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제30장. 정신(精神)/ 8.새로운 인연(因緣)

작성일
2021-09-10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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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제30장. 정신(精神) 


8. 새로운 인연(因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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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량이 돌아가는 도사를 따라가지 않고 남아있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같이 공부하던 두 분 사형께서도 큰마음을 먹고 오행원에서 공부를 함께 하시기로 했으니 각자 소개를 하시고 궁금한 것도 여쭤보고 하시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는 춘매에게 다시 물었다.

“무엇보다도 수학(修學)에 드는 비용은 어떻게 되는지도 말씀해 주시면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러자 춘매가 말했다.

“제자의 인연에 대한 비용도 당연히 받아야죠. 한 사람에게서 은자 20냥을 받겠어요. 오행원을 마련하기 전에는 은자 30냥을 받았지만 이제 공부터가 마련되었으니 적게 받아도 되겠네요. 호호호~!”

그러자 춘매의 말을 들은 왕량이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두 분 사형님의 몫까지 포함해서 100냥을 내겠습니다. 오행원에서 유용하게 써 주시면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하하하~!”

그러자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말했다.

“아니 사형께서 너무 무리하시는 것이 아닌지요? 저도 어떻게 해서든 마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대신으로 내주시면 나중에 갚도록 하겠습니다.”

왕량은 이미 두 사람의 금전적인 형편이 좋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스스로 감당하겠다고 말을 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모임을 알고서도 참여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상처를 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다 되었으니 그보다도 인사나 하시게.”

그러자 나이가 들어보이는 사람이 먼저 말했다.

“아, 예. 저의 이름은 구양정(歐陽貞)이고, 호는 원춘(元春)입니다. 집은 강서(江西)인데 올해 31세로 신축(辛丑)생입니다. 이렇게 왕량 사형의 인연으로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부디 잘 거둬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구양정이 자신을 소개하자. 일동이 모두 박수로 입문을 환영했다.

그러자 왕량이 말했다.

“제 이름이 왕량인 것은 말씀드렸습니다만, 호는 군엄(君嚴)입니다. 생년은 사주에서 말씀드렸듯이 병신(丙申)생입니다. 호가 군엄인 이유는 임금 앞에 있는 것처럼 마음을 엄숙하게 하여 방자하지 말라는 부친의 뜻이었습니다.”

그러자 춘매가 말했다.

“군엄 선생이셨구나. 환영해요. 호호호~!”

역시 원춘과 마찬가지로 박수로 환영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한 사람이 일어나서 자기를 소개했다.

“저는 기대규(紀大奎)입니다. 태어난 곳이 강서(江西)의 임천(臨川)이고 호는 임천(林泉)입니다. 나이는 29세로 계묘(癸卯)생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춘매가 반겨 말했다.

“와~! 기 선생은 나랑 동갑네시네. 반가워요. 환영합니다~!”

모두 박수로 환영했다. 이렇게 해서 졸지에 공부하는 식구가 세 사람이나 늘어나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생각한 우창이 한마디 했다.

“아는 것이라고는 오행뿐이지만 여러분들의 지식에 대한 갈망과 자연의 이치에 대한 깨달음에 일조(一助)하고자 합니다. 인연이 되셨으니 알찬 시간을 함께 누리도록 해 보십시다. 하하하~!”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공부의 분위기는 다시 조정되어야 했다. 그래서 우선은 각자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면서 담소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렇게 점심이 마련되자 밥을 나눠 먹으면서도 이야기꽃은 끊일 줄을 몰랐다. 특히 밥을 먹을 사람이 많아지자 신명이 난 것은 춘매였다. 설거지도 돌아가면서 하고, 음식을 준비하는데도 일손이 많으니까 좋은 점이 늘어났다. 그래서 더욱 화목한 기운이 넘치는 오행원이 되었다.

점심을 먹고서도 저마다 공부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있는데 다시 문 앞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가 싶어서 춘매가 나가보니까 대략 30여 명은 되어 보이는 인원의 남녀가 문 앞에 있다가 춘매를 보고는 허리를 굽혀서 인사했다. 그러자 춘매가 얼떨떨해서 한 사람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신지요?”

