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9화] 명리학의 구조와 뉴턴의 방식
작성일
2001-08-14 11:54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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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명리학의 구조와 뉴턴의 방식
종종 틈만 나면 물리학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책을 살펴보곤 하는데, 요즘은 모처럼 방학이라고 하는 핑계로 예전에 읽었던 책을 꺼내어서 다시 읽고 있는데 여전히 재미가 있는 책이다. 제목은 '과학은 지금 물질에서 마음으로 가고 있다'는 긴 제목인데, 내용이 짭짤해서 읽을 만 한 대목이 의외로 많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보면서 느끼는 것은 뉴턴이 생각했던 자연의 구조가 명리학의 사고방식과 많이 닮아 있음을 생각했다는 점이다.
1. 기계적인 발상은 숙명론과 닮아 있다.
그러니까 자연은 거대한 톱니바퀴라고 하는 발상을 생각해보면 그러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정교하게 짜 맞춰져서는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기계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사주의 연월일시가 정교하게 짜여서 돌아가는 것과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제의 흐름이 오늘로 이어지고 오늘은 다시 내일로 이어지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세계에 대한 설명이 사주쟁이의 눈으로 봐서는 영락없는 사주의 원판에 대한 설명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문득 연결을 시켜보고 싶어진 것이다. 벗님도 혹 관심이 있으시다면 이 책을 살펴보시는 것도 좋겠다.
2. 시간을 생각하는 것도 그렇다.
오로지 시간에 대해서만 고려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느낌이 드는 것도 뉴턴의 생각이라고 하겠는데, 그가 생각했던 우주에서도 늘 시간의 존재가 인식되었던가 보다. 그리고 명리학에서의 시간에 대한 개념과도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가 싶어서 또 호들갑을 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올바르게 이해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혹 오류가 있다면 메일로 가르침을 주시기 바란다. 나름대로 이해를 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 이해를 한 경우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3. 시간의 법칙에서 빠진 것은 없을까?
실은 이 점이 요즘 낭월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화두(話頭)가 되었다. 그리고 명리학이 학문으로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이 시간에만 집착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기계의 구조가 어떤 원리로 구성이 되어서 그 구조 속에 포함된 한 개인이 길흉화복의 작용을 받으면서 희노애락을 느끼게 되는 것인지도 규명이 되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서 요즘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는데, 그 답을 물리학에서 찾아보고 싶어서 자꾸만 기웃거리는 것이기도 하다.
3. 그래서 관심을 갖는 것이 양자역학(量子力學)이다.
시간에 대한 규명을 뉴턴이 했다면 공간에 대한 규명도 누군가가 했을 것인데, 그 공간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양자물리학에서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세한 사정은 앞에서 실토를 했듯이 잘 모른다. 다만 글자의 의미로 봐서는 많고 적음을 다루는 학문이니 시간보다는 공간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뉴턴에서 다시 발전하는 과정이 양자학이라고 한다면 평면적인 명리학에서 입체적으로 도약을 해야 할 것이 이 공간에 대한 명리학의 접근이 아니겠느냐는 공상 같은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물론 말이 되지 않는 것은 99.99%일 것이지만, 그 중에서 단지 0.0001%라도 말이 되는 힌트가 있다면 그것을 부여잡고 씨름을 해볼 요량이고 또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4. 사주팔자에 공간을 넣는다면?
실로 명리학은 오로지 시간에 대해서만 답변이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공간에 대해서는 각자 나름대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서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각자 자기 나름대로 생각을 하는 것이 학문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니 그래서 고민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바탕으로 시간만 중시하는 명리학에다가 공간의 개념을 도입할 것이냐는 점이 그렇게 만만치 않은데, 그래도 뭔가 궁리를 하노라면 어떤 힌트가 있지 않겠느냐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갈릴레이나 뉴턴의 사고방식을 명리학의 구조라고 이해를 한다면 이제는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이론을 명리학에서 어떤 방법으로 연결을 시켜야 하겠느냐는 질문도 하고 싶어진다. 그러한 것은 애초에 없다고 하시거나, 혹은 성현들이 그런 것이 있었다면 왜 말씀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등의 논리는 의미가 없음을 생각해야 하겠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명리학을 응용하고 적용시키면서도 어떤 구조로 운명의 저울질이 성립되는지는 명확하게 설명을 할 방법이 없음을 잘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민을 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한다면 환경에 대한 변수를 50% 정도 대입한다면 어떻게 결과가 나오겠느냐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음과 같은 공식이 되겠다.
"시간n%+공간n%=인생여정"
(n은 경우에 따라 다른 숫자로 대입됨. 50%라고 할 수가 없는 이유.)
타고난 사주만으로 길흉화복을 모두 논하기는 늘 어려움이 많은데, 그 난제 중에서도 더 어려운 점은 국가의 운이나 지구의 운이 개입을 하고 있을 경우에는 개인의 운은 활동을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 느껴져서이다.
그런데 뭔가 답이 있을 것도 같으면서도 막상 구체적으로 대입을 시켜보려고 하지만 신통한 답이 보이지 않으니 이러한 것을 두고 식자우환이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다고는 해도 어쩔 수가 없이 시간만으로 만들어진 사주를 대입하고 있자니까 뭔가 중요한 하나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안절부절이다.
