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영혼(마음)은 염통에서 사나요?

작성일
2002-05-05 18:01
조회
6552
[제158화] 영혼(마음)은 염통에서 사나요?



아무래도 조금 여유가 생긴 모양이다. 한담 올린지가 크게 오래되지 않았는데

도 마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물론 마음 같아서는 매일이라도 올

려 드리고 싶지만, 이 정도라도 정성으로 어여삐 봐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밀린 상담을 대충 마무리하고 잠시 또 생각을 정리해 본다.



1. “영혼이 몸 안에 있나요?”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잠시 생각을 해보고는 그럴 거라고 얼버무렸다. 왜

냐면 아무래도 몸 밖에 있을 것으로는 생각이 되지 않아서이다. 그렇다고 해서

몸 안에 있는 것이 확실하므로 그렇게 믿으라고 하기에도 부담이 되는 것은 사

실이다. 왜냐면 또 누군가는 그렇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라고 강요를 할 것인지

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산이 없는 일에 혈압을 올리기가 싫어서 그냥 그

럴 거라고 말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음을 눈치 빠른 벗님은 알고도 남으리라고

여겨진다.



근데 이러한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야 누군들 하고 싶지 않겠느냐

는 생각이 드는 것은 매우 정상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낭월도 누군가 그러한 말

을 확실하게 한다면 그 실체를 증명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싶으니 말이다. 참으

로 영혼과 만나면 궁금한 것을 많이 물어볼 텐데 그럴 수가 없어서 늘 유감이

다. 말이야 쉽다. 영매자(靈媒者)들이 많은데 뭘 걱정하느냐고 하신다면 너무 간

단하게 답을 찾는 기술이라고 해야 하겠다. 왜냐면 낭월은 실로 그들도 다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참으로 영매자가 된 것으로 보이기도 하

지만 더 많은 시간들은 아무래도 수작(酬酌)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

각이 들어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영기운이 희미할 적에 찾아가게 되면 필시

덤태기를 쓰게 될 가능성도 많다는 것을 주변의 경험자들을 통해서 늘 듣고 있

던 터라 더욱 그렇다고 하겠다. 그래서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지는 늘 오리무

중이라고 하겠는데, 이제 또 이 문제로 한번 벗님의 잠재의식을 건드려 보고 싶

어서 안달이 난 모양이다.



근데 영혼이 몸 밖에 있는지 몸 안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뭐라고 답을 해야 잘 했

다고 소문이 날지 모르겠다. 간단한 문제를 갖고 너무 부산을 피우는 것이 아니

냐고 하신다면 다시 생각을 신중하게 해주시라고 부탁을 드리고자 한다. 왜냐

면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서 말이다.



“참말로 몸 안에 있나요?”



다시 다그치는 소리가 쟁쟁하게 들린다. 그래서 더욱 아리송송~한 표정을 지을

밖에.....



“글쎄..... 우선은 그런 것 같은데....... 그래도 잘 모르겠........”



하하~

역시 낭월식이라고 하겠다.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못하고 얼

버무릴 수밖에 없는 양심(흐흐~) 이 양심 때문에 무슨 비난을 받더라도 포기하

지 않을 참이다. 잘 모르겠는 것은 모르는 것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망설이게 만드는지를 말씀드려야 하겠는데, 실은 영혼이 몸 안

에 있다고 한다면 몸 밖에는 있을 수가 없다는 말도 성립이 되어야 하는데, 그

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니 말이다. 왜냐면 무수히 많은 유령(幽靈)들은 몸이 없

으면서도 그렇게 잘도 돌아다니니 이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하겠느냔

말이다. 그래서 몸 안에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벗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론 ‘영혼의 존재가 실제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씀이라는 주석을 달아야

더 정확할 것도 같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자. 이 존재의 실체를 구분하기

에도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아직도 명확하게 답이 내려진 것은 없는 모

양이니 말이다.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으면 있는 것으로 보자고 하는 것

이 낭월의 생각이다. 왜냐면 전혀 없다고 하지 못한다면 뭔가 규명이 되지 않더

라도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겠느냐는 방식으로 정리를 하는 것이 속이 편하기

때문이다.



마치 안개가 있는 자리가 어디에서 어디까지냐고 묻는다면 그 정확한 시작점을

확인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겠느냐는 식으로 또 얼버무려

본다. 안개 속에서는 안개의 시작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안개 밖에서도

대략만 보이지 정확하게는 알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영혼이 안에 있다고 한다면 여하튼 육신을 떠난 상태의 영혼에 대해서도

뭔가 규명이 되어야 하는데, 그럴 방법이 없어서 어디에 있다는 말에 점을 찍기

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대략 안에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하게 되는

데, 아무래도 이 주인공(자신의 영혼이라고 해도 상관없고...)은 안에 있는 것으

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래서 답변을 정리하면 이렇게

되겠다.



