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철새와 함께 한 주남지

작성일
2019-12-11 17:37
조회
1170

[창원] 철새와 함께 한 주남지(注南池)


 

 

JU1 20191211-45

주남저수지는 창원에 있다는 말만 들었고 사진으로만 봤다. '언제 한 번 가봐야지....'했지만 막상 기회는 만들지 못했다. 창원까지 가지 않아도 갈 곳은 항상 차고 넘치는 까닭이다.

JU1 20191211-01

며칠 전에 전월산에서 야경을 찍고 머릿등을 의지해서 하산하는 길에 청도에 사는 형수님이 전화를 하셨다.

형수 : 마이 바빠여 창원에 가볼 시간이 엄쩨요?
낭월 : 왜요? 누님이 어디 편찮으신건 아니지요?
형수 : 그기 아이고요. 팔순을 식구끼리 하신다 안카능교.
낭월 : 언제 하신대요?
형수 : 12월 8일에 점심이나 묵는다카데~
낭월 : 고마버요. 시간 맹글어 볼께요.
형수 : 아무데도 연락하지 말라 카더라. 그래도... 
낭월 : 연락 잘 해 주셨고마요. 
형수 : 그냥 알고나 있으소~

JU1 20191211-09

통화를 마치고 문득 떠오른 것이 주남저수지였다. 이제 그 시절인연이 도래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ㅋㅋㅋ 무슨 직감씩이나. 그래도 만사는 흐름에 따라서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려니 싶은 생각을 하다가 보니까 그렇게 작은 씨앗이나 미세한 구멍에서 흐르는 물방울에서도 핑계를 우주 만큼이나 찾아낸다.

20191211_222400

주남저수지의 일몰시간은 17시 12분이다. 산이 있을 것을 감안하면 17시에는 일몰이 될 것으로 봐야 할게다. 그렇다면 15시에는 현장에 도착해야 하지 싶다. 그래서 최대한 그 시간에 맞추려고 일정표를 살펴 본다. 그런데 아뿔싸~이다. 이미 그 이전에 잡힌 상담이 11시이다. 상담을 제 시간에 하면 12시에 출발할 수가 있을 게다. 그렇게 되면 아마 세 시간은 잡아야 할게고... 어디...

20191211_222732

그렇지.... 세 시간 거리이다. 3시까지 도착을 한다면 두어 시간 놀아 볼 시간은 확보가 되지 싶다. 토요일 저녁에 가창오리떼의 군무를 보고 모텔에서 자면 될 게다. 그리고 새벽에 다시 나가서 밝아오는 시간도 새들과 함께 놀면 되겠다는 계산은 세웠다. 그러나 현실은 항상 계획대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손님이 12시에 도착했고, 상담을 하고 나서 서둘렀지만 결국은 1시에 출발하는 현실과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

JU1 20191211-08

마이산 휴게소에서 벌써 2시가 넘었다. 그래도 꽤 빨리 온 것이 그렇다. 잠시 쉬어서 커피라도 한 잔 사들고 다시 출발하는데 마이산의 말 귀가 자꾸 사진을 찍어 달란다. 그래서 또 정자까지 뛰어 올라갔다.

JU1 20191211-05

항상 보는 모습이지만 그래도 눈길을 끄는 매력이 있는 마이산이다. 그렇지만 길은 서둘러야 한다. 마이동풍이 떠올랐다. '말귀에 봄바람'이 왜? 이에 대한 내력이 문득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본다.

