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화] 끝없는 욕망의 본질을 찾을 순 없지...

작성일
2001-11-2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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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화] 끝없는 욕망의 본질을 찾을 순 없지.


살아가는 자체가 고해(苦海)라고 하는 것은 불타(佛陀)의 가르침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염세주의(厭世主義)에 빠진 사람이 말을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두가 고통이라면 그 고통을 몰라야 사실일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해본 것이다. 그러니까 물고기는 물을 의식하지 못하듯이 과연 이 사바세계가 고해라고 한다면 어떻게 고해를 이해하겠느냐는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래서 오늘은 이 고통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 보고자 한다. 말이야 되거나 말거나.

1. 이 땅이 모두 고해(苦海)는 아닐 게다.

이것은 낭월의 평소 생각이다. 그러니까 고통과 행복이 절반으로 혼합된 땅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느냐면 어차피 이곳은 음양(陰陽)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땅이 음양으로 이뤄진 곳이라고 한다면 절반의 행복과 절반의 고통이 공존해야 하는 것이지 그렇게 고통만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면 이치적으로 아무래도 수용을 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하기야 절에서는 더구나 세간의 욕망을 쫓지 말라는 의미로 치문(緇門)이라는 책의 내용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삽입하고 있음을 문득 생각하게 된다.

- 천태원법사 자계 - (낭월의 적절한 해석임)

이 세상은 아주 오래된 고통의 감옥이라네.
영혼을 묶어 놓고서 온갖 매서운 고통을 받게 되네.
그러다 보니 타고난 천성은 구렁텅이게 빠져서 간 곳이 없고
길들지 않은 본능의 야생마만 천지사방으로 날뛰는도다.
욕망의 불길이 수행의 씨앗조차도 불태워버리고
어리석음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생이여.
온갖 생명들은 모두 자신이 옳다고 떠벌리는데,
그 하는 꼬락서니는 영락없는 그릇 속의 모기들이
찍찍대고 잉잉대는 꼬라지로군.
어제는 옥황상제의 궁전에서 놀다가는
내일 다시 염라대왕의 끓는 가마 속에서 놀게 될거네.
그렇게 우찌우찌 떠돌아다니다가는
어느 부부가 애욕을 불태우는 사이에 끼여들어서
한 조각의 거품이 되었으니 잉태라고 한다네.
한 자루의 핏덩어리에 의지하고 있다가는
몇 줄기의 뼈다귀로 지탱을 하게 되었구만.
칠정(七情)의 욕망에 따라다니느라 고향을 찾을 생각은 못하고,
여섯 감각이 각기 자신이 주인이라니 어느 놈을 따를꼬?
(이하 줄임)

일일이 다 설명을 하지 않아도 대략 이런 분위기를 배우면서 절간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출가한 사람의 과정이라고만 하게 된다. 그리고 과연 염세주의자에 대한 진면목을 본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오행 공부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된 다음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이와 같이 세상을 보는 것이 옳다고 하는 것을 전혀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면서 자신의 삶도 관조하면서 남의 삶도 또한 지켜보는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낭월의 삶이기도 하다.

2. 집요한 인간의 욕망들

과연 대단한 욕구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오욕(五慾)과 칠정(七情)의 갈등 속에서 또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쳐다보곤 한다. 그리고 특히 인간의 삶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네 가지의 고통인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여정에서 부가되는 아시는 대로 오욕은 식욕(食慾), 색욕(色慾), 수면욕(睡眠慾), 재물욕(財物慾), 명예욕(名譽慾)이다. 그리고 이 근본적인 욕망은 아마도 사람을 얽어매는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늘 생각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얽어 매이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본능을 잘 제어해야 하겠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기에 본능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는 것이라고 짐짓 생각을 해 본다.

