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 제30장. 정신(精神)/ 6.불청객(不請客)

작성일
2021-08-30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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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 제30장. 정신(精神) 


6. 불청객(不請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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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날이 밝아오자 우창도 가뿐한 마음으로 눈을 떴다. 어제 잘 먹은 덕분인지 아침에 일어나는 몸이 새털처럼 가벼움을 느꼈다. 춘매의 정성이 담긴 아침을 가볍게 먹고 진시말(辰時末:08:30)이 되자 안산과 염재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모여들었다. 아침부터 푹푹 쪄대는 복중(伏中)의 더위는 가만히 앉아있어도 흐르는 땀을 막을 길이 없었다. 다행히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것을 본 춘매가 문을 활짝 열었다. 바람으로 더위를 쫓을 요량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바람으로 더위를 쫓는 것은 목극화(木剋火)가 맞는 거지요? 오늘은 바람이 큰 부조를 하게 생겼어요. 호호호~!”

우창도 날씨는 더워도 마음은 상쾌하여 바람을 즐기면서 말했다.

“아무렴.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목극화가 맞네. 하하하~!”

그때였다. 밖에서 몇 사람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것이 보이더니 대문을 두드렸다.

‘쾅쾅쾅~!’

뭔가를 묻기 위해서 방문한 사람이 두드리는 정도를 넘어선 큰 소리에 모두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밖을 내다봤다. 그러자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주인장~! 계쇼~! 좀 봅시다~!”

‘쾅쾅쾅쾅~!’

문이 부서지라고 두드리는 소리에 오광이 나가서 문을 열었다. 그러자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문 앞에 죽 늘어서 있었다. 분위기가 자못 심상치 않음을 느낀 오광이 물었다.

“어떤 일로 이렇게 행차를 하셨는지요?”

“주인장을 좀 보러 왔소~!”

오광은 사람들의 행색을 봐하니 상담하러 온 모습은 아니었다. 흡사 싸우려고 온 사람들처럼 보이기조차 했다. 그래서 들여보내야 할지를 잠시 망설였지만 기다릴 사이도 없어 오광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우창은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면서 벗어놓았던 적삼을 걸쳤다. 그래도 손님이 왔으니 주인장의 예의는 차려야 할 것 같아서였다. 춘매가 그들 중의 한 사람을 알아보고는 얼른 말했다.

“저 붉은 옷은 입은 남자는 곡부에서 알아주는 자칭 도사에요. 아마도 시비를 걸러 온 것으로 보여요. 조심하세요.”

춘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은 안으로 들어서면서 말했다.

“어허~! 여기가 오행원이오? 이름 한 번 시건방지군. 안 그래?”

“맞아~! 주인장의 안목이 얼마나 높은지 좀 봐야겠는걸.”

조용하던 공부방에 난데없는 불청객이 찾아들자 분위기는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이렇게 되자 우창이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잘 오셨습니다. 날도 더운데 어려운 걸음을 하셨습니다. 소생이 주인인 진하경(陳河鏡)입니다. 이리 앉으시지요.”

이렇게 말을 하면서 춘매에게 말했다.

“손님들이 오셨으니 시원한 음료라도 좀 준비해 주게.”

“예, 알겠어요.”

춘매도 고분고분 우창이 시키는 대로 식혜를 준비해서 따라 올렸다. 남자는 모두 다섯 명이었다. 그리고는 분위기를 살폈다. 아마도 시비를 걸러 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뭔가 못마땅한 것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이 되었지만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가만히 앉아서 염재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자 염재는 아예 뒷자리에 앉아서 심각하게 살피고 있었다. 만약에 여기에서 행패라도 부린다면 바로 포졸을 불러서 잡아들일 요량이었다. 다만 아직은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잠자코 있었다.

“자, 어려운 걸음을 하셨으니 시원하게 목이라도 좀 축이시지요.”

우창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 건들거리면서 말했다.

“그대가 주인이오? 올해 몇 살이오?”

붉은 옷을 입은 남자가 물었다. 그의 태도에는 사람을 무시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예, 소생은 올해 서른아홉입니다. 해 주실 말씀이 있으신 것으로 보이니 기탄없이 말씀해 주시면 귀담아듣겠습니다.”

난데없는 방문객에게 기분이 좋을리 없는 우창이었지만, 그래도 찾아온 손님에게 예의는 차렸다. 그들은 식혜를 후루룩거리면서 마시고 자기네들끼리 낄낄거리면서 부산한 행동을 취했다. 그렇게 잠시 지나자 우창의 나이를 물었던 남자가 말했다.

