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 제21장. 천하유람/ 6.내일의 일은 인연에 맡기고

작성일
2020-04-1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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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6] 제21장. 천하유람(天下遊覽)


 

6. 내일의 일은 인연에 맡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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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간다....?’

번잡한 길을 벗어나자 순간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대로를 느긋하게 걸어가면서 주변의 풍광을 즐기는 것으로 오늘의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두어 시진을 걷다가 쉬다가를 하면서 서쪽으로 향하는데 길가에서 두부를 팔고 있는 노파가 있었다. 마침 출출하던 터라 오늘은 두부로 점심 한끼를 해결하기로 하고 할머니 앞으로 가서 앉았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시구려. 먼 길을 가시는 나그네시구먼.”

“무슨 먹을 꺼리가 있나 하고 앉았습니다.”

“볶아 드리기도 하고, 삶아 드리기도 하고, 원하는 대로 해 드리지.”

우창의 나이로 봐서 젊은 사람에게 대하듯 그렇게 말하는 것도 친근감이 들었다. 그래서 가장 쉬운 것으로 부탁하고는 잠시 주변을 둘러 봤다. 할머니 외에도 몇몇 아낙네들이 나름대로 준비한 먹거리를 갖고 와서 행인을 상대로 팔고 있었다. 간단한 요리를 해 주는 것만으로도 저렴한 한끼를 해결할 수가 있어서 편안했다. 비록 약간의 돈은 있었지만 그래도 낭비를 할 만큼의 여유는 아니어서 아껴쓰는 방향으로 노력하던 중이었다.

“여기 음식 나왔쑤~!”

할머니가 큼직한 접시에 채소를 넣고 볶은 두부를 내밀었다. 시장하던 차에 맛있게 먹으니 이내 시장기가 해결되었고 여유로움도 얻었다.

“젊은양반은 뭘 하시나? 봐하니 벼슬하러 가는 것같지는 않고...”

“예, 그냥 자연풍광을 즐기면서 유람하고 있습니다. 하하~!”

“팔자도 좋은 양반이구먼. 그렇게 살고 싶어도 맘대로 안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지.쯧쯧~”

노파가 탄식을 하듯이 혀를 차는 것으로 봐서 내심 고민이 되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왕이면 그 고민이나 풀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몇마디 거들었다.

“아니, 말씀으로 봐서 무슨 고민꺼리가 있으신가 봅니다. 제가 잘 하는 것중에 하나가 남의 고민을 들어드리는 것이랍니다. 마침 바쁘지도 않으니 이야기나 들어드릴까요?”

그렇잖아도 근심이 가득한 모습의 노파는 우창의 말에 지푸라기를 잡기라도 할 마음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이 하나 있다우. 남들은 아들을 얻어서 효도를 받고 잘 산다는데 나는 무슨 팔자를 타고 났는지 아들의 효도는 그만두고 아직까지도 밥을 해먹이고 있으니 내 신세가 처량하잖우.”

“다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아드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맨날 공부만 한다고 저러고 있고, 어디에 가서 뭘 한다는 생각도 없으니 내 속이 터질 밖에. 에구~~!”

노파는 다소 과장된 듯한 몸짓으로 자신의 답답함을 길가던 젊은이라도 헤아려 줬으면 싶은 마음에 하소연이라도 하려는 마음이었다. 우창은 문득 오주점을 시험하고 싶어졌다. 열심히 공부는 했지만 실제로 사용을 해서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를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마침 노파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지금이 점괘를 뽑아볼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드님 나이는 어떻게 되십니까?”

“나이는 벌써 손자를 얻었어도 뛰어다닐 판이라우. 올해 스물 다섯이라우.”

“그럼 말띠입니까?”

“맞아~! 아니 젊은이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은 했네만 지금 보니까 젊은 도사님이신거 아니우? 어디 잘 좀 봐주시구려. 오늘 두부값은 받지 않을테니 내 속좀 시원하게 풀어 주시구려.”

노파가 알려준 생일을 보따리에서 천세력(千歲曆:매월 1,11,21의 일진만 적혀있는 휴대용 만세력)을 꺼내어서 찾아보고는 사주를 적었다. 물론 마음 같아서는 얼른 점괘를 보고 싶었지만 내심 떨려서 우선 익숙한대로 사주부터 적었던 것이다. 사주를 풀다가 필요하면 점괘를 보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사이에 이렇게도 마음의 여유로움을 얻었다는 것이 내심 신기하기도 했다.

