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중국⑪] 위해항으로

작성일
2019-12-2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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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는 말씀입니다. 본 여행은 2004년에 가족들끼리 배낭여행을 떠났던 중국의 북부여행입니다. 낭월한담의 목록을 만들다가 번호가 빠진 여행기가 있어서 사진기행으로 옮기면서 당시의 컴퓨터 환경을 생각해서 작은 사진으로 올렸던 것을 필름을 스캔한 이미지로 바꿨습니다. 당시의 분위기나 느껴보는 용도로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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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중국⑪] 위해항(威海港)에서 배 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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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6일 월요일]


월요일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벌써 시간이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은 웨이하이(威海)에 가서 배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베이징훠츠잔(北京驛)에 가니 시간이 넉넉했다. 사실 그저께 북경역에 들려서 천진행 기차표를 예매해뒀다. 골고루 다 타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빠르다는 트콰이(特快)로 표를 구했는데, 고속철 나오기 이전의 새마을호에 견주면 될 것으로 보인다. 내부는 2중으로 되어 있는데, 하층이 비싸다고 하니까 우린 가장 비싼 자리를 잡은 셈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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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 천진에 가면 도향선생님의 조카가 기다린다고 했다. 천진에 내리면서 저녁에 위해로 가는 기차의 침대칸을 구입하게 되면 넉넉하게 천진 관광을 하고 여유롭게 위해로 가서 구경을 한 다음에 배를 타는 코스로 잡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침대기차도 타보고 하면 대략 일정에 별 차질이 없이 진행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도 계획이다. 되어야 되는 것이니깐.

천진에 도착하니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 전화를 해보시고 난 도향 선생님, 차가 막혀서 지연된다고 10분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우선 돈이 그럭저럭 바닥이 나 가는 모양이다. 그래서 주변의 현금인출기에다가 카드를 꽂았다. 그런데 욕만 먹었다. 그런 카드는 넣지 말라는 거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한국에서는 아무 곳에서나 잘 통용이 되는 비자카드도 중국에서는 현금인출이 되지 않는단다.

대만에서는 카드만 꽂으면 바로 돈이 나오던데, 역시 대만과 중국의 차이가 비교된다고 해야 하겠다. 드디어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왔다. 기다리던 사람이다. 우선 침대표를 사놔야 맘 놓고 관광을 하겠다고 했더니 알아보고는 표는 이미 매진이라고 한다. 달리 방법이 없고, 가장 좋은 것은 내일 아침에 비행기로 칭따오에 가서 청도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다시 계산이 복잡해진다.

비행기는 아침 9시 40분이라던가? 청도에 도착하면 10시 반쯤, 터미널에서 직행을 타면 빨라야 4시간, 그렇지 않으면 5~6시간 걸리는 모양이다. 만약 12시에 청도에서 버스를 탈 수가 있다면 5시까지만 위해항에 도착을 해도 배를 타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청도 동천선생에게 전화를 했다. 내일 낮에 위해로 출발하는 버스표를 좀 구해 달라는 부탁이다. 동천선생도 남에게 시켜야 한다. 여하튼 알아보겠노라고 하는 말을 듣고서 천진에서 점심을 바닷요리로 먹고, 천진탑에 올라가서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관광을 했다.

그리고 기념품점으로 가서 집을 보면서 기다리고 있을 삼국지매니아 장남 청원이를 위해서 검을 한자루 구입했다. 진검은 통관이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목검으로 구해 달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목검은 물건이라고 할 수가 없는 조잡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철검은 모양도 근사하고 그렇다고 비싸지도 않았다. 그래서 세관은 세관대로 해보기로 하고 빼앗기면 말고, 그냥 하나 구입을 했다. 200원에 깎아서 샀다. 경덕이에게 얼마나 당부를 했던지 경덕이도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경덕이에게 어떤 칼이 좋으냐고 물었더니 조금 비싼 것이 좋아 보인단다. 사람 눈은 같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리고 검을 넣기 위해서 키가 제일로 큰 배낭을 구입했다. 모조품 즉 가짜상표가방이라고 한다. 대략 일정을 마무리하고 저녁은 냉면집으로 가서 푸짐하게 주는 냉면을 먹었는데, 모두 한국사람이다. 유학생들이라고 한다.