======================================

答王十二寒夜獨酌有懷




朝代:唐代
作者:李白



昨夜吳中雪,子猷佳興發。
萬里浮雲卷碧山,青天中道流孤月。
孤月滄浪河漢清,北斗錯落長庚明。
懷餘對酒夜霜白,玉牀金井冰崢嶸。
人生飄忽百年內,且須酣暢萬古情。
君不能狸膏金距學鬥雞,坐令鼻息吹虹霓。
君不能學哥舒,橫行青海夜帶刀,西屠石堡取紫袍。
吟詩作賦北窗裏,萬言不值一杯水。
世人聞此皆掉頭,有如東風射馬耳。
魚目亦笑我,謂與明月同。
驊騮拳跼不能食,蹇驢得志鳴春風。
《折楊》《黃華》合流俗,晉君聽琴枉《清角》。
《巴人》誰肯和《陽春》,楚地猶來賤奇璞。
黃金散盡交不成,白首爲儒身被輕。
一談一笑失顏色,蒼蠅貝錦喧謗聲。
曾參豈是殺人者?讒言三及慈母驚。
與君論心握君手,榮辱於餘亦何有?
孔聖猶聞傷鳳麟,董龍更是何雞狗!
一生傲岸苦不諧,恩疏媒勞志多乖。
嚴陵高揖漢天子,何必長劍拄頤事玉階。
達亦不足貴,窮亦不足悲。
韓信羞將絳灌比,禰衡恥逐屠沽兒。
君不見李北海,英風豪氣今何在!
君不見裴尚書,土墳三尺蒿棘居!
少年早欲五湖去,見此彌將鐘鼎疏。

===================================


뭐가 이렇게 길어? ㅋㅋㅋ 괜히 건드렸구먼. 길도 바쁜데 말이지. 그래도 이 안 어딘가에 마이동풍이 있단 말이지? 어디 위치나 알아보자.

世人聞此皆掉頭,有如東風射馬耳。
세상사람들 아무리 말해줘 봐야
동풍이 말귀를 지나가는 것 같으니...


아하, 동풍사마이(東風射馬耳)에서 마이동풍이 나왔단 말이지? 결국은 신세한탄인 모양이다. 아무리 지식인으로 나눠주고 싶어서 학문을 연마한들, 문인(文人)은 개무시하고 무인(武人)만 숭상하는 당시의 세태가 그렇다는 이야긴 모양인데, 특히 무인들을 말에 비유한 것은 참 신랄(辛辣)하다. 말을 타고 동서로 뛰어 다니면서 우쭐대는 것이 꼴사나워서 말에 빗대었나 싶기도 하다. 한 잔 얼큰한 김에 속에 든 생각들을 적어서 회포를 풀었던가 보다.

JU1 20191211-11

서상을 지나면서 앞에 멋진 산세가 드러난다. 아마도 짐작컨대 지리산 자락이겠거니....

JU1 20191211-10

날이 맑아서 천만다행이다. 얼마 전까지는 당연했던 것도 언젠가부터는 당연한 것이 되지 못하기도 한다. 미세먼지가 그렇다. 막을 수가 있는 방법은 모르겠고, 부디 하늘이 맑은 날에 나들이를 갈 수가 있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구름이야 있건말건 멀리까지 잘 보이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JU1 20191211-12

창원이다. 주남저수지가 보인다. 남쪽에 물을 댄다는 말인가? 물댈주(注)가 있으니 그렇게 해석을 해 본다.

JU1 20191211-13

어려서 4년여를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창원군 동면 지서 앞」이 주소였다. 일곱 살의 어린 아들을 앞에 앉혀 놓고 주소부터 외우게 한 어머니셨다. 행여 어디에서 길을 잃더라도 집구석은 잘 찾아오라는 염원이었다는 것을 당시야 어찌 알았으랴.... 혼란의 시절을 온 몸으로 겪으셨던 전후의 어려운 가정형편에서나마 자식을 잘 키워보려고 무진 애를 쓰셨다. 겨울엔 조푸를 만들어서 팔았고, 봄에는 반찬꺼리, 여름엔 수박과 참외를 팔았었지..... 당시에는 그게 조푸인 줄만 알았다. 그리고 '조푸'가 '두부'라는 것은 그 후에 알게 된 일이기도 하다.

후에 창원군은 창원시로 변하고, 동면은 동읍이 되었다. 2학년 1학기까지 다녔던 신방국민학교는 신방초등학교가 되었지만 추억 속의 그 시절은 화석이 되어서 뇌리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을 따름이다. 스쳐가는 길가에 학교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니 그것도 감회가 새롭다. 신발을 잃어버리고 울고 있는 녀석을 자전거 뒤에 싣고 집에 데려다 주셨던 선생님도 떠오른다. 56년 전의 어느 기억조각이다.

