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청도⑪ 서방파제

작성일
2019-10-21 06:55
조회
812

어청도⑪ 서방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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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정에서 왼쪽을 보면 늘어서 있는 것은 외연열도이다. 어떤 무리의 섬은 열도라고 하고 또 어떤 섬의 무리는 군도라고 한다. 외연열도, 격렬비열도, 일본열도 등이다. 어려서 라디오를 들으면 항상 뉴스의 뒤끝에는 해상정보가 방송된다.

'어청도, 격렬비열도, 서산어장, 오늘은 파고가 2m로 일겠고....'

지금도 라디오를 켜면 이러한 말이 나오는지 궁금하다. 항상 나오는 섬의 이름이 어청도였다. 그래서 어청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 따지고 보면 점심(點心)을 한 것은 50년이 넘었는데, 그것을 확인하러 언젠가는 가게 된다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이 지금 이 순간에 어청도의 팔각정에서 별사진을 찍고, 또 아침의 항구도 찍으면서 놀았으니 소원이 하나 풀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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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보이는 섬들과 또 더 멀리에 홍성의 오서산이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것도 반갑다. 오서산은 직접 올라가 보기도 했고, 삽시도에서 새벽에 바라본 풍경이기도 하여 더욱 정겹다. 말하자면 서해중부의 표지산과 같은 의미도 된다.

N1_01928[삽시도의 새벽에 바라본 오서산]


작년 9월에 자매들이 모여서 놀았던 보령의 삽시도에서 새벽에 선착장의 새벽풍경을 바라본 오서산의 풍경인데 어청도에서 바라보는 실루엣이 크기만 다를 뿐, 자태는 같으니까 어디에서 봐도 알아보는 기준이 되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오서산이 높아서 가능한 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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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남쪽으로 훑어보는 것은 분리된 파노라마와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삼각대를 세우고 아예 파노라마로 찍을 것을... 별사진과 타임랩스에 빠져서 파노라마를 찍을 생각을 하지 못했었네. ㅎㅎㅎ 북쪽으로는 오서산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특별한 인식표의 산은 안 보이지만 오서산의 남쪽 어디쯤이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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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청도에서 동쪽으로 보이는 곳에는 홍원항, 무창포, 대천항의 주변이겠다. 그렇다면 대천을 조망할 수 있는 옥마산도 그 어딘가에서 보이겠군... 그러나 오늘 아침의 날씨에서 옥마산의 송신탑까지 보기는 무리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식별이 되지 않아서이다. 아마도 일출에 태양이 옥마산의 송신탑을 앞에 두고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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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의 너머로 보이는 군도들은 또 어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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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십이동파도였구나. 십이동파도는 해저유물을 건져올린 곳으로 유명하고, 원래는 유인도였는데 간첩사건으로 인해서 무인도가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기록으로 전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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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정에서 백호산맥을 타게 되는 4코스의 출발점이다. 백호산백이란 왼쪽으로 뻗어있는 공치산, 검산봉을 청룡산백으로 봤을 경우에 대응하는 의미이다. 청룡은 좁고 길게 뻗어있고, 백호는 높고 우람하게 자리하고 있으니 의미로 봐도 그런대로 부합이 된다. 어청도 사람들은 대부분 백호자락에 의지해서 거주지를 마련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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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어데 가노?
당랑 : 순례 중이다 아이가.
낭월 : 왜?
당랑 : 죽기 전에 당산을 한 번 보는게 소원이라서.
낭월 : 인자 날도 추버질낀데...
당랑 : 개안타. 여적지 잘 살아왔다 아이가.
낭월 : 어청도의 소식은 어떻더노?
당랑 : 다 같지 뭐가 어때~!
낭월 : 하긴.... 어청도라고 별다를 것도 없지...
당랑 : 말라꼬 여 왔노?
낭월 : 그....냥.....
당랑 : 참 씰데 없이 돌아댕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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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어둠 속에서 봤던, 그리고 외계와 통신하고 싶었던 콘택트의 그 송신탑이다. 혹은 수신탑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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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성이를 올라가니 망망대해가 보인다. 이런 장면은 서해인지 동해인지 구분은 불가하다. 저쪽에는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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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저 너머에 산동반도가 보일랑강.... 싶어서 눈을 가늘게 떠본다. 그러나 하늘이 돕지 않아서인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면 구글신께 물어봐야지. "보여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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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지도는 선택의 여지가 있지만, 국외의 지도를 보는 것에는 선택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 그냥 구글이다. 어청도에서 서쪽으로만 가면 나오는 곳은 청도네? 오호~! 어청도에서 가면 청도가 나오고, 청도에서 500명이 배를 타고 동으로만 가면 또 어청도가 나온다. 어청도의 뜻은 '저 청도'이다. '저기 청도가 있네'라고 해도 될 게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전횡 일행이 어청도에 왔었던 것은 사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게 우연일까? 낭월은 이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모양이다. 이름을 보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를 알고 싶어서 안달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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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당산으로 이어진다. 어청도에서 가장 높은 주산인 셈이다. 송신탑에서 주고받은 정보를 이어주는 케이블이 길을 따라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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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잘 다듬어 놨다. 어제 갔던 검산봉쪽의 길과는 좀 다르군. 독우산으로 가는 길은 아예 없었다고 봐도 될 정도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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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환형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보이는 시야가 달라진다. 섬에서만 느끼는 상쾌함이 밀려온다. 별로 볼 것도 없을 것같은 길이지만 막상 가보면 정말 볼 것은 없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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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또 볼것도 없는 길을 그냥 가다가 보면 이런 것도 보인다. 해군부대에서 쳐놓은 경계망이다. 산길도 철망을 우회해서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청도를 지키는 해군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면서 진행하면 된다. 특히 한겨울이 되면 모진 칼바람을 온몸으로 막아야 하는 초병들의 수고로움을 생각해 본다. 그 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난민이 되어서 타국의 국경선에서 천막을 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그래서 더욱 행복한 나날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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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망이 있다고 해서 철망만 보면 놓치는 것이 있다. 문득 내려다 본 해변에 보이는 저것은? 이미 구면이다. 첫날에 구유정에서 봤던 그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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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직선기점이다. 영해는 언제 누가 만들었을까? 그것이 궁금해서 자료를 뒤적뒤적....

