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탑정호의 새벽

작성일
2019-11-14 07:54
조회
917

[충남논산] 탑정호(塔亭湖)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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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에 집을 나섰다.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던 친구가 전날에 차를 마시면서 한 말이 있어서였다. 일몰타임랩스도 좋지만 일출타입랩스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래 까이꺼~!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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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다리 위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일출의 방향을 어플로 가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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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탐사선이다. 이 친구의 장점은 현장에서 실물을 카메라렌즈로 보여주면서 태양의 위치를 찾아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나침반을 의지해서 가늠해야 했던 태양과생활의 신세를 벗어났다. 9500원을 지불한 대가로는 충분하고도 넘치는 고마운 새벽의 사진동무이다. 10만원이라고 해도 구입했을 게다. 물론 무료버전도 있다. 무료버전이 있고 또 유료버전이 있다는 것은 자신감이 만땅이라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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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다고 해서 태양과 생활이 쓸모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박명을 알려주는 유일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111도36분에서 07시 5분에 태양이 솟아오를 것이라는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 물론 태양탐사선이 다가오기 전까지는 매우 중요한 정보였다. 집에서 05시에 출발한 것은 천문박명이 5시 36분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천문박명부터 찍어야 타임랩스의 시작이 제대로 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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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에서는 오늘 비가 내린단다. 그래 그것도 참고는 하마. 중요한 것은 지금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어슴프레한 하늘의 그림에서 겨울외투 만큼이나 두터운 구름을 봤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졌다. 이 시간에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그냥 물러설 마음이 없음을 의미한다. 까이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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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일출시간은 40분 남았다. 타임랩스 사진은 M3에게 맡기고 R3과 삼각대를 들고 어둠 속을 배회한다. 그래야 30초 사진놀이를 할 수가 있지. 이 자리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타임랩스를 찍으려고 계획한 것은 가을의 분위기와 산책다리와 일출이 함께 어우러지면 괜찮은 그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의 싹수를 봐서는.... 너무 먹장구름이다. 그래서 30분 이상 찍은 분량은 포기하고 렌즈를 돌렸다.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라는 판단을 신속하게 한 까닭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이다. 지난 30분에 묶여서 앞으로 1시간을 모험으로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빠를 때는 과감해야 한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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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하늘이 협조하지 않을 모양이면 방향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M3을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태양만 향하도록 해 놓고 7초간격으로 찍으라고 부탁하고는 슬슬 움직였다. 시간은 아직 항해박명이다. 어청도에서는 어선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시간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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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단풍을 기대했던 왼쪽의 하늘이 시커먼 것에 비해서 자꾸만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하늘의 속삭임이 들린다. 소리가 들리면 상황판단을 빨리 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은 온전히 낭월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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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들어오는 하늘을 선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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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랩스는 14mm로 찍을테니까 행여 저 구름들이 짙은 빨강으로 물이 들더라도 놓치지는 않을 것이다.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되듯이, 먹장구름이 꽃구름이 되기도 하는 것이 하늘놀이다. 어쩌면.... 어쩌면.... 기대감은 항상 설레는 법이다. 그리고 설렘은 영혼의 양식이다. 설렘이 없으면 우울이 다가온다. 먹장구름이다. 그래서 먹장구름이 설렘으로 변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결코 손해를 볼 일이 없음이다. ㅋㅋ

갑자기 창해일성소가 폰에서 울려나온다.



심심할 적에 듣는 음악에서 동정(董貞) 「창해일성소(滄海一聲笑)」가 흘러나와서 그 느낌으로 끼워넣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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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의 능선자락에 살며시 고개를 내미는 뒷산이 보인다. 직감적으로 대둔산이군... 그러자 순간적으로 다시 이어지는 내면의 목소리.

"대둔산일출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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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역광에서 단풍은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앞산을 벗어나야 대둔산의 능선이 드러나겠다. 그 말은..... 타임랩스를 찍고 있는 카메라와 잠시 이별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물론 이곳은 대한민국이다. 상식과 교양으로 세련된 국민이 살고 있는 곳이다. 결코 유럽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 말은

'설마... 누가 카메라를 삼각대 채로 둘러메고 도망가겠어?'

라는 약간의 불안감을 떨쳐버리는 주문이었다. 비록 정치하는 사람들은 몰상식하고 몰교양하고 몰인정하지만 국민은 믿어도 된다는 신뢰감이 없다면 이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 비록 상처투성이인 카메라와 삼각대지만 새로 구입하려면... 500만원으로는 부족하다. 삼각대도 짓조거등. ㅋㅋㅋ

