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丙火는 태양, 丁火는 등불?

작성일
2000-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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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丙火는 태양, 丁火는 등불?



 참으로 세상에는 아름대운 진리도 있고 허술한 미신도 많은데 그 중에서도 이 火에 대한 오해는 가장 증세가 심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갖게 만든다. 오늘은 이 점에 대해서 의견을 올려보도록 한다.


 


1. 丙火를 태양이라고 하는 이유


 


여러 가지 이론이 있겠지만 강력한 불이어서 그렇다고 한다. 실로 丙火가 강력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고 이 점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고 보겠다. 그렇다면 병화는 분명히 태양이 된다고 하면 다시 丁火는 무엇이냐고 해야 하는데, 실로 정화를 일러서 등불이나 촛불이라고 하는 것에서 낭월이의 시각에 문제점으로 발견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병화가 태양이고 정화가 등불이라면 등불 이전에는 정화가 무엇이었느냐고 해야 하겠고, 실로 정화가 의미를 두게 되는 것이 등불이 발견된 후로 제작된 것이라면 또한 일리가 있다고는 하더라도 자연의 이치를 완전히 설명했다고는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병화를 태양이라고 해야 하는 이유를 낭월이는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적천수에서도 혹 보신 벗님은 아시겠지만 눈과 서리를 겁내지 않는 이유를 태양의 불이어서 그렇다는 설명이 되어 있는데, 이것도 다시 곰곰 생각을 해보면 기본적으로는 말이 되는 것처럼 생각이 되지만 실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 모순을 안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엉성한 이치를 부여했느냐고 한다면 아마도 당시의 일반적인 기준에서 대입을 했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래서 오늘 다시 화에 대해서 재고를 해보자는 것인데, 실제로 이 시대의 언어로써는 매우 부당한 대입이라고 생각이 되어서이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을 해보자.


 


2. 丙丁은 火의 음양인데....


 


여기에서 다시 앞의 설명이 왜 모순인지를 이해하실 수가 있겠다. 즉 병화와 정화의 구조는 서로 다른 같은 몸이어야 한다는 것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등불과 태양이 설마 같은 몸이라고 하는 의미로 사용되어진 용어는 아니라고 당연히 생각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甲木은 소나무이고 을목은 넝쿨나무이거나 화초와 같다고 이해를 하는 것과 완전히 같은 시각으로 오행을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즉 을목은 나무 줄기이고 갑목은 나무의 눈이나 입사귀에 해당한다는 설명을 해야 木의 음양을 바르게 살명한 것이라고 해야 하겠기 때문에 대들보와 화초의 비유로는 목을 바로 설명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점을 집고 넘어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정화를 등불로 보고 병화를 태양으로 보는 것도 역시 말이 되지 않는 대입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 음양의 관점에서 본다면 서로 분리되어 있는 물체를 설명하는 모델로 채용했다는 것은 애초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하는 말씀을 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잘못된 이해라고 하게 된다.


 


3. 火의 음양을 설명하는 모델로써의 태양


 


다시 태양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뭔가 음양의 성분이라고 한다면 그 물체에서는 음양의 의미가 설명되어야 하겠기 때문이고 태양도 틀림없는 火이기 때문에 이해를 하기 위해서 다시 관찰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낭월이는 어떤 식으로 관찰을 하고 싶으냐고 묻고 싶으시리라. 火를 이해하는 모델로써의 태양은 참으로 멋진 성분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많은 자연의 이치를 충분히 얻어낼 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 태양은 丁火이다.


