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색(色)의 오행(五行)을 믿을까?

작성일
2001-11-06 08:54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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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화] 색(色)의 오행(五行)을 믿을까?

사주사전(四柱辭典)이라는 이름으로 원고를 마치고 마침 추워지는 날씨를 느끼면서 그 동안 초기화면의 시원한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밤이 늦도록 화사하고 따뜻한 분위기로 변경을 시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색의 조절을 통해서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과연 오행과 색채의 의미는 어디까지가 자연법(自然法)에 부합이 되는지를 생각해보는 시간도 되었다. 여기에 대해서 소견을 말씀드리도록 해본다. 참고가 되시면 좋겠다.

1. 색(色)의 오행(五行) 분류(分類)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오행(五行)의 색(色)은 다음과 같음을 벗님도 아실 것으로 본다. 그래도 혹 모르실 수도 있으므로 참고적으로 적어본다.

木-靑, 火-赤, 土-黃, 金-白, 水-黑

이렇게 된 분류표에 의해서 오행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당연히 이렇게 믿고 권장을 하게 되는데, 가령 火가 부족한 사주를 만나면 붉은 색의 의상이나 주변 분위기를 갖도록 하라고 강요(!)를 하기도 하고, 水가 필요한 경우에는 검은 색의 의상을 즐겨 입으라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지시에 대해서 무슨 오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너무도 당연한 듯이 그렇게 관례적(慣例的)으로 사용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낭월도 또한 상담을 하면서 이러한 문제가 연결이 되면 그대로 자연스럽게 색깔의 권유를 하곤 했는데, 문득 드는 한 생각이 '그게 아닌데~!'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드는 순간, 이것저것 부지런히 고려를 하면서 그 원리를 추구해 봤는데 역시 의심의 여지가 있더라는 것을 생각하고는 또 벗님들과 그 의미를 나누고자 하는 것이다.

2. 색(色)은 오행(五行)이 아니다.

결론을 말씀드린다면 이렇게 된다. 색과 오행은 연결을 지을 수가 없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결정을 내렸다. 우선 그러기 위해서는 색의 실체(實體)를 생각해 봐야 하겠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색에는 오행의 다섯 성분이 포함되지 않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생각만 자꾸 든다.

(1) 자연에서의 색

우선 색의 실체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색의 실체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자연계에서 색은 어떻게 발생하게 되는지를 보지 않고는 달리 말을 할 수가 없겠는데, 아시는 대로 색은 빛의 반사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것을 지혜로운 학자들이 알려줘서 그렇게 이해를 하게 되었고, 그래서 물리학(物理學)의 발전을 함께 기뻐하는 낭월이기도 하다.

'붉은 색은 빛이 어떤 물체에 도달해서 반사를 하는 특정 광자(光子)의 주파수가 있는데, 그 주파수가 붉은 색으로 시각(視覺)에 느껴지는 것이다.'

우선 이렇게 이해를 하고 있는데, 혹 여기에 대해서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시는 벗님이라면 메일을 주시면 고맙겠다. 구체적인 설명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략적인 의미에는 오류가 없으리라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것을 바탕으로 생각을 해본다.
어떤 색이거나 그 이면에서는 빛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빛이 없다면 당연히 모두가 깜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빛의 작용에 의해서 색이 구분된다고 하면 그 색은 빛의 영역이지 오행의 영역이라고 하기가 곤란하다는 결론을 내릴 참이다. 물론 빛은 화(火)이다. 그러니까 오행(五行) 중에서 화(火)라고 해야 옳은 이해가 아니겠느냐는 점을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빛을 다섯 가지의 오행으로 분류하는 것은 미신인 것이다.

(2)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것도 사람을 놀라게 하는 정보에 속한다. 낭월의 생각으로는 사람이 보는 것은 다른 사물도 그렇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실은 다른 동물은 그 빛의 색을 또 달리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니 과연 경우에 따라서 달리 적용이 된다면 그것은 이미 오행의 본질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꽃의 색에 대해서도 그렇다. 벌이 보는 꽃의 색은 사람이 보고 느끼는 것과 다르다는 정보가 있다. 그리고 꽃의 입장을 다시 생각해 본다면 누구를 위한 꽃인지를 이내 파악하게 되는 것은 생각이 있는 학자라면 너무도 간단하게 그 이치를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꽃은 벌을 위한 것이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그냥 이용을 할 뿐이고 원래 식물인 꽃의 마음에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꽃의 색은 벌이 보는 것이 올바른 색일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면 그것이 자연의 생성된 원리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보는 꽃은 사람의 시신경(視神經)에 그러게 비칠 뿐이지 실제의 색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게 된다.

낭월이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색이 올바른 자연의 색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러한 것에다가 자연의 진리로 손색이 없다고 여겨지는 오행의 의미를 부여하고 왈가왈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습겠느냐는 생각을 해보시라는 말이다. 참 가소로운 이야기라고 해야 하겠다. 그래서 스스로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면서 푸실푸실 웃게 된다. 아는 자는 말이 없다는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려고 하는 이 가을이다.

3. 이제부터 '오행색(五行色)'이라는 말은 빼야 하겠다.

그렇게 하고 관찰을 계속 하는 것이 좋겠다. 그 외에 다른 것에서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오행의 진리에 허구(虛構)가 발견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또 이 자리에서 호들갑을 떨 참이다. 혹 이 글을 보시고 어느 오행선생께서 오행의 색을 이야기하신다면 한번 낭월의 이야기를 짐짓 드려 보시기 바란다. 어떻게 반응을 보이시는지 살피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장난처럼 스물스물 배여 나온다. 흐흐~

그냥 '색(色)=화(火)'로 보고 대입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또 아침 강의를 준비해야 하겠다. 낭월학당의 초기화면에 황색(黃色)이 깔렸다고 해서 혹 토(土)의 기운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은 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릴 참이다.

다만 색에 대해서 고려를 한다면 심리적인 효과는 일부 있을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심리적으로 침체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밝은 색을 권하는 것은 아마도 심리요법으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정도의 대입은 해도 좋다고 보겠다. 왜냐면 붉은 색에서 열기를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행에서 화기운이 포함된 것으로 인해서가 아니고, 그냥 사람의 기억에 붉은 색과 불의 분위기가 느껴지도록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령 화(火)를 왜 적색(赤色)으로 표시하게 되었느냐고 누구에게 물었더니, 당연한 듯이 하는 말이 '해가 빨강색이니까요.'이다. 과연 해가 빨강색인지 다시 보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해는 하얀색처럼도 보이고, 노란색처럼도 보이지만 아무리 봐도 빨강색은 아닌데 말이다. 그것도 역시 훈련에 의해서 그렇게 인식이 되어있을 뿐이라고 하는 점을 다시 생각해야 하겠다. 참고로 모닥불도 노랑색이 많다고 봐야지 빨강색은 아무래도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뭔가 진리의 오류는 없는지 기웃거려 보도록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의 소견을 말씀드린다. 내일이 수능이라는데,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추워지면 다시 영하를 오르내린다고 하는지 참 오묘하다고 하겠다. 아무래도 사람의 마음에는 분명 오행(五行)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긴장이 되면 추워지고, 분노가 일면 더워지는 모양이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