그러자 그중에 한 여인이 춘매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기문 도사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있던 동문사형제 들이에요. 좀 전에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잖아요? 다녀왔던 사형과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서 우리끼리 의논을 한 결과 제대로 된 오행의 공부를 위해서 자리를 옮기는 것으로 합의를 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함께 찾아왔으니 받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춘매는 갑자기 벌어진 일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머뭇거리고 있는데 안에서 내다보고 있는 왕량이 얼른 나와서 정리를 했다.

“여, 반가운 벗들이 몰려오셨구나. 내 그럴 줄 알았어. 어서들 와요. 일단 들어와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하하하~!”

밖에 있던 사람들이 왕량을 보자 반가워했다. 낯선 곳에 왔으나 아는 얼굴이 있으니 그 반가움이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춘매의 안내로 모두 안으로 들어앉았다. 갑작스레 대접할 것이 없는 춘매는 시원한 물을 한 잔씩 따라줬다. 이야기를 나누려면 물이라도 앞에 놓고 대화해야 할 것 같아서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행원의 주인인 진하경(陳河鏡)입니다. 이렇게 누추한 곳을 마다치 않으시고 찾아주시니 영광입니다.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주인의 입장에서 간단히 환영한다는 말을 하자 모두 답례를 했다. 그렇게 해서 잠시 소란이 일었다가 다시 잠잠해지자 왕량이 그들을 대표해서 말했다.

“스승님께 말씀드립니다. 오늘 갑자기 무리를 지어서 찾아온 도반들은 그동안 기문 도사의 문하에서 공부하던 인연들입니다. 왕량과 함께 공부하던 원춘과 임천은 이미 상급의 수준이었기 때문에 반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에 오행원으로 혼내러 가자고 하는 인원에 뽑힌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예 귀가도 하지 않고 여기에 머물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서 당연히 공부하는 곳이 지척에 있었으면서도 모르고 세월만 보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서 이렇게 한꺼번에 몰려 왔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아마도 남은 제자들은 5~6명 정도일 것으로 보겠습니다. 어쩌면 그들도 마음이 동했는지 모를 일이기는 합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수경(水鏡) 사매에게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한 왕량이 아까 문 앞에서 춘매와 이야기를 나눈 여인을 가리켰다. 그 여인의 이름이 수경이었다. 왕량의 지목을 받은 여인이 일어나서 자기소개부터 했다.

“오행원에 인연이 되어서 한없이 기쁩니다. 오전에 오행원으로 갔던 일행들의 결과가 궁금해서 목을 늘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돌아온 스승님을 뵙고는 의아했습니다. 떠날 때는 다섯이었는데 돌아온 사람은 둘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습니다. 그에 대한 말씀을 가감없이 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꺼낸 수경은 그간에 있었던 이야기를 정리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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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과 동행한 제자 중에서 대사형만 데리고 돌아온 것을 본 수경은 의아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사형님 어떻게 된 일이에요? 다른 사형들은 어디로 가시고요?”

도사는 이미 말도 없이 화가 식지 않은 모습을 하고서 안으로 들어가 버린 다음이었다. 대사형이 말했다.

“가보니까 순전히 사기꾼들이더라고. 말만 번드르하게 하는 거야. 그래서 혼을 내어 주고 왔지.”

“당연히 그러셨겠지요. 그런데 다른 사형들은요?”

“말도 말아, 씨알도 안 먹히는 말을 듣더니만 갑자기 마음들이 미쳐버렸는지 눌러앉아서 안 오겠다잖아. 그래서 스승님을 모시고 나만 왔지.”

“아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소상하게 말씀을 해 주세요. 궁금하잖아요.”

“무슨 일이야 있었지. 오행원에 갔더니 한 애송이 녀석이 스승님께 묻는 거야. ‘금이 뭐냐?’고 말이지. 나원참 기가 막혀서 말이야.”

“뭐에요? 금이 뭐냐고 물었단 말이에요. 바보 아녜요?”

수경도 의외의 말에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러자 대사형이 답을 했다.

“그러니깐 말이야. 그래서 당연히 암석이 금이라고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지 않겠어?”