 


이제 서서히 낭월이 생각을 설명 드린다. 그대로 정화를 태양으로 봐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려는데, 아마도 혹 어떤 벗님이 읽으시면 반론은 위한 반대라고 하실지도 모를 일이다. 병화가 태양이라고 했는데 정화가 태양이라고 한다면 그럼 병화는 등불이라고 할 참이냐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하하~


우선 병화는 나중에 설명을 하고 정화에 대해서 좀더 이해를 해보시도록 하자. 그러니까 무슨 근거로 정화를 태양이라고 하느냐고 하는 말씀을 드려야 하겠는데, 그 근거는 장부론(臟腑論)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아시는대로 장부론은 五臟과 六腑를 말하는 것이고 오장은 간심비폐신(肝心脾肺腎)이 되고, 육부는 담 소장 위 대장 방광(膽小腸胃大腸膀胱)이 된다. 그리고 각기 짝을 이뤄서 서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에서 생각의 실 끝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면 자연은 그대로 하나이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그 원리를 발견할 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여기에서 태양을 정화로 봐야 한다는 것은 장부론에서 장에 속하는 글자이기 때문이고, 藏은 체와 용으로 본다면 여하튼 체에 속한다고 해야 하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태양의 체는 무엇인가? 바로 태양일 뿐이다. 달리 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그래서 태양을 정화라고 봐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인데 이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면 어디가 말이 되지 않는지 찾아보시기 바란다.


 


2) 태양의 빛은 丙火이다.


 


이제 火의 陽에 대해서도 언급을 드려야 하겠다. 태양의 양은 빛에 해당한다고 봐야 하겠다. 빛은 쏘아지는 성분이고, 발산하는 성분이니 그대로 정화보다는 병화에 가깝다고 이해를 할만 하지 않느냐고 하고 싶다. 그리고 혹 '등불은 열이 있어서 정화라고 했고, 태양은 빛이 있어서 병화라고 했다'고 하신다면 말씀이 된다고 할 참이다. 다만 그 의미가 아닌 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어림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체의 다른 음양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치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는 논리를 설정할 수가 있지 않느냐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기왕에 음양과 오행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신 바에는 올바른 오행관을 확립하고 자신이 이해하게 됨으로 해서 더욱 멋진 자연의 세계를 접할 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태양은 음양의 화이고, 여기에서 음은 태양의 불덩어리에 해당하며 양은 불덩어리에서 발산되는 빛이라고 이해를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열에도 다시 빛이 포함이 되기 마련이고 빛에도 열이 포함되기 마련이라고 하는 의미까지 부여하게 된다면 과연 불이 둘인지 하나인지 구분이 모호해 지면서 점차로 바보가 되어 가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며, 그렇게 완전하게 바보가 되어 버린다면 비로소 자유인이라고 하는 것을 누리게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까지도 해본다.


 


이제 정화가 태양이 되는 이유를 이해하셨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논리적으로도 별 문제가 없다고 하는 점을 생각하게 되는데, 태양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것은 열은 전혀 없고 빛뿐이라고 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태양을 병화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말씀은 드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바닥에 깔려있는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고 났을 적에나 해당하는 말이다. 태양을 병화라고 하고 등불을 정화라고 이해하는 시각으로서는 천년이 되어도 이러한 소식을 깨닫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되어서 드리는 말씀이다.


 


4. 다시 빛을 모으면 열이 된다.


 


이것은 당연히 가능하다. 열과 빛은 서로 다른 성분이 아니고 같은 체의 다른 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열에서 빛이 나왔듯이 다시 빛에서도 열이 나올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 예로써 돋보기로 빛을 모아서 불을 붙일 수가 있는 상황을 생각 해보도록 하겠다.


즉 빛이 병화라고 하였지만 이 속에서 정화는 0%냐고 하는 질문을 한다면 이것을 분리해서 설명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는 말씀을 드려야 할 모양이다. 그대로 다른 작용에 불과하다는 말은 언제든지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갈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이냐고 한다면 바로 돋보기로 빛을 모아서 불을 당기는 열원(熱源)으로 삼을 수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돋보기로써 얼음조각을 이용할 수도 있겠다. 빛만 모을 수가 있다면 그 도구로써는 아무 것이든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빛을 모아서 불을 당기는 것도 불은 서로 음양으로써의 동시 공존의 성분이기 때문이라고 하겠고, 구태여 구분을 한다면 열과 빛으로 火의 음양을 나눠볼 뿐이다. 실로 음양을 구분하는 것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일 뿐이지 구체적으로 구분을 할 수는 없는 것이 또한 음양이기 때문이다.


