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5화] 한의대 학생은 한의사가 적성일까?

작성일
2001-10-03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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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화] 한의대 학생은 한의사가 적성일까?

지난달에는 원주(原州)의 상지대학교(尙志大學校)에서 3일간 명리학(命理學)에 대한 특강을 하게 되어 나들이를 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눈 푸른 젊은이들에게 명리학을 신명나게 강의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물론 3일간의 여섯 시간을 통해서 명리학의 내용을 얼마나 전달을 하겠는가만 그래도 그만한 시간에서의 가치가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을 하기에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 하는 것으로 그 목적을 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낭월이다.

1. 새로운 시도.

강의 2일째. 쪽지를 돌렸다. 사주 용신과 심리분석에 대한 공부를 하는 자료로 본인들의 사주를 올려서 풀이를 하겠다고 했더니 모두 명식과 대운을 적어서 앞으로 속속 도착을 했다. 물론 흐뭇한 일이다. 이렇게 자신의 명식 정도는 적을 수가 있는 군중을 상대로 강의를 한다는 것은 분명 보람이 있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고 있는 낭월이다. 이렇게 해보는 것은 단기간의 특강을 어떤 식으로 하는 것이 효과적 일지에 대해서 검토를 해 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니까 하나 혹은 두 개의 명식을 놓고 미주알 고주알 분석을 하는 것에 대한 모델형 공부 방식과, 전체를 놓고 희용기구한을 가려서 나름대로 독학을 통해서 이해가 깊어지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과 비교해서 어떤 것이 도움이 될 것인지를 생각하고 시도를 해봤다. 결과는 나중에 나올 것이다. 몇몇 학생들에게 나중에 그 효과를 물어볼 참이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해서 50 여명의 명식이 모아졌다는 것이고, 그 명식의 주인공들은 적어도 약 90% 정도는 특별히 직업의 전환이 없이 그대로 한의사가 되는 방향으로 길을 밟게 되리라는 이야기를 듣고보니 과연 일정한 그룹(거의 직장의 형태가 확정된)의 사주는 어떻게 형성되어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참고 자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강의 3일 째가 되어서야 생각하게 된 점이다.

그리고 모처럼 만난 무허(無虛)선생의 밝은 모습을 본 것도 이 날이었다. 에전에 서니암에서 인연을 맺은 후로 언제나 마음으로 제자의 정성을 다 하고 있는 이 친구는 보지 않아도 본 것과 같은 사람이었는데, 마침 집이 원주라고 연락을 해봤더니 한 달음에 달려와서는 강의를 듣고 인사를 한다. 그래서 또 흥겨웠는데 그리 길지 않은 학문 탐구의 시간이었지만, 곳곳에는 낭월의 생각을 따라주는 제자들이 반겨 준다는 것이 이렇게도 흐뭇한 것인 모양이다. 그뿐만 아니라 또 한 사람의 입산 회원이 있었는데, 그는 지금 병원에서 레지던트의 길을 밟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세 사람을 만난 것이다. 언제나 자신의 길에 만족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낭월이지만 이날은 과연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시간이기도 했는데, 무허의 권유로 그의 집에서 일박을 하게 되었는데 그 서재를 보고는 놀랐다. 거의 낭월의 방 서재에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자료들과 서적들..... 참 꼼꼼하기도 한 친구이다. 낭월한담을 프린트해서 제본까지 해 둔 정성은 갸륵하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2. 용신을 찾으면서 즐거운 시간 보내고.

3일째. 칠판에 빽빽하게 명식을 적어 올리는 것은 도화선생이 맡았다. 도화 김용필 군은 감로사에 입산해서 공부를 하기도 한 상지대 학생이다. 적어도 꽤 큰 칠판에 3판 정도를 채우니 대략 마무리가 되는 것이었다. 명식만 적어야지 대운의 상황은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고 해야 하겠다. 학생들은 자신의 노트에 부지런히 동료들의 명식을 적었다. 물론 성별이나 이름은 모른다. 그야말로 공부용으로 사용하는 것이고, 분명한 것은 한의과의 학생이라는 것만 알고 있는 것의 전부였다. 그리고 모든 풀이를 한 다음에는 마무리를 하고 부지런히 감로사로 돌아오게 된 것은 다음 날의 강의시간을 빠뜨릴 수가 없어서이다. 그런데 도화가 전화를 했다. 그리고 다시 스승과 제자의 진지한(?) 대화는 장시간 이어지게 되었는데, 그 요지를 적어 드리도록 할 참이다.

3. 과연 같은 직업군(職業群)에서는 사주의 적성이 같을까?

평소에 열심히 분석하고 궁리하는 용필군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꼼꼼하게 적어 놓은 명식의 자료를 보면서 나름대로 하나의 통일된 결론을 유추해 내려고 고민을 했던 모양이다.