아, 물론 결코 그런 마음은 아니다. '그런 마음'이 무엇이냐면, '카메라가 두 대나 있으면서 또 R4를 사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는데, 불행중다행으로 누군가 가져가 준다면....' 절대로 그런 마음은 아니다. 그러나 행여 모를 일이긴 하다. 잠재의식까지 콘트롤하기엔 아직도 낭월의 수행이 턱없이 부족하기에.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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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하늘에서는 다시 구름이 접근하고 있다. 결국 아직은 일출을 기대할 방향에서만 하늘이 보인다는 의미이다. 그 손바닥만큼의 하늘도 언제 구름으로 뒤덮히게 될지는 시간문제이다. 그러나 지금은 충분히 즐길만큼의 새벽빛이다. 해가 떠오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서 대둔산의 능선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바빠진다. 상상해 보시라. 백발의 영감이 삼각대와 카메라를 가슴에 끼고서 헐레벌떡 뛰어가는 기괴한 장면을 말이다. 누가 봤으면 영락없는 카메라 도둑의 모양이었을게다. 다행히 오늘 새벽엔 사람이 딱 한 사람만 지나갔다. 자전거를 타고서 그 장면은 첫번째의 사진에 찍혔다. 귀신이 지나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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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부족하면 아무리 느긋한 낭월도 뜀박질을 한다. 뛰면서도 뒤를 돌아보면서 태양탐사선을 들어서 위치를 확인한다. 자칫 너무 지나치면 애꿎은 시간만 날려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아무도 모르는, 낭월만의 시간놀이가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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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 이쯤이면 대둔산 일출을 볼 수 있지 싶다. 그 사이에 구름이 달려들어서 막아버린다면 또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니 다음을 기약하면 된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테니깐. 어쩌면 앞산과 대둔산의 사이쯤에서 태앙이 떠오를 수도 있지 싶다. 그러나 더 뒤쪽으로 달려가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 일단 오늘은 여기에서 승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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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태양은 앞산의 뒤쪽 어디쯤에 있을게다. 그리고 점점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솟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겠지... 일출시간은 지평선 기준일테니 07시 5분이라지만 여기에서는 10분 정도는 더 줘야 할 수도 있다. 대둔산의 높이만큼 시간을 먹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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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태양이 아니라도 이 풍경 자체로도 이미 충분한 오늘 새벽나들이의 보상은 차고도 넘친다. 망원렌즈는 가방 안에서 M3을 지키고 있다. 지금은 가지러 갈 시간도 안 되지만 안 그래도 되지 싶다. 산의 능선은 당겨봐야 특별한 그림이 될 것은 없지 싶어서이다. 오히려 대둔산 전체의 능선을 담기 위해서는 24-105mm면 충분하다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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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기러기들이 먹이를 찾아서 이동한다. 그 아래로 구름은 노란색에서 흰빛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으로 봐서 태양이 바로 솟아오를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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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즐거운 환희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하는 기러기들이다. 녀석들은 태양을 봤겠군. 나는 기다려야 한다. 날개가 없기 때문이다. 구름이 오기 전에 태양이 떠오르기만을 기대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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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에도 호수 위의 오리떼가 보인다. 주황빛의 호수에 한가롭게 먹이를 찾고 있는 녀석들의 눈에는 이 시간의 풍경이 어떻게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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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많이 먹어둬야 한다는 몸의 신호에 충실하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만 한 채로 얼른 시선을 돌린다. 꾸물대다가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면 이것이야말로 땅을 치고 통탄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순간에 오리들을 찍지 않는다면 그것도 애석할 일이다. 그래서 바쁜 것이지 달리 바쁠 일이 무에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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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30초가 흘러간다. 빛의 중심이 서서히 대둔산으로 옮겨가고 있음이 보인다.

"그럼 그렇지~!"

아직 구름의 위치를 봐서 오늘 새벽의 풍경에는 태양을 포함할 수가 있겠지 싶다. 태양이 떠오른다면 맑은 하늘보다 구름하늘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더말해서 뭐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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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신을 몰라도 사주에서 할 말이 많은 것처럼, 태양이 없어도 풍경에서 즐길 꺼리는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아직은 아쉽다. 양에 차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기다리자. 다 되어간다. 얼마 안 남았다.... 이제 금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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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틱이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겠거니.... 밀려드는 구름떼와 2살짜리 잇몸에 솟아오르는 새하얀 이처럼... 두근두근~~ 설렘설렘~~ 행복만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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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의 태양이 탑정호에 강림한다.
태양을 건지러 어부가 그물을 싣고 노를 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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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홋~! 딱 그 자리에 멈춰주기를 바랬다. 암봉위에 딱 그만큼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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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렌즈가 아니라도 이 정도는 만들 수가 있다. 예쁘다..... 동백이를 비할 바가 아니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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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둥실~ 떠오른 태양이 허공중에 장엄한 빛을 뿌려 준다. 어부도 냉큼 물에 빠진 태양을 건지고 있다. 모두가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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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아침놀이가 끝났음을 알려준다. 고맙다. 이 정도의 놀이를 누리도록 배려해 준 구름도 고맙고, 그 순간에 해를 건지러 와준 어부에게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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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는 해를 싣고,
낭월은 해를 담고,
저마다 소원을 이룬 채로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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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고 있었구나.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구나.
마음에 한가득의 기쁨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