 살펴보시면 알겠지만 내용에서
풍기는 느낌은 반찬타령이나 하고 있어서는 곤란하겠다는 느낌이 팍팍 든다. 그냥 입으로 밥알이 들어가서 몸이 마르지 않도록 해주고 그래서 도를
닦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충분히 감사한다는 의미가 그대로 녹아 있는 글이라고 하겠다. 여하튼 이렇게 감사를 하는 사이에 따끈따끈한 밥은 어느
사이에 먹기 좋은 정도로 식어 있으니 또한 너무 뜨거운 것을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고 하는 말과도 직결이 되면서 또한 선인의 지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맑은 물 속에 이미 팔만사천 마리의 벌레가 있다고 한 것이다. 그것도 한 방울에 말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균을 의미하는 것이겠는데, 과연 까마득한 예전의 도인들은 현미경이 없이 맨 눈으로도 능히 이러한 것을 살피셨다는 것이다.
그냥 놀라서 입이 벌어질 뿐이다. 비로소 밥을 먹는다.


 

'허겁지겁'


 

그러나 소리는 내지 않아야 한다. 후루룩 쩝쩝 달그락 하는 소리를 내면 이내 많은 눈초리가 일시에 쏟아진다.
그래서 자칫 체할 수도 있다. 조심조심 그래서 숟가락과 젓가락은 나무로 구입을 하기도 한다. 소리가 가능하면 덜 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왜
소리를 내면 안되느냐면 밖에서 배고픈 귀신들이 스님들 밥 드시는 소리를 들으면 너무 배가 고파지기 때문에 조용히 먹는다고 한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르지만 과연 그렇다면 그것도 또한 미안한 일인지라 조용하게 먹는 것이 여러 가지로 좋을 모양이다. 그렇게 조용하게 식사를 하는 도중에
다시 죽비가 두 번 울린다.


 

"딱! 딱!"


 

그러면 두 스님이 나가서 숭늉을 들고 와서 다시 급수를 한다. 이번에도 1번 발우인 밥그릇에다가 물을 받아야
하는데, 혹 먹다가 남은 밥이 있다면 국그릇으로 비우고 숭늉을 받도록 되어 있다. 계속해서 먹던 밥을 먹으면 되는데 아무리 반찬이 부족해도
김치의 하얀 부분 한 쪽은 남겨둬야 한다. 이거 다 먹어버리면 또 난처하게 되는 까닭이다.


 

6. 설겆이 시간


 

이제 밥을 다 먹었으면 숭늉에다가 아까 남겨둔 김치 한 조각을 넣어서 젓가락으로 밥그릇에 붙은 잔여물을 닦아낸다.
국그릇도 그렇게 한다. 다시 반찬그릇도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그리고 숭늉과 함께 찌꺼기는 마셔버린다. 그러면 처음에 받아 둔 천수물이 남게
된다. 이제 한 조각 김치의 역할은 끝났으니 함께 먹는다. 어찌 보면 숭늉의 반찬이라고 해도 되겠다.


비로소 손가락을 집어넣어서 설겆이를 하는데, 여기에서 세제를 찾는다거나 수세미를 찾는다면 이미 발우공양은 땡이다.
그대로 손을 이용해서 발우를 닦으면서 밥알의 풀기운이나 국그릇의 기름기운이 씻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은 손의 감각을 좋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돌아가면서 씻은 물은 반찬그릇에 해당하는 4번 발우에 모이게 되고 역시 손가락을 펴서 씻어서 그대로 둔다. 그리고 마른행주질을 하게
된다. 1번 발우부터 차근차근 처음의 순서의 반대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맨 마지막 작은 막내 그릇을 남겨두고 죽비 소리를
기다린다.


 

"딱!"