“맞아요. 우리도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그런데 그 애송이 녀석이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는 거야. 금은 불에 녹는데 바위는 불에 녹지 않으니 어찌 금이 되느냐면서 그 이치를 설명해 달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폭발해 버렸지 뭐.”

“잘하셨어요. 당연히 그런 헛소리를 하는 녀석은 혼을 내줘야죠. 스승이라는 작자가 변변치 못한 것이 맞네요. 호호호~!”

“스승이란 녀석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자신은 미련해서 오행밖에 아는 것이 없다’는 거야. 그따위 실력으로 가르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잖아?”

“가만, 그러니까 금은 불에 녹는 것이라야 한다고요? 듣고 보니까 그것도 일리는 있는걸요. 그런데 왕량 사형은 왜 주저앉았어요?”

“왕량? 그놈도 정신이 나갔지. 그 애송이가 왕량에게 목생화(木生火)가 뭐냐고 물었는데 나무가 타서 불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잖겠어?”

“그야 당연하죠. 틀림없는 자연의 이치인걸요.”

“그런데 그 애송이는 바람이 불을 잘 살려주는 것이고, 나무가 불에 타는 것은 화극목(火剋木)이라잖아. 세상에 화극목이 어디 있느냔 말이야.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나 있어?”

“아니, 화극금(火剋金)이야 알지만, 화극목은 또 무슨 말이에요? 참 혹세무민을 일삼는 무리들이 맞네요.”

“말도 말아, 화극금이 아니냐고 했더니 화생금(火生金)도 있다는 거야. 그래서 그런 황당한 이치가 어디 있느냐고 따졌더니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는 이치도 그와 같은 것이라는데 할 말이 막히긴 하더라구.”

“예? 여름은 화(火)이고, 가을은 금(金)이잖아요?”

“그러니까 말이야. 겨우 오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도 벌써 왕량과 임천의 마음이 기울었더라니까. 어쩌면 의리도 없이 그럴 수가 있느냔 말이야. 정말 인간은 키워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니까 그래서 스승님은 분노가 치밀어서 나왔는데 녀석들은 그냥 눌러앉겠다는 거야. 이럴 수가 있어? 비록 마음이 그렇다고 해도 일단 왔다가 다음에 찾아가는 것이 경우잖아?”

“정말 왕량 사형은 그렇게 안 봤는데 의리도 경우도 없으시네요. 설마 오행에 대한 이야기만 듣고서 그랬단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요.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은 없었어요?”

“아, 왕량의 사주를 풀이했지. 뭐 풀이하는 것도 신통치 않아. 온통 마음이 어떻게 되어서 올해는 공부가 잘되지 않느니, 그딴 말을 하는데 거기에 꽂혀서는 스승님을 배신하고 오행원에서 공부하겠다고 하잖아. 정말 지금 다시 그 장면을 떠올리니까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솟아오르네. 내가 어떻게 대해 줬는데 의리도 없는 나쁜 놈~!”

그렇게 화를 내고는 대사형도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자 이야기를 듣던 제자 중에 평소에 마음의 대화를 많이 나눈 사매인 채운(彩雲)이 수경에게 말했다.

“언니,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느낌이 어때요?”

“왜? 채운도 마음에 느낀 바가 있어?”

“난 왜 왕량 사형이 함께 돌아오지 않았는지 이해가 될 것 같아서요.”

“아, 채운의 생각은 어떻길래?”

“아니, 그렇잖아요. 애송이가 하는 말이라면서 내용은 우리가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잖아요? 바위가 토라느니, 나무가 불에 타는 것은 화극목이라느니 이런 말을 처음 들어서 신기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자연의 이치에 완전히 부합되는 이야기라는 것이 너무 놀라워서 벼락을 맞은 듯이 머리카락이 쭈뼛하고 섰어요. 어쩌면 그런 이론이 있을 수가 있어요?”

“채운의 생각에도 그렇단 말이지?”

“아니, 왕량 사형도 그렇잖아요. 평소에 얼마나 차분하고 냉정하게 우리를 지도해 주셨어요? 그런 분이 바로 오뉴월 보리감주가 변하듯이 마음을 돌렸다는 것만 봐도 이것은 심상치 않아요.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요?”

