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9화] 물난리에 피해는 없으신지요...

작성일
2002-09-02 10:17
조회
5485
[제169화] 물난리에 피해는 없으신지요...



수화기제(水火旣濟)가 되어야 하는데, 수극토(水剋土)가 극심하여 온 지역에서

난리가 그런 난리가 없으니 참혹하기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는 지경이라고 해

야 하겠다. 휘어진 철로하며, 물에 잠긴 가제도구에 자동차에.... 바다는 바다대

로, 땅은 땅대로, 그 고통에 당면한 당사자들에게는 과연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다만 현실은 현실이므로 도리없이 그대로 가장 빠른 원상복구 뿐

이라고 하겠는데, 그 일을 직접 당하지 않은 사람이 아무리 위로를 한들 도움이

되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약간의 수재의연금에 동참을 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하지 않았느냐고 스스로 위로하고 넘어가야 할 모양이다. 그리고 실은 낭월도

이번 태풍에 피해자에 해당이 된다는 점을 (쪼만한 목소리로나마) 강조해 드리

고 싶어서 근질거린다. 그 경위는 이렇다.



1. 매년의 모친 상봉일



매년 음력 7월 23일 새벽은 모친과 상봉하는 날(일명 제삿날)이다. 그래서 가능

하면 그날이나마 고향을 나들이하는 명분도 되기에 마음을 일으키는데, 이렇게

되어서 연지님은 30일 아침부터 서둘러서 준비를 하고, 낭월도 그러려니... 하

고 그에 응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출발이 토요일이라 애들도 데리고 갈

요량을 했는데, 작은 아들 녀석은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즐거우리

라는 것을 판단하고 자신은 집을 지키겠노라고 하는 것을 큰 아들 녀석이 자신

은 고향에 가는데 혼자 게임을 하는 것이 배가 아팠음인지, 아니면 그 녀석의

말 그대로 믿어서 ‘손자의 모습을 할머니께 보여 드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인해

서인지, 듣기에는 그럴싸한 말로 동생들을 앞장세우는 바람에 여하튼 일가족이

출발을 하기로 준비를 하고 시간을 기다리는 정도가 되었다.



2. 서울에서 방문자들



연지님이 그렇게 약속을 한 모양이다. 오후 1시 30분까지 오면 상담이 가능하다

는 말을 했던 모양인데, 거센 비바람으로 인해서 방문자의 시간은 자꾸만 늦어

져서 일단 출발을 하기로 했는데, 2시가 다 되어서 전화가 왔다. 상도리 구판장

인데, 나무가 쓰러져서 차가 올라갈 수가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하소연

이다. 그래서 옆길로 내려가서 차내에서 간단한 상담을 하고 뒷이야기는 전화

로 해결을 보라고 하고는 고향 앞으로 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멀리

서 찾아온 사람들이 그렇게 쉽사리 놔주겠느냐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가능하

면 좀더 길게 물어보고자 하는 마음이야 보였지만 여하튼 바깥의 분위기와 시간

약속의 촉박함으로 인해서인지 다 묻지 못하고 차를 돌리는 수 밖에 없다는 것

을 감지하신 모양이다. 끝으로 한 마디 한다.



“사주로 봐서 오늘 돌아가는 길에 별 일은 없겠지요?”

“그건 사주에 나오지 않습니다. 천재지변이거든요. 하하~”



3. 또 하나의 스케줄



대전으로 가서 관광버스 사업을 하는 신도가 오픈하는 여행사 사무실에 고사가

한 건 있는 모양이다. 가는 길에 들려서 지내주고 가야 한다고 비서인 연지님이

알뜰히도 잡아놓은 일정이다. 우짜겠노, 도리없이 또 그대로 해주고 가야 하는

데, 마침 억수로 몰아치는 비바람으로 인해서 버스 다섯 대는 대충대충 절을 받

고, 사무실에서 위주로 고사를 지내주고는 차린 음식을 좀 들고 가라는 부인의

말에 예예, 하고는 얼른 출발을 했다. 가야 할 길이 너무 먼데 그에 비해서 날씨

는 너무도 험악해서 아무래도 서두르지 않으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

다.



4. 옥천에서 저녁을 먹고



옥천휴게소에서 일단 저녁을 먹기로 하고 차를 댔다. 간단하게 밥통을 채우고

는 다시 출발을 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태풍이 원래 그렇지.... 하는 정도여서

크게 마음을 쓰지 않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 출발을 서둘렀다. 그래도 이미 6시

30분이 넘어가는 시간에서 멀리는 어둑어둑해지는 상황에서 날씨마저 을씨년스

럽게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으니까 저녁도 더 빨리 다가오는 모양이라고 하면서

출발을 했다.