JU1 20191211-15

이런저런 생각들을 조우하다가 보니 이내 주남저수지이다. 아무리 빨리 왔음에도 시간은 4시가 넘었다. 어쩔 수가 없다. 주어진 만큼만 즐기면 될 일이다. 해는 불과 1시간 남짓이고, 일몰 후의 시간까지 포함해도 두 시간이 채 안 될 것이지만 그래도 여기에 왔다는 것이 중요할 따름이다. 토요일 저녁이라 무척 복잡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생각보다는 저수지가 넓어서 다행이었다.

JU1 20191211-16

궁금했던 저수지부터 넘겨다 본다. 오리와 고니가 어우러져서 노닐고 있는 풍경을 보니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재두루미를 찾아야지.... 우선 보이는대로 훑어봐도 재두루미는 보이지 않는다. 비록 만났던 적은 없지만 사진으로 본 것만으로도 그 형체는 익히 알고 있는지라 눈에 띄기만 하면 알아볼텐데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는다. 고니들 사이로 백로와 왜가리들이 서성이고 있을 뿐이다. 명찰을 단 여인이 지나간다. 관리하는 여성임에 틀림 없으렸다~!!

JU1 20191211-17

낭월 : 말씀좀 여쭙겠습니다.
여인 : 말씀하시소.
낭월 : 재두루미는 어디에서 볼 수 있습니까?

여인 : 여기에서 1.7km는 더 가셔야 하는데예~
낭월 : 아, 여기가 아니었구나. 고맙습니다.

다시 급하게 여인이 가르쳐준 대로 길을 달렸다. 태양의 길이가 짧아도 너무 짧다. 동지가 코앞이니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만큼은 딱 두 시간만 더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둘러서 제방 아래의 길로 달려가니 다시 차들이 엉켜있는 지점을 만나게 되었고, 느낌상으로도 대략 이쯤이지 싶었다. 그래서 차는 알아서 주차하라고 해 놓고 허둥지둥 삼각대와 카메라 가방을 챙겨서 제방으로 올라갔다.

JU1 20191211-61

걷는 사람, 서 있는 사람,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 모두가 손에는 대포 하나씩 들려있다. 새랑 노는데는 초망원이 최고이다. 예쁜 새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이니 무게는 논할 때가 아니다. 그냥 내 손에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100-400렌즈에 2배 확장렌즈를 추가했다. 그래서 800mm를 만들었고, 여차하면 다시 여기에 크롭모드로 촬영할 수가 있는 기능을 사용하면 1200mm까지는 확보가 가능하다. 오늘은 어떤 친구들과 만나게 될까.... 재두루미는 물갈퀴가 없다. 그러니까 앝은 물가나 논에서 먹이활동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래서 제방에 오르자마자 추수를 끝낸 논바닥으로 시선이 내달린다.

JU1 20191211-28

검은 녀석들은 기러기겠고... 그 앞에 무리를 지어 있는 친구들은.... 필시 재두루미겠구나. 왕대포(아마도 600mm에 2.8의 매우 밝은 렌즈일테지...)아저씨의 옆에 자리를 잡고는 급히 움직이는 녀석들을 향해서 렌즈를 겨눴다.  처음 보는 새들이다. 재두루미였다.

JU1 20191211-25

너무 멀어서 1200mm까지 당겨도 더 이상 다가오지 않는다. 장비가 허용하는 만큼만 담고, 그 나머지는 컴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되니까 가능하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한다. 짧은 렌즈를 들고 잘 보이지 않는다고 아쉬워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 안타까운 마음이 공감을 불러온다.

