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먼 길을 떠나신 벗님께....

작성일
2000-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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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길 떠나신 님께


제66화- 먼길 떠나신 벗님께....-故 김경보 선생 영전에 -


 

 

1. 추억


 예전에 하도 헤매고 다닐 적에 서산에서의 인연이다. 그 당시 고물장사를 하던 중이었는데, 서산터미널의 2층에서 철학원을 하시던 한 선생과 가끔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전생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수원에 가면 전생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불원천리하고 하루를 별러서 찾아갔다. 수원성의 북문 부근의 언덕에서 반지하의 셋집에 머물러 살던 김 선생을 만나게 된 것이 그 무렵이었는데, 그는 다소 검은 빛의 얼굴에 활달해 보이면서도 수수하게 보이는 모습으로 나그네에게 위로의 말을 한 마디 해 줬다.

"다 잘 될거요. 그게 다 나중에 써먹으려고 하는 신의 각본에 의해서 겪는 고통이니까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해요. 아마 답이 나올 겁니다."

당시에 명리공부도 상당히 하던 와중이었지만 또한 자신의 길이 보이지 않으니 이런저런 궁금증으로 기웃거리게 되었는데, 그 도중에서 무수히 많은 도인을 만났던 것이다. 그런데에도 유독 기억이 나는 것은 이 사람의 조언은 특별하게 적중을 하거나 말거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생각인지 경험인지 예언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말이었는데, 그 말에는 자연의 이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호감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전생이 뭐냐고 물었고, 또 전생에 임진왜란과 연관해서 조선을 따라온 승려라는 말도 해준다. 전사하는 병사를 위해서 염불 해주는 목적으로 따라다니는 승려가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대략 그런 정도인가 보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당연히 낭월이 성질에 일일이 따져서 그 전후에 대해서도 질문을 해 봤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자꾸 물으면 거짓말을 하게 되므로 자꾸 묻지 말라는 말로 일축해 버렸다. 그런 말을 할 때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전생을 예언하느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는 것은 알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솔직함이 그래도 호감이 가서 이야기를 들어봤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모두 안드로메다 성좌에서 공부를 위해서 이주된 영혼들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성좌는 엄청나게 멀리 있지만 실은 순식간에 이동을 할 수가 있는 영혼의 구조로는 그리 멀다고 할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공부를 마친 다음에는 다시 본래의 고향으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그 별이 안드로메다이든 또는 북두칠성이든 중요한 것은 우리는 공부를 마친 다음에는 그 곳으로 가게 된다는 것이며 그러기까지는 계속해서 윤회를 통해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한 내용에서 모두를 믿을 수는 없지만 여하튼 막연하게나마 그러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던 터였으므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2. 재회


 논산의 서니암으로 자리를 옮긴 다음에 소식을 들었는데, 대전으로 이동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문을 했더니 철학원의 간판을 달아 놓고 방문객을 받고 있었는데, 예전의 모습 그대로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런데 달라진 것은 여인왕국을 발굴한다는 목적이 하나 더 추가된 것이었다. 안동의 어느 지역에 신라 이전의 여인왕국이 있었는데, 갖은 약탈로 한을 품고 멸망을 했는데, 그 원혼들을 달래야 한다면서 도반들끼리 천도재를 지내고 왔다는 말을 가끔 듣기도 했다. 그와 연관해서 글을 쓰는 것이라고는 중학교 때에 끙끙대면서 밤을 새워서 편지지 두 장을 채우지도 못했던 박선생이 영적인 상태에서 자동서기로 받아 적은 원고를 책으로 출판해서 그 인세로 발굴비용에 보태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책을 냈는데, 이름은 [여인왕국]이었다. 그리고 후에는 다시 [무린바타]라는 제목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이 들의 생각과는 달리 책은 별로 반응이 없었고, 내용도 다소 황당하다고 생각을 했음인지 학계의 주목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돈을 들여서 만든 책이 반응이 없으니 계획은 자연히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는데, 한 번은 놀러 갔다가 사진을 한 장 얻었는데, 그 지역에 예전에 여인왕국이 있던 터라고 했다.
지금도 그 사진은 어딘가 있을 것이다. 찾아봐야 하겠는데.....