그리고 황간을 지나고 있을 즈음에 비로소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엄습하여 창가

로 밀려들어오는데, 아이들도 그렇게 무서운 장면은 처음인지라, 연신 비명인

지 환호성인지 모를 탄성을 질러댄다. 바로 옆의 벼랑에서 폭포수가 마구 도로

로 쏟아지는가 하면, 다리를 통과하는데 시뻘건 황토물이 소용돌이치면서 길로

튀어오르는 장면 들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그 위력은 대단하게 느껴지는 모양이

었다. 그래서 교육상으로도 폭풍의 실체를 보여주는 좋은 계기가 되겠구나 싶

은 생각을 하면서 그대로 상황들에 대한 설명을 해 주면서 조금더 진행을 했다.

그 중에서도 경덕이는 태풍이 왜 일어나느냐는둥, 태풍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

은 뭐냐는둥, 여하튼 답변이 그렇게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이 되는 질문들

을 하는 바람에 또 혼자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조금 더 진행을 하자 도로가 기울었는지 2번 차선은 이미 물에 잠기고 1번 차선

도 절반은 물에 잠기는 지점까지 통과를 하게 되었다. 그 오른쪽 공간은 온통 붉

은 호수일 뿐이었고, 전주들만 듬성듬성 서서 인간의 흔적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래도 연지님은 자꾸만 속력을 낸다. 80km, 불안한 마음에 60이하로 줄이라고

몇 번이나 경고성 발언을 한 다음에야 비로소 속도가 조금 떨어졌다. 그러나 실

은 길바닥에 흐르는 물이 핸들을 불안정하게 흔들었기 때문이지 낭월의 경고에

마음이 쓰여서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기분이 든다. 그렇게 해서 조금 더 진행

을 하는데, 이번에는 앞에 가는 관광버스가 비틀거린다. ‘저 녀석이 화악~! 달려

들면 우짜노...’ 싶은 두려움이 엄습을 하면서 그 활발한 상상력은 버스의 옆구

리를 들이 받고 갈가의 가드레일을 안고 뒹굴고 있는 우리 차를 생각하였다. 에

구 무슨 재수없는 공상이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그 장면은 그렇게 위태로웠다

고 이해하시길....



5. 추풍령 휴게소 5km



아이들과 위험한 길을 가느니보다 휴게소에서 좀 쉬면서 상황을 살펴보고 가자

는 의견으로 통일을 봤다. 그래서 일단 휴게소로 들어가기로 하고 앞길을 주시

하고 있는데, 하마터면 중앙 분리대를 들이 받을뻔 했다. 물이 그렇게 많이 고

인 부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하고 가다가 ‘츠와악~!’ 끼얻는 물과 함께 차

는 균형을 잃고 뒤뚱거린다. 순간 뒤따르던 차들도 멈칫거리는 장면이 옆거울

로 비쳐든다. 제발 조심하라고 또 다짐을 했지만 그런 장면이야 빗길에서 가끔

잇는 일이기도 하므로 그냥 넘어갔는데, 연지님도 놀란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

내 속도는 20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차들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장면이

었다. 휴게소는 2km가 남았단다. 자꾸 옆길로 통행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

만, 아무리 그래도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고노메 정관땜에 그냥 앞차의 뒤만 따

르고 있었다. 그 사이에 옆길로 달려든 차들이 저만치서부터 차근차근 포개지

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3차선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길은 꿈쩍도 않는다.



1km가 남은 지점까지는 그런대로 움직이던 차량들이 완전히 서버렸다. 그렇게

되자. 가스의 잔량이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쏟아지는 빗줄기로 봐서 쉽사리 길

이 트일 것 같지도 않은데, 가스가 떨어지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퍼뜩 스치는 것

은 연지님도 같았던 모양이다. 일단 시동을 끄고 네비게이션에 붙은 테리비도

밧데리의 방전을 대비해서 끄고 상황을 좀더 지켜보기 위해서 라디오만을 켜뒀

다. 그리고 30여분이 흘러갔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휴게소로 걸어가서 과자를 사오겠다고 성화다. 이놈들은

이 상황이 바로 접수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엄마에게 호통을 당하고서는 조금

수그러들긴 했지만 그래도 꿈틀대는 순양지기의 기운들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사이에 도로가 두절되었다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그러다

가 보니까, 상행차선으로 하행차들이 하나 둘 달려들기 시작한다. 아마도 인테

체인지에서나, 혹은 어느 틈바구니에서 끼여든 모양인데, 아무리 둘러봐도 우

리 차의 주변에서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그렇게 달리던 차들을 바라다보

면서 뒷차들이 모두 후진을 해서 그렇게 간다면 우리도 뒤따르자고 하면서 우

리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어느 듯 그길도 모두 차량으로 넘쳐서 왕복 4

차선의 고속도로는 편도주차 6차선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렇게들 안달을 했다는

흔적이었다.