20191211_234509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렌즈이다. 무겁기는 어깨가 빠져나갈 지경이고, 비싸기는 밭 한 뙈기는 팔아야 할 정도이며, 구입하기로는 항상 '재고없음'이다. 물론 절대적으로 반드시 갖기로 든다면 압구정점에 예약을 하라고는 한다만 새와 놀다가 보면 문득 떠오르는 때도 아주 가끔은 있다. 언제나 재고없음이 반갑기도 하고.... ㅋㅋㅋ

JU1 20191211-26

열심히 뭔가를 찾느라고 여념이 없다. 아마도 두루미를 위해서 먹이를 논에 뿌려줬지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많은 새들이 먹을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연기념물 203호라는 것은 언젠가 멸종이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니 이러한 풍경을 사진으로 담을 수가 있었던 이 시대의 사람들을 후세의 사진가들이 부러워할런지도 모를 일이다.

JU1 20191211-34

우선, 1차적인 목적은 달성했다. 재두루미를 이렇게 지척에서 만날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오른쪽에 있는 녀석들은 어미일게고 왼쪽의 검은 털을 한 녀석은 아마도 올해 깨어난 새끼가 아닐까 싶다. 대체로 새끼들의 옷이 짙어서 해 본 생각이다. 문득 철원을 가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일어난다. 올 겨울에는 그쪽으로 방향을 잡아봐야 하겠다. 단정학(丹頂鶴)이라고 불리는 두루미를 보고 싶은 것은 재두루미를 본 것이 불씨라고 해야 할 모양이군.

JU1 20191211-33

두산백과에 나온 자료를 옮겨본다.

===================================

몸길이 127cm의 대형 두루미이다. 머리와 목은 흰색이고, 앞목 아랫부분 3분의 2는 청회색이다. 몸의 청회색 부분은 목 옆으로 올라가면서 점점 좁아져서 눈 바로 아래에서는 가는 줄로 되어 있다. 가슴은 어두운 청회색이고 배와 겨드랑이는 청회색, 아래꼬리덮깃은 연한 청회색이다. 눈 앞과 이마 및 눈가장자리는 피부가 드러나 붉고 다리도 붉은색이다.


주로 습지 풀밭이나 개펄에 산다. 한국에서는 큰 강의 하구나 개펄, 습지, 농경지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 겨울에는 암수와 어린 새 2마리 정도의 가족 무리가 모여 50∼300마리의 큰 무리를 짓는다. 긴 목을 S자 모양으로 굽히고 땅위를 걸어다니면서 먹이를 찾는다. 날아오를 때는 날개를 절반 정도 벌리고 몇 걸음 뛰어가면서 활주한 다음 떠오른다. 날 때는 V자형 대형을 이루나 수가 적은 경우 직선을 이루기도 한다. 앞이 탁 트인 개펄이나 습지 풀밭에서 무리지어 잔다. 밤에는 흑두루미처럼 한쪽 다리로 쉬되, 목을 굽혀 머리를 등의 깃 사이에 파묻는다. 4월경에 한배에 2개의 알을 낳는다.


식성은 주로 벼·보리·풀씨 및 화본과식물의 뿌리 등 초식성이나 작은 물고기나 새우·고둥·곤충 등의 동물성 먹이도 잡아먹는다. 한강 하구에서는 수송나물·칠면초·매자기 등의 풀씨와 매자기 뿌리의 녹말도 먹는다. 시베리아·우수리·몽골·중국(북동부) 등지에서 번식하고 한국·일본·중국(남동부)에서 겨울을 난다.


한국에서는 10월 하순에 찾아와 이듬해 3월 하순에 되돌아가는 드문 겨울새이다. 한반도를 지나가는 나그네새이기도 하다. 1945년 이전까지는 1천 마리 정도의 무리가 각지에서 겨울을 났으나 이후 점차 줄어들어 6·25전쟁 후 수십 마리 단위로 줄어들었고, 최근에는 불과 20~30마리의 무리도 보기 어렵게 되었다. 1968년 5월 30일 천연기념물 제203호로 지정되었고, 2012년 5월 31일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한편 한강 하류 재두루미 도래지는 천연기념물 제250호로 지정되어 보호 관찰되고 있다.