“혼란스러워서 지금 당장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네. 그렇지만 애송이 녀석이라는 놈은 한번 만나보고 싶네. 호호호~!”

“무슨 말씀이세요. 오행원의 스승님을 만나야죠. 우리도 얼른 가요. 한시라도 우리의 소중한 삶을 허비할 수가 없잖아요?”

채운이 이렇게 말하자 이야기를 듣느라고 숨을 죽이고 있던 다른 도반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마다 자기의 생각을 나누느라고 술렁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불과 일각(一刻:15분)도 지나지 않아서 성격이 급한 채운이 일어섰다. 그리고는 자신이 공부하던 책과 지필묵을 챙겨서는 앞장을 섰다. 그러자 수경도 왕량과 원춘과 임천이 사용하던 용품들을 챙겨서는 스승님께 작별을 고하고는 바로 나섰다. 물론 스승은 대답도 하지 않았으나 예의상 인사를 차리고 나왔다.

“채운, 우리가 이렇게 찾아가는 것이 혹 실례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자 채운은 수경에게 말했다.

“진리를 찾는 일은 길고도 험난해요. 항상 깨어있는 눈으로 스승을 찾아야죠. 그동안은 기문도사님을 스승으로 배웠다면 이제는 오행원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는 것이 바로 계절이 변하여 꽃이 지고 열매가 맺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언니는 망설여지는 이유가 있어요?”

“아니, 다른 것은 괜찮은데 우리가 이렇게 몰려가면 기문도사님이 가만히 있지 않고 행패라도 부려서 오행원에 어떤 해를 입히게 될까 봐 걱정하는 거야. 왜냐면 우리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시는 분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면 그것도 얼굴이 서지 않는 일이잖아?”

수경의 이야기를 듣고서 채운이 말했다.

“언니, 그 마음은 알겠어요. 그렇지만 이것도 생각하고 저것도 생각하면 실로 할 수가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불편하면 언니는 여기 남으세요. 그리고 설령 우리가 찾아감으로 인해서 오행원에 어떤 피해가 생긴다고 해도 그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하실거에요. 그렇지 않으면 또 우리는 스승을 찾아서 길을 떠나면 되죠. 호호호~!”

이미 마음을 비워버린 채운의 말에 수경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오행원으로 향했고, 나머지 사형제들도 몇몇만 남고는 모두 두 사람을 따라서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


 

그간의 정황을 이야기한 수경이 왕량을 보고서 말했다.

“사형께서 평소에 차분하신 품성이 아니었다면 서두르지 않았지요. 그런데 사형이 마음을 바꾸셨다면 저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을 했죠. 그나저나 여전히 걱정되는 것은 행여라도 오행원에 어떤 폐를 끼치지 않을까 싶은 점이에요. 채운은 그런 것은 쓸데없는 걱정이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저는 조금 걱정이 되네요. 왜냐면 기문스승님의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긴 설명을 듣고 난 다음에 우창이 말했다.

“여러분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오고 가는 것은 누구도 말릴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일이니 그것 또한 시절인연(時節因緣)이려니 싶습니다. 그리고 오고 감에 따라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이더라도 그것도 또한 인연으로 보니까 마음을 쓰지 말기 바랍니다. 다만 내가 염려하는 것은 기대하고서 찾아왔는데 원하시는 바를 얻지 못하면 어쩌나 싶은 것뿐입니다. 다만 내가 오라고 한 것은 아니므로 설령 얻지 못하더라도 원망은 하지 않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잘 오셨습니다. 서로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학문의 좋은 인연을 만들어 봅시다. 환영합니다.”

우창의 말에 모두 박수를 쳤다. 분위기가 이렇게 무르익어가는데 또 누군가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춘매가 내다 보고서는 화들짝 놀랐다. 예의 그 기문도사가 숨이 턱에 닿아서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들어오라고 할 것도 없이 팔을 걷어붙이면서 안으로 들어와서는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뭣하는 짓이냐~! 이렇게 하고서도 이 바닥에서 온전히 살아남기를 바란단 말이냐~!”