“그게 말이지.... 때로는 밖에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안에 있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이 무난할 것이

고, 몸이 망가지거나 혹은 특수한 경우(최면, 수면, 기타의 경우들...)에는 밖에

서 존재할 수도 있다고 봐야 하겠네.” 정도로 말이다.



2. “몸 안이라면 어디에?”



원래가 궁금증이 있는 사람은 참을성이 약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계속

다그치게 된다. 답변을 하는 사람은 궁리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면서 자연의

이치를 강구하면서 틀리지 않는 답을 내려고 진땀을 흘리는 데에도, 질문을 하

는 놈은 그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그냥 막무가내로 물어대기만 한다. 그런 때에

는 정말 뭐 할라고 선생노릇을 하기로 했는지 후회막급이다. 너무도 불공평한

처사이기 때문이다. 질문자는 연신 질문만 하면 된다. 이미 게임은 애초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변자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했으니

아무래도 현명한 놈은 못될 모양이다. 틀림없다.



우선 가장 의심이 가는 곳이 어딜까? 뇌? 심장? 아마도 그 부근이 가장 의심스럽

다고 해야 하겠다. 이 두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뇌사(腦死)가 죽

음인지, 아니면 심장사(心臟死)가 죽음인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하는 것

만 봐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심장은 멎어도 생각이 있다면 죽었다고 하기 어렵

겠고, 심장은 뛴다고 해도 생각이 없으니 또하 살았다고 하기 어려운 지경이라

이러한 문제는 여간해서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

고도 남음이 있다. 그럼~ 이해하고 말고, 고생들 많으시유~



3. 뇌에 영혼이 있을까?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왜냐면 뇌가 망가지면 영

혼이 노는 모습이 여영 시원치 않는 것으로 보여서이고, 모든 기억이 뇌에 저장

되어 있다고 하는 생물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봐서도 상당히 일리가 있는 내

용이라고 여겨져서이다.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뇌가 하는 일이 분명하다는 것

에 대해서 동의를 하신다면 아마도 쉽게 거부하기 어려우실 것으로 보인다. 그

렇다면 인정을 하면 되지 뭐 어려울 일이겠느냐구요? 글쎄 그게 그리 간단치 않

으니까 문제지요.



제3의 눈이라고 해서 눈썹 사이라나 눈 사이라나 그곳에 송과선이라는 부분이

있고 그 자리에 영혼이 깃들어 산다는 말도 하는 것 같고, 영안(靈眼)의 작용은

이 부위가 열리면 된다는 말도 하는 것으로 봐서 일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러니까 뇌에 영혼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하면 간단한데 말이다. 뇌가 죽으면

생각도 죽어버린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연 영혼이 뇌에 있다는 보장은

다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왜냐면 영혼을 마음이라는 말로도 부르니 그 마음이

들어있는 자리라는 이름이 있어서이다. 그 자리가 어딘지는 잘 아실 게다.



4. 마음의 집 ‘심장(心臟)’



그러게 심장이라는 곳이 있으니 왜 이러한 이름이 여기에 붙어 있는지를 생각

해 보지 않고서는 쉽사리 뇌에 있다는 말을 다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

다면 이렇게 정의를 내려버릴까?



“예전 사람들은 뭘 몰라서 심장에 영혼이 있다고 착각을 했다.”



하하~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더란 말이다. 오래

전에 어디에선가 본 글이 생각이 난다. 단정한 여성이 심장이 고장나서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이식 수술을 받고서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봤다. 그리고 그 여

성이 수술을 하고나서 정상인이 된 다음부터는 오토바이를 타고 담배를 피우는

터프걸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더욱 흥분되게 했는데, 그렇다면 그 심장을 통해

서 영혼이 이식되었단 말인가? 그녀의 하는 행동으로 봐서는 그렇게 밖에 설명

이 되지 않을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여인의 실체는 사라졌을까? 심장을 옮겼다고 해서 주인이 바뀐다

면 아마도 심장이식은 자신의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은 그

것도 아니란 말이다. 보통은 자신이 존재하다가 어떤 상황이 되면 원래의 심장

주인의 행세를 한다니 이것도 참 불가사의한 일이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를 하

는데 조작이라느니 하면서 김을 빼시려면 그만 읽으시라고 할 참이다. 이런 분

이 젤루 맘에 들지 않는다. 하하~



그러니까 결론은 그렇다 심장을 옮겨달아도 본래의 주인은 여전히 그렇게 존재

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새로 들어온 심장의 주인이 가끔 등장을

한다니 이점이 흥미로운 일이다. 그렇다면 공존하는 것일까? 두 영혼이 말이다.