226-1


사주를 보니, 화토(火土)가 만국(滿局)이다. 사주를 적어놓으면 최대한 빨리 입을 열어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 실력을 얕잡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먹이 마르기도 전에 먼저 한마디 했다.

“아드님은 심성이 참 착하네요. 법이 없어도 잘 살아갈 사람이니 너무 조바심을 내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팔자를 잘 타고 났네요.”

그 말을 듣고있던 노파는 갑자기 얼굴에 환한 웃음기가 피어났다. 그 말 한마디가 뭐라고 순식간에 근심이 바람처럼 흩어지고 희망이 보였던 것이다.

“아니, 젊은 선생이 어쩜 그렇게도 사주를 잘 보시나 그래~! 여기 앉아서 장사를 한지도 수십 년이 흘렀는데 아들 사주를 이렇게 제대로 보는 사람은 첨이구먼. 정말 대단하시우. 대단혀~!”

노파가 다소 과장된 말을 크게 하는 바람에 주변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들었다. 원래 심심한 마을에서는 재미있는 구경이 생기면 그것이 바로 큰 사건이었는데, 젊은 사람이 앉아서 말 몇마디 한 것으로 노파가 신기해 하는 소리를 들으니 다들 호기심이 동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우창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앞으로 강호에서 이렇게 밥벌이를 하면서 유람하기로 한 이상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담담하게 별 것도 아니라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 노파를 향했다.

“아드님은 큰 뜻을 품고 있으니 반드시 장원급제하여 어머님을 편안하게 모시게 됩니다. 그리고 현숙한 아내를 만나게 될 것이니 며느리복까지 누리실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비록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공부한 것은 조상님들이 자손의 영광을 보려고 애써주신 공덕이 틀림없겠습니다.”

임치에서 도락을 따라다니면서 객잔에서나 방문자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듣는 사이에 자신도 닮아가고 있었다. 사주를 봐서는 조상도 볼품이 없었을 것이다. 연주(年柱)에 정편재가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작은 시골구석에서 땅이 없어서 농사도 못짓고 행상과 같은 것으로 겨우 연명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했지만, 지금에서는 그런 말은 할 필요가 없었고, 이미 구경꾼들이 모여들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하여 노파의 기분을 좋게 해 주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맞어~! 조상들이 평생 공부 못한 것이 한이 되었으니 자손 하나 있는 것에다 거는 기대가 얼마나 많을지는 나도 안다우~!”

어떻게 좋은 말로 보태주려고 해도 노파가 사실대로 말을 하는 바람에 내심 머쓱해 졌지만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는 못했다. 그래서 얼른 다음 대목으로 넘어갔다. 지금 가장 궁금한 것은 아들에게 언제나 좋은 일이 다가올 것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니 조상님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딱 이만큼이 적당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어서 오주점을 찾아 적었다.

226-2

‘엇, 벌써 신시가 지났구나. 보자.... 기토(己土)가 오술축을 깔았으니 역량은 막강하군. 그렇다면 준비는 다 되었겠다. 축중신금(丑中辛金)과 축중계수(丑中癸水)를 봐하니 속으로만 공부가 익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은 드러나지 않았음을 의미하니 공부한 것을 제대로 써볼 기회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보자. 시주(時柱)가 임신(壬申)이구나. 그러면 능력을 발휘할 때가 다가온다는 이야기로군. 갑진(甲辰)의 분주(分柱)를 보면 벼슬도 할 수가 있겠네. 그렇다면 그 시기는 언제일까?

올해는 경오(庚午)라서 어렵겠고, 내년은 신미(辛未) 역시 마땅치 않다. 그 다음에는 임신(壬申)이군. 그래 신금(申金)이 들어오면 점괘에서는 뜻을 이루고 사주에서는 용신이 들어오니 절호의 기회라고 봐도 되겠다. 그렇다면 이 아들은 27세가 되어야 등과(登科)하게 될 조짐이다.’

“할머니, 고생을 하시는 김에 조금만 더 하시면 큰 가마를 타시겠습니다. 과거에 급제한 아드님이 가마로 모시러 오겠습니다.”

“정말이요?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을꼬. 꿈같은 말씀을 하시니 믿기지가 않는구려.”

“원래 큰 과일은 늦게 익는 법이랍니다. 스물일곱이 되면 도화(桃花)가 만발(滿發)하겠습니다. 축하해도 되겠네요. 열심히 뒷바라지를 한 보람이 이렇게나 빛나는 결실을 안겨다 주겠습니다.”

