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戊土는 山, 己土는 벌판?

작성일
2000-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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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戊土는 산, 己土는 벌판?



늘 그렇게 자평명리학에서 다루는 내용이 혹 무슨 문제는 없는가 싶어서 주시를 하고 다시 생각을 하는 버릇이 낭월이에게 있는 모양이다. 이번에도 이 문제를 놓고 곰곰 생각을 해보니 아무래도 뭔가 미심쩍어서 다시 생각을 해보고 또 해보다가 오늘은 문득 이러한 방향으로 모색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한번 정리를 해본다.


 


1. 己土는 토양이다.


 


이것을 일단 전제로 해서 생각을 해야 하겠다. 즉 다시 말씀드리면 산이든 벌판이든 진흙이든 갯벌이든 모두 己土라고 하는 것이 이치에 옳다고 하는 주장을 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하는 의견이 되겠다. 이것은 태양의 체를 丁火라고 하는 것과도 일치한다고 하겠다. 그러니까 토양은 己土일 뿐이지 이것을 陽土와 陰土로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며 이치적으로도 과히 타당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야 하겠다.


그러니까 기토를 의지해서 삼라만상이 모두 삶을 꾸려가고 있다고 하면 되겠고, 그 기토는 다시 태양의 기운을 받아서 만물을 성장시킨다고 봐서 火生土의 원리로써 이해를 하면 되겠고, 또한 기토는 甲己合으로 갑목을 유정하게 끌어 않으니 목을 길러준다는 의미도 해당이 되겠고, 그렇게 목을 길러주다가는 목의 수명이 다하면 다시 목을 토로 환원시키는 작용까지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갑목은 목의 기운이라고 했으면서도 성장점이라고 했으니 결국 목을 성장하게 해주면 갑목과의 인연은 다 된 것으로 보고 다시 갑목에서 목의 질에 해당하는 乙木이 나오는 것은 또한 목의 사정이므로 기토가 알 바가 아니라고 해도 되겠다. 여하튼 뭔가 말이 되어 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러한 궁리를 하면서 스스로 신명이 나는 낭월이다.


기토는 토양으로써 공평하게 두루두루 보살피고 있음을 살피게 된다. 그 작용은 산골이거나 바닷가이거나 도심이거나 구분을 하지 않고 공평하게 작용을 하게 된다. 씨앗을 심으면 뿌리를 잡아주고 터를 닦으면 주춧돌을 잡아주고 마당을 닦으면 운동장이 되어준다. 그리고 댐이 필요하면 둑이 되어서 튼튼하게 막아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에 대해서 별다른 구분이 없으니 이를 일러서 '土는 中和'라고 하는 말로 대신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래서 토는 성장을 할 수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토의 입장에서 성장을 해야 한다는 욕구가 있다면 성장에 장애가 되는 요소에 대해서는 싫어하는 마음이 발생할 것은 당연하겠고, 그렇게 되면 中和를 이미 잃었다고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토의 작용은 공평하고 무사(無私)하게 두루두루 세상 만물에 작용을 하는 것으로 해석을 해야 할 것이고, 여기에서는 무토를 찾아보기가 어렵고 구분을 할 수도 없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고민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바위가 자란다는 말은 있지만 흙이 자란다는 말은 못 들어 보셨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므로 토의 작용은 유효하다고 하는 말씀을 생각해봐야 하겠다.


 


2. 산의 土는 戊土가 아닌가?