3. 풍수학의 인연


 참으로 재주도 많아서 김 선생은 영계와 명리학을 두루 섭렵하시더니만 급기야는 풍수학에 인연을 맺었던 모양이다. 언제부터인가 산천의 형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기운에 대해서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수원에서 풍수관련 인연을 맺었던 모양이었다. 그의 스승은 고 손석우 옹이라고 한다. 세간에서는 그의 행적을 두고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죄를 많이 지은 영감으로 평가를 하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김 선생에게 그 진위를 알아보니 자신도 그의 물욕에 실망을 하였지만 그의 능력은 한국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이며 함께 산천을 유람하고 다니면서 현장에서 확인을 한 것은 그대로 놀라움 자체였다고 하는 말을 해준다. 그러한 말을 들으면서 능력과 마음 씀은 다른 것이라고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은 낭월이의 몫이다.

그래서 아마도 신은 한 사람에게 두 가지를 모두 주지는 않는 모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는 과거에도 적지 않게 있었던 모양이다.

예전에 아마데우스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인데, 그의 능력과 행동은 전혀 다른 수 사람의 행동이라고 생각이 될 지경이었다. 모차르트의 음악적인 재능에 비교하나면 방탕한 그의 행동은 연결의 고리를 찾아내기가 참 어렵다고 하겠고, 오히려 음악의 재능과 도덕성을 갖추기도 했다고 보는 샬리에르의 경우에는 패배감만 안고 일생을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과연 자연의 오묘한 섭리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된다.

언젠가 판소리를 하는 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당시의 고수로 명성이 쟁쟁한 김명환 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를 두고 하는 말이 '그 인간은 쓸 곳은 두 손모가지 뿐이야~!' 라고 말했다. 이 말에서 느끼는 것은 또한 모차르트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해도 되겠다. 원래가 일고수 이명창이라고 할 정도로 고수의 비중이 참으로 대단해서 천하의 명창도 고수의 손놀림에 따라서 울고 웃는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의 북 솜씨는 참으로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행동은 별로 군자라고 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악기는 군자의 악기이지만 다루는 사람이 부도덕하다고 해서 그를 포기하기에는 또한 너무나 아까운 재주라는 것이다. 그래서 낭월이가 생각하기에는 손석우 옹께서도 안으로나 밖으로나 완벽한 도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능력은 대단했던 것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에게서는 능력을 빌리면 되는 것이고, 그의 심성까지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결국은 내가 필요한 만큼만 취하면 되는 것이니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괜히 비난을 할 필요가 없고 그래봐야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찌 생각을 해보면 만약 실험하는 프로그램에서 귀신처럼 맞췄더라면 더욱 많은 사람이 그에게 쏠렸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오히려 신의 각본에 의해서 빗나가게 되어 있는 것이라고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3. 기공 수련


 낭월이는 물론 본격적으로 풍수에 대한 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만나서 산천으로 동행을 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신기하다는 생각도 하였다. 특히 낭월이가 매력을 느끼는 것은 음택보다는 양택이다. 둘이 서로 다를 것은 없지만 늘 사람의 위주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사람이 사는 공간이 어떻게 되어야 좋은지에 대해서는 많이 질문을 하고 또한 고견을 접하곤 했다. 도읍이나 마을이나 절간의 조건에 대해서도 열심히 이야기를 해줬고, 그래서 장님을 면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동행을 하면서 얻은 공부는 두고두고 아쉬운 채로나마 활용이 되겠고, 주변의 이야기는 [알기쉬운 음양오행]에서 감로사 터를 잡은 이야기나 낭월한담의 [풍수쟁이를 따라 보낸 하루]에서 살펴볼 수도 있으시겠다.

그리고 그는 낭월이의 어줍잖은 명리학의 연구에 대해서도 인정을 해 줬다. 자신의 사주도 좀 봐 달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그 명식은 다음과 같다.