20191021_072809[인터넷에서 검색한 자료]


1978년도에 만들어 졌네? 불과 40여 년 전이었구먼. 이렇게 검색을 하다가 보면 또 새로운 역사를 한토막 얻게 된다. 박정희 정부가 독도에 영해기점을 만들지 않았던 이유와 그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들이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백령도와 대청도에서는 영해기점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었구나.... 어쩐지... 왜 백령도에서는 영해기점을 못 봤을까? 싶은 생각을 했었는데 원래 볼 수가 없었던 것이었군. 그러고 보니 독도에는 영해기점을 세우지 못한 것이 일본의 눈치를 보느라고 그랬구나.... 쯧쯧!! 어디를 뒤적여 봐도 그 냄새가 풍겨서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왕초보사주학에서 주체정신의 표본으로 삼았던 것을 취소하고 싶어진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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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걷다가 보면 철망도 끝이 난다. 그리고 당산의 정상도 지나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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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당산으로 가는 표지판이 나온다. 어? 여기가 당산이 아니고 좀 들어가야 당산이 있다는 말인가? 잠시 당산으로 가볼까 말까를 생각하다가 말았다. 당산이라면 아마도 당이 있었겠지. 그 당은 성황당이거나 신신당일텐데 그런 것이 있다는 말은 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름만 당산일 것이라는 짐작을 한 것은 마땅히 뚜렷한 길도 보이지 않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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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행을 끝마친 다음에 이렇게 정리하다가 보면 문득, '그냥 헛일삼아서 가볼껄...'하는 생각이 살짝 들긴 한다. 하다못해 '당산터'라는 표식이라도 있으면 사진 한 장은 남을텐데... 싶은 미련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다 둘러보려고 하는데도 가끔은 무심하게 지나치고서 아쉬어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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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 생각도 잠시, 이내 당산의 하이라이트인 봉수대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보통은 봉화대라고 하는데 여기는 봉수대란다. 내력이 있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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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청도의 명소라고 소개가 된 안내지도를 보면, 치동묘, 향나무, 등대, 그리고 여기 봉수대이다. 그러니까 어청도에서 자랑하는 것은 꼭 봐줘야 한다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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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코스의 이름이 '전횡장군길'이었구나. 그렇다면 당산도 전횡장군의 사당길이로군. 그대로 가면 전횡묘로 이어질 모양이다. 물론 길이 없을 가능성이 더 많다고 보면 되겠다. 어쩌면 원래는 당산에 있었던 사당을 마을로 내려다 모신 것으로 보면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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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가.... 많이 아쉽다. 이런 것은 돈이 많이 들어서 못하는 것보다는 성의가 없어서라고 봐야 하지 싶다. 그래도 읽을 수는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인터넷 자료가 더 나으니 관리자도 보수를 할 마음이 없었을 수도 있지 싶다. 애둘러 이해라도 해 보자는 게다.

