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 제34장. 인연처(因緣處)/ 1.개의 영감(靈感)

작성일
2022-06-30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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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 제34장. 인연처(因緣處) 


1. 개의 영감(靈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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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잔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주는 거산의 부모에게 진명을 소개하고는 모두 둘러앉아서 저마다의 생각을 꺼내놓고 담소의 꽃을 피웠다. 거산이 일행과 함께 집을 떠난다는 말에 주인 부부는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그래서 하룻밤을 더 머무른 다음에 정성으로 마련해 준 요리로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는 인사를 드리고 길을 떠나기 위해 마차에 올랐다.

염재가 마부석에 앉자 진명이 말했다.

“아, 출발하기 전에 드릴 말씀이 있어요. 다름이 아니오라 진명은 염재의 옆에 앉고 싶어요. 마음껏 풍광을 보면서 가고 싶거든요. 그래도 되겠지요?”

우창은 진명의 말을 듣고서 배려가 깊은 마음을 읽었다. 마차의 안은 네 사람이 앉기에는 다소 좁은 듯했지만 염재의 옆자리는 여유가 많았다. 그래서 스승님들이 편안하게 가기 위해서는 앞에 앉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물론 다소 불편한 정도야 그간의 시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도 했다. 그것을 보면서 기꺼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야 진명이 편한 대로 하지. 자, 출발 할까~!”

“예, 스승님,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염재가 신나게 채찍을 휘둘렀다. 며칠을 마굿간에 매여 있어서 갑갑했던지 말도 신나는 듯한 모습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미 통인사의 주지화상이 방향을 짚어줬으니 그것도 인연으로 여기고 서북향(西北向)으로 잡고서 출발하기로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한가롭게 흔들리는 마차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람하기에 딱 좋았다. 우창이 목적지가 궁금해서 지광에게 물었다.

“형님께서는 마음에 짚이는 곳이 있으셨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혹시 천기누설이 아니라면 말씀해주시지요. 하하~!”

“아우님은 이미 그러한 눈치를 챘구나. 물론이네. 실은 동평현(東平縣)에 인연처가 있었는데 대사께서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씀해서 내심 놀랐지 뭔가. 내가 예전에 공부하던 곳이니 마음 놓고 가도 되네. 하하하~!”

“어쩐지, 형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는 더 이상 묻지 않는 것을 보면서 내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역시 영적(靈的)인 세계에서 노니시는 고인(高人)들의 차원은 우제가 생각할 수가 없는 곳임이 분명합니다.”

“아우님은 대도행(大道行)만 하면 될 뿐이니 하찮은 잔재주를 몰라도 된다네. 대사님이 벌써 아우가 가야 할 길을 인가(認可)해 주시지 않았는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듣기 좋으라고 하신 말씀인데요.”

“설마 대사님이 허언(虛言)하셨단 말인가? 그것보다도 불가의 가르침에도 음양과 오행이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지광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자 앞에서 말없이 마차를 몰던 염재가 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아, 맞습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대사님은 자연의 이치를 훤하게 꿰고 있으신가 봅니다. 그러한 것을 회통(會通)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네. 처음에는 서로 다른 곳에서 움터서 자란 이치가 나중에는 덩굴나무처럼 하나로 엉클어져서 구분하지 못할 지경이 되면 그렇게 회통이라고 말하지.”

지광이 이렇게 호응하면서 받자 우창이 다시 물었다.

“참으로 진리란 놀랍고도 대단합니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더없이 단순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아마도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지인(智人)들은 서로 다른 사람이었더라도 그들의 생각을 흐르는 지맥(智脈)은 같은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니, 지맥이라면 ‘지혜의 맥’을 생각하셨나? 참으로 대단한 아우님일세. 저마다의 인연의 길을 따라서 출발하더라도 산의 정상에 가면 결국은 모두 만나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겠나?”