時 日 月 年
己  丙 甲 癸
亥  申 寅 巳



이러한 사주의 구조이다.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인신충으로 어지간히도 분주하겠다는 것이고, 다음으로 생각을 해볼 것은 신약하여 인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지의 편재이니 공간성이 좋겠다는 것과 시간의 상관은 표현력이 상당하리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리고 편인이 옆에 있음으로 해서 영감이 상당히 좋을 것이라는 짐작도 하게 되는데, 아쉬운 점은 식신이 보이지 않아서 직관력에 비해서 연구하고 궁리하는 면은 약하다고 하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여하튼 그의 운은 북에서 서방으로 흐르고 있으니 활용을 하기에는 많이 아쉽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난 언제나 자리를 잡겠나 좀 봐줘봐요."
"인신충이 된 사람이 자리는 잡아서 뭐하시게요. 하하~"
"하긴 그래 하하하~"
"활발하게 동서남북으로 돌아 다니시지요뭐."
"그게 좋겠네. 근데 용신을 뭘로 봐야 하지?"
"그야 편인을 봐야 하지 않겠어요? 어떻게 생각 하셨어요?"
"글세 말이야... 나도 편인이 좋아 보이는데, 어떤 사람들은 편재가 좋다고 해서 가끔 헷갈린단 말이야. 잘 좀 봐요."
"잘 봐도 그런데요...... 운이 좀 아쉽네요."
"운은 말도 말아."
"왜요?"
"壬申 癸酉에 망했단 말이야."
"뭘 하시느라고 그랬나요?"
"온천수 개발하느라고 그랬지 뭐.... 떼돈 한번 벌어 보려다가 쫄딱 망했어."
"아니, 땅을 보시는 분도 실수를 하나요?"
"나도 처음에는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단 말이야. 그런데 곰곰 생각을 해보니까 만약 땅을 보는 사람이 모두를 장악하게 된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을 생각하게 되더란 말이야."
"하긴 그렇군요. 예전에 어느 풍수 도사가 명당을 잡으러 다니다가 남에게 주기가 너무 아까워서 나쁜 자리라고 하고는 자신의 어머니 시신을 그 자리에 묻었다면서요?"
"도선국사가 그랬다는 말이 있더구만. 진위 여부는 모르겠지만 교훈적인 말이야."
"그러니까 땅에 대해서 욕심을 내는 바람에 어머니를 아홉 번이나 이장을 했던 것이 아닌가요?"
"그랬다더구만, 나중에 자신의 모친을 모신 자리를 지나다가 인사나 드리려고 찾아가 봤더니 천하에 몹쓸 악지에다가 모셔놨더라지. 자신의 눈이 완전히 멀어버리는 모양인지, 그러니까 천지에서 과욕하는 자에게는 그대로 어울리는 벌을 내리는 모양이야."
"참 놀라운 경계의 말씀인가 싶습니다. 욕심이 과해서 온천수 개발에 뛰어 들었단 말인가요? 도선의 이야기를 모르시는 바도 아닐 터인데 말이지요."
"그러니까 말이지. 실은 온천수를 개발해서 수입이 되면 여인왕국을 개발하려고 생각을 했던 것이지 내 한 몸이 잘 먹고 잘 살겠다고 한 일은 아니야. 그래도 아마 아직은 여인왕국을 밝히는 것이 싫은가봐 그랬으니까 일이 잘 풀리질 않지. 하하~"
"그래 지금의 생각은 어떻신가요?"

"크게 한 대 맞았지 뭐 이제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지 말고 나를 찾는 일에나 관심을 갖기로 했소. 그리고 낭월 스님도 이제 남의 일 그만하고 자신의 일을 해요. 남의 일 아무리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어. 자신의 일을 해야지."


 "뭐가 자신의 일인데요?"
"몰라서 물어요?"
"알면 왜 물어요~!"
"원 참내.... 기공이나 해요. 내 몸의 기운이 천지의 기운과 통하게 되면 비로소 세상이 보이는 거야. 그 일 말고는 남는 것이 없어요. 이 몸 병들어서 쓰러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
"참 그렇기도 하네요. 대충 급한 일이나 해놓고 낭월이도 공부나 하렵니다."
"어허~! 일 다 해놓고서는 시간이 없다니까 그러네. 오늘 당장 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시간이 없다고 생각을 해야 한다구."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낭월이는 그냥 옳은 말이라고만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한 달 정도는 기공을 한다고 토요일마다 나가기도 했는데, 워낙이 약골을 타고나서인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뒤로 미뤘지만 내심 포기를 한 것이라고 해야 하겠다. 여하튼 그의 풍수에 대한 안목은 날카로와서 과연 낭월이를 실망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풍수 선생으로는 늘 김 선생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고 늘 진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마음을 사랑하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어느 방문객이 산세와 집의 좌향을 살펴보면서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터를 잘못 잡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런가보다 하고 다음 날에 질문을 던졌다.