“정말이우? 빈 말이라도 믿고 싶은데, 그렇게 말을 해 주니 쌓였던 피곤함이 모두 날아가버리는 것만 같구려. 젊은 도사양반은 복 받으시겠구먼.”

“축하 드립니다. 오늘에서야 점쟁이 공부를 한 것에 대한 보람을 느끼겠습니다. 이런 말씀을 해 드릴 수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점쟁이가 뭐여. 도사님이시구먼. 두부값만 안 받으려고 했는데 노잣돈을 보태드려야 겠네. 여기 작지만 복채라오~!”

받지 않으려고 해도 한사코 쥐어주면서 받지 않으면 공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노파의 말에 지고 말았다. 고맙다는 말로 대신하고 받아 넣고 나니까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 중에 중년의 여인이 얼른 다가와서 우창의 앞에 앉는다. 자기도 좀 봐야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딱히 거절을 할 이유도 없던지라 받아들였다.

“아주머니도 궁금한 것이 있으십니까?”

“도사님이시라니까 나도 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우선 뭘 묻고 싶은지부터 알아 맞추셔야 겠지?”

말하는 폼새가 세파의 역경을 거세게 이기고 살아온 흔적이 역력하다. 더구나 오가는 도사들 웬만해서는 입도 열지 못할 정도로 이미 단련이 된듯한 당당함까지 보이자 우창도 조금은 주눅이 들었다. 그래도 이왕지사 거리의 점술가로 자리를 깔았으니 달리 도망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좀전에 얻은 점괘에서 분주만 바꾸면 되었으므로 사주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시계를 꺼내어 보니 분주가 병오(丙午)로 바뀌었다.

 

丙壬己丙庚
午申丑戌午


“하하~!”

일단 긴장을 풀기 위해서 크게 웃었다. 그러자 모두의 이목이 우창의 입으로 모아졌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할 것인지가 궁금했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는 서로의 속내를 손바닥처럼 훤하게 알고 지낸다. 그러므로 허튼 소리를 하면 바로 알아챌 것이니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점괘에 집중해서 관찰을 했다.

‘연월일(年月日)은 할머니 아들과 같다. 그러나 질문자의 주체가 달라지면 해석하는 기준도 달라지는 법이다. 일단 공부와는 인연이 없군. 그렇다면 세상을 살아 온 연륜으로 봐서 재물을 모으는 것이 목적이겠지. 나름대로 동분서주(東奔西走)하면서 뛰었지만 결실은 빈약하기 짝이 없군. 재성이라고는 전혀 없고 축중계수(丑中癸水)밖에 없었으니까 그럴만도 하겠지. 다행인 것은 시주의 임신(壬申)이다. 이것으로 인해서 고생의 결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고 본다면 분주의 병오(丙午)는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군.’

여기까지 생각하는데도 시간은 잠깐이었다. 오래 생각한다고 해서 답이 더 잘 보이는 것도 아니므로 우선 눈으로 훑은 다음에 정리하고서는 바로 입을 열었다.

“누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이 동생도 보이는대로 거침없이 말하는 것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누님은 천하의 여걸이십니다. 이 좁은 마을에서 지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큰 그릇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남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천하를 누비면서 크게 사업을 벌여보고 싶은 마음만 가득한데 아직까지는 때가 따라주지 않는 것을 한탄하고 계셨네요.”

잠시 말을 끊었다.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에서 감탄사가 튀어 나왔다. 일단 첫 분위기는 그만하면 성공적이라고 할만 하지 싶었다. 우창도 자신의 생각이 벗어나지 않자 흥이 났다. 원래 신이 나면 더 잘 보이는 법이다. 내친 김에 계속 몰아갔다.

“아무리 애를 써도 돈이 모이지 않고 사람도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누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절의 인연이 도래하지 않은 까닭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고만장(氣高萬丈)하셔서 누구에게도 앞을 양보할 마음이 없으니 그것도 일조(一助)를 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세상은 양보하고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살아야 편한 법인데 그러기에는 너무 기세가 강하시니 그것도 팔자소관이려니 해야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동생이 말은 하면서도 과연 맞는 말을 하고 있는지, 틀려도 한참 틀렸는지 알 수가 없으니 어디 말씀을 좀 들어봅시다. 하하~!”

“말해서 뭘 해요. 내 뒤를 따라다니면서 봤구먼요. 맞아요. 싹다~!!!”