“맞습니다. 그래서 도인(道人)과 유아(乳兒)가 서로 통한다는 말도 이해가 됩니다. 천진난만(天眞爛漫)한 점에서 본다면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어린아이는 배움이 없어도 저절로 천진(天眞)하나 도인은 온갖 수행과 고뇌를 거쳐서 수없이 갈고 또 다듬은 다음에서야 천진에 이르게 되니 이것도 참 오묘합니다.”

“왜 아니겠나. 그래서 어린아이에게는 길을 묻지 않으나 도인에게는 길을 묻게 되는 것이라네. 하하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거산이 궁금한 것이 있었는지 말을 하려는 모습이 보이자 염재가 얼른 부추겼다.

“아니, 거산이 스승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나 본데 어서 말해 봐.”

그러자 지광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정 사부께 가르침을 청하고 싶습니다. 실은 기감(氣感)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음은 물론이고 또 직접적으로 체험을 하면서 참으로 놀라운 세상을 체험했습니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좁은 안목이 백 배로 넓어진 것에 대해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문득 금수(禽獸)도 인간과 같은 영계(靈界)와 교감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궁금해졌습니다.”

거산의 말에 지광이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그야 거산의 선근(善根)이 있었기 때문이니 감사할 것이 없지. 그런데 지금 묻고자 하는 의미를 잘 모르겠는걸. 그러니까 동물들이 화맥(火脈)이나 수맥(水脈)을 느끼고 가려서 둥지를 찾을 수가 있는지를 묻는 것인가?”

지광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시 묻자 거산이 설명했다.

“물론 그러한 것도 궁금합니다. 특히 인간(人間)이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능력은 인간만이 누릴 수가 있는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옛이야기를 들어보면 동물도 신령(神靈)과의 교감이 있었다는 말이 있는데 과연 사실인지 궁금했습니다.”

거산이 다시 말하는 것을 듣고서야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된 지광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하~! 난 또 무슨 말인가 했네. 문득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으니 어디 관련이 있을 것인지 듣고서 판단해 보려나?”

“예, 궁금합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거산이 이렇게 말하고 좌중을 둘러보자 모두가 궁금하다는 듯이 지광에게로 눈길이 모였다. 그것을 본 지광이 기억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실은 내가 어렸을 적에 겪은 이야기라네. 새롭게 한 해를 맞이할 설이 다가오자 어머니께서는 읍내로 나가서 고기라도 사다가 국을 끓여 주려는 마음으로 머리를 감고 옷을 곱게 입으시고 밖으로 나왔는데 댓돌에 벗어놓았던 신발 한 짝이 없어졌다네.”

지광의 말에 우창이 한마디 거들었다.

“저런~ 자당(慈堂)께서는 마음이 바쁘셨겠습니다.”

“특히 우리 마을은 강변에 있었는데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한단 말이네. 그나마도 나룻배는 하루에 두 번 강을 왕래하기 때문에 그 시간을 놓치게 되면 고기를 사러 장터에 나갈 수가 없으니 얼마나 초조하셨겠는지는 미뤄서 짐작하시게. 그런데 아무리 한쪽 신발을 찾아도 보이지 않자. 혐의는 키우던 개에게로 쏠렸다네. 개가 어머니의 신발을 어디론가 물어다 놨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 그렇지만 개를 다그쳐봐야 말을 하지 못하는 짐승이 뭘 어쩌겠느냔 말이지. 그래서 어쩌는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말았다네.”

그러자 우창이 다시 말을 받았다.

“형님이 아무래도 고깃국을 먹을 인연이 되지 못하셨던가 봅니다. 하하~!”

