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7화] 상식이 통한다면 좋은 나라지.......

작성일
2002-01-09 01:01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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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화] 상식이 통한다면 좋은 나라지.....

슬슬 해가 바뀌면서 정치를 더욱 잘 하시겠다는 어르신들이 자주 테레비 화면에 등장을 한다. 일부러 테레비라고 써봤다. 왜 일부 사람들은 텔레비전이라고 하면 잘 했다고 하고 테레비라고 하면 틀렸다고 하는지를 잘 모르겠는 낭월이다. 테레비는 일본식 영어라서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 뭐 어떠냐는 생각이 든다. 왜 일본식 영어는 하면 틀렸고, 미국식 영어를 하면 잘 한 것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 아무래도 산골 화상의 티를 내는 모양이다. 그리고 더러는 tv라고 해야 한다는 말도 한다. 낭월이 생각하기에는 모두가 같은 말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미국식으로 하면 칭찬을 한다면 그것은 결국 미국은 옳고 반미국은 틀렸다고 하는 것이 같은 말이 아닌가 싶은 옹색한 생각도 든다. 어린 시절에 하는 빈정거림이 있었다.

“그래 미제면 똥도 좋지?”

너무 일제 미제를 구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어기 짱(?)을 부려 봤지만, 사실 늘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영어는 옳고 일어는 틀린다는 것도 그렇다. 어차피 글로벌시대라면서 이제 미국제에 대해서 우선권을 부여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태도는 좀 버려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음....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닌데 날씨가 추워서 손가락이 말을 잘 듣지 않는 모양이다. 하하~

여하튼 어르신들이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시니 고맙다고 해야 하겠고, 더불어서 참 좋은 나라라고 해야 하기는 하겠는데, 그 장면들을 해마다 보면서도 대체로 기대감을 갖게 되면 상대적으로 실망이 커지게 된다는 것을 종종 경험하다 보니까 별로 기대를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고, 이것은 낭월만 그렇겠느냐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한 장면을 보면서 과연 좋은 나라의 기준이 뭐겠느냐는 생각을 문득 해보고 싶어서 늦은 시간에 자판기를 끌어당겨 본다.

1. 좋은 나라의 조건.

실로 평범한 백성은 이러한 나라에서 살고자 할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 기준이 뭐겠느냐고 하는 질문을 한다면 별다른 것이 있겠느냐고 하겠다. 그냥 상식이 통하는 나라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보고 싶다. 왜냐면 너무 자주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접하다 보니까 오히려 당연한 것이 새롭게 느껴지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더라는 말이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상식이 덜 통한다고 하는 생각이 드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든다. 실로 음양오행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 생각을 해봐도 자연은 극히 간단하고 또 명료한 것이 확실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니까 사람도 이러한 자연을 닮아서 간단명료하게 살아가면 될 것인데 왜 그리도 복잡하게 얽혀서 돌아가는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발견하게 되니 이러한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벗님의 소감은 어떠신지 모르겠다. 낭월이라고 특별히 새로운 생각을 할 일은 없다고 봐서 아마도 오십보백보의 차이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2. 어떤 게 옳은 상식인지 모르겠는 일

저녁에 시대공감이라는 테레비의 취재기사를 보다가 또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선주(船主)가 선원의 이름으로 생명보험을 들었는데, 유가족이 보험금을 달라고 하니까 수령인이 선주이므로 유가족에게는 줄 수가 없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보면서 과연 상식이 무색해서 얼굴을 가리고 도망가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무슨 상식이 그렇단 말인가. 그 선주와 전화를 해서 나누는 이야기에는 물론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는 이야기만 하는 것이고, 자신은 당연하다는 말도 하면서 악법도 지키라고 있는 법이니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말을 하는데는 과연 그 법을 시행하는 사람들은 어떤 상식으로 살아가는 인종들인지 참 궁금하기도 하다.

그 뿐이 아니다. 물에 가라앉은 배를 해경은 수색을 할 수가 없다고 손을 떼는데 유가족들이 돈을 들여서 사진을 찍어서 증거를 만들어야 하는 현실에서 과연 정부라는 존재는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지 너무나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마음에 분노하는 생각이 슬며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스스로 느끼면서도 혼자 중얼거린다.

“다 기구한 팔자를 타고 나서 그렇겠지.....”

그러게, 그럴지도 모르겠다. 물론 팔자가 좋고 운이 좋다면 그렇게 풍랑이 치는 배 위에서 두 달 일하고 임금을 18만원 받으면서 목숨을 달고 일을 하지는 않았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죽은 값의 보험료는 몽땅 선주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그 계약서에도 자신의 가족에게 혜택이 돌아가리라고 ‘극히 상식적인’ 생각으로 계약 약관을 자세히 살펴보지도 못한 사람들만 바보가 되어버렸으니 과연 어느 것이 올바른 상식인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못내 아쉬웠던 것은 해경(海警)이 배라도 살펴서 억울하다는 사람들의 의문이라도 시원하게 풀어줬으면 얼마나 고맙겠느냐는 점이다. 하기야 그러한 것을 기대하는 것도 몰상식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상식적으로라면 당연히 선주는 지휘자에게 적당히 조사하시라고 뒷돈을 집어 넣어주고 추운데 수고 그만 하시고 손을 떼라는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관리하는 집행관도 누이좋고 매부좋은 상식에 의해서 손을 떼고 무능한 무지랭이들이 무슨 힘으로 침몰한 배를 뒤져서 증거를 찾으랴 하는 상식으로 밀고 나간 것은 아닐까 하는 묘한 궁금증이 슬슬 도지는 것은 너무 위험한 발상이 아닌 극히 상식적인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악이 받힐대로 받힌 유가족들이 목숨을 걸고 그 증거를 찾아서 다시 경찰에 고발을 한다니 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을 봤느냐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허허허~ 왜 자꾸 이런 것이 상식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냔 말이다. 들기를 글쎄.......