다시 청도로 전화를 했더니 차표를 12시로 구했다가 비행기가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을 것을 염려해서 1시 차표로 물렸다고 한다. 이거 낭패다. 1시에 출발을 하면 배를 탈 시간이 문제가 된다. 물론 배를 못다면 다음 배를 타면 된다고 할 수도 있고, 표는 미리 해약하면 된다고도 할 것이다. 그러나 배는 매일 출발이 아닌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다시 일이 여러 가지로 복잡해진다. 경비추가도 문제이다.

그래서 수고스럽지만 무조건 12시 차라야 한다고 생떼를 썼다. 난감하신 동천선생님에게 한번 수고를 해 달라고 억지를 쓰고는 내일 보자고 했다. 그 와중에서도 화인, 금휘, 경덕은 외치는 말이 있었다. ‘소보루빵~!, 소보루빵~!, 소보루빵~!.’ 빵이 그리운 모양이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빵 좀 챙겨서 공항에 나오라고 했다. 신세 지는 김에 팍팍 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뻔뻔함도 더러 있었던 모양이다. 드디어 마지막 고비가 남은 모양이다. 내일 무사히 배를 타느냐 못타느냐, 이것이 문제였다.

 

[8월 17일 화요일]


오늘은 시간과의 전쟁이다. 아침 8시 조금 넘어서 체크아웃을 하고 로비에서 기다리니 도향선생님 조카가 큰 봉고를 끌고 나타났다. 빌렸다고 한다. 그래서 일행은 천진공항으로 갔다. 공항은 조그만 했고, 비행기는 정시에서 5분 늦어서 이륙을 한다고 했다. 출구에서 도향선생님 조카와 작별하고 대기실로 이동했다. 천진에서의 모든 경비는 조카님께서 부담을 했으니 적지 않은 비용절감의 효과가 있었다고 해야 하겠다.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지만, 천진에서 십년을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고 하여 나름대로 성공을 한 젊은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제조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여기에서 느낀 것은 말은 돈을 내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젊은 친구의 말은 발음이 좀 문제가 있어 보였는데, 오며가며 동냥수업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가 여행 내내 좀 배운 중국인들에게 발음이 좋다는 칭찬을 들은 것은 돈을 낸 댓가라고 하는 생각도 해봤다. 외국어를 배울 적에는 확실하게 전문기관에서 배워야 나중에 시간낭비가 없고 발전한다는 것을 느꼈다. 우선 필요한대로 어물쩡하게 배워 놓으면 나중에 교정도 되기 어렵고, 폼도 나지 않으니 주의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봤다.


물론 비서를 두고 살 경우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키울 경우라고 한다면 반드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겠다는 점을 생각해 봤다. 어쩌면 중국어뿐이랴 싶기도 하다. 명리학도 그럴게다. 이책 저책 보면서 대충대충 배운 공부는 발전이 없을 것이다. 야무지게 달려들어서 뿌리를 뽑지 않으면 어중뜨기가 되어서 결국은 고치는 데에도 많은 노력과 금전이 들어가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모든 이치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는 가로 좌석이 넷이다. 버스를 탄 기분이라고 해야 하겠다. 음류수로 서비스를 한다. 조그만 비행기로 백여명 정도 타면 될 것으로 보였다. 귀여운 비행기이다. 도중에는 하늘이 흐려서 비가 내리는 모양이다. 청도에 도착하니 10시 40분이다. 예의 그 슈랙아저씨(우리는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동천선생 기사이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동천선생은 버스표를 찾아서 오느라고 늦는 다는 전화연락을 했다. 표는 12시 것으로 구했다고 한다. 욕을 많이 먹었단다. 그럴만도 하겠다.