재두루미 본문 이미지 1


재두루미의 발이 분홍색인 것은 몰랐다. 가까이에서 볼 수가 없으니 이렇게 두산백과에서 만들어 준 이미지를 보면서 이해를 깊이 하는 것이 최선이다.




45242


[네이버 지식백과] 재두루미 [white-naped crane] (두산백과)


======================================

JU1 20191211-21

순식간에 재두루미들이 있는 곳은 그림자에 묻히고 만다. 해의 기울기에 따라서 제방의 그림자가 재두루미를 덮어버린 까닭이다.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볼 수가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재두루미가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순간이 감사할 따름이다.

JU1 20191211-35

하얀 반달이 동녁에 떠올랐구나. 제방의 공간에는 유채를 심었다. 봄날에 샛노란 꽃으로 장식할 것을 상상해 본다.

JU1 20191211-38

그제사 저수지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흐름이 이렇게나 자연스럽다. 이미 주남지는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JU1 20191211-39

여름 내내 예쁜 연꽃으로 방문객을 맞았겠구나. 이제 연잎의 줄기만 남은 사이로 헤엄치고 있는 오리 부부의 한가로움이 느껴진다.

JU1 20191211-41

저수지를 잘 관리하고 있다는 흔적이 역력하다. 그냥 뒀으면 서리를 맞고 시들어진 연잎이 너저분하게 얽혀져 있을텐데 말끔히 정리하되 줄기는 그대로 둬서 물고기들이 모여들고 그를 쫓아서 철새들이 그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밥을 찾도록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방치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을 보니 정성이 느껴진다.

연잎 줄기의 실물과 반영이 어우러져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노을이 물들어가는 이 시간에 즐길 수 있는 풍경이다. 바야흐로 시간은 마법에 걸린 저수지를 만들어 낸다. 이른바 '일몰전후삼십분'의 시간대에 진입하고 있음이다. 특히 이제부터는 일몰후의 최고절정에 해당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JU1 20191211-47

앗~! 기러기인가 했더니 재두루미들이잖아~! 와우~! 사진을 찍을 적에는 너무 멀어서 식별이 되지 않았는데 사진을 보정하면서 알아본다. 비상하는 재두루미를 못봤다고 생각하고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 사진을 보고서야 그 생각을 벗어날 수가 있었다. 볼 것은 다 봤다는 만족감이 슬며시 감동의 물결을 짓는다.

JU1 20191211-46

예뻐라~~~!!! 먹이 활동을 마치고 잠자리로 찾아드는 모양이다.  몽골과 시베리아에서 새끼들을 키우다가 맹추위를 피해서 여기까지 찾아왔으니 녀석들이 본 것은 또 무엇이었을까? 북한의 풍경들도 다 보면서 오갔겠군. 새들을 보고자 하는 마음 속에는 '새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실려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JU1 20191211-48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어서 보호하는 재두루미가 이렇게 무리를 지어서 날으는 것을 보니 고맙고도 다행스럽다. 날아가는 모습을 담으려니 날개가 잘 나와야 하니 셔터의 속도는 자꾸만 빨라지고, 해가 넘어가고 있으니 어두워서 ISO는 자꾸만 수치가 높아지고, 그만큼 이미지는 거칠어지고 있을 게다.

JU1 20191211-49

감도(ISO)는 100에 가까울 수록 좋은 줄이야 누가 모르랴. 그러니 이 시간에 이렇게 바삐 날고 있는 재두루미와 놀기 위해서는 양보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냥 단순히 검은 점만 얻게 될 것이 분명한 까닭이다. 항상 타협의 순간들이 주어지고 그것도 극기 짧은 시간에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바쁘다. 머리는 초고속으로 돌아가야 하고, 셔터와 감도와 조리개를 돌리는 손가락은 또 그만큼 바빠진다. 풍경사진과 조류 사진은 전혀 다른 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더 밝게 보려고 보정을 해봐도 또한 적정선은 있기 마련이다. 항상 그 경계선, 그러니까 음양의 균형을 무너트리지 않는 선(線)에서 손가락과 마음의 경계를 느낀다.