만약 그 심장의 주인이 도둑놈이었다면 또 어떻게 되지? 두 얼굴의 사나이처럼

말이다. 또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그렇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상황

이 다급해서 심장이식을 받더라도 원래의 주인에 대해서 좀 살펴보는 것이 좋

지 않을까... 하는 한가로운 생각을 해보고 있는 일할머리 없는 낭월이다.



5. 다른 장기 이식은 그럼 무관할까?



이렇게 흥미는 일파만파(一波萬波)로 확장이 되어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

른 장기에 대해서는 어떤 반응이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봐야 하는데, 그

런 자료를 얻지 못해서 안달이 난 낭월에게 멋진 정보가 날아들었다.



한 여성이 죽음으로 해서 심장과 허파를 각기 나눠서 이식을 받은 사람이 있었

는데, 두 사람의 행동이 모두 죽은 사람의 행동과 유사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혹 MBC에서 하던 무슨 얄궂은 프로그램을 보셨다면 이해가 되셨을 것이고 그

방송은 오늘 낮 11시 경에 했던 방송이라는 정보만 알려드린데, 제목이 기억나

지 않아서이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기 때문에 생략해도 무방할 것이다. 각설

하고.

그 두 사람의 행동이 서로 일치해서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물론 희극적인 요소

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은 되지만 중요한 것은 각자가 수술 이전의 상황에서 달

라진 점이 있고, 그 달라진 점은 이식을 받은 사람의 공통으로 나타난 행동이라

는 점이 흥미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용을 그대로 의지해서 본다

면 죽은 사람의 생전의 행동이 이식을 받은 사람을 통해서 모두 나타났다고 하

는 점인데, 그렇다면 이것은 또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는 것이다.



영혼은 하나인데 두 곳으로 나타났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방송을 보면서 내내 궁금하게 여긴 것이 이 부분이다.

불타의 말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 사람에게 그

영향이 나타났다면 달리 문제가 없는데 두 사람에게 나타났다면 이것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나?



(1) 분령(分靈)이 된 것일까?



일부 연구인들 중에서는 분령이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까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나눠져서 각자 깨달음의 수행을 단축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는 말을 하는데, 이러한 현상을 영화로 만든 경우는 리틀부타라는 장면을 통해

서 보신 벗님도 많을 것이다. 그 곳에서도 달라이라마가 셋으로 나눠져서 태어

났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번 사례를 본다면 그렇게 보지 않고서는 이해가 되

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분령 현

상이 과연 실제하는 것이라면 불교에서 말하는 ‘일신일혼설(一身一魂說)’은 오

류가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하겠는데, 한 몸에는 한 영혼이 있고, 그 영혼은

하나의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면 다시 윤회의 길을 떠난다는 설에 대해서 뭔가

다시 고려를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문부호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사상에서도 분령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설이 있으니 이름

하여 ‘삼혼칠백(三魂七魄)’의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죽으면 남자는 혼이

셋으로 나뉘어서 하나는 집을 지키고 하나는 묘를 지키며, 마지막 하나는 저승

으로 간다는 설인데, 오래된 설이니 나름대로 일리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

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여자는 혼은 없고 백만 있어서 일곱으로 나뉜다는 말도

겸하여 전하는데, 이러한 의미로 본다면 남녀에 따라서 혼백(魂魄)이 다르다는

것은 어떻게 수용을 해야할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나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

다는 것은 흥미롭다고 하겠다. 벗님이 나뉜다면 어떻게 되실 건지 생각을 해보

시면 매우 흥미롭지 않으실까?



그리고 오늘 본 그 장면과 함께, 다시 석가모니의 ‘천백억화신설’로 연결을 시키

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든다. 석가모니불의 화신은 천백억이라서 무수히 많은

각각의 다른 인격을 가진 같은 석가모니라는 말이 되는데 이것도 일종의 분령현

상으로 접근을 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보통 사람

에게는 불가능하고, 부처가 된 다음에사 비로소 가능하다는 말을 하는데 그렇다

면 분령도 등급에 따라서 가능하다는 말인가? 여하튼 분령에 대한 현상들이 자

꾸 나타나서 흥미롭다고 하겠다.



(2) 영혼과 무관한 습관일까?