거의 1시간 반이 흐르자 다시 아이들이 안달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도 약

간 세력이 줄어든 것으로 보여서 아이들을 인솔하고 추풍령휴게소로 갔다 오기

로 연지님께 결재를 받았다. 그래서 가냘픈 우산을 의지해서 두 아들을 데리고

차량이 중첩되어 있는 고속도로를 걸었다. 물론 매연이 극심했고, 그래서 걷는

것이 고통이었는데,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연료 걱정이 없는지 계속 시동을 걸

어놓고 있는 것이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6. 불꺼진 휴게소를 보셨나요?



아마 상상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걸어가면서 상상을 하기는 그랬다. 휴게소에

서 뜨끈한 국물이라도 한그릇 마시고, 아이들과 연지님이 먹을 호떡이라도 좀

사고 물도 사고 해서 와야 하겠다고...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이미 불은 꺼진지

오래이고, 가게는 문을 닫았으며, 겨우 장사를 하는 곳은 편의점이었다. 그리고

진열장을 보니 모두 다 훑어가고 남은 것은 물과 약간의 사탕봉지 뿐이었다. 그

래도 어느 사이에 경덕이는 재빠르게 스넥과자를 두어봉지 집었고, 물도 챙겨

서 줄에 서는 것을 보니, 평소에 그렇게 둔하던 놈이 지 살 궁리는 하겠다는 생

각이 들기도 했다. 하하~



비를 쫄딱 맞고, 다시 차로 들어와서 옷을 벋고 팬티 바람으로 아이들과 엉켜서

물을 마시면서 과자를 먹다가는 다들 지쳤는지 잠자리를 보잔다. 그래서 의자

를 젓히고, 등판을 눞히고 해서 다섯 식구가 누울 자리가 마련되었고, 조금더 뉴

스를 듣다가, 잠이 들었던 모양인데, 갑자기 밖이 술렁거리는 소리가 나서 눈을

떠보니 새벽 2시 무렵이다.



“간대?”

“응, 벌써 한시간 전부터 앞에서 차가 움직인다고 하면서 저러고 있는 거야.”

“그럼 한 잠도 자지 않았남?”

“이 상황에서 잠이 오냐?”

“글쎄... 이 상황이 뭐 어때서...?”

“하긴 코고는 소리도 나더라.”



원래가 낭월은 누우면 잠에 빠진다. 등만 바닥에 붙으면 잠이 오는 편리한 체질

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근데 연지님은 그렇지가 못해서 때론 피로가 더욱 누적

되기도 하는 것이겠지만 그야 우짜겠노... 팔자 탓이겠거니... 해야지뭐.



약 10여분을 그렇게 수렁거리더니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 차

도 그 대열에 끼여들었는데, 중간중간에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차들이

서있는 사이를 다들 잘도 비껴서 진행을 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건너차선

에 있는 차들이 도무지 걱정이 되어서 신경이 쓰였다. 마주오는 차선에서 차들

이 어떻게 하고 있을지도 궁금했는데, 한참을 진행하면서 보니까 마주오는 차들

과 하행하는 차들이 서로 마주보고 대치된 상황이었고, 상행하던 차들은 더욱

열을 받고 있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그러게 흐름을 따라야지 뭘 얼마나 빨리 가

겠다고 남의 차선으로 가느냔 말이야 글쎄.



여하튼 그 틈바구니를 다 빠져나오면서도 내내 그 차선의 차들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7. 제사는 어떻게...?



물으시나 마나지뭐. 차 안에서 많이 드시고 가라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구미까

지 달려서 여관을 잡았는데, 다음날 올라오면서 보니까 김천으로 들어가지 않

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를 지경이었던 것은 뉴스를 통해서 보신 벗님들

의 생각과 같으리라고 짐작을 해본다.



이렇게 해서 부산만 피우고 다시 감로사로 돌아왔는데, 길 입구에서부터 길바닥

에 청엽이 자욱하다. 얼마나 바람이 몰아쳤는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풍경

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차를 대자마자 고모님이 뛰어나와서 하시는 말씀.



“못살어~! 바람이 몰아칠때만 도망갔다가 지나가니까 오네~!”



이야기를 들어본즉 밤새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하신 모양이다. 온 집이 흔들리고

산에 나무는 다 부러지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고 한다. 길바닥을 봐도 능

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지붕이 온전한가 살펴봤는데, 그래

도 허술한 조립식이지만, 그대로 붙어있는 것으로 봐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

이 되었다. 그래도 조상님 덕분에 높직한 곳에 자리를 잡아서 물난리를 만날 가

능성은 낮다고 중얼거리면서 뉴스를 살펴보니, 과연 말이 아니었고, 그 장면을

보면서 낭월이 겪은 이야기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냥 지나시

는 길에 그렇게 분주한 주말을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라도 해주시라고 간략하게

나마 이야기를 전해 올린다.



“벗님의 가정에 무사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