우창의 말에 지광이 미소를 짓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지 않아서 갑자기 나루터에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는 거야. 어머니도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나루터에 나갔다 오시더니 개를 끌어안고는 말씀하셨지.”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그러니까 모처럼 명절을 앞두고서 장을 보러 나선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았는데 배의 사공은 인원이 넘쳤음에도 무리해서 모두 싣고 출항을 한 배가 중간쯤 가다가 갑자기 격랑에 흔들리자 사람들이 놀라서는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균형을 잃은 작은 배가 전복(顚覆)되는 사고가 생겼던 것이라네. 배를 탄 사람의 대부분은 여인들과 노인들인지라 추운 겨울에 어떻게 할 사이도 없이 대부분이 물에 빠져 죽고 심지어는 동행한 아들이 어머니를 꺼냈는데도 체온을 유지하지 못해서 숨을 거두기도 했으며, 상당수는 급류에 쓸려 내려가서 시신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던 거라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건졌는데도 어머니가 숨을 거두셨다니 그 아들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체온증이라고 하면 건지자마자 바로 옷을 벗기고 아들의 몸으로 감쌌으면 혹 살아났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여 더욱 안타깝습니다.”

“오~ 그것도 일리가 있겠군. 그런데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어머니의 옷을 벗기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도 같군. 그렇다고 하더라도 만약에 돌아가실 줄을 알았더라면 망설일 일이 아니었겠지. 아들의 무지함을 탓할 수도 없는 일이잖겠나?”

“하긴, 그렇겠습니다. 그나저나 정말 신기합니다. 그러니까 키우던 개가 미리 배가 뒤집힐 것을 알았던 것일까요?”

우창이 신기해서 묻자 지광이 설명을 이었다.

“그야 나도 모르지. 어머니의 말씀만 들어봐서는 아무래도 조상님이 개를 시켜서 나룻배를 타지 못하도록 하려고 신발을 감추게 했을 것이라는 추론(推論) 외에는 달리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싶었다네. 하하하~!”

그러자 누구보다도 거산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역시~!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이 아니었네요. 그러니까 정 사부의 조상께서도 영감이 뛰어나시고 모친께서도 그러한 기운을 물려받으셨기 때문에 평소에 개와도 교감(交感)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러니까 개가 그것을 느끼고서 주인마님을 구하려고 꾸지람을 각오하고 신을 감췄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신발은 나룻배가 떠나고 난 다음에서야 개가 물고 왔더라네.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니 괜히 가슴이 찡해 오는군. 만약에 그때 다른 이웃들처럼 어머니를 잃었더라면 어쩔 뻔했느냔 말이네. 물론 이웃들의 슬픔이야 뭐라고 위로를 할 수가 없지만, 아무래도 내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자연의 오묘한 이치와 영혼(靈魂)이든 조상이든 뭔가 지키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수가 없다네. 하하하~!”

이야기를 마친 지광은 그 시절을 잠시 떠올리는 듯했다. 거산이 마침 적절하게 질문을 해 줬던 것이 귀중한 경험담을 들을 수가 있었던 셈이다. 우창도 감동스러운 이야기의 여운을 느끼면서 말했다.

“참으로 오묘합니다. 그러니 땅바닥을 기는 벌레나 허공을 자유롭게 나는 짐승도 아무런 까닭도 없이 살생하면 안 되는 것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형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생각할 점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도 생깁니다.”

“그래? 아우님이 궁금하다니까 긴장이 되는걸. 뭔지 말해 보시게. 분명히 깊은 생각에서 나온 것일 테니 어디 들어봐야지.”

“깊은 이치라고까지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궁금한 것은 당시 주변의 정황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형님의 자당께서는 열심히 기도하셨으니 그렇다고 한다면 같이 배를 탔다가 사고를 당해서 불귀(不歸)의 고혼(孤魂)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을지가 궁금합니다.”

“오호~!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구나. 과연 다른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아서 배를 타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도 생각해 보지 못했으니 뭐라고 딱 잘라서 말을 해줄 수가 없군. 어쩐다?”

“아닙니다. 혹 형님의 생각이 어떠신지 여쭙는 것입니다. 항상 그렇듯이, 과연 그러한 이야기가 객관적으로 살펴볼 부분이 있는지가 궁금한 서생(書生)의 호기심이지요. 하하~!”