그런데 다시 생각을 해보면 하나의 현상을 보면서 분령이라고만 하는 것은 너

무 지나친 호들갑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본다. 혹 생전의 습관이 각각의 장기

에 배여 있어서 그대로 신경계를 자극해서 나타난 하나의 현상일 뿐이고 실제

로 영혼과는 무관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러니까 일종의

마약 현상과 같아서 장기 스스로 그러한 습관을 인식하고 있다가는 적당한 시

기, 예를 들면 무용가의 심장을 이식받은 내성적인 수녀가 음악소리만 들리면

무용수로 돌변하는 현상처럼 그렇게 이해를 할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보는 것도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심장을 이식 받았는데 수족이 춤을 춘다면 잠재의식이 장기에 남아 있다

가는 자극을 받으면 뇌로 전파를 쏘아 보내는 것으로 이해를 해봐도 되겠다. 그

렇게 되면 생전의 업이 일생을 따라 다니다가는 죽어도 없어지지 않고 영혼을

따라간다는 업보설이 유효하다는 말도 가능하겠다. 그리고 주체적으로 어떤 생

각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신체적으로만 생전의 습관이 타나난다는 점을 공통

적으로 느끼는 것을 보면 각 장기의 정보에는 생전의 다른 기관에서 닦은 습관

도 그대로 저장이 된다고 보겠는데, 이것은 또한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하겠

다.



그러니까 프래드 A. 울프든가 하는 사람이 쓴 글에서 본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

은데, 한 조각의 얼음으로, 그 얼음이 있는 연못 전체의 정보를 알아 낼 수가 있

다는 논리 말이다. 파장의 근원을 추적하면 연못의 크기와 상태를 알 수가 있다

는 식의 설명이 있었는데, 그러한 것을 보면 정보는 어디에서나 저장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힌트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저자가 확실한지는 잘 모르겠다.

아이다.... 그 사람이 아니고 우주심과 정신물리학에서 이차크 벤토프 선생이

한 말인 모양이다. 잡동사니로 얽혀서 당최 혼란스러울 때가 종종 있는 모양이

다. 물리학자의 이야기였는데 역시 사람이름은 없고 내용만 남아있는 낭월의 머

리 속인지라 늘 기억하는 것이 이 모양이다. 하하하~



여하튼, 그래서 허파에서도 전체 뇌의 조직과 살아서의 정보까지도 모두 얻을

수가 있다는 말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너무 확대해석을 했다고 하실 것도 아니

라고 하겠다. 한 조각의 얼음에서 전체 연못의 정보를 얻을 수가 있는 것이 자연

의 모습이라면 당연히 장기 한 부분이 아니라 손톱이나 발톱에서도 생전의 전

체 상황을 알 수가 있다고 해야 하겠고, 그것은 유전자분석을 통해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벗님도 알고 있는 상태라고 하겠다.



다만 문제는 그러한 현상들은 하나의 정보를 갖고 있을 뿐이지 결코 인식을 하

고 있는 자아의식이 포함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고, 적어도 이 설이 수용이 되어

야만 불교에서 말하는 하나의 육신에서 하나의 영혼이 존재하는 의미를 이해하

게 될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간이든 허파든 콩팥이든 상관없이 그러한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에게

서는 생전의 장기 주인이 하였던 습관이 발생될 조짐이 있다고 하자는 것이다.



어느 것을 수용하거나 만만한 내용은 아니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점차로 사람

의 흥미는 이러한 방향으로 모아지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많은 의문들이 발생

할 것이고, 그러한 의문을 풀려고 노력을 하다가 보면 뭔가 답이 나오지 않겠느

냐는 생각만 하게 된다. 여하튼 흥미로운 일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근데 어쩌다

가 이야기가 이렇게 커져버렸냐..........



6. 벗님의 행동이 타인의 장기에 기록 된다.



기분이 좋으실랑가 나쁘실랑가 모르겠다만, 여하튼 이렇게 정보는 살아서 움직

인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오늘의, 이 순간의 행

동과 말과 생각들은 어딘가에 저장이 될 것이고, 그래서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만

들게 된다고 봐야 하겠다. 그래서 선행을 하면 선행의 결과가 나타나게 되고 악

업을 지으면 악업의 결과가 나타난다는 인과설은 매우 타당하다고 하겠고, 전

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구태여 좋은 정보 나쁜 정보를 구분하는 것으로 목적을 삼지는 말더라도, 뭔가

깊이 생각을 해야 할 일은 있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칼을 들고 달려든 기록을

상대방이 갖고 있다면 언젠가 그 영향으로 자신이나 혹은 연관된 자식에게 그

보답이 주어진다고 하는 인과응보(因果應報)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봐야 하겠

다. 그야말로 공짜는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되면 좋은 정보를 나누도록 노력하

는 것이 같은 값이면 더 나은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한다고 해서 너무 세속

적이라고 생각하시진 않을 것이다.



“여하튼 자세한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재미있게 삽시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