그 말이 끝나자 마자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입을 열어서 용하다는 찬사를 나름대로 하는 바람에 잠시 소란이 일었다가 다시 잠잠해졌다. 그 다음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창도 긴장감으로 목이 말랐다. 그러자 눈치빠른 아주머니가 얼른 가서 시원한 물을 한 잔 따라 준다. 물을 마시면서 또 염두를 굴렸다. 변변하게 결혼생활도 못했을 것으로 보는 것은 연월일에서 관살이 보이지 않은 까닭이다. 시주(時柱)의 임신(壬申)을 물고 늘어져서 끝장을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궁리를 하고는 헛기침을 한 번 한 다음에 말을 이어갔다.

“아니, 근데 누님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결혼도 변변히 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무시를 당하면서도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꿋꿋하게 고생을 하셨네요. 그런데 겨울이 오기 전에 돈다발이 발부리에 걸린다는 점괘가 왜 나왔을까요? 돈도 꽤 큰 돈인데요? 이것을 갖고서 큰 장사를 하려고 계획하고 계시는 모양인데 그렇습니까? 왜 이렇게 나왔을까요? 도대체 이 큰 돈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알뜰하게 모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사실입니까?”

우창이 이렇게 말을 하고서 아주머니의 안색을 살피자, 갑자기 당당하던 여인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그렇다면 제대로 심금(心琴)을 건드린 것이 틀림없는 모양이다. 점괘의 오묘함에 대해서 우창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쉽게 찾아내고 가볍게 설명하고 깊게 영향을 준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도 즐거운 임상실험이었다.

“도사님 맞네....”

그리고는 말을 잊지 못한다. 이내 억눌렸던 설움이 복받히는 모양이었다. 남편이 없는 여인은 남들에게 존중받기가 어려울뿐더러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그러한 것을 참으면서 열심히 노력했는데 지금 우창이 그 부분을 가볍게 긁어준 셈이 되었다. 그래서 잠시 그대로 기다렸다. 구경꾼들도 놀라움을 삼키면서 하나같이 우창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창은 그동안 심신이 고단했을 여인의 손을 잡아줬다. 그 손은 나이에 비해서 훨씬 더 늙어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스며왔다.

“도사님 바쁘지 않으면 오늘 저녁엔 우리 집에서 하루 묵고 가요. 그렇게 대접하고 싶네. 그럴 거지요?”

벌써 말투가 달라져 있었다. 애원하는 듯한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순간 우창은 느꼈다.

‘이것이 강호의 살람살이로구나.... 지금 여기에서 모두 다 말하기 어려운 내막이 있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이것도 인생의 수업이니 어디 흐름을 따라서 내맡겨 볼까....?’

이렇게 생각을 정한 우창이 웃으면서 답했다.

“하하~! 누님께서 하룻밤의 자리를 주신다니 어찌 떠돌이 동생이 사양하겠습니까? 감지덕지할 따름입니다. 하하~!”

그러자 마을 사람들도 자기네 일처럼 기뻐했다. 물론 그 속네는 저마다 달랐지만 하나로 같은 것은 이렇게 도사가 맛보기로 감질만 나게 하고서 훌쩍 떠나버리면 자신들의 궁금한 일을 물어 볼 수가 없는 일인데 다행히 하룻밤을 붙잡아 둔다니까 하루가 이틀이 될 수도 있음을 기대하는 까닭이었다. 물론 그런 생각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우창이 선의(善意)를 그대로 받아들이고는 여인을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주변에 모여들었던 사람들도 저마다 자신의 일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는 잠시 소란했던 작은 마을의 풍경도 원래대로 고요한 풍경을 되찾았다.

“젊은 도사님 저를 따라오세요.”

훨씬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을 하고는 바삐 걸었다. 여인의 집은 언덕 위에 있었다. ‘여인이 혼자 살면 은(銀)이 서말’이라는 말은 항상 틀린 적이 없었다. 깨끗한 집은 몇 달을 묵었던 도락의 집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아기자기한 여인의 살림살이가 우창의 마음도 느긋하게 해 줬다. 집에는 방도 여러 칸이 있었다. 아마도 저물어서 찾아드는 길손에게는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돈을 모으고 있었으리라는 짐작이 되었다. 말하지만 비공식 객잔을 운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우선 이 방으로 들어가요. 목욕물을 준비할테니 잠시 쉬고 계세요.”

“근데 누님 말씀을 편하게 하지 않으시면 이대로 가렵니다. 불편하단 말입니다.”

우창이 정색을 하고 말하자, 여인도 그러겠다고 한다.

“아, 그럴까? 도사님께 실례를 한 것 같아서 마음이 좀 미안해서.... 호호~!”