3. 교도소로 보내는 전자메일

어떨까? 교도소의 수형자에게 전자메일을 보낸다는 것 말이다. 벗님의 상식에는 어떻게 반응이 나타나시는가? 그거야 당연히 상식적인 일이라고 하실지 아니면 우째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고 하실지 궁금하다. 그러나 실은 이러한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그 동안 몇 차례 편지를 주고받은 안동교도소의 한 수형자가 있다. 그리고 실은 많은 교도소에서 많은 수형자들과 편지를 주고받고 있기도 하며 실로 낭월이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는 일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수형자는 그러한 곳에서 명리학을 공부해서 지금은 멋지게 현역에서 남의 고민을 들어주고 있기도 하다. 그는 청송교도소에서 오래 있었는데, 과연 지금의 모습을 보면 그의 과거를 생각할 수가 없을 만큼 멋진 중년의 학자이기만 하다.
그야말로 편지지에다가 깨알같은 글씨로 여섯 장을 썼다. 그리고 여러 가지의 감사하는 마음을 전달하고는 특별히 가슴을 때리는 한 구절은 이렇다.

“스승님, 이렇게 장황한 말씀을 글로 드리는 이유 중에 하나는 부디 저를 잊지 말고 이 인연의 끈을 계속 유지해서 저에게 사주명리의 깊은 이치를 배우고 질문을 할 수가 있는 인연을 유지시켜 달라는 간절한 바램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벗님은 이 구절의 느낌에 대한 마음이 읽혀지실지 모르겠다. 참으로 구구절절한 참회와 반성과 뉘우침과 공부에 대한 간절함.....

개인적인 편지가 아니라면 이러한 글도 한담에 그대로 써 올려 드리고 싶은 생각도 문득 문득 들기도 한다. 그렇게 한다면 아마도 오늘 하루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셨다면 아마도 그 생각을 말끔히 잊고 다시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하실 지도 모르겠다. 언제라도 사주공부를 하고 싶으면 낭월학당에 접속하는 그 자유로움이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상식은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해야 할 곳도 그 높은 담장 속에서는 당연히(?) 생각하고 있는 일이라고 하는 점을 하루 한 번씩만 생각해 보신다면 어떨까를 생각해보곤 한다. 그래서 낭월은 더욱 행복한 것도 사실이다. 그 사람들에게 뭔가 희망을 줄 수가 있다는 것은 사업이 잘 되지 않는다고 문의하는 유료 상담객의 인연보다 수십배의 보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여하튼 그 편지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되어 있었다.

“추신: 그리고 여기에서 사람들이 매일 편지를 받습니다 전 여기에 대해서 문외한이라 잘 모릅니다”

처음에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날마다 편지를 받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낭월의 상식으로는 교도소에서 전자메일을 받을 수가 있으리라고는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지 않고서는 달리 해석을 할 수가 없었다. 만약 이 사람이 상식이 있어서 메일이라고 적어 줬더라면 당연히 바로 알아들었을 것인데, 메일인지 매일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는 컴맹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바로 안동교도소에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홈페이지를 알려주고 그 곳에서 전자메일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 수가 있었다. 게시판으로 글을 올리면 그쪽에서 검색을 하고는 프린트를 해서 전달해 주는 모양이다. 그 장면을 보고서는 얼마나 고마운 생각이 들었든지..... 그 썰렁한 겨울의 교도소에서 고대하던 스승(그의 표현으로는)의 마음이 담긴 글을 바로 받았을 적에 그의 표정은 어떨까....? 이게 궁금해서 또 즐거웠다. 물론 답장은 편지로 할 것이고, 그 답장은 또 며칠이 걸려서 감로사에 배달이 될 것이다. 기왕이면 발송도 할 수가 있도록 메일기능을 열어놓으면 어떨까를 생각했다면 또 상식을 넘어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음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 그러니까 수형자가 편지를 작성해서 제출하면서 메일주소를 함께 알려준다면 담당자는 얼마든지 타이핑을 해서 발송을 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수신만 가능한 것도 어디인데 감히 더 이상을 바라랴.

4. 새해에는 보다 더 많은 상식이 통하기를....

이렇게 기원을 하는 것으로 넋두리를 맺어야 할 모양이다. 어차피 상식이 통하기도 하고 통하지 않기도 하지만 또한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도 상당수는 팔자의 탓일 가능성은 있다고 봐야 하겠다. 그래서 아마도 사람들은 더욱더 팔자에 매달리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해보시라, 만약에 팔자가 좋거나 나쁘거나 상관없이 노력한 만큼 얻을 수가 있다면 누가 팔자를 볼 것이냔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사주쟁이는 모두 전업을 해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국가에 고마운 줄을 알라고 하신다면 뭐라고 말씀을 올리지....?

“부디 상식이 통하는 나라이소서~!”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