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동지를 기준하는 자료 (朱鵲橋 선생 자료 인용)

작성일
2000-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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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기준] 홍콩의 朱鵲橋(주작교) 선생 설


제78화-동지기준  (홍콩의 朱鵲橋(주작교)선생 자료 인용함 )


 


이제 책을 통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답을 찾으려고 노력한 선배님들의 흔적을 한번 살펴보도록 한다. 이미 많은 선생님들이 언급을 하셨는데, 대체로 동지기준에 대해서 고려를 하신 선배님들은 오준민, 오회운, 범량광, 고원, 종의명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데, 나름대로 의견이 있음으로 후에 시간이 되는 대로 살펴보도록 하고 오늘은 그 중에서도 홍콩의 주작교 선생이 주장하는 명식을 놓고 살펴보도록 한다. 주 선생은 아마도 오준민 선생의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참고자료로 삼는 책은 [대운류년평단급탐토(大運流年評斷及探討)]라는 책에서 살펴봤고, 저자는 黃春發(황춘발) 선생이며 대만의 명리학자이다. 출판사는 文翊圖書公司(문익도서공사)이다. 혹 관심이 있으신 경우에는 참고하시기 바란다. 이 책에서 맨 처음으로 주작교 선생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이 순서를 따르도록 한다. 그리고 참고로 드릴 말씀은 황춘발 선생은 입춘기준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동지기준]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기 위한 목적으로
위의 대가들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 있는 일이다.


 


[동지기준 참고자료] 陳誠之造(진성의 명식)


 


"진성장군은 1897년 음력 12월 12일 진시에 태어났고, 황포군교(사관학교 형식인 듯)를 일찍이 졸업하고 장개석 군대를 따라서 벼슬이 육군참모총장에 이러렀고 국방장관 등의 지위를 지내면서 한 때 잘 나갔는데 1949년 장개석을 따라서 대만으로 패주한 이후로는 비록 대만의 부총통까지 되었지만 실제로는 별로 힘을 쓰지 못하고 대만의 부성장(副省長-부도지사급 정도?)으로 마쳤다. 먼저 우리는 일반적으로 년주를 바꾸지 않고 따져본다면 다음과 같이 된다.


 


時 日 月 年


甲 丁 壬 丁


辰 卯 子 酉


 


70 60 50 40 30 20 10


乙 丙 丁 戊 己 庚 辛


巳 午 未 申 酉 戌 亥


 


(분석)


 


1. 자진으로 관국이 형성되어 월령을 잡은 수의 세력이라 재살이 왕하여 다른 세력으로 형성이 되어 있는데 다만 일주는 인성에 앉아 있고, 또 주변에는 甲卯辰이 서로 인성의 국을 암암리에 형성하고 있으니 화하지는 않는다. 응당 일주는 중화이면서도 약하다고 판단을 하게 된다.


 


2. 운에서 반가운 것은 비겁과 인성이 되며 살인상생은 좋지만 재성과 식상은 꺼린다.


 


3. 명리적으로 살펴보건데 1946년 이전에는 辛亥, 庚戌, 己酉, 戊申의 운으로 모두 남의 세력권이 형성되어 있다. 그러니 마땅히 떨어지는 운이 되는 셈이다. 다만 진성이 일찌가 師長(사장), 軍長(군장), 참모총장과 국방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손에 병권을 장악하고 지위가 극히 높은 신하였으며 일생 많은 일을 남겼다.


 


4. 1947년 이후에는 丁未, 丙午, 乙巳, 甲辰, 癸卯 등의 운은 모두 자신을 도와주는 운에 해당하니 모두 좋은 운이라고 하겠는데, 다만 사실상으로는 1947년에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폭발하고, 1948년에 遼沈(요침)과 平津(평진) 相繼(상계) 등을 빼앗기고, 1949년 남경도 내어주고 대만으로 패주하여 그 후로 매년 대륙을 찾아야 한다고 노래를 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한을 품은 채로 삶을 마쳤으니 이상을 살펴보건데 명리학의 이치와 부합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주를 동지기준으로 년주를 바꾼 다음에 대입을 하여 다시 따져보면 양남이 되므로 대운의 흐름이 순행하게
되니 그 사주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된다.


 


時 日 月 年


甲 丁 壬 戊


辰 卯 子 戌


 


81 71 61 51 41 31 21 11 01


辛 庚 己 戊 丁 丙 乙 甲 癸


酉 申 未 午 巳 辰 卯 寅 丑


 


(분석)


 


1. 자진의 반합에 관성이 월간에 투출하며 년주는 상관이 간지를 이루니 명국은 신약이 되었다.


 


2. 그래서 다시 반가운 것은 인겁이 되겠고 살인상생도 좋지만 재성과 식상은 꺼린다.