우창의 말에 지광이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창은 괜히 물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화제를 돌리려고 했는데 지광이 말하는 것이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까 이웃의 아주머니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했었던 것은 확실하네. 그렇다면 다시 드는 의문이 생기잖는가? 다 같이 기도했는데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나는 이치를 말하라고 하면 나는 답을 못하겠네.”

“역시 형님이십니다. 말도 되지 않는 궁금증조차도 진지하게 생각하시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내친김에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같이 기도했어도 감응은 같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형님이 그 집에 태어났기 때문에 형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되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과연 그랬을까....?”

지광이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자 우창이 다시 지광에게 말했다.

“형님께서 답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떻게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혼자만 그러한 상황에서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는지는 아무리 사량(思量)해도 분별(分別)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한 경우를 일러서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 하거나 ‘조상님의 도우심’이라고 하는 것이지 싶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그게 맞을 것이네. 나도 그 이유를 알 방법이 없으니 말이네. 하하하~!”

우창과 지광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염재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제자가 문득 생각이 난 것이 있어서 말이 되는지 의견을 여쭙겠습니다.”

“오호~! 무슨 말인가 궁금하군.”

지광이 무슨 말인지 물어보자 염재가 자기 생각을 말했다.

“혹시, 그러한 현상은 조상이나 불보살의 영향과 무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어디 염재의 이야기를 들어보세.”

우창도 관심을 보이자 염재가 신이 나서 말했다.

“어쩌면 단순히 개의 능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이나 낮에 아무도 없는데도 개가 짖는 것을 보면 어머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귀신을 보고 짖는 것이다’라고 하셨거든요. 문득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의 소견으로는 정 사부께서 키우던 개는 예지력(豫知力)이 있었다고 가정(假定)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염재의 말에 우창이 더욱 큰 관심을 보였다. 뭔가 말로 할 수가 없는 결론보다는 어떻게든 설명이 가능한 방법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러니까 염재의 말은 개도 영혼을 볼 수도 있고, 그렇기에 보통의 사람은 인식하지 못하는 조짐도 살필 수가 있다는 말이지 않은가?”

우창이 묻자 염재가 다시 말했다.

“아닙니다. 진 사부. 실은 그냥 생각해 봤습니다. 동물에게 그러한 능력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어서 혹시 영혼이나 조상이 알려주지 않더라도 감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동물도 지기(地氣)를 감지할 수가 있다면 화맥과 수맥도 가늠할 수가 있을 것이고, 만약에 안주인께서 배를 타려고 준비하는데 문득 보니까 검은 기운이 자기에게 밥을 주는 분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면 개가 그 일을 진행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신발을 숨기는 것이라는 정도의 판단은 할 수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들어봐도 논리적으로 전혀 흠잡을 데가 없는 완전한 이야기여서 맘에 들었다. 그렇지만 과연 개의 능력에 그러한 것도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들 풀지 못하고 미심쩍은 느낌이 남았다. 이때 앞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명이 말했다.

“혹 진명이 보았던 것을 주제넘게 말씀드려보면 어떨까요?”

그러자 염재가 응원군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서 말했다.

“아, 누나도 개와 관련된 이야기를 알고 계십니까? 어서 해 주세요. 궁금합니다. 하하~!”

나이로 따져보니 진명이 염재보다 여섯 살이 더 많아서 누나와 동생으로 호칭하기로 했다. 물론 올해 스무 살인 거산은 당연히 누님으로 부르는 것으로 해결을 보기로 했다.

“예전에 어렸을 적에 본 이야기에요. 고향에는 명의(名醫)라고 소문이 난 의원이 계셨는데, 특이하게도 진맥(診脈)을 하는 것은 의원이 키우던 개였어요.”

진명의 말에 우창이 깜짝 놀랐다. 개의 능력이 질병을 찾아낸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고, 생각도 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개에게 그런 능력도 있단 말인가? 놀랍네~!”