가령 손을 펴서 손등이 위로 가게 해보시라. 등은 양이고 바닥을 음이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예리한 레이저를 이용해서 등과 바닥을 분리해보도록 할까? 그렇다면 완전히 음양을 구분했다고 할 참인가? 그러나 놀랍게도(실은 놀라울 것도 없지만..) 음양을 분리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다시 음양은 여전히 연결된 채로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음양은 완전하게 분리를 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곳에는 이미 그 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즉 열만 있고 빛은 없게 하라고 한다면 이미 그 곳에는 火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이해를 하면 될 일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빛으로도 열을 만들 수가 있고, 열로써도 빛을 만들 수가 있다고 이해를 하면 되겠고, 그래서 빛이 모이면 다시 열이 된다고 하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火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오늘도 궁리를 하고 있는 낭월이다.


 


5. 끓는 물 속에는 丙火가 없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아무도 끓는 물을 일러서 불이라고 하지 않는다. 열만 존재하는 그 물 속에서는 전혀 불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미 불은 그 흔적을 없애버렸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래도 반론의 여지는 남는다. 그렇다면 뜨거운 열기는 무시할 참이냐고 말이다. 물론 무시할 수가 없다. 다만 이미 그 상태는 火의 상태는 아니라고 해야 하겠고, 그래서 水化된 열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적어도 그 상황을 火라고는 하지 않는다는 것에 주의를 해주시기 바란다.


 


그렇다면 다시 물 속의 丁火를 추적해보자. 결국 (물 속에 녹아있는 일부의) 열은 火로 돌아갈 것이다. 일시적으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돌아갈까? 이렇게 추적을 하다 보면 지구를 한바퀴 돌아버릴 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흥겨운 일이다. 여하튼 쫓아가 보자.


 


열은 이미 화가 아니므로 다시 화로 돌아가기 위해서 난리를 칠 것이고, 그래서 본능적으로 화로 돌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바로 丁壬合의 이치라 발생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압력 밥솥을 보면서 그러한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솥 안에서 점차로 무슨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서 꼭지가 마구 돌아가는 과정을 나타내게 되는데, 여기에서 정화가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 임수를 이끌어서 유도한다고 하는 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수증기는 丁壬合火의 소식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만으로 수증기가 될 수는 없다. 불가능하다. 어떤 형태로든지 열기가 만들어져야 비로소 수증기로 연결이 된다. 문무기로 분사해서 발생하는 것은  수증기라고 할 수가 없음을 고려해야 하겠다. 물방울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왜냐면 그 속에는 열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압력 밥솥에서 추를 돌리면서 뿜어져 나오는 김은 그대로 완전한 수증기이면서 여기에서는 물도 불도 볼 수가 없는 그야말로 힘으로 변해버린 木을 발견하게 되고 그래서 丁壬이 합해서 化하면 木이 된다는 말은 바로 이 소식이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자동차의 원리도 이러한 이치를 바탕에 깔고 움직이는 것이라고 들었다. 다만 자동차는 물과 열의 결합이라기 보다는 기름과 열의 결합이라고 하겠고, 그 체를 보면 물이나 기름이나 다를 바가 없겠다.


그래도 혹 기름과 물은 전혀 다른데 무슨 망발이냐고 떼거지를 쓰신다면 부득이 '앞으로 개발되고 있는 차는 물로 가는 차' 라고 하는 것까지 말씀을 드려야 할 모양이다. 여하튼 어디에선가 그 힌트를 발견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공부는 나날이 발전하는 것으로 봐도 좋겠다. 벗님의 공부도 이렇게 나날이 발전하시기를 기원드릴 참이다. 좋은 인연이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