이렇게 오늘도 보이지 않는 답을 찾아서 길을 떠난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
종종 틈만 나면 물리학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책을 살펴보곤 하는데, 요즘은 모처럼 방학이라고 하는 핑계로 예전에 읽었던 책을 꺼내어서 다시 읽고 있는데 여전히 재미가 있는 책이다. 제목은 '과학은 지금 물질에서 마음으로 가고 있다'는 긴 제목인데, 내용이 짭짤해서 읽을 만 한 대목이 의외로 많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보면서 느끼는 것은 뉴턴이 생각했던 자연의 구조가 명리학의 사고방식과 많이 닮아 있음을 생각했다는 점이다.
1. 기계적인 발상은 숙명론과 닮아 있다.
그러니까 자연은 거대한 톱니바퀴라고 하는 발상을 생각해보면 그러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정교하게 짜 맞춰져서는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기계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사주의 연월일시가 정교하게 짜여서 돌아가는 것과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제의 흐름이 오늘로 이어지고 오늘은 다시 내일로 이어지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세계에 대한 설명이 사주쟁이의 눈으로 봐서는 영락없는 사주의 원판에 대한 설명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문득 연결을 시켜보고 싶어진 것이다. 벗님도 혹 관심이 있으시다면 이 책을 살펴보시는 것도 좋겠다.
2. 시간을 생각하는 것도 그렇다.
오로지 시간에 대해서만 고려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느낌이 드는 것도 뉴턴의 생각이라고 하겠는데, 그가 생각했던 우주에서도 늘 시간의 존재가 인식되었던가 보다. 그리고 명리학에서의 시간에 대한 개념과도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가 싶어서 또 호들갑을 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올바르게 이해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혹 오류가 있다면 메일로 가르침을 주시기 바란다. 나름대로 이해를 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 이해를 한 경우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3. 시간의 법칙에서 빠진 것은 없을까?
실은 이 점이 요즘 낭월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화두(話頭)가 되었다. 그리고 명리학이 학문으로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이 시간에만 집착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기계의 구조가 어떤 원리로 구성이 되어서 그 구조 속에 포함된 한 개인이 길흉화복의 작용을 받으면서 희노애락을 느끼게 되는 것인지도 규명이 되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서 요즘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는데, 그 답을 물리학에서 찾아보고 싶어서 자꾸만 기웃거리는 것이기도 하다.
3. 그래서 관심을 갖는 것이 양자역학(量子力學)이다.
시간에 대한 규명을 뉴턴이 했다면 공간에 대한 규명도 누군가가 했을 것인데, 그 공간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양자물리학에서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세한 사정은 앞에서 실토를 했듯이 잘 모른다. 다만 글자의 의미로 봐서는 많고 적음을 다루는 학문이니 시간보다는 공간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뉴턴에서 다시 발전하는 과정이 양자학이라고 한다면 평면적인 명리학에서 입체적으로 도약을 해야 할 것이 이 공간에 대한 명리학의 접근이 아니겠느냐는 공상 같은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물론 말이 되지 않는 것은 99.99%일 것이지만, 그 중에서 단지 0.0001%라도 말이 되는 힌트가 있다면 그것을 부여잡고 씨름을 해볼 요량이고 또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4. 사주팔자에 공간을 넣는다면?
실로 명리학은 오로지 시간에 대해서만 답변이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공간에 대해서는 각자 나름대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서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각자 자기 나름대로 생각을 하는 것이 학문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니 그래서 고민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바탕으로 시간만 중시하는 명리학에다가 공간의 개념을 도입할 것이냐는 점이 그렇게 만만치 않은데, 그래도 뭔가 궁리를 하노라면 어떤 힌트가 있지 않겠느냐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갈릴레이나 뉴턴의 사고방식을 명리학의 구조라고 이해를 한다면 이제는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이론을 명리학에서 어떤 방법으로 연결을 시켜야 하겠느냐는 질문도 하고 싶어진다. 그러한 것은 애초에 없다고 하시거나, 혹은 성현들이 그런 것이 있었다면 왜 말씀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등의 논리는 의미가 없음을 생각해야 하겠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명리학을 응용하고 적용시키면서도 어떤 구조로 운명의 저울질이 성립되는지는 명확하게 설명을 할 방법이 없음을 잘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민을 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한다면 환경에 대한 변수를 50% 정도 대입한다면 어떻게 결과가 나오겠느냐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음과 같은 공식이 되겠다.
"시간n%+공간n%=인생여정"
(n은 경우에 따라 다른 숫자로 대입됨. 50%라고 할 수가 없는 이유.)
타고난 사주만으로 길흉화복을 모두 논하기는 늘 어려움이 많은데, 그 난제 중에서도 더 어려운 점은 국가의 운이나 지구의 운이 개입을 하고 있을 경우에는 개인의 운은 활동을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 느껴져서이다.
그런데 뭔가 답이 있을 것도 같으면서도 막상 구체적으로 대입을 시켜보려고 하지만 신통한 답이 보이지 않으니 이러한 것을 두고 식자우환이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다고는 해도 어쩔 수가 없이 시간만으로 만들어진 사주를 대입하고 있자니까 뭔가 중요한 하나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안절부절이다.
이렇게 오늘도 보이지 않는 답을 찾아서 길을 떠난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