그래도 우리의 일정이 비로소 여유가 생겼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여기에서 얻은 교훈, ‘반드시 도움을 주는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다. 사람 사귐에 정성으로 다하라’는 말을 만들어 봤다. 동천선생이 아니었으면 보나마나 배를 타기 위해서 택시라도 탔어야 할 것이고, 그로 인해서 또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타고 다니는 물건은 이 정도면 다 타 봤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도향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비행기로 인해서 일인당 200원(3만원 정도)이 추가된 것이니까 큰 지출이라고 하기도 그런 정도이다.

11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한 동천선생님과는 인사를 나눌 사이도 없이 터미널로 출발을 했다.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청도에서 하룻밤 쉬지 않고 가는 것이 못내 아쉬운가 보다. 그러실 만도 하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려니 하고 사업에 대한 이야기도 좀 들어보고 고민도 들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중국에서 사업하려면 중국어를 어느 정도는 배워야 한다는 말씀을 해 드렸다. 그래야 남들이 뭐라고 하는지는 알고 살지, 그렇지 않으면 그놈들의 농간에 재주만 넘게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안 그케도 배울라고 했지요.”
“그런데 왜 그만 두셨나요?”
“유학생한데 공부를 하기로 했는데, 책을 들고 오는기라요.”
“당연하지요.”
“당장 써먹을 일이 급한데 언제 책을 배운단 말잉교.”
“에구.... 참말로....”
“그래서 치아뿌릿지요.”
“에구, 그러니 지금은 중국어 잘 하시지요?”
“그게 맘대로 안 되네요."
“그 보이소, 공부는 책으로 돈 들여서 하고 나중에 써먹을 연구를 해야지요.”
“그런갑십더.”
“사주공부는 안 그런가요. 급하다고 신살이나 몇 개 꿰어 놓으면 나중에도 발전이 없지요. 마음이 아무리 급해도 지장간 외우고 십성부터 정리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는 것도 잘 아시면서 그러세요.”
“그런갑십더. 인자 다시 할랍니더.”
“잘 생각하셨네요. 열심히 하면 3년 이내로 멋진 중국어 실력을 발휘하실 겁니다.”

청도터미널에 도착하니 11시 58분이다. 정말 시간과의 전쟁에서 화려한 승리를 거두는 순간이다. 점심도 못 먹고 가서 되겠느냐고 하시는 말도 들리지 않았다. 차를 차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부랴부랴 차에 오르자마자 출발을 하는 차. 터미널에서 손을 흔들고 계시는 동천선생님의 아쉬움은 다음에 반드시 받아먹기로 작심하고 손을 흔들어 답했다.


차도 고급이다. 편안하게 위해까지 달리니 3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여유가 만만이다. 위해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배 타러 간다고 하니까 기사는 ‘따리엔(大連)?’하는 말이 들린다. 그래서 ‘런츄안(仁川)’이라고 답했다. 국제항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20여분 달려서 위해국제항에 도착했다. 부두에는 동산만한 배가 매여 있다. 금휘는 우리가 타고 갈 배라는 것을 알고 입이 벌어진다. 저렇게 큰 배를 타다니... 싶은가보다.

순조롭게 순서를 거쳐서 배에 올랐다. 그럭저럭 시간이 6시를 넘어 7시가 되어가는 데에도 쉽게 출항을 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 배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면서 구조를 익히고 만약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는 보트를 어디에서 타야 할지에 대해서도 사전답사를 했다. 그리고 배정받은 객실로 들어가 본 일행은 만족스러운 분위기에 입이 벌어진다. 트윈침대에 깨끗한 실내는 그대로 호텔을 옮겨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보따리상들의 분주한 움직임도 감상하면서 여행의 즐거움과 삶의 고달픔이 함께 한 배를 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느꼈다. 저녁은 배에서 도리탕과 비빔밥으로 먹었다. 거의 한국인들이다 보니 안내방송도 한국어가 위주이고, 어쩌다 중국방송도 한다. 가장 엄중한 것은 사스이다. 어디에서 머물다 온 것인지를 확인하고 나서야 배는 출발하는 모양이다.