"어제 뵈니까 뭔가 맘에 들지 않아 보이셨는데, 한 말씀 가르쳐 주시지요."
"아닙니다. 어제는 누가 잘못 잡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오늘 다시 보니까 과연 그의 안목이 나보다 한 수 위였다는 것을 오늘 알았습니다. 나무가 너무 우거져 있는 상황인데 나는 발견하지 못한 것을 그 선생은 발견하셨네요. 잘 잡았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다행이고요. 고맙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이렇게 자신의 안목을 솔직하게 시인하는 풍수 선생도 또한 존경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이가 아니고서는 진정으로 의지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4. 사망 소식


 충남대 병원 영안실에서 전화로 김 선생의 사망 소식이 날아 왔다. 사인은 췌장암이라고 하는데, 후에 알아보니 온 몸이 많이 상했던 모양이다. 그의 영전에서 독경을 하면서 생각하니 참 허망하다는 감상뿐이었다. 낭월이가 이 시간에 김 선생의 영전에서 독경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며칠 후에 전화를 해서 예산 방향으로 풍수 공부를 가자고 할 계획까지 하고 있던 터에 이러한 소식은 참 서글프다는 생각이 절도 들었다.

습관적으로 사주를 뒤져봤다. 올해 나이는 48세이고 대운은 己土 상관에 세운은 편재와 식신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리고 酉金 대운으로 바뀌려고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갑목이 용신인 상황에서 경금이 들어와서 쳐버리니 견디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짐작도 해본다. 여하튼 그의 병은 이미 오래 전에 발병을 했던 모양이고, 비로소 전에 해준 말이 자꾸만 의미 있게 떠올랐다.

'이 몸 망가지면 다 헛일이야. 건강할 적에 부지런히 수련해요.'

라고 한 말이 그냥 들린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말의 의미를 이제야 깨닫게 되니 참 안타까웠지만 무슨 소용이 있으랴......

들어본 말에 의하면 이미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을 알고는 여러 가지로 해본 다음에 마지막으로 스스로 자신을 고쳐 보겠다는 일념으로 기공 수련에 매달렸던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리고 그 병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겠지만 낭월이가 보기에는 우선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하겠고 다음으로는 가족이 아마도 짐이 되지 않았을까도 생각 해봤다. 혼자서 산중에서 공부를 했으면 가장 좋았겠지만 죽을병이 든 환자들을 상대로 지친 몸으로 시술을 하노라면 어찌 온갖 사악한 기운이 몸 속으로 스며들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실제로 그렇게 지친 몸으로도 환자가 오면 거절을 하지 못하고 시술을 하고 나서는 지쳤던 모양인데, 만약 혼자 살아가는 환경이었다고 한다면 그러한 부담스러운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확대해서 생각하면 벗님도 혹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으신지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건강을 잘 관리하시라는 당부의 말씀을 먼저 드리게 된다. 사악한 기운을 제거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스스로 그 기운을 풀어내지 못한다면 자신에게 도리어 감겨들게 된다는 것을 잊으시면 곤란하겠다.

그래서 힘이 들 적에는 언제라도 문들 닫아걸고 내공을 수련할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게 된다. 어쩌면 이미 그 환자는 자신의 업에 의해서 암으로 죽어가게 되어 있는 것인데 능력자를 찾아와서 하소연을 하니까 차마 그냥 돌려보내지 못하고 그의 운명에
개입을 하게 되니 자신이 도리어 희생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이것은 인과응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간암 전문의는 간암으로 죽을 가능성이 가장 많다고 하는 어느 이야기는 과연 인과법에 의해서 타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방면에 전문가가 될 경우에는 그 전문성의 일이 내 몸이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도 잘 생각하지 않으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하시면 더욱 고맙겠다.