JU1 20191211-54

둑 아래에는 승용차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을 때, 둑 위에서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진꾼들의 긴장한 모습들이 말을 잃고 있다. 모두의 카메라는 해가 사라진 서쪽을 향하고 있다. 장담을 할 수는 없지만, 이 순간의 마음들은 아마도 하나일 게다.

'금빛 하늘을 수놓는 가창오리떼의 군무'

오직 이러한 장면이 나타나기를 상상하면서 카메라를 잡은 손이 흥분한다. 이러한 놀이에 주어진 시간도 이제 30분 남짓이다. 관광객은 이 시간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사진객은 흥분을 하기 시작한다.

JU1 20191211-55

모두 행복한 사람들이다. 낚시꾼들은 바늘 끝에 신경을 집중하고 기다리고, 사진꾼들은 하늘이 물들어가는 것에 신경을 집중하고 한 장면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낚시꾼은 물고기를 건지고, 사진꾼은 그 한 장을 건진다. 서로 건진 것은 달라도 의미하는 바는 같다. 꿈을 담은 마음을 건지는 것일테니....

'이제나.... 저제나....'

구름도 한 점 없다. 이 절묘한 순간에 이 자리에 서 있음은 모두 하늘의 덕분이다. 무대는 완성되었다. 이제 주인공들이 등장할 시간만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사진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이다.

낭월 : 뭘 기다리시는 건가요?
아재 : 가창오리의 군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낭월 : 어느 쪽에서 날아옵니까?
아재 : 그건 새만 압니다.

멍청한 질문을 했다. 그렇지, 새만 알지. 그냥 어디에서든 나타나주면 고마울 따름인 것을 괜히 마음만 바빠져서 헛질문을 했다. ㅎㅎㅎ

JU1 20191211-56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풍경도 재미있다. 누구는 위에서 누구는 아래에서 '황금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아니, 황금의 시간보다 더 가치가 높은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다. 깊은 산의 계곡을 누비면서 금맥을 찾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마음일테니....

JU1 20191211-57

잠시 뒤쪽의 풍경도 담아 본다. 이른바 '렌즈의 뒤쪽'이다. 이야기는 항상 '뒤'에도 숨어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따라온 한 소년의 지루함이 보인다. 얼른 집에 가서 게임을 하느니만 못한 그들의 지루한 기다림에 지쳤을 게다. 사랑하는 남편의 사진놀이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기다려주는 아내도 보인다. 가정이 있어서 행복한 사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아내와 아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게다. '주고 싶은 마음'과 '원하지 않는 마음이 서로 얽혀서 삶을 엮어가는 것이겠지.....

JU1 20191211-59

렌즈와 함께 바라보고 있는 저만치에 아담한 산이 하나 보인다. 무슨 산이지? 노느니 염불하고, 새들 기다리느니 산이나 찾아보는 거지 뭘. 놀면 뭐하니.

20191212_074226

지도의 조감도는 구글어스가 최고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하다. 주남지에서 서쪽을 막고 있는 산은 백월산(白月山)이었구나. 달이 하얗다고? 세종에는 달이 굴러가는 전월산(轉月山)도 있고, 장성에는 달이 밝은 낭월산(朗月山)도 있고, 인천에는 달이 둥글다는 만월산(滿月山)도 있는데, 여기는 또 하얀 달이로군. 산은 가만히 있는데 이름은 왜 달이 그리도 많은지 그것도 참 재미있군.

20191212_074548

구글어스가 다 좋은데 지명이 친절하지 않은 점이 좀 불편하다. 물론 한국정부에서 정보를 차단해서 그렇다는 말도 있기는 하다. 다만 이용자는 불편할 따름이다. 백월산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묻어있다.