 


물론 당연히 아니다. 단지 수분이 부족한 상태의 己土일 뿐이다. 그러니까 같은 土의 다른 모양일 뿐이라고 하는 점을 생각해야 하겠다. 즉 산의 土는 메마르고 건조하니까 수분이 부족한 상태의 己土이고 갯바닥의 진흙은 수분이 많은 찰흙이 되는 기토일 뿐이라고 이해를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으로 토를 이해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생각되는데 벗님의 생각은 어떻신지 모르겠다. 흔히 하는 말로 己土로는 둑을 막지 못하고 무토에는 식물을 기를 수가 없다고 하는 말도 하는데, 이러한 것이야말로 바로 미신의 오류를 발생시키는 시작점이 되는 것이고 바로 이러한 문제 그 기본적인 구조를 바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己土도 수분이 많지 않으면 얼마든지 물을 막을 수가 있는 것이고, 戊土도 또한 수분이 있다면 농사를 지을 수가 있는 것이다. 시골에서 보면 높은 밭을 포크레인으로 파내고 논두렁을 만들면 그대로 논이 되고 예전의 방식으로 한다면 무토가 기토로 변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음양이 변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실은 이것이 아닐 것이라는 의심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겠느냐고 힘을 주면서.... 하하~


 


3. 그렇다면 戊土는 어디에서 찾는가?


 


실로 이것이 묘연해서 낭월이도 늘 고민을 하고 있는 입장이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언덕이나 산의 토가 무토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는데, 그렇다면 과연 戊土는 토의 기가 되어야 할 것인데 이것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겠느냐는 점에서 여간 고민스럽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씹고 또 씹으면서 자연을 관찰하노라면 눈이 나쁜 학자에게도 뭔가 약간의 힌트를 주지 않을까 싶어서 틈만 나면 물고 늘어져서 戊土의 정체를 밝히려고 고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오늘 문득 그 소식을 어렴풋이 느꼈고 그래서 너무 신명이 나는 낭월이는 이렇게 낭월한담에 그 소식을 전해 드리는 것이다. 자, 이제 그 소식을 말씀드리도록 하겠다.


 


"戊土는 引力이다"


 


무슨 폭탄선언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가 너무 싱겁다고 생각하시지나 않으셨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폭탄선언이라고 하는 느낌이 드신다면 아마도 오행을 연구할 인연이 크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낭월이는 이 소식이 너무 신명나는데, 벗님은 어떠실지.....?


 


다시 차분하게 설명을 드린다. 토양에서 기에 해당하는 부분이 과연 무엇이겠는지를 곰곰 생각하다가 인력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그 인력이라고 하는 것이 순전히 토양에서 나온 파워라고 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고서는 참으로 머리가 나쁜 낭월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미 우리는 지구의 크기에 의해서 그에 해당하는 인력을 갖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는 바이다. 그러면서도 왜 그것이 '土의 陽' 즉 戊土라고 하는 생각을 하지 못했느냔 말이다. 물론 이제라도 여기에 생각이 미친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여하튼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주어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봄에는 기운을 열어주고 가을에는 기운을 거둔다고 했는데, 이러한 일을 목이나 금이 하지 않고 어째서 무토가 하고 있느냐는 의문이 든 것은 적천수의 십간론에서이다. 그렇지만 그냥 그렇겠거니... 했는데, 이렇게 인력이 무토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고 보니까 실로 봄이나 여름에는 토의 기운이 열려서 밖으로 향해서 나아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그 기운을 따라서 산천초목도 성장을 한다는 것으로 연결이 된다. 그리고 다시 가을이 되면 기운이 닫히게 되면서 삼라만상도 성장을 멈추고 휴식을 취한다는 것까지 연결이 되면서 소름이 돋아난다.(벗님은 허풍을 떤다고 하실 것이지만...)


 