"스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잘 들어 가셨습니까?"
"그래 도화도 마음 많이 썼다."
"저야 고맙기만 하지요. 질문이 있습니다."
"그럴테지, 뭐꼬?"
"어제 풀이한 자료를 살펴봤습니다."
"그랬겠지. 뭘 봤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 이제 도인이 되어가나 보다. 하하~"
"그게 아니라요......"
"마음놓고 이야기 해봐. 뭐꼬?"
"한의사가 적성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야지."
"근데 전혀 적성이 아닌 사람도 있네요."
"왜 그렇지 않겠나. 그게 불만이구나?"
"예, 적어도 한의대에 들어오면 한의사로 갑니다."
"그렇겠군. 근데 뭐가 잘못되었을까?"
"지력(智力)은 나름대로 한의대에 들어왔으니 상당하다고 해야 하겠고, 그것이 반드시 사주와 연관되어 있다고 하기 어려운 것은 이해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대입을 하기는 어렵다고 해야 하겠군요."
"그렇지. 좀더 설명을 한다면?"
"지력은 부모의 유전적인 영향이 크다고 말씀하셨으니 일리가 있다고 생각이 되어서입니다. 다만 성향이나 적성은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 늘 대입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 스스로도 많이 놀랐습니다."
"왜?"
"한의대에 들어오는 학생은 그래도 일정한 직업을 스스로 택해서 들어왔다고 봐서 나름대로 신약하다거나 편인이 용신이라거나 뭔가 참고가 될만한 자료를 얻을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을 했었거든요."
"근데 엉망이 되어버린 모양이구만."
"예, 그렇습니다.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낭월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네."
"그렇다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무슨 문제가?"
"과연 직업과 진로에 대한 적성을 말해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사주에서 직업이 뭐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스님의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왜 말을 해줄 필요가 없겠어. 당연히 말을 해줘야지."
"근데 이 자료를 보세요. 과연 적성이 맞다 고 판단되는 사람이 몇 %나 되느냐는 것을 보면 그대로 놀랍다고 하는 생각만 듭니다....."
"하하하~"
"???"
"참 진지한 그대 열정이 뭔가 일을 내고 말 것 같네. 하하~"
"스님, 그게 아닙니다. 지금 무척 답답합니다."
"그래, 설명을 해줌세."
"말씀해 주십시오.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렇게 나온 자료를 보고서는 도저히, 직업에 대한 적성분석을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 의구심만 가득합니다. 실은 어제 잠도 못 잤습니다."
"그 결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었네."
"왜 그렇습니까? 스님께서는 그럴 것으로 생각 하셨습니까?"
"그렇지. 그리고 한의대생 뿐만 아니라 교대생의 명식을 뽑아서 종합을 했더라도 아마 같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네."
"그러니까 말씀이지요. 직업에 대한 조언은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네요. 스님이 틀린 것일까요?"
"그야 모르지 누가 옳았고 누가 틀렸는지는 지금 판단을 할 문제가 아닌 것으로 생각이 되네. 다만 스스로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찾아가는 것으로 만족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구만....."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적성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야 만족도이지."
"예?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 많은 한의대생들이 의사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만족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하는 점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라네."
"대체로는 만족을 하겠지요....."
"원, 천만에~~!!!"
"왜 그럴까요? 안정되고 보람있고 돈도 벌고.... 할텐데요...."
"아마도 그 중에 30% 정도는 만족을 하겠지만 그 외의 30%는 불만으로 시간을 보낼 것이네."
"그럼 나머지 30%는요?"
"'그냥저냥' '어영부영' '되는대로' 그렇게 세월을 살아가겠지."
"왜 그렇게 생각을 하시는지요?"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감?"
"이해가 잘......"
"그게 그룹의 운명이라고 하는 것이지."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요?"
"그야 난들 알겠나. 조물자의 조화이겠지 뭐."
"좀 무책임하신 말씀이네요....."
"그렇게 생각하나?"
"그래도 스님은 무슨 답을 갖고 계실 줄 알았는데요..."
"물론 답을 갖고 있지, 그 답에 그대가 만족을 하지 못할 뿐이지."
"설명을 좀 해주세요."
"그럼세."
"........"
"스님들이 주변에 많지만 그들은 모두 직업에 만족하지는 않네."
"그렇겠지요."
"만족을 하는 사람도 있고 거부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네."
"어디라도 그럴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만족을 하는 사람은 스님이 적성이란 말이야."
"그렇군요...."
"다시 말하면 겉으로는 모두 스님이지만 적성에 맞는 사람은 만족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불만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
"그럼 한의사도 마찬가지가 되는 것일까요?"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으까? 그게 세상의 조화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낭월일세."
"그렇다면 더욱 그렇군요. 직업을 사주로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군요."
"당연하지. 단지 적성을 알아낼 수가 있을 뿐이지."
"그래서 스님이 명확하게 직업을 찍지 않으시는가 보네요."
"어떻게 찍을 수가 있겠나. 만약에 어떤 사람이거나 정관격에 정관이 용신인 사람이 직업이 공무원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자신은 그렇게 확신을 한다고 하면 낭월은 정관이 용신이면서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의 자료를 그에게 보여 줄 것이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편관이 용신이고 그래서 틀림없이 군인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면 또한 편관이 용신이면서 장사를 하는 사람을 보여줄 것이네, 여하튼 틀림없이 그 직업에 종사한다는 것을 장담한다면 그렇지 않은 자료는 적어도 30%는 된다는 이야기를 해줄 참이네, 이게 낭월의 생각이라네."
"그럼 직업의 적성은 어디에 사용을 하시나요?"
"어허, 둔하긴.... 여태 이야기 해줘도..."
"아이구, 미안합니다. 둔해서요...."
"정문으로 학교 들어간 것은 맞지?"
"예? 아, 하하하~"
"그러니까 적성은 그 직업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므로 당연히 적성을 권해주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네."
"그리고 실제로 종사하는 직업이 적성의 판단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라면 만족도를 물어보시게 아마도 거의 불만족이라고 말을 할 가능성이 많을 것이네."
"제 주변의 동기들에 대한 자료를 보면 적성이 맞는 사람들은 만족도가 높은 것 같습니다."
"어제 스님과 이야기를 나눴던 그 학생도 적성이 한의사가 맞다고 나오는데 만족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겠지. 그렇다면 상담을 통해서 적성을 설명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렇겠....네....요....."
"어째 대답이 시원치 않구만. 아직도 이해가 더 되었구만."
"예.... 그것이 좀...."
"그러세 좀더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해보신 다음에 다시 또 전화 하시게. 오늘은 이만 하도록 하자구."
"예, 고맙습니다. 긴 시간 통화를 드렸군요. 바쁘신 것을 뻔이 할면서도 참 염치가 없습니다. 늘....."
"아니네, 그렇게만 물어준다면 얼마든지 반가울 뿐이지. 다만 오늘의 질문에 대한 답은 그만하면 되었다고 생각이 되어서 줄이는 것 뿐이네. 또 전화를 하고 싶을 것이네."
"고맙습니다. 늘."
"참 다려준 약은 잘 먹고 있네. 고마워."
"아 예, 다음에는 스님의 체질을 고려해서 지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직은 공부가 부족해서 원방대로만 했습니다."
"그래 돈도 없을 텐데 마음 써줘서 고맙네 그럼...."
"편안하신 추석 되시기 바랍니다."
"그려 도화도 그렇게 보내시게."