 


3. 명리로 살펴본다면 초운은 癸丑으로 식상의 기운이 흐르니 어려서 집안은 가난하기 짝이 없었으니 명리학과 사실이
부합이 된다.


 


4. 1908년에서 1941년까지는 甲寅, 乙卯,
丙辰, 丁巳 대운으로 모두 희용신에 속하니 운이 좋은 시절이 약
40여 년 간 지속이 되면서 진성은 국민당의 장개석과 더불어 군에서 관의 운이 형통했고 계속 진급을 하여 참모총장을 거쳐 국방부장관까지 한 일이 충분히 부합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5. 1948년 운이 戊午로 흐르면서 월주의 壬子를 충하고 그로 인해서 자진과 오술이 충돌을 하게 되니 이 해에
요침전에서 폭발이 있었고 두 해 안에 淮海전투와 평진전투 등에서 400만 대군을 전부 잃고 남경도 지키지 못하고 대만으로 패주하였으니 전부 명리학의 이치에 부합이 된다. 이어지는 己未, 庚申 대운은 기신인 식상이 들어와서 다시 신약해지니 일주의 기운을 빼앗기고는 꿈만 꾸다가 연기처럼 사라졌으니 다시 운이 없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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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책에 나온 진성장군이라는 사람의 실제 상황이다. 비록 황춘발 선생은 동지기준에 대해서 반론을 펴기 위해 이미 제출이 된 책의 자료를 언급하였거니와, 과연 이러한 내용에서 특별히 반론을 펼 이치에 부합이 되는지를 생각해봐야 하겠다. 너무나 뚜렷한 대입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도 반론을 펴봐야 하겠다는 선생의 의미를 살려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한다.


 


[황춘발 선생의 반론] -입춘기준에서의 상황


 


丁火일주가 子月에 났으니 절지에 임하여 본래 약하다. 다만 일주 정화는 묘목의 편인에 앉아 있고 또 시간의 갑목 정인과 년간의 정화가 도움을 얻으니 일주는 약한 가운데 도리어 왕해지게 되었다. 관살이 월령을 잡고 천간에 투출을 하니 다만 그 년월의 정임이 합이 되어 합관류살격이 되어 청함이 기쁘다. 월간의 임수 정관은 합을 탐하여 극을 잊으니 거의 월령에 있는 子水를 용신으로 삼는 형상이다.
일반인이 월령을 보고 강왕을 비교하지 않는데, 월령의 자수가 이미 왕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운이 묘목과 갑목에게 다 빠진 상태이다보니 왕한 가운데 문득 약해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년에서 酉金이 생조를 하지 않았다면 자수 편관은 근원이 없어 용신으로 작용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관살이 기운이 없다면 능히 이러한 일을 성취했겠느냐는 생각을 해본다. 이 사주는 완전히 금의 재성으로 상생이 되어 子水를 생조하지 않았더라면 문득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주가 약한 가운데 왕하게 되어 신왕하여 관을 용하고 희신은 재성을 삼으니 운이 50세 이전까지 서북의 金水 운으로 흘러 편관을 도와 무관으로 귀함을 누렸고, 순풍에 돗을 달았는데, 50세 이후에는 남방의 火土로 흐르는 운으로 인해서 관살이 극을 받고 처절하게 패배하여 마침내 장개석과 함께 대만으로 도망했으니 비록 귀하기는 부총통과 형정원장까지 역임했지만 자신의 뜻을 펴보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 사주의 큰 결점은 일주 정화와 년주 정화가 월간의 임수를 놓고 쟁합을 한다는 것인데 비록 년간의 임수와 합을 하여 합관유살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본인의 일주가 쟁합을 함으로 해서 맑은 가운데에 탁함이 포함된다. 대운 丁未에 세운 丁亥년은 다시 정임합이 되어 네 개의 정화가 하나의 임수를 놓고 다투게 되니 전쟁이 격렬하여 안과 밖에서 모두 실패를 하였던 것이다. 52세의 戊子나 53세의 己丑은 식상이 관살을 극하고 54세의 庚寅, 55세의 辛卯년은 관상이 또한 병지나 사지에 해당하니 그대로 내리막 길을 타게 되고 이로 인해서 격국의 재관이 청순하고 관성이 근원도 있으니 비록 늦은 운이 결함은 있었지만 또한 편안하게 세월을 보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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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의 설명을 보면서 동지기준으로 년주를 바꿔서 반론한 대목은 보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가 되리라고 본다. 즉 사주의 원국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으로써 결론은 나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낭월이 생각으로는 앞의 주작교 선생이 설명한 방식이 황춘발 선생이 설명하는 반론에 비해서 훨씬 매끄럽다고 느껴진다. 벗님의 생각에 따라서 어느 것을 생각하시든 또한 자신의 공부와 판단에 맡길 따름이다.
적어도 선배님들이 이 대목에 대해서 올바르게 해석을 하려고 이렇게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을 하게된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