난데없는 호통 소리에 모두 삽시간에 숨을 죽였다. 일이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가 염려스러웠지만 지금 단계에서 누가 나서기도 분위기가 험상궂어서 어찌해야 할 것인지를 모르고 잠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인데 그가 우창을 향해서 삿대질하면서 호통을 쳤다. 우창도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차피 한 번은 부딪쳐야 한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잠시 기다렸다. 우창이 가만히 있자 기문도사는 더욱 큰 소리로 노발대발했다.

“아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이냐~! 세상에는 경우가 있는 법인데 이렇게 몰상식하게 찾아오는 사람을 넙죽넙죽 받아준단 말이냐? 어디에서 이따위로 배웠느냐~!”

꾹꾹 눌러서 참으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자원이 더 참고 있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는 것을 우창이 눈짓으로 눌렀다. 자원이 우창을 보고서 이미 어떤 생각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도로 주저앉았다. 우창이 가만히 듣고만 있으니까 그는 더욱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랐는지 얼굴은 붉다 못해서 대춧빛이 되었다. 당연히 그렇게 화가 날 법도 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맞대응이라고 하면 더욱 큰 소란이 일어나게 될것임을 알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지나자 기문도사는 혼자서 화를 삭이지 못하고 호통을 치다가는 제풀에 지쳤는지 말을 멈췄다. 우창의 표정을 보니까 화를 내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어서 오히려 의아했던 모양이다.

“아니, 이렇게 내가 화를 냈는데도 무슨 말이 없어? 뭐라고 말을 좀 해봐~!”

우창이 가만히 듣고만 있자 오히려 자기가 답답했는지 다소 누그러진 음성으로 되물었다. 그제야 우창이 입을 열었다. 모두 우창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실로 옳으신 말씀이시니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해가 될뿐더러 당연히 그러실 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자네가 생각해도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이제는 나이 차이도 있고 하다 보니까 아예 자네라고 하면서 말했으나 우창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다만 자원과 춘매만 속이 불편했으나 우창이 어떻게 하는지를 두고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우창이 다시 답했다.

“이해가 백 번이라도 됩니다. 저라도 그랬을 것입니다. 믿고 가르쳤던 제자들이 한순간에 모두 떠나갔을 적에 허전한 마음이야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알아들으니 다행이군. 그래 이해를 했으면 어쩔텐가? 모두 돌려보내야 옳겠지?”

기문도사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서 애원에 가까운 말투로 우창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있으니 모두가 측은한 생각이 저절로 일어났지만 아무도 말을 하지는 않았다. 우창이 말했다.

“맞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이신 도사님의 제자들이 물건이라면 당연히 돌려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들이 모두 인격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뭐라는 것이냐? 못 보내겠단 말이냐?”

“도사님께 여쭙습니다. 제가 이들에게 여기로 오시라고 부추겼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부추긴 것이나 마찬가지지 안 그래?”

“알겠습니다. 그럼 인격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누구라도 좋고 모두라도 좋습니다. 지금 바로 도사님께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대중을 둘러보면서 말했지만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숨을 세 번 쉴 만큼의 시간이 흘러갔지만 움직이는 사람이 없자, 우창이 말했다.

“아마도 이들이 소생에게 뭔가 기대하는 것이 있었던가 봅니다. 오는 사람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 인연법이라고 들었습니다. 만약에 이들이 또 제 가르침에 회의심을 갖고 다시 도사님께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말리거나 붙잡지 않을 것이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우창의 말이 이렇게 조리(條理)가 정연(整然)하자 도사도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그러자 춘매가 물을 한 잔 따라줬다.

“도사님 여기 물이라도 드시지요.”

도사는 춘매가 주는 물잔을 받아서 벌컥벌컥 마시고는 잔을 돌려줬다. 춘매가 다소곳하게 잔을 받았다. 그러자 도사가 대중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나는 이만 돌아가네. 그대들이 언제라도 돌아오겠다고 하면 맞아줄 테니까 여기에서라도 열심히 공부들 하시게. 그럼.”

이렇게 말하자, 도사에게서 공부했던 제자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공수로 작별을 고했다. 홀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니 우창도 마음이 짠했다. 그래서 대문 밖까지 배웅했다.

“편히 살펴 가십시오.”