 

이번에는 맨 아래에서부터 설겆이를 하고 난 물을 받아간다. 이제는 천수가 퇴수가 되었다. 그리고 낭월이 차례가
왔다. 아래에서 부은 물을 보니 이것은 순전히 구정물이다. 완전히 실격이다. 이래서는 이 물통을 위로 이동시킬 수가 없다. 다시 아래로
되돌린다. 고춧가루와 기름과 밥 찌꺼기가 엉켜있는 물은 낭월이 이하의 스님들이 모두 마셔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낭월이부터 물을 부어야 하는데,
물론 위에서 누군가 그러한 물을 부어버린다면 그 위에서는 다시 반송을 시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그냥 눈을 감고
말았다. 처음 하는 발우공양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하는 생각으로......


 

위로 올라간 퇴수물통에는 당연히 벼락이 떨어졌다. 이게 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큰 스님의 긴 설법이
이어졌다.


 

"대중 스님들은 퇴수물이 처음에 천수물과 같은 정도로 맑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시는 모양인데, 이 물은 지금 밖의
추녀 아래에서 주린 배를 채우려고 아귀들이 기다리고 있는 식사란 말이오. 그런데 이렇게 물이 탁하면 그 아귀들의 목에서 걸려 넘어가지 않을
것이오. 그 아귀들은 배가 남산처럼 크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 정도여서 맑은 물이 아니고서는 걸리게 되어있는데, 이러한 퇴수물을 부어 준다면 그
찌꺼기들이 목에 걸려서는 불덩어리로 변하여 아귀들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니 이렇게 해서 어쩌려고 그러오. 참으로 큰일날 일이니 이 물은 그냥
도랑에 버리고 아귀들이 먹지 못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다음에는 이 물은 뒤로 돌려서 똑같이 나눠서 마시도록 하겠으니 그리 아시오."


 

그래서 맑은 설겆이 물이 나가야 하는 것인데, 이 풋내기 스님들이 그러한 사정을 알 턱이 없었을 것이다. 진짜로
귀신이 와서 그 물을 먹고 갈증을 달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환경적인 차원에서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행위인가....... 주방세제와
음식찌꺼기들의 고민은 절간에서는 애초에 없는 고민이었다. 요즘에 각 암자에서는 규모가 적어서 발우공양을 하기 어렵지만 대중의 사찰에서는 당연히
발우공양을 하게되고 이렇게도 환경친화적인 행동을 하는 식사시간은 과연 낭월이가 생각을 해봐도 너무나 아름답고 경제적이고 알뜰하기만 하다. 벗님의
생각은 그렇지 않으랴만 참 자랑스러운 절간의 식습관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리고 그 물을 버리는 과정에서도 역시 경문은 있기 마련이다. 오늘은 실패를 했지만 물을 버릴 적에는 어떤 경문을
외우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我此洗鉢水 如天甘露味 施汝餓鬼衆 皆令得飽滿


아차세발수 여천감로미 시여아귀중 개령득포만


옴 마후라세 사바하(세번)


 

'내가 이렇게 발우를 씻은 물인데 그 맛은 하늘의 감로수와 같다.


너희 아귀들에게 베푸노니 다들 이제 배가 부를 것이다.

 

참 밥 한 그릇 얻어먹기가 이렇게 어려우냐고 하실 벗님도 계시지 않을까 싶다. 물론 매 끼니마다 이렇게 복잡한
것은 아니다. 원칙적인 법공양의 의식이 이렇고 보통 강원에서는 하루 한번 점심 공양을 이렇게 하고 있다. 아침과 저녁엔 경문을 외우는 것은
생략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경문의 내용은 경우에 따라서 더 많기도 하다. 낭월이는 통도사 강원에서의 순서를 생각나는 대로 참고해서 적었다고
이해하시면 되겠다.


 

7. 끝


 

이렇게 해서 마무리가 된다. 그리고 죽비는 세 번을 울리게 된다. 과연 절에서 중노릇을 하는 것이 이렇게
엄숙하다고 하는 것을 아마도 처음 느껴보신 벗님도 계실 것이고 혹은 방송을 통해서 보신 경우도 계시겠다. 이번에 모처럼 발우를 씻으면서 젊은
시절의 자신을 떠올려봤다. 참 유쾌한 순간이었던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 도반들은 또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생각 해봤다. 추억의
여행 시간이었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