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제20장. 매화역수/ 4.길 떠나야 할 조짐(兆朕)

작성일
2020-03-15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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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제20장. 매화역수(梅花易數)

 

4. 길 떠나야 할 조짐(兆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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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우창은 상인화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다시 상인화에게 물었다.

“그런데 누님.”

“왜? 궁금한 것이 생겼어?”

“맞습니다. 소강절 선생의 매화역수는 그 뿌리가 음양(陰陽)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당연하잖아? 역경(易經)은 음양의 변화(變化)에 바탕을 두고 전개하는 것인데 뭘.”

“그래서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그게 뭐지?”

“누님의 이야기를 듣고서 생각해 보니까 오행은 음양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렇게 신출귀몰(神出鬼沒)하게 미래를 예측(豫測)한다면 분명히 오행을 바탕에 두고 연구하는 간지학(干支學)의 영역에서는 접근이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아하~! 그래서 오행을 백날 연구해봐야 언제 신출귀몰하는 경지를 얻을 수가 있겠느냔 말이겠구나. 그래?”

“맞습니다. 오행을 연구하느라고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음양만 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문득 회의심이 들기도 하고요.”

“그래? 동생은 음양과 오행이 둘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하잖아요? 역경에는 분명히 음양을 논하는데, 간지학은 오행을 논하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역경에도 오행이 있고, 간지학에도 음양이 있잖아?”

“그런가요? 좀 쉽게 설명해 주세요. 그렇게 해서 이 우둔한 동생의 머리에 가뜩하게 피어오르는 의혹의 구름을 상쾌하게 날려 보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역경의 기본은 팔괘던가?”

“당연한 말씀을요.”

“팔괘에서 목이 있던가?”

“그야 진괘(震卦)는 양목이고, 손괘(巽卦)는 음목이잖아요?”

“그 봐, 당연히 역경에서도 오행의 이치가 녹아들어 있잖아?”

“기본적인 구조는 알고 있었습니다만, 누님께서 일깨워 주시니까 문득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이 우둔함은 언제나 벗어날까 싶습니다. 하하~!”

“원래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살길을 찾아내고, 죽으려고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라도 죽을 방법을 찾아낸다잖아.”

“맞아요! 그래서 가끔은 옆에서 누군가 자극을 줘야 한다니까요. 하하~!”

“그럼 음양과 오행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란 것은 이해한 거지?”

“당연한 것을 잠시 오해했었네요.”

“그럼, 다행이지. 항상 그래가면서 공부하는 거니깐.”

우창은 문득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 점괘를 보고 싶었다. 한마음이 동하면 점기(占幾)라고 했는데 상인화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본 상인화는 스스로 생각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잠시 그대로 뒀다. 그렇게 한참이 흘렀다.

“저.... 누님...”

“응?”

“문득 저의 앞날에 대해서 점괘를 한번 보고 싶습니다. 누님께서 좀 명쾌한 조언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공부하는 사람이 점괘는 왜 필요해? 해석해 주는 거야 어려울 것이 없지만 갑자기 마음이 동한 거야?”

“예, 점괘의 조언을 듣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있겠네. 어디 득괘를 해봐.”

상인화가 탁자 위에 있던 시초를 우창의 앞으로 내밀었다. 우창은 전에 배운대로 시초의 통을 잡고 잠시 마음을 모은 다음에 하나를 뽑아서 위에 가로 놓았다. 그리고는 두 손에 나눠진 것을 팔팔(八八)로 나누고 남은 것으로 괘를 만들었다. 하괘는 간괘(艮卦), 상괘(上卦)는 리괘(離卦)가 되었다. 상인화가 우창이 뽑아놓은 괘를 쓰윽~ 보고는 우창의 얼굴을 바라봤다. 우창도 괘를 보고서 흠칫 놀랐다. 이 점괘는 화산려(火山旅) 괘였다.

“이제 동생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나 보네.”

“예? 그런가요? 동효는 삼효(三爻)네요. 그러면 지괘(之卦)는 화지진(火地晉) 괘가 되네요? 어떻게 해석하면 되나요?”

“뭘 어떻게 해석해? 마음이 산을 떠나고 있잖아? 어디로 가야 하는데 아직 갈 곳은 정해진 것이 없는 나그네의 마음이라...”

“하괘가 산(山)에서 지(地)로 변해서 그렇게 해석하나요?”