우창이 관심을 보이자 진명이 신이 나서 말했다.

“어머, 정말이세요? 진 사부는 모르는 것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사람의 길을 연구하시기에 여념이 없으셔서 막상 개를 연구할 기회가 없으셨던가 봐요? 호호호~!”

진명의 말에 우창도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되었던가 보네,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 천착(穿鑿)했다는 것이 오늘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밝혀지는걸. 다행히 진명으로 인해서 세상은 인간들만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는 안목을 넓히게 생겼으니 또한 고마운 일이 아니냔 말이지. 어서 말해 봐.”

“부디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더 깊은 이야기는 진 사부께 새롭게 설명을 들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말씀드릴게요.”

“그래, 기대되네.”

우창이 재촉하자 진명이 말을 이었다.

“그럼 기억을 더듬어서 말씀드려볼게요. 그 할머니가 키우는 개가 있었는데 아픈 사람이 찾아오면 우선 환자의 호흡을 냄새 맡도록 해요. 그러면 개가 킁킁대면서 냄새를 맡은 다음에 하는 행동을 보게 되거든요. 진찰한 다음에 표현은 짖는 소리로 하는데 경쾌하게 짖으면 병이라고 할 것도 없는 상황이에요. 그냥 보약이나 먹으면 된다는 진단을 하게 되지요.”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염재가 오히려 큰 관심을 보였다.

“아니, 누나의 말대로라면 오랜 공부를 해서 의술을 배운 다음에 애써서 진맥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잖아요? 정말 신기한 일도 있습니다.”

“동생도 그런 말을 못 들어봤구나? 그런데 항상 그렇게 짖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해. 때로는 진찰하다가 끙끙대면서 앓는 소리를 할 때도 있어. 이때는 증세가 다소 깊은 것으로 보면 되지. 그러면 심상치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환자를 눕힌 다음에 몸의 구석구석을 냄새 맡도록 하는 거야. 그러면 개가 냄새를 맡다가 이상이 있는 곳에서 소리를 내는 거야. 그러면 의원은 비로소 맥진(脈診)도 하고, 문진(問診)과 문진(聞診)을 하면서 구체적인 진찰에 들어가는 거야. 그렇게 해서 아픈 곳을 귀신같이 찾아내어서 알려주니까 의원은 그 위치에 어떤 장부(臟腑)가 속해 있는지만 찾아서 침구(鍼灸)로 치료하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곧 죽게 생긴 사람조차도 업혀서 찾아왔다가는 3일 내로 걸어서 가는 경우가 많다 보니까 신의라는 소문이 날 만도 하지?”

“정말이네요. 누나의 말씀을 들어보니 과연 동물의 능력이 사람보다 낫다고 해도 될 지경이네요.”

“그것이 전부가 아니야. 가령 귀신(鬼神)이 빙의되어서 고통을 받는 사람은 개가 아예 가까이 가려고 하지를 않아. 그러면 의원도 그것을 알고는 무녀(巫女)나 고승(高僧)에게 안내하지. 자신이 치료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 환자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사람에게 안내하니까.”

“정말 현명한 의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치료의 시기를 놓쳐서 가망이 없을 때도 다른 행동을 보일까요? 그것이 궁금합니다.”

염재는 진명의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든 사람처럼 몰입하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진명도 이미 그러한 경우도 있었다는 듯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히 그런 환자도 찾아왔지. 그런 경우는 이 신통한 개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그 사람의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는 거야. 마치 고인을 떠나보내는 듯한 행동으로 말이야. 그러면 의원도 그 의미를 이해하고는 치료를 더 이상 하지 않고 드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많이 드시게 해 드리라고 하지.”

진명의 말에 염재가 다시 급히 물었다.