“나는 곡부의 역술계를 이끄는 회장 기문도사요. 어느 날 갑자기 난데없는 떠돌이가 곡부에 들어와서는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고 영업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나들이를 했소이다.”

남자의 말에 우창이 얼른 답했다.

“아, 그러셨습니까? 몰라뵈어서 죄송합니다. 미쳐 존귀한 분이 계신 줄도 모르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하해와 같은 아량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창의 정중한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리번거렸다. 그중에 한 젊은 사람이 탁자를 툭 쳤다. 분위기가 자못 험상궂어가고 있었다.

“이봐~! 주인장, 나이도 몇 되지 않은 놈이 예의를 갖춰야지. 그렇게 앉아서 헛소리만 지껄이고 있을 건가~! 엉~!”

그는 우창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우창은 미동도 하지 않고 말했다.

“예의를 어떻게 갖추면 되겠습니까?”

“뭘 물어. 무릎을 꿇고서 잘못했노라고 고하고 고두백배(叩頭百拜)해야지 예법이 형편없구먼~! 오늘 맛을 좀 봐야 할 참이군. 이게 뭐야~!”

그렇게 말하면서 벌떡 일어나서는 의자를 걷어찼다. 의자가 벽에 부딛치면서 부서졌다. 그러자 참고 있던 자원이 벌떡 일어났다.

“찾아온 사람에게 가만히 손님의 대접이라도 해 주면서 두고 보자니까 무례하기 짝이 없구나~! 가르침을 주러 왔다면 가르쳐 줄 일이고, 잘못했노라고 하면 받아들일 일이지, 뭘 어떻게 해 보겠다는 것인가요?”

자원이 눈썹을 찌푸리면서 일어났다. 우창이 말렸다.

“자원, 그냥 앉아있어. 가르침을 주시려는데 들어봐야 하지 않겠나.”

그러나 의자를 걷어찼던 남자가 자원의 코앞으로 자기의 얼굴을 들이밀면서 이죽거렸다.

“왜? 패겠네~! 어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모양인가? 뭘 어쩔 작정이냐. 새파란 년이 저 모양이니 선생 나부랭이도 이러고 있군.”

자원이 들이미는 사내의 뺨을 호되게 때렸다.

‘철썩~!’

이어서 비명이 터졌다.

“아이쿠~! 사람 잡네~!”

그렇게 말하면서 서너 걸음 뒤로 비틀거렸다. 사내의 볼에는 새빨간 손자국이 선명하고 입술은 터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자 오기가 났는지 자원에게 달려들어서 팔을 비틀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지켜보고 있던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의 나이는 60여 세는 되어 보였다. 그는 화가 나는지 자원에게 말했다.

“아니, 모르는 것을 알려주려고 왔는데 사람을 지나가는 개를 패듯 하는군. 어찌 이렇게도 무례한가~!”

그러면서 우창을 향해서 삿대질을 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우창은 속으로 너무나 고소했지만 그래도 주인이라는 체면을 지키려고 애써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자원을 나무랐다.

“어허~! 손님에게 이게 무슨 무례냐. 어서 손님에게 사과 말씀을 드리고 가만히 있어~!”

그러자 자원의 맑았던 음성이 차갑게 변했다.

“흥~! 손님에겐 손님 대접을 하고, 개에게는 개 대접을 하는 것이 잘하는 것으로 가르쳐 주셨잖아요. 봐하니 인간이 아니라 개떼가 몰려 들어왔으니 개로 대할 뿐이에요. 말이 통한다면 벌써 사람이죠.”

이렇게 말을 마치자마자 뺨을 때렸던 사내의 다리를 어떻게 했는지 우창에게 무릎을 꿇고 풀썩 주저앉았다. 그것을 본 염재와 오광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었다. 염재가 말했다.

“하하하~! 예의가 아주 바르신 것을 보니 개는 아닌가 봅니다. 하하하~!”

자원이 말했다.

“지금 당장 사죄하고 찾아온 목적을 말해라!”

그러자 붉은 옷의 남자가 말했다.

“아니, 뭘 믿고 이렇게 나대는 것이냐? 관헌으로 끌려가서 곤장이라도 맞아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다. 아무래도 오늘 그냥 둬서는 안 되겠군.”