“잘들 가르쳐 보시게. 실례가 많았네.”

“고맙습니다.”

이렇게 작별하고 방으로 돌아오자. 그 사이에 분위기는 희희낙락(喜喜樂樂)이었다. 우창을 보고서 가장 먼저 말을 한 사람은 수경이었다.

“스승님, 우리가 정식으로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새로 온 제자들이 모두 일제히 우창에게 절을 했다. 우창도 기쁜 마음으로 절을 받고서 앉았다. 모두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서 말했다.

“물은 물길을 따라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학문은 불길을 따라서 높은 곳으로 흐릅니다.”

우창의 이 한마디 속에 모든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자 채운이 말했다.

“우와~! 스승님은 차원이 다르세요. 어쩌면 그렇게 멋진 말씀을 하실 수가 있을까요. 정말 오래도록 곁에서 모든 공부하고 싶어요. 거둬주셔서 고맙습니다. 더욱 분발해서 가르침에 따르고 열심히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자원이 일어났다. 모두의 눈이 자원에게로 향했다.

“여러분이 이렇게 멋진 스승님을 찾아서 모인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저는 자원(慈園)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스승님께 말씀드리기 어렵거나 궁금하신 것이 있으면 내게 물어도 되고, 내가 바쁠 적에는 춘매에게 물어도 되니까 언제라도 기탄없는 문답(問答)을 통해서 하루빨리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춘매도 일어나서 한마디 했다.

“저는 춘매에요. 여러분의 끼니를 책임지고 있어요. 오늘 이렇게 식구가 많이 생겼으니 밥솥도 더 큰 것으로 바꿔야 하겠어요. 물론 아침과 저녁은 각자 알아서 해결하시겠으나 점심 한 끼는 죽이면 죽, 밥이면 밥, 되는대로 대접할 테니까 행여 맛이 없더라도 군말없이 드셔주기 바래요. 호호호~!”

그러자 왕량이 신임 제자들의 대표의 자격으로 말했다.

“이렇게 환영해 주시고 부족한 제자들을 받아주시면서 수모도 겪으신 것에 대해서 감동과 미안함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 또한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촌음(寸陰)을 아껴서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이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까닭입니다. 앞으로 여러 사람이 함께 공부하다가 보면 혹 소란스러운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그러한 것은 모두 이 군엄(君嚴)이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혹 그러한 문제로 스승님께 심려(心慮)를 끼치지 않도록 잘 보살피겠습니다. 그럼 각자 자기소개를 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우선 수경부터 소개를 하시지.”

군엄의 지명을 받은 수경이 나서서 자기를 소개했다.

“오행원에서 공부하시던 선배님들께 인사드립니다. 이름은 공명화(孔銘華)이고 호를 수경(水鏡)으로 받았으니 그렇게 불러주시면 되겠어요. 앞으로도 옛날처럼 군엄 사형님을 따라서 열심히 공부하는데 협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원 선생님과 춘매 선생님께도 잘 부탁드려요.”

인사말이야 간단했으나 그 가운데에서도 품성은 느껴지기 마련이었다. 신중하고 차분하면서도 명석해 보이는 모습이 느껴졌다. 이어서 채운으로 불리는 여성에게도 인사를 하라고 권했다. 그러자 일어나서 자기를 소개했다.

“오행원에 인연이 되어서 반가워요. 제 이름은 진혜원(陳惠媛)이에요. 호가 채운(彩雲)이니 그렇게 불러주세요.”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고는 자원과 춘매에게 인사를 하고, 우창에게도 인사하고는 앉았다. 이렇게 해서 모든 사람이 돌아가면서 인사를 하고 저마다의 인연을 말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공부의 수준이야 제각각이었지만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같아지기 마련이라는 우창의 생각대로 차분하게 기초부터 다지기로 하고 음양의 이치부터 자원의 설명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모두 사시초(巳時初:09시)에 만나서 신시말(申時末:17시)까지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오늘은 첫 만남인지라 공부에 대해서는 간단히 정리하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하기로 하고 저마다 삼삼오오로 모여서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그중에서도 춘매는 채운과 성향이 비슷해서인지 가장 많이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두 사람은 이내 친자매처럼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