4. 다시 생각하는 적성의 의미.

이상의 긴 대화를 통해서 나름대로 이해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낭월의 생각은 같은 직업군이라고 하더라도 적성에 맞는 사람은 만족스럽게 살아갈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불만으로 살아갈 것이 틀림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은 분명히 이해를 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리고 이제 벗님도 자신의 적성과 직업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실 시간이다. 이 가을에,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시는 이유와 또는 불만인 이유들, 그리고 새로운 관심이 가는 방향의 해답을 스스로 얻으시는 시간이시기를 기원드린다. 물론 자평명리가 모든 답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다만 그 정도의 참고만이라도 할 수가 있다는 것은 낭월의 생각으로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다. 하기야 이러한 정도의 보람도 없이 사주쟁이에 만족을 할 수가 있겠느냐는 생각도 문득 해본다. 낭월은 스스로 상담가(相談家)의 일이 적성에 맞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예언가의 일은 적성에 맞지 않다고 판단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의 적성대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파악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명리가는 둘로 나뉜다. 상담가와 예언가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낭월은 언제나 상담가를 본분으로 알고 연구를 할 참이기도 하다.

참, 사주사전(四柱辭典)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다. 현재 약 1200항목을 정리했는데 그러면서 스스로도 재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상담이 들어오는 것도 뒤로 미루고 달려들어서 흠뻑 빠져든다. 오늘 아침에 한담을 올리고는 다시 원고정리를 해야 하는데, 현재까지 모아둔 항목은 3284개이다. 그리고 최후의 항목은 '성전환자(性輾換者)'라고 되어 있다. 열심히 연구하는 즐거움을 몇 배로 얻을 수가 있는 것이 저술 작업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내용을 써 가면서 새로운 항목은 늘 발견되기도 하는데, 마음 같아서는 한 5000항목쯤 되었으면 완벽한 자평명리학도의 사주사전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얼마나 힘이 따라줄지는 아직 모르겠다. 잘 되기를 기원해 주시면 훨씬 수월할 것으로 생각이 된다.

오늘도 상쾌한 하루이시기를 기원 드리면서.

"에구, 이 시간에 원고를 썼으면 30항목은 했겠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