그러자 자원이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요? 볼썽사나운 꼴을 제자들에게 보이지 않으려면 예의부터 갖추시는 것이 그나마 나을 거에요. 나는 아무리 너그럽게 대하고 싶어도 이 손은 내 말을 잘 듣지 않으니까요.”

자원이 이렇게 말하면서 소매를 걷자, 뺨을 얻어맏은 남자도 자원의 소리에 내심 찔끔하는 듯했지만 그래도 거들먹거리는 것은 여전했다.

“그래? 어쩔 건가? 어디서 배워먹은 손 버릇인가~!”

이제는 아예 자원에게 어떻게 해 보려는 듯이 일어나서 대들었다. 그렇게 대들면서 뭐라고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자원이 순식간에 아혈(啞穴)과 몇 군데의 혈도를 짚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자칭 기문도사는 그렇게 대들려고 하다가 갑자기 목석처럼 펄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우창이 말했다.

“아니, 손님에게 무슨 무례인가. 어서 혈도를 풀어드리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 듯하니 들어보고 나서 시비를 가리더라도 될 텐데 이러면 안 되지.”

그러자 자원이 우창에게 말했다.

“스승님께 하는 짓으로 봐서 무슨 말인지 듣지 않아도 알겠어요. 인간이 덜 된 것들은 인간적으로 대접을 해주면 자신들이 진짜로 인간인 줄 알아요. 오늘 끝을 봐야겠어요. 그러지 않아도 하산을 한 후로 손이 근질거렸는데 오늘 제대로 날도 덥고 짜증도 나던 판에 잘 되었네요.”

“자원의 손이 매운 줄은 알지만 곡부의 어르신에게 이러면 되나. 어서 풀어드리고 이야기를 들어봐야지. 빨리~!”

우창의 말에 자원은 마지못해서 짚은 혈도를 풀어줬다. 엉겁결에 호되게 당한 남자는 아직도 얼얼한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지면서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지 멍하게 앉아있었다.

“아니, 뭘 하고 있어요! 한 번 더 맛을 봐야겠어요? 어서 무례를 범한 것에 대해서 사죄하고 부서진 의자는 빨리 가서 새것으로 가져오고~!”

서슬 퍼런 자원의 말에 모두 기가 꺾였는지 들어올 적에 기세등등(氣勢騰騰)하든 모습은 간 곳이 없고 모두 고분고분해졌다.

“할 말이 없으면 다음에 다시 와요~! 다음에 와서 또 이런 식으로 굴면 온전히 걸어서 나가지 못하게 다리를 꺾어버릴 테니 각오하고 오세요.”

그래도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이느라고 애쓰면서 존칭은 썼다. 옛날 같으면 그대로 돌려보낼 자원이 아니었지만 공부하는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고 애써 참고 말했다. 남자의 표정을 보니 말이 아니었다. 체면이 구겨진 것은 물론이고, 제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뭐라도 해야 할 것이라는 압박까지 받고 있었다.

“낭자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가 좀 무례했소이다. 그렇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으니 이야기를 좀 나눕시다.”

“아, 그렇게 나오면 또 다른 이야기죠. 앉아서 말씀하세요.”

자원이 앉지도 않은 채로 팔장을 끼고는 냉랭하게 말했다. 하는 것을 봐서 여차하면 매운 손을 또 펼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오광이 속으로 손뼉을 쳤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시원하고 통쾌했기 때문이었다.

“주인장 물어봅시다. 오행원이 무슨 뜻이오?”

다른 일행들도 한쪽에 모여앉아서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는 자원의 기에 눌려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창이 답했다.

“소생이 변변치 못하여 깊고도 오묘한 철리(哲理)를 아무리 궁구(窮究)해도 알 도리가 없고 겨우 깨달은 것이 오행의 변화인지라 오행이 전부인 줄로 알고 붙인 이름이었습니다. 가르침을 주시면 기꺼이 받겠습니다.”

우창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담담하게 말하자 그 남자도 약간은 정신이 돌아왔는지 다소 차분해진 어투로 벽에 걸린 「오행천하(五行天下)」의 편액을 가리키면서 다시 물었다.

“아, 그렇소? 그깟 오행이 뭐라고 천하(天下)씩이나 논한단 말이오~!”