========================================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통일신라의 초기(707~709)에 전하는 이야기를 보면, 원래 이름은 화산(花山)이었는데 당나라 황제가 백월산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는데, 그건 좀 뜬금없어 보인다. 그보다는 【삼국유사】의 탑상편에 나오는 「남백월이성 노힐부득 달달박박()」조(條)에 기록된 내용이다.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불문에 출가하여 달달박박은 백월산 북쪽의 사자암 바위 아래에 토굴을 짓고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서 수행했고, 노힐부득은 백월산 동남쪽의 돌무더기 아래에 돌로 만든 석굴에서 미륵불을 염원하면서 수도를 했더란다. 실제로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어서 이러한 이야기를 뒷받침해주기도 한다.

그렇게 수행을 한지도 3년이 되었을 때, 어느날 저녁 해도 서산으로 기울어서 어두워지는 시간에, 그러니까 지금 주남지에서 바라보고 있는 딱 이 시간이었겠군. 묘령의 아름다운 여인이 북쪽 암자에 와서는 달달박박에게 말하기를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었으니 하룻밤 재워 달라.’고 했는데, 달달박박이 '청정한 곳을 여인이 찾아와서 어지럽히지 말라'고 하면서 거절하자 그 여인은 다시 남쪽 암자에 가서 같은 말을 노힐부득에게 했더란다.

CYB_0093-psbcam[인터넷 자료: 부산 선암사 벽화]


어두운 밤에 찾아 온 젊은 여인의 딱한 사정을 본 노힐부득은 중생의 사정에 따르는 것도 보살행이라고 생각하여 들어오게 하고 단칸방에서 같이 누워서 잘 수도 없는 일인지라 여인은 잠을 자게 하고, 자신은 밤새 염불을 외웠더란다. 그런데 일이 얽히느라고 여인이 갑자기 아기를 낳을 것 같다면서 뜨거운 물을 부탁하니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인지라 시키는대로 물을 끓여서 해산관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또 아기를 낳고서는 목욕을 시켜 달라고 했지만 그것도 거절을 못하고 다 들어 줬는데, 여인이 목욕을 한 물이 금빛으로 변했고, 노힐부득이 목욕을 하자 몸도 금빛으로 변했다. 그녀는 노힐부득에게 연화대에 앉으라고 권하고 자신을 관세음보살이라 하고는 사라졌는데, 한편 달달박박은 노힐부득이 계율을 범했으리라 짐작하고 이른 새벽에 찾아가 보니 연화좌에 앉아서 부처가 된 모습으로 반기는 것이 아닌가.


노힐부득에게서 어찌 된 일인지를 듣고는 그 물에 목욕을 하라는 말에 들어가서 몸을 씻었더니 몸이 금빛으로 변하였는데 아쉽게도 물이 부족해서 몸에는 약간의 얼룩이 남게 되었다. 이로부터 두 사람이 성불하니 주변에서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에게 진리를 설하고는 구름을 타고 떠나갔다. 나중에 경덕왕이 두 사람이 수행했던 곳에 절을 세우게 하고 미륵불과 아미타불을 안치했는데 기이하게도 미타불은 도금하는 금분이 부족하여 얼룩이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장소가 백월산이라는 것은 또 이렇게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되니 이야기를 알고 현장을 바라보는 기분도 묘하다. 언젠가 또 한마음이 일어나면 백월산도 올라가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번 여행길에서는 계획 밖이라서 다음으로 미룰 따름이다.


JU1 20191211-60


이야기를 알고서 다시 백월산을 바라보니 느낌이 살짝 전해지기도 한다. 물론 사진을 찍을 적에는 저 산이 백월산인 줄도 몰랐다. 그렇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하나씩 찾아가는 묘미는 사진기행의 즐거움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나저나 가창오리는? 날아 올까?


JU1 20191211-63


갑자기 주변에서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가 난다. 셔터가 연속으로 끊어지는 소리도 이렇게 묘한 화음을 이룰 수가 있구나. 수십대의 카메라에서 연속샷으로 설정하여 촬영하니까 그 소리도 일품이다. 옛날 같으면 필름에 돈이 들어가는 소리가 되었겠지만 디지털카메라 시대에는 전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셔터를 열심히 눌러서 그림만 얻으면 되는 까닭이다.