다시 인력을 무토로 보는 것은 골고루 잡아주고 골고루 나눠준다는 의미에서 두루두루 널려있는 토의 특성에도 그대로 부합이 된다. 그리고 공기 등의 원소도 무토에 해당한다고 해야 하겠고, 그러다 보니 대기권이 모두 무토의 영역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리고 무토의 존재를 발견해서 이름을 만대에 전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뉴우톤 말이다. 그가 사과의 낙하를 보면서 무토를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역시 죽었다 깨어나도 그 소식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제 이 무토의 존재는 모두 소중한 것으로 알게 되었고, 특히 대기권에서의 오존층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참으로 적은 일이 아닌 것은 무토가 파괴되면 서로 의지하고 살수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만약에 말이다. 무토가 기토와 분리가 된다고 하는 장면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 지구는 어떻게 될까? 과연 그 의미가 있을까? 물론 절대로 의미가 있을 수가 없다. 그대로 지구는 멸망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니 음양은 서로 다르면서도 서로 떨어질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느끼는 것은 과연 무토가 인력이 맞다는 것이다. 태양과 빛을 분리할 수가 없듯이. 무토와 기토도 또한 분리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분리가 되면 이미 토로써의 능력을 상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땅은 죽음의 땅이 되고 말 것이니 참으로 생각하기에 따라서 많은 것이 보인다고 해야 하겠다.



공기가 희박해지고 다시 오염되고 또 병들고.... 그렇게 되면 자연의 상태는 그대로 끝이라고 해야할 것이고 그렇게 된 다음에야 비로소 戊土가 '만물사명(萬物司命)' 한다는 적천수의 글귀에 대한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된다. 이렇게 의미심장한 통찰력을 고인들이 이미 갖고 계셨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고 경이로울 뿐이다. 감로사에서 생활하다가 서울로 가면 이내 매케한 기름 탄 냄새가 나면서 서울을 떠날 때까지 그 냄새는 유지가 된다. 과연 무토의 오염이 어떤 결과를 안겨 줄지는 너무도 당연하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리고 자연이 진리라고 믿는 마음에도 금이 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무토는 믿음인데, 자연이 병들고 있으니 그 자연을 어떻게 믿겠느냐고 하는 말을 서울에서는 해도 될 모양이다.


믿음이 깨어지면 만물은 유지가 될 수가 없다고 해야 하겠다. 봄에 잎이 필 것이라고 믿지만 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무토가 병들면 자연은 잎을 피울 수가 없다는 결론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눈이 올 것이라고 믿는데, 역시 에너지의 연소로 인해서 열이 올라가니 무토는 조열해져서 눈이 오지 않을 가능성이 더욱 많아지고, 역시 무토의 믿음이 자꾸만 흔들린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어디 그뿐이랴. 그렇게 되면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마음은 더욱 각박해지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신뢰감은 무너지게 될 것이고, 그 결과는 멸망으로 가는 길이 되는 것은 정해진 코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겠다. 이 정도의 말씀이라면 아마도 무토가 인력이라고 하는 말이 전혀 얼토당토않은 말이라고는 하시지 않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4. 戊癸合의 원리 접목


 


이제 내친 김에 여기까지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무토가 계수와 합을 하게 되는데, 과연 이것은 무슨 소식일까? 무토가 인력이라고 한 상황에서 다시 설명을 해볼 수가 있겠느냐는 것도 발설자의 숙제이다. 또 둔한 머리를 굴려본다.


그 결과 연결이 가능하다고 하는 답을 찾아냈다. 癸水는 水의 質이고 그래서 물이라고 하는 결론을 유추해 낸다. 이것은 대기 중에서의 물에 해당하고 그 의미를 확대 해석하게 되면 빗물이라고 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대기와 빗물의 관계라.... 뭔가 선명하게 집히는 것이 있으시기를 바란다.


 


다시 말씀드리면 빗물이 없다면 기토의 역사가 마음대로 되지를 않는다. 즉 땅은 메말라 버리고 그 메말라 버린 땅에서는 만물이 자랄 수가 없이 되어버리고 그렇게 되면 무토의 역할은 있으나 마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역사를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계수와 합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비를 내려서 대지를 적셔줘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만물은 소생을 하게 되는 것이니 이래서 戊土는 오로지 십간 중에서 어여삐 여길 글자는 癸水 밖에 없다고 하는 점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에는 연지님이랑 쓴 쐬주라도 한 잔 해야 할 모양이다. 하하~


 


그나저나 올 봄의 가뭄이 너무 심한 모양인데, 무계합이 빨리 좀 이뤄졌으면 좋으련만.....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