역시 천성이 불손(不遜)한 사람이었다. 호된 맛을 보고서도 이내 본성이 되살아 나는 모양이다. 남을 멸시(蔑視)하는 투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오행원의 식구들은 기가 막혔다. 그렇지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몰라서 잠자코 있었을 따름이었다. 다만 염재는 흥미롭게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쩌면 또 재미있는 풍경이 전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었다. 우창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오행이 전부인 줄로만 알고 우물 안에서 노닥거리고 있습니다. 오늘 선생께서 안목을 넓혀주셨으면 백골난망(白骨難忘)이겠습니다.”

우창은 이렇게 말하면서 기문도사를 쳐다보면서 내심 생각했다.

‘오행의 이치를 알고 있다면 이렇게 나올 수가 없을 것인데 아무래도 회장의 자리는 위력(威力)으로 얻은 모양이군.’

그렇지만 입으로는 한없이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께서 어려운 걸음을 해 주셨으니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우창이 다시 말하자 예의 거들먹거리는 자세로 말했다.

“오행 따위나 갖고서 행세를 하는 것을 보니 참으로 한심하오. 오행 말고는 뭐 아는 것이 없소?”

“그렇습니다. 아는 것이라고는 오행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 무엇을 또 알아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으니 말입니다. 오늘 안목을 넓혀주신다면 스승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우창도 약간은 반발하는 듯한 어두로 대꾸했다. 남자는 스승으로 모신다는 말에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본 자원이 내심 고소했다. 서서히 우창의 그물에 걸려들고 있는 것이 보여서였다. 자원도 이 사람들이 더는 난동을 부릴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한쪽에 조용히 앉았다. 당장 큰일이 벌어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아서였다. 그러자 뺨을 맞았던 남자도 붉은 손자국이 선명한 뺨을 어루만지면서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부터 우리 스승님이신 기문도사께서 귀한 가르침을 내릴 것이니 잘 들으시오.”

퉁명스럽게 하는 말이지만 이름은 정확히 알 수가 있었다. 기문도사라니까 기문(奇門)일 것이고, 도사(道士)려니 싶었다. 하는 행동으로 봐서 제대로 도관의 수련을 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으니까 그야말로 이름만 도사일 것이 분명했다. 과연 기문의 뜻이나 알고 있는지 궁금했으나 우창은 꾹 참고서 말했다.

“아, 원래 기문도사님이셨군요.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그런데 기문도 오행은 중요한 것으로 아는데 소생이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까?”

기문도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당연하지~! 그것은 입문 당일(當日)이면 모두 끝나는 것이고, 심오한 변화를 읽는 공부를 해야지 이게 뭐냔 말이외다.”

그러자 오광이 우창에게 말했다.

“스승님께 오행만 배우다가 기문에 대한 말씀을 들으니까 귀가 번쩍 열립니다. 아무래도 제자는 스승님을 잘못 만났었지 싶습니다. 오늘 기문도사님의 말씀이 스승님보다 높은 수준이라면 바로 짐을 싸서 떠나겠습니다.”

오광이 이렇게 말하자 춘매와 자원이 미소를 지었다. 뭔가 계획이 있다는 것을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그야, 당연히 그래야지. 떠나겠다는 사람을 잡을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당장이라고 가게. 공부하러 가는 사람을 잡으면 안 될뿐더러, 하물며 더욱 훌륭한 스승을 발견해서 간다면 축하를 해 줘야 할 일이니 말이네.”

우창의 여유로움에 기문도사도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제자까지 빼앗아서 돌아가면 곡부에서는 명실상부한 최고가 되었다고 소문을 낼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오광이 물었다.

“도사님께 여쭙습니다. 소생은 스승을 잘 못만난 탓에 겨우 오행만 배우다 보니까 존귀한 학문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행에 대해서부터 여쭙고 싶습니다. 혹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리고 차차로 깊은 이치에 대해서도 여쭙고 싶습니다.”

“아, 물론이지. 기탄없이 물어보게. 뭐든~!”

여전히 네가 묻는 것은 무엇이 되었든 답을 해 줄 수 있다는 듯이 거들먹거리면서 말했다. 그러자 오광도 더욱 공손한 말로 물었다.

“고맙습니다. 역시 학문을 나눠주심에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으시면서 후한 것을 보니까 덕이 높으신 학자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제가 아는 것을 여쭤야 두 스승님의 수준을 가늠할 수가 있으니 배운 것부터 여쭙겠습니다. 오행만 배우다 보니까 금(金)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도사님께서는 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명쾌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공손하게 합장까지 했다. 도사가 봐하니 어린 녀석이 꽤 똘똘해 보여서 잘 거두면 쓸모가 많겠다는 생각이 들자 욕심이 생겼다. 이런 녀석은 반드시 데리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엇을 묻더라도 제대로 답을 해서 우창에게 본보기를 보여줘서 다른 제자들까지 모두 데리고 가면서 오행원의 간판을 떼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물며 어린 녀석이 고맙게도 어려운 것도 아닌 금을 물어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아니, 금을 물었나?”