여행의 마지막 밤은 선실에서 보냈다. 여유롭고 호화롭게 그리고 항상 타는 배도 아닌 바에는 한번 정도는 호사를 부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에서 지친 몸을 쉬는 데는 그저 그만이었다. 사워장도 마련되어 있어서 휴식을 취하는 데에는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해야 하겠다. 선창 밖으로 지나가는 섬들과 배들과 어둠들....... 텔레비전에서는 올림픽 소식과 태풍 메기의 영향에 대해서 열심히 방송을 한다. 축구는 8강에 올랐다는 이야기도 보인다.

 

[8월 18일 수요일]


날이 새려고 한다. 망망대해에서 뜨문뜨문 섬들이 보인다. 서해안이다. 발전소처럼 생긴 구조물이 있는 섬도 보이고, 오락가락하는 배도 보인다. 해로(海路)를 표시하는 뜨개도 중간 중간에 있었던 것 같다. 입항을 한 시간 이상 앞두고 경비정이 배로 붙는다. 그리고는 해경을 내려놓고는 떨어진다. 짐작컨대 밀수를 방지하는 조사원이겠거니.....

8시경에 도착했나? 서해는 생각보다 컸다. 꽤 빠른 속도로 밤새워서 달렸으니 말이다. 외항에서 내항으로 가는 과정은 파나마운하와 같았다. 배가 들어가면 뒷문이 닫히면서 물이 차고, 물이 차면 앞문이 열리면서 배가 내항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거치는데 1시간이 걸렸다. 9시쯤 도착한 배에서 하선하고, 짐을 옮기고 입국수속을 밟는 데까지 천천히 진행이 되었다. 소지한 물건 중에서 도검류가 있으면 적으라고 하는 난을 보면서 찜찜했다. 그래도 솔직하게 적자고 작정을 하고 장식용이라고 적었다. 사실 장식용도 포함한다는 표시가 되어 있어서 법대로 한다면 적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선 카메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사스의심환자가 있는지 알아내기 위한 열 감지 카메라이다. 무사히 통과했다. 자진신고대로 갔다. 담당자가 왜 왔느냐고 하기에 자진신고 한다고 했더니 뭐냐고 한다. 칼이라고 했다. 프라스틱이겠지요? 할 적에는 그렇다고 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양심객인 낭월은 쇠칼이라고 했다. 에구.... 쉽게 넘어갈 일도 긁어서 부스름 만든다니깐.

일단 보기나 하잔다. 배낭에서 꺼내 보여줬다. 깜짝 놀란다. 왜 검색대에서 잡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들 녀석이 삼국지를 하도 좋아해서 부탁하기에 샀다고 해줬는데, 난감한 표정이다. 원칙적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런데 옆에서 보고 있는 관계 직원이 눈짓을 한다. 그냥 통과시켜 주리는 신호이다. 그것을 보면서 뺏기진 않겠구나 싶어서 아쉬운 소리도 했다. 잘 관리 하겠다고 하고 나가도 좋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더욱 당당한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 하겠는데, 혹시 중국에 가셔서 멋진 칼을 구해오고 싶으시다면 그냥 없는 양으로 하고 들어와도 상관이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봤다. 너무 솔직하게 하지 않아도 눈감아 주는 모양이니 말이다. 한번 시험 삼아 미련한 짓을 해봤다고 쳐야 할 모양이다. 하하~

차를 갖고 나온 처제가 기다리고 있다. 도향선생님과는 작별을 해야 할 시간이다. 긴 말이 필요 없었다. 애 많이 썼다는 말로 작별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안산으로 가서 좀 쉬었다가 점심을 먹고 우물쭈물 하다가 저녁에 출발을 해서 집에 돌아오니 밤 11시가 되었다. 일정을 따져보니 토요일 점심 먹고 나가서 지금 들어온 셈이라 12일 만의 귀가인 셈이다. 피로감은 이제부터 밀려올게다. 소위 말하는 여독(旅毒)이다. 푹 쉬고 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래도 편한 내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아마도 느낌으로는 두어 달 나갔다 온 것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의식세계가 발전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면서......

 

2004년 중국여 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