실로 운이 나쁜 과정을 추적하노라면 그 뿌리에는 거의 어김없이 이러한 욕망이 깔려 있음을 늘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길흉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는 것이다. 과연 스스로 만드는 것으로 복도 받고 화도 당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부처의 견해가 과연 옳다는 결론을 내려도 되겠다는 것을 이렇게 사주공부라는 엉뚱한(?) 방법을 통한 과정에서 얻게 되니 참말로 '만법귀일(萬法歸一)'인 모양이다. 여하튼 그 오욕의 굴레 속에서 고통이 발생하게 된다고 하면 되겠는데, 문제는 이러한 것을 뻔히 알 정도의 이성적(理性的)인 공부가 된 사람이라고 해서 쉽사리 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낭월의 생각은 인간의 본성을 고친다는 것은 그야말로 낙타의 바늘귀 통과가 아닐까를 생각하곤 한다. 참으로 어려운 것이 이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생긴 대로 살기 때문에 운명의 예측이 이뤄지는 것은 아마도 당연하다고 할 것이고, 혹, 어떤 사람이 자신은 운명의 사슬에 대한 지배를 받지 않노라고 큰 소리를 한다면 그의 마음에 오욕의 굴레로부터 얼마나 자유롭느냐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서 저울질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까지 해보곤 한다. 물론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서 무리가 없을 것이다. 참 어려운 일이다.

그 중에서도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네 가지 고통이 근본이 되고, 다시 추가로 네 가지의 고통이 포함되어서 팔고(八苦)라는 말을 하는데, 미운놈 만나는 고통이나, 이쁜놈 못만나는 고통은 그래도 약과일 것이다.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도 물론 대단한 고통이기는 하겠지만, 특히 고려를 해보고 싶은 것은 오음성고(五陰盛苦)이다. 오음이 너무 치성해서 얻어지는 고통을 말하는데, 여기에서 오음이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말하는 것은 알겠는데, 그 각각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앞의 오욕(五慾)고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

3. 오음성고(五陰盛苦)를 우짤꼬~!

이렇게 근본고통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것은 요즘 마약으로 인한 고통이 극심하다고 하는 언론의 보도를 보면서 마음이 딱하기만 하다. 특히 어여쁜 황수정 양이 경위야 어떻든 간에 구속이 되고, 또 싸이 군이 대마초로 인해서 하던 일을 못하고 구속이 되었다고 하니 이러한 장면들이 왜 발생하여 젊은 인생의 종지부를 찍어야 할지도 모르는 지경으로 몰아가는지에 대해서 참 딱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오음성고가 겹치는 것은 특히 그 근원에는 이러한 인간의 욕망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어서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면 인간은 고통스럽고 욕망을 다스리면 고통은 멀어진다는 정도의 생각을 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느냐는 것을 사주쟁이의 결론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는 것이다.

음욕이 넘치지 않고 적절하다면 오히려 삶의 활력소가 된다고 하는데, 우짠 일인지 더욱 강하고 더욱 찐한 것을 추구하다가 보니 대안으로 마약이 등장을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본능에 치중을 하면 그럴수록 더욱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본능촉진제라고 해야 할 모양인데, 그 방법에서 마약을 하게 되니 순간적인 충족을 위해서 그야말로 그 다음의 상황은 생각이 들겠지만 짐짓 무시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된다. 적절하기만 하면 그것을 일러서 중화지인(中和之人)이라고 해서 무리가 없을 것이다. 실로 중화라는 말은 모든 욕망을 끊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적절하게 조절을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4. 언제부터 이대근이 우상이 되었나....