“누나가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면 마치 옆에서 직접 본 듯이 말하네요. 어떻게 그리 소상하게 알고 계신지가 궁금합니다. 남에게서 들은 이야기라면 그렇게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할 것 같아서 말이지요.”

그러자 진명이 웃으면서 말했다.

“맞아, 그때 나도 의술에 관심이 있어서 좀 배워보려고 3년 정도 곁에서 시중을 들으면서 약도 짓고 개에게 밥도 주고 했으니까. 특히 나중에는 개가 주인을 보면서 슬픈 표정을 짓는 거야. 환자에게만 반응하는 줄로 생각했는데 주인에게도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는 내가 놀랐잖아.”

“아니, 그렇다면 의원에게도 병이 생긴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의원님께 개가 이상하다고 물었지 않겠어?”

“아, 그랬더니 뭐라고 하셨어요?”

“의원 말씀에 자신도 이제 1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시면서 나보고도 그만 다른 곳으로 공부하러 떠나라고 하시잖아. 그래서 왜 그러시느냐고 했더니 자신은 반위(反胃)에 걸려서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거야.”

“반위? 처음 들어보는데요? 그건 무슨 병인가요? 위에 병이 생긴 것인가 싶기는 하네요.”

“맞아, 위(胃)에 암증(癌症)이 생긴 것을 말하는 거야. 위암(胃癌)은 약으로 치료하기가 불가능해서 자신도 그것을 알고는 포기하고 있었는데 개는 그것을 알고 주인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알고서 슬퍼했던 거야.”

“와우~! 정말 놀랍습니다. 어떻게 일개 미물인 개에게 그러한 능력이 있을 수가 있을까요? 이것은 정 사부께 여쭤봐야 하겠습니다. 사부님, 이러한 일이 가능합니까? 이야기를 듣고서도 믿어 지지가 않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지광에게 묻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광이 웃으면서 답했다.

“개의 세상이나 말의 세상이나 인간의 세상이나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네. 예감(豫感)이 있었던 아우님의 개나, 질병을 알아낼 수가 있었던 그 의원의 개는 모두 저마다의 타고난 능력으로 주인을 위해 열심히 밥값을 한 것이라네. 어떤가? 개들을 모두 사람으로 바꿔놓고 이해하면 과히 어려울 일도 아닐 텐데 말이네. 하하하~!”

지광의 말에는 염재도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그래도 인간과 동물을 같은 선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쉽지 않아서였다.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염재를 보고서 우창이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상식적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우니 염재가 그러한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가 아니로군. 다만, ‘안으로 나를 공부 거리로 삼고, 밖으로 사물을 공부자료로 삼으라’고 한 고인의 말씀을 떠오르네.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 키웠던 개는 영감이 뛰어난 사람과 같고, 진명이 봤던 의원의 개는 의술을 발휘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과 같았던 것이니 주인이 그것을 알아서 잘 쓸 줄 알았을 뿐이라는 이야기지 않은가? 이렇게 이해하면 납득은 되지 않나?”

우창의 말을 듣고서야 염재도 믿음으로 수용하는 마음이 생겼다.

“진 사부께서도 그러시다면 당연히 제자는 믿음으로 수용하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참으로 신기하기는 합니다. 개가 귀신을 본다거나 질병을 알아낸다거나 혹은 예감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생각지도 못한 별천지인 것은 분명합니다. 앞으로는 어느 하나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 분명하게 들었습니다.”

그러자 지광이 말했다.

“그렇다네. 교감(交感)이나 감응(感應)은 사람과 동물과 초목을 가리지 않는다네. 이러한 분별을 하는 것은 단지 인간의 우월감(優越感)에서 나올 따름이라고 봐야지. 그러니까 바위를 보면서도 합장하는 고승의 깊은 뜻을 우리가 어찌 알겠느냔 말이네. 하하하~!”

지광이 이렇게 말하면서 웃자, 염재가 다시 궁금한 마음이 뭉클뭉클 솟아올라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는 사이에도 마차는 계속해서 서북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