JU1 20191211-69


가창오리는 야행성이란다. 그래서 낮에는 아무 곳에서나 빈둥거리다가 해가 지고 난 다음에 먹이활동을 하러 저수지로 찾아오기 때문에 항상 가창오리떼의 군무는 노을과 함께 사진에 담기는 것이었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낮에는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는 장면을 일몰 후에만 볼 수가 있다는 것이 자연의 모습이다.


JU1 20191211-70

사진으로야 어찌 그 장관을 전할 수 있으랴~ 그래서 직접 주남저수지에 가서 보라는 말 밖에 드릴 말씀이 없겠다는 것을 절감하겠다. 사진은 보조적인 수단일 뿐 그것으로 모든 것을 전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여기에 벗님의 상상력을 덧씌워 보시기 바란다.

JU1 20191211-72

전 세계의 가창오리 95%가 한국에서 월동한다니까 인연도 참 묘하다. 다른 나라에서 사진놀이 하는 사람들이 이 장관을 보려면 비행기 타고, 기차 타고, 택시 타고 여기까지 와야 한다는 이야기로군. 천수만의 간월호와 부남호, 금강하구, 동림저수지, 고천암호, 금호호, 아산만, 그리고 주남저수지 등에서 10만 마리 이상이 월동한다. 가창오리는 한자로 조압() 이라고 한다는데 이 조압이 왜 가창오리가 되었는지가 궁금해서 또 뒤적여 본다.

rkrkckddhfl[가창오리-인터넷자료]


가창은 한자로 가창(街娼)이란다. 거리의 창녀라는 뜻이다. 왜? 거리의 창녀는 수컷들을 꼬드기기 위해서 분단장을 곱게 하는 까닭이란다. 그랬군, 예쁘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못할 것은 없겠네... 아무리 그래도 거리의 창녀라니 그 이름을 붙인 사람의 의도가 궁금하다. ㅋㅋㅋ

영어의 학명으로는 anas(아나스) '오리' formosa(포모사) '아름다운, 매혹적인.

어? 포모사는 포르투칼 사람들이 붙여준 대만섬의 옛날 이름인데? 그래서 대만을 한자로 보도(寶島)라고도 한다. '보배섬'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말이다. 창녀라는 의미는 없는데 행여 포모사의 뜻에 그런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고 보니 왠지 의외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행여 가창에서 먼저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어서 가창오리인가 싶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봐야 할 모양이다.

cjdenddhfl[청둥오리-인터넷자료]


내침 김에 청둥오리와 가창오리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서 찾아본다. 머리가 청록색인 녀석이 청둥오리였구나. 가창오리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이렇게 비교해 보니 확연히 구분이 된다. 다음에는 '오리구나'라고 할 것이 아니라 가창오리와 청둥오리로 구분해서 불러줘도 되겠다. 이렇게 공부하는 즐거움이 덤으로 주어진다.

JU1 20191211-86

서서히 어둠 속으로 잠겨드는 주남저수지의 밤 풍경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일몰 후  30분의 마법도 마무리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이별을 아쉬워하듯이 한 번 더 비상을 해 준다.

JU1 20191211-92

뒤늦게 밤의 먹이활동에 동참하는 녀석들까지 모두 저수지에 하강한다. 주남낙안(注南落雁)이다. 아니 주남낙압(注南落鴨)인가?

JU1 20191211-94

그렇게 끝까지 지켜 본 다음에서야 카메라를 거뒀다. 오늘의 주남지 놀이는 이것만으로도 이미 즐거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다시 내일 새벽의 풍경을 기대해 본다.

JU1 20191211-95

소낙비처럼 쏟아지던 셔터소리도 사라지고, 주남지에는 간간히 고니들의 굵은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편안한 밤이 되거라. 이제 잠을 잘 곳을 찾아야지. 낭월도 철새와 다를 바가 없군. 어디에서 오늘 밤을 편히 쉬어야 할 것인지를 걱정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물론 시내로 들어가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