“오가다 만나서 밥 한끼 나눠먹고 하룻밤 묵어 가는 길에 미안하고 말고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시고 편하게 대해 주시면 동생도 그렇게 알고 내 누나 집처럼 편히 쉬지 싶습니다.”

“그러지 알았어. 동...생... 호호~!”

“예, 훨씬 좋습니다. 하하~!”

그렇게 맘을 편하게 해 주고는 우창이 잠시 누워서 쉬는 사이에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여인이 흔들어 깨워서 눈을 떴다. 깨끗한 옷을 앞에 놓고는 목욕부터 하라고 욕실을 가리켰다. 그래서 모처럼 따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나그네의 호사를 누렸다. 잠시 후 저녁밥이 다 되었다는 말에 비로소 물기를 닦고는 밥상을 놓고 마주 앉았다. 말린 생선을 굽고 얼큰한 탕을 준비했다. 그리고 반주로 백주도 한 잔 따라 준다. 그동안 거칠게만 지내온 우창에게 모처럼 아늑한 분위기를 만나고 보니 고향에 온듯한 느낌마져 들어서 싫지 않았다. 이 모두가 오주점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자 혼자 웃음이 배어 나왔다.

“언제 이렇게 많은 음식을 장만하셨습니까? 솜씨도 훌륭하십니다. 식당을 하셔도 큰 식당을 하시겠네요. 여태 먹어 본 음식 중에 최고입니다.”

“그래? 나도 도사님 같은 연배의 동생이 있어. 지금은 청도(靑島)에서 배를 타고 있다는데 좋은 자리가 나왔다고 나보고 청도로 오라고 하는데 그게 다음 달이야. 그래서 아까 머지 않아서 운이 열린다는 말을 듣고 그동안 쌓인 설움이 터져나왔었나 봐. 그래서 귀한 인연이라고 생각해서 하룻밤 쉬고 가시라는 말을 했던 거야. 그런데 고맙게도 받아주셔서 좋지 뭐야. 호호~!”

예의 그 호방한 모습으로 되돌아 간 모습이 오히려 편안했다.

“어쩐지, 그러셨구나. 얼른 청도로 가세요. 이제 고생은 끝나셨으니 즐거울 일만 남았습니다. 다만 어디를 가더라도 나이 든 사람의 말은 듣지 마시고 누님 마음대로 추진하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얻으먹으려고 집적거릴 가능성이 보여서 드리는 말씀이니 잊지 마시고요.”

우창은 점괘의 분주에 있던 병오(丙午)가 내내 걸렸는데 이렇게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보니까 어디에 떨어지는 뜻이었는지를 가늠할 수가 있어서 한 마디 언급하게 되었다. 맛있는 밥을 다 먹고 나자 여인이 상을 치우고 잠시 후에 들어와서 등불을 밝힌다.

“사실 난 사주를 보고 싶어도 내 생일도 몰라. 그래서 기껏해야 접신자들에게 물어보곤 했는데, 다들 팔자가 사납다고만 하지 뭐야. 그래서 포기하고 살려고 했는데 오늘 정말 희망에 가득한 이야기를 듣고 났더니 어디에서 살아도 멋지게 살아갈 수가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이 보여서 얼마나 고맙고 반갑던지 그 마음 동생은 모를 거야.”

“예, 다행입니다. 동생이 희망을 드렸다니 덩달아 행복하네요. 하하~!”

“근데 생일은 고사하고 나이도 안 물어보고 어떻게 그런 것을 눈으로 본 듯이 말할 수가 있지? 참 신기하기도 하네.”

그 말을 듣고 우창도 미소로 답했다. 오행의 이치를 말한들 여인이 알아듣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어서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하라고 할 점괘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웃음으로 답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고단할 테니 일찍 자. 내일은 아마도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서 귀찮게 할거야. 저마다 알고 싶은 것이 한 보따리니깐 그럼 낼 봐.”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비로소 혼자가 된 우창은 오늘의 일을 간단하게 적어놓고는 잠에 빠져들었다. 적어놓으면 언젠가 소중한 연구의 자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 안내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였다. 그러고 보니까 공부를 한 이래로 처음 접한 경험이 된 셈이었다. 물론 다행히 성공을 거뒀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을 것이고 때로는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릴 만큼의 힘든 경험도 하게 될 것 임을 떠올렸다. 그렇지만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중심에서 뚜렷하게 빛을 발하는 다섯 가지의 별, 오행성(五行星)을 의지하는 한은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確信)이 있었다. 그리고는 스승 도락이 준 소중한 선물인 회중시계를 다시 만지면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