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수가 너무 강하면 나무를 기른다

작성일
2007-09-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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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미 절제의 단계를 넘어선 물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것이다. 거세게 밀려드는 파도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토극수(土剋水)라는 말이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토극수는 고사하고 수극토나 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래서 도리없이 나무나 기르도록 명령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의 항목을 이해하면서 모순을 느끼게 될법도 하다. 이미 맨 처음에 다룬 ‘수생목이지만, 수가 많으면 목이 뜬다.(水多木浮)’는 말이 마음에 걸려서이다. 여기에서는 지금 나무가 떠버릴 것이 확실한데도 다른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해서 나무를 길러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상황은 다른 오행에서도 마찬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상황의 설명을 읽으면서 모순을 느낄 수도 있어야 생각이 있는 학자라고 하겠다. 그냥 일러주는대로 ‘그저 그런갑다...’ 하고 넘어가는 사람은 아무래도 좀더 깊이있고 살아있는 오행의 원리로 다가가는데에 애로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상황은 같지만, 주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앞에서는 나무가 주체가 되고, 여기에서는 물이 주체가 된다. 그러니까 나무의 입장에서는 떠버리거나 말거나 물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강하므로 나무로 기운을 돌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설명을 들으면서는 또 ‘상당히 이기적이네’ 하는 말도 할 수가 있을 것이고, 아니면 ‘이현령비현령(耳縣鈴鼻縣鈴)’이라고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귀에걸면 귀걸이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는 의미이다. 물론 비웃는 의미로 이러한 말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그러나 실제로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비웃을 일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을 생각하면서 그냥 비웃기나 하고 넘어간다면 이 사람은 영원히 오행의 참소식을 맛보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진리는 이현령비현령인 듯 하다. 생각할 나름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가 있겠는데, 세상의 모든 이치는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를 바라다 보는 것이 정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각도에 따라서 모두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진다는 말이 있지만, 이것은 장님의 몫이 아니라 우리 보통의 사람들 모두가 갖고 있는 안목일 것이다.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도 하겠다. 전체를 깨닫지 못한 보통의 안목으로는 부분적인 것만 보여야 정상일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오행이 서로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느끼는 상태는 자신의 입장에 따라서 다르기 마련이다. 물과 나무의 입장에서 볼적에도 마찮가지이다. 나무는 물이 너무 많아서 싫은데, 물은 또 나무로밖에 흐를 수가 없으므로 나무를 애지중지 한다. 이러한 과정이 바로 동상이몽이라고 한다. 남보기에는 같은 조건이지만 실제로 본인들이 생각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는 조건이라는 이야기이다.

아마도 오행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러한 모든 여건에 대해서 두루 생각을 해봐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칫 헛깨비만 보고서 오행을 안다고 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이 되어서이다.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넘어가는 것이 걱정이 되신 서대승님께서 구구절절히 머리로 이해를 하고 가슴으로 느낄 내용들을 기록해 놓으셨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좁은 견해에서 보다 넓은 견해를 갖게되는 밑바탕이 마련되었으리라고 믿고서 이 항목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