“옳지, 그것은 무슨 뜻일까?”

“그러니까 지금은 노산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감괘(坎卦)의 상효(上爻)가 양효(陽爻)에서 음효(陰爻)로 바뀌니까, 산의 꼭대기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니 길을 떠나서 낮은 곳으로 옮긴다는 뜻인가요? 그런데 떠난다는 말은 없잖아요?”

“본괘의 이름이 뭐지?”

“그야 화산려(火山旅), 아, 여행(旅行)이라는 말인가요?”

“뭘 새삼스럽게 물어? 군대가 행진할 준비를 끝냈는걸.”

“여(旅)에는 군대라는 뜻도 있나요?”

“물론이야, 그것도 많은 군사를 의미하지, 혼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는 의미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고, 그중 하나가 동생인 거지.”

“누님의 말씀으로는 제 생각과 관계없이 진행된다는 뜻인가요?”

“조용하던 가슴에 불이 붙었네. 이 불을 무슨 수로 끌까나~!”

“그것은 상괘(上卦)가 화(火)라서 하시는 말씀인 것은 알겠습니다.”

“화(火)가 하괘(下卦)에 있을 때는 열정(熱情)이 되지만, 위로 올라오면 이동(移動)이 되니까 말이야. 이제 드디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강호의 체험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이야기네. 축하해~!”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누님의 해석을 들으면서 가슴에 얹혀있던 뭔가가 내려가는 시원함이 느껴지네요. 정말 놀랍습니다. 이 답답함이 뭔지를 모르고 있었네요. 사람이 오고 가는 것도 하늘의 뜻일까요?”

“당연하지! 가령 먼지가 하나 움직인다고 해봐. 그게 먼지의 마음일까?”

“먼지가 움직이는 것은 공기의 흐름을 탄 바람의 영향이겠네요. 그렇지만 의지가 있는 사람도 그렇다는 것은 선뜻 납득(納得)이 되지 않습니다.”

“먼지에는 생각이 없을까?”

“예? 먼지에도 생각이 있나요?”

“그럼 물어볼까? 저 앞산의 바위는 생각이 있을까?”

“바위가 무슨 생각이 있을까요? 무정물(無情物)이잖아요? 점점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시는 뜻이 뭘까요? 하하~!”

“부처가 그렇게 말을 했다네.”

“누님은 부처의 공부도 하십니까?”

“오라버니가 금강경과 화엄경을 보길래 어깨너머로 조금 봤을 뿐이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는 기억해 뒀지.”

“참 대단하십니다. 항상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불경에는 뭐라고 나왔다는 거죠?”

“일체만물(一切萬物)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고 했어. 이게 무슨 뜻일지는 동생도 알 수 있지 싶은데?”

“일체의 만물은 유정물(有情物)과 무정물(無情物)을 포함한다는 뜻인가요? 그렇다면 바위도 그 안에 해당한다는 뜻으로 봐야 하는 거죠?”

“바위가 포함된다면 먼지는 제외해도 될까?”

“논리적으로 본다면 당연히 모든 무정물에는 먼지도 들어가야 하니까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겠습니다.”

“그러니까 인간도 먼지와 같다는 말도 되는 것이 아닐까?”

“역시, 누님은 철학자가 맞으십니다. 인생도 먼지와 하등 다를 바가 없네요. 문득 남화경(南華經)에서 본 구절이 떠오릅니다.”

“남화경이면 장자의 말을 기록한 것이잖아? 뭐라고 한 구절이지?”

“누가 물었답니다. ‘도는 어디에 있소?’라고요. 그랬더니, 답하기를 ‘도는 노비에게도 있소’라고 했더랍니다. 그 말을 듣고서 반문하기를 ‘그렇게 하찮은 것에도 도가 있단 말이오?’라고 했다지요. 여기에 대해서 한술 더 떠서 말하기를 ‘꼬물꼬물 기어가는 벌레도 있소’라고 하자 그 사람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더랍니다. 그 구절이 먼지도 불성이 있다는 말과 서로 연결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딱 맞는 말이네. 그래서 많이 배워야 하는 거야. 많이 배운 사람은 바라보는 시각을 많이 확보하는 것과 같으니까 ‘맹인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을 면하게 될 가능성이 많겠지.”