개인의 이름을 거론했지만 영화의 내용에 의한 것일 뿐, 개인적인 이름의 주인공과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린다. 그를 상징하는 것은 강력한 성능력(性能力)이라고 대표되기에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인터넷의 엄청난 오해를 받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버린 음란사이트들도 단단히 한 몫을 하는 것으로 봐야 하겠다. 인터넷을 하시느냐고 방문자에게 물어보면 어떤 이는 음란사이트를 구경했느냐는 말로 수용을 하는 경우도 있음을 보고 내심 황당해지는 경험도 있기에 드리는 말씀이다. 넘치는 오욕으로, 그리고 특히 애욕(愛慾)에 의해서 세상의 많은 부분이 채워지는 것도 현실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리고 오음성고 중에서도 특히 색욕성고(色慾盛苦)를 행복으로 알고 추구하는 불나비가 너무도 많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고, 성인용품점을 장식하는 모든 도구들은 완전히 성욕의 극대화를 위해서 마련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얼라들이 생각을 한다면 성인(成人)은 '성욕을 추구하는 사람-성인(性人)' 정도로 보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분위기에 편승을 해서 따라가야 할 것인지도 함께 생각을 해보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요즘의 상담자들 중에는 중간에 재운이 들어오면 애인을 둬도 되겠느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물론 재성이 희용신일 경우에 그렇게 물을 적에는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겨우 약간 배운 공부가 우짜마 그런 방향으로 활용이 되는지 기가 막힐 일이지만 또한 끝없는 본능의 욕구를 추구하기 위한 것을 생각한다면 이해는 하면서도 참 한심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 해주는 답은 다음과 같다.

"물론 재성이 희신이므로 그 운에서 여자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도움일 될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개인의 운을 앞세우다가 국법에 저촉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각오를 하고 애인을 두더라도 두시기 바랍니다. 그 나이에 애인이라면 필경 남의 아내이거나 어린 처녀일 가능성이 많네요. 남의 아내는 간통죄를 두려워하거나 혹은 상대방의 남자에게 맞아 죽을 것을 염려해야 하겠고, 어린 아이라면 혼인빙자혐의를 받거나 혹은 원조교제자의 망신을 당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개인 위에는 국가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개인의 재운이 좋다고 해도 국법에 저촉이 되는 부분은 감당을 하지 못하거든요. 그리고 막상 여러 여자를 만나봐야 결국은 같은 것이지요. 사람이 달라지면 뭐가 엄청 다를 것으로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성욕을 찾는 것이라면 결국은 같은 목적이일 뿐입니다. 허망한 욕망을 추구하다가 신세 망치지 마시고 있는 아내에게 그 정성을 기울이면 말년이 행복할 겁니다. 재운이 들어오는 것은 같지만,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다음이 달라진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그렇게 추구해봐야 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쯤이면 병들고 지친 몸만 남게 될 가능성이 많을 겁니다. 그냥 참고나 하시라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은 혹시라도 어리석은 욕망으로 인해서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일을 조금이라도 면하게 될까 해서 드리는 이야기지만 욕망의 강력한 집착을 알기에 별로 기대는 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말은 해줘야지 결과를 뻔히 알면서 입을 다무는 것도 상담해주는 사람의 올바른 행동이 아니라고 하는 생각을 하기에 그냥 넘어가질 못하는 모양이다.

5.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삶

그러니까 너무 정신적으로만 삶을 꾸려가고자 하는 것은 또한 정신에 치우치게 되어서 육체적으로 갈등을 쌓게 만들 것이고, 이러한 현상은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상당수가 질병으로 시달림을 당하고 있음을 늘 접하였던 경험으로 인해서 믿고 있는 낭월이다. 그런데 실은 너무 육체적으로 모든 목적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 결과는 육체의 본능을 추구하다가 온갖 슬픈 현실과 정면으로 충돌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해야 하겠다. 이러한 것에 치우치지 않고 적절하게 조절을 할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희망사항이 있는데.....

지나친 금욕. 지나친 채식주의. 지나친 억압은 또 다른 부작용을 부르게 되어 있다. 이것은 오로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법으로 세상을 보고자 하는 낭월의 시각일지는 몰라도 아마 그럴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이 가을에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서 본능의 바탕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곰곰 생각해보고 지나치지 않도록 하루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뉴스를 보다가 문득.

마약으로 멍들어가고
화려한 인생에 종지부를 찍고
그렇게 스러져 가는 군상들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넘친다.
.....................

"에고~ 모르겠다. 나두~"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