“예, 오행 공부를 하다가 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금이라서 말입니다. 꼭 명쾌한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원, 선생이 얼마나 시원찮으면 제자에게 금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면 도대체 뭘 가르쳤다는 말인가. 허허~참~! 기가 차군.”

도사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우창을 무시하는 투로 말했다.

“아니, 지천으로 널려있는 암석(巖石)을 보고서도 금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단 말인가? 도대체 자네 스승은 뭘 가르친 건가?”

도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그러자 오광이 다시 말했다.

“제 이름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강현민입니다. 스승님을 찾아 다닌지도 3년이나 되었습니다만 아직도 제대로 된 스승을 못 만난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 제대로 인연을 만난다면 이것도 조상님의 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 이제라도 나를 만났으니 다행이네. 어서 짐을 싸게. 내가 거둬줄 테니까 말이야.”

“아 참, 암석이 온 천지에 널려있는 것을 보면서도 그것이 금인 줄도 몰랐습니다. 암석이 금이라고 하신 의미를 여쭙습니다.”

그러자 뺨을 맞았던 남자가 나서서 말했다.

“아니, 그것도 몰라서 묻는 것이냐? 멍청한 녀석일세. 오행에서 나무는 목이고 암석은 금인데 도대체 네 스승이란 작자는 뭘 가르쳤길래 그것도 모르고 있단 말이냐! 참 기가 막힌다. 쯧쯧~!”

그러자 오광이 그 사내에게 말했다.

“대신 가르쳐 주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배우기만 하면 감사할 따름이니까요. 제가 여쭌 것은 왜 암석이 금인지 설명을 부탁드렸지 공식(公式)을 여쭌 것이 아니니 다시 말씀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금을 공부하면서 감동했던 여운이 아직도 생생하게 가슴이 떨리는데 이렇게 찾아와준 사람들로 인해서 그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게 되어서 얼마나 즐거운지 모를 오광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사내를 향해서 물었다. 누구라도 상관없었지만 이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여유가 만만이었다.

“금은 단단한 것이니까 천지에 널린 암석을 보고 금인 줄을 아는 것인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단 말이냐. 참 멍청한 놈일세.”

“단단한 것은 모두 금입니까?”

“당연하지~!”

“나무보다 쇠가 단단해서 그렇습니까?”

“물론이다~!”

“쇠는 불에 녹는데요? 그렇다면 불이 금입니까?”

오광의 말에 갑자기 할 말을 잊은 남자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뭐라고? 이 녀석아. 지금 생떼를 쓰고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일 뿐입니다. 다시 여쭙습니다. 암석은 금이지만 쇠는 금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까?”

“... 그...렇지.”

“그럼 쇠는 금이 아니고 암석은 금이라는 말씀입니까? 쇠는 날을 세우면 아무리 단단한 나무도 깎아버리는데 그만하면 단단한 것이 아닙니까?”

“당연히 쇠도 금이지. 뭔 소리를 하는 것이냐. 네 스승은 금이 뭐라고 하더냐?”

사내는 답이 궁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화살을 우창에게로 돌렸다. 실로 오광도 이러한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차분한 어조로 사내를 향해서 말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기로는 불에 녹는 것이 금이고, 단단한 것과는 무관하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선생님께서 바위가 금이라고 하셔서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나보다 했습니다.”

“뭐라고? 바위가 금이 아니라고? 정말 미쳤군. 흐흐흐~!”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 이렇게 미끼를 덥석 물자 자원과 춘매가 속으로 고소(苦笑)를 금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어린 오광의 기개(氣槪)가 이렇게도 당당한 줄은 미처 몰랐었던 것이 새삼 놀라웠다. 저렇게도 난폭한 사람을 앞에 두고서 차근차근 배운 것을 활용해서 대화를 유도하는 것에 대해서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남자는 기세가 등등해서 우창을 향해서 소리를 질렀다.

“이것 봐, 선생 양반~! 이렇게 총명한 제자를 모아놓고서 도대체 뭘 가르쳤기에 이렇게 헛소리를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할 수가 있든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