“맞습니다. 그나저나 이 동생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것까지는 안 나오는지도 좀 봐주세요. 넓디넓은 천하에서 어디로 가라는 뜻인지도 알면 헛수고를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오라버니에게 물었더라면 지명까지도 알려 줄 테지만 내 공부는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으니 어쩌나?”

“이럴 때는 상(尙) 형님이 생각납니다. 얼마나 수행을 해야 그 경지에 도달하게 될지 참으로 평생을 쫓아가도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에서 노니는 선인(仙人)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장님끼리 코끼리도 만지는데 우리끼리도 짐작이야 못 하겠어? 어디 궁리해 보세나.”

“예? 이 동생은 전혀 감이 안 잡히는데 누님께서 실마리를 보여주시면 부족한 대로나마 눈치점이라도 보겠습니다. 하하~!”

“여괘(旅卦)는 어느 궁에 자리하고 있지?”

“아, 리(離), 여(旅), 정(鼎), 미제(未濟), 몽(蒙), 환(渙), 송(訟), 동인(同人)은 모두 리궁(離宮)에 해당하는 것을 말하는 거죠?”

“그래, 잘 기억하고 있네. 그렇다면 본궁(本宮)이 화(火)네? 다시 바뀐 괘의 궁은 어디일까?”

“바뀐 지괘(之卦)는 진괘(晉卦)괘니까, 건궁(乾宮)인가요?”

“맞아, 리궁(離宮)의 화(火)가 건궁(乾宮)의 금(金)으로 바뀌었으니 오방(五方)으로 보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서쪽이잖아요? 그렇다면 서쪽 방향으로 가게 된다는 의미가 숨어있는 건가요? 이렇게 대입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 놀랍네요.”

“어차피 점이니까 안 될 것도 없지. 서쪽이면 갈 곳이 많아서 좋겠네. 동쪽으로 가라고 했으면 갈 곳이 얼마 없잖아?”

“정말 그렇겠네요. 참 신기합니다. 그러면 서쪽이고 언뜻 떠오르는 곳은 서안(西安)인데요? 이것도 조짐일까요?”

“물론이지. 서안까지 가노라면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될 테니까 또 새로운 지식을 쌓게 되겠지.”

“음..... 누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데 몸의 내부에서 꿈틀대는 것은 뭘까요? 누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갑자기 평지에 태풍이 불어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죠.”

“그게 ‘한마음’인 거야.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되는 것이고, 그것을 여정(旅程)이라고 하지. 먼 길에 행운도 따르기를 빌께.”

“누님! 벌써 보내시려고요? 아직 아닙니다. 그게 그리 쉽나요.”

“어려울 것은 또 뭐람. 내일 새벽이라도 바람처럼 훌쩍 떠나는 거지. 그게 수행자의 출입법이라는 것도 몰라?”

“그런 말씀을 하실 적에 보면 누님도 참 냉정하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도 그게 자연의 회자정리(會者定離)인가요?”

“물론이야. 만남은 이미 헤어짐을 전제하는 것이고, 태어남은 그 순간에 죽음을 의미하는 것인데 뭘 새삼스럽게.”

그렇게 말하면서 상인화는 창밖을 내다본다. 이제 더 할 이야기가 없으니 그만 가서 쉬라는 암시라는 것을 우창도 알았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서 다시 항상 따뜻하게 지도해 주던 상인화의 얼굴을 새기려는 듯이 바라보고는 조용히 읍(揖)을 했다. 상인화도 그에 대해서 답례라도 하는 듯이 허리를 살짝 굽혀서 마음을 전했다.

“누님, 그럼~!”

“인연이 되면 또 봐 동생.”

예의 그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돌아온 상인화가 조용히 우창을 전송하는 눈빛을 받으면서 숙소로 향했다. 마음은 이미 구름을 탄 듯이 설레는 것을 숨길 수가 없었다. 공부에 취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방랑벽이 고목에 새싹이 돋아나듯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이제 책상공부는 끝이 났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으면서 다음 공부는 길에서 해야 한다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유람(遊覽)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노산의 거봉(巨峰)을 다시 바라본다. 항상 보던 모습이지만 오늘따라 거봉이 작아 보이는 것은 이미 마음이 떠나고 있는 까닭인 모양이다. 문득 ‘심외무일물(心外無一物)’이 떠오른다. 그러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생각이 뒤를 잇는다.

‘맞아!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드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