여하튼 모두가 다 인연이겠지만, 그는 고향 상주로 영구차에 실려서 떠났고, 낭월이는 여전히 그가 잡아 준 계룡산 자락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있으나, 누가 더 행복하고 더 불행한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 생각을 해보면 김 선생은 자신의 운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몸을 바꿔서 다시 살아 보려고 서둘러서 갔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일생의 희망이라고 할 수도 있는 여인왕국에 대해서도 발굴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냥 훨훨 떠나버리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이 된다. 만약 낭월이 나이 60이 넘은 이후에라도 여인 왕국을 개발하겠다는 사나이가 나타난다면 혹 그가 김 선생의 후신이 아닌가 다시 살펴봐야 할 모양이며, 그 때 혹시라도 경제적으로 안정이 된다면 기부를 좀 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해 봤다. 그의 능력이 너무 안타까워서 다시 보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라고 해야 하겠다.

 

5. 고별사

"인연이 있어 만나고 헤어짐을 누가 막고 권하겠습니까? 또한 서로 고통을 받아보고 그 마음을 서로 알기에 얼굴을 보면서 미소 한번 띄우는 것으로도 모두가 통하는 그런 기분이었지요. 이러한 마음을 이제 또 누구랑 나눠야 할지요......


 웃음을 머금을 때면 개구쟁이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또한 장담을 할 적이면 천하의 어떤 불치의 병이라도 말끔하게 나을 것만 같지요. 아마도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 이번 생의 소임이셨던가 봅니다.

김 선생께서 이 땅에 뿌린 인연이 또한 적지 않겠습니다만, 그 인연인들 어찌 갑자기 맺어진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늘 다겁의 생을 두고 이어져 온 일들이겠지요. 그리고 낭월이와의 만남도 또한 그러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어제의 만남은 또 오늘의 헤어짐을 예고하듯이, 오늘의 이별은 또 내일의 만남을 예약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 무슨 선생으로 오실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그 천진한 미소를 만나게 되기만 기다릴 참입니다. 앞으로 20년 후에라도 다시 인연이 있어 낭월이를 찾아오신다면 혹여 그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보낼까 하는 마음이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김 선생님의 영전에 독경을 하면서 안타까움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습니다. 내 부모가 돌아가셔도 잘 가셨다고 하였건만, 이게 무슨 마음의 변덕인지요......

사림이 일생을 살면서 친구를 몇 얻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원래가 친구 사귀는 일에는 매우 서투르기만 한 낭월이고 보니 내심 친구라고 생각을 하였던 마음에 더욱 빈자리가 커지는가 봅니다....

형편에 따라서 10만원을 사례해도 그냥 고맙고, 20만원을 사례해도 형편도 어려운데 뭘 하느냐는 말만하시는 모습에 그래도 형편이 조금은 나은 줄로 생각을 했었는데, 과연 더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하고 병원에서도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시는 바람에 죽을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어찌 꿈엔들 생각이나 했겠나요...... 닝겔 한 병이라도 사 드릴 수가 있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또한 아쉽습니다. 어찌 구차스럽게 자신의 형편을 알리지 않는 마음이야 모르겠습니까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습니다. 그려....

이제 선생 떠나신지도 두 달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하루도 선생의 삶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과연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낭월이도 남의 일은 그만 하고 자신의 일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다만 또한 마음뿐이겠지요. 그래도 그렇게 간곡히 일러 주신 그 유언은 잊지 않고 언젠가 준비를 하겠습니다.

또한 이렇게 살아가노라면 반가운 벗도 만나겠지요.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더러는 잊혀지기도 할 것입니다만, 지금 마음 같아서는 오래도록 어쩌면 눈을 감을 때가지 함께 하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윤회의 길이 또 어떻게 흐를지는 아무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음 생의 일을 알고 싶으면 이번 생에 한 일을 살펴보라고 한 불타의 말씀이고 보면, 다음 생에는 틀림없이 큰 가르침을 단비처럼 내리게 될 인연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큰 대자연의 이치를 깨달으시고 그 가르침으로 목마른 이들에게 널리 베푸는 인연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디 좋은 인연 되시옵소서.

벗을 떠나 보내면서 아쉬운 마음에....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