20191021_075240[인터넷자료]


끝의 구절이 인상적이다. '봉수대를 폐지하고 나서 일본인의 침입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부합이 되는 것일까? 이런 것을 견강부회라고 하면 되지 싶기는 하다. 봉수대()는 불을 피우는 봉(烽)과 연기를 피우는 수(燧)의 돈대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봉화대는 불만 피우는 곳이라는 뜻이 된다면 봉수대의 의미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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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축으로 동그랗게 쌓아올린 대가 잘 보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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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 보면 오목한 자리가 있다. 여기에다가 불이나 연기를 피웠다는 이야기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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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외적들을 감시하고 통보하기 위해서라고 하니까 사진도 서해와 같이 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봉수대 위에서 바다를 바라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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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대를 지나서 계속 걷는다. 서방파제를 향해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저 섬들은 12동파도란 말이지? 12라면 열두개의 섬으로 되어있단 말인가? 정말?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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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라고? 줄잡아도 20개는 되어 보이는데? 그렇다면 12는 어디서 온겨? 그러니까 결과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겠군. 하나는 이름을 붙일 당시에는 섬이 열두 개였는데 그 후로 갈라지고 나뉘어서 이렇게 많아졌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게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면 다른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12를 좋아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나저나 보기에 따라서 숫자는 달라지고, 밀물과 썰물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은 부산의 오륙도와 비슷할테니까 그냥 부르고 싶은대로 십이동파도라고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럼 왜 십이냐? 그야 일년도 12, 지지도 12이니까. 그리고 입맛이 까다로운 서방님을 위해서 고추장 항아리도 열두 개라잖은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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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보면 불탄여가 나온다. 300m란다. 그런데 길이 두갈래이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뉜다. 어느 길이 불탄여냐? 왼쪽으로 좀 가다가 되돌아 왔다. 길도 험하고 한참을 가봐야 바위언덕이나 나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냥 가다가 그쪽 방향을 내려다 보는 것으로 대신하면 되지 싶어서이다. 결론은 가지 않기를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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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걷다가 내려다 보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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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바위무리가 불탄여겠군. 안 가기를 잘 했다는 것은 이렇게 보면 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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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발굼쉽터? 아니 밀밭굼이구나. 여기는 또 뭐람. 물론 거기도 가보지는 않을 요량이다. 삼목여종점도 생략해도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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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황장군길도 여기까지이다. 길의 표시도 샛길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독우산으로 가는 길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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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내려가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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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항했던 마지막 어선도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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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함정만 두 대 남아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도 어청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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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은 해군부대로 출입하는 문이 있어서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낭월이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켜주겠느냐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 행여라도 군사시설을 찍었다고 카메라 보자고 하면 귀찮으니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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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헬기장이다. 주로 군용으로 쓰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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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장의 오른쪽으로 시누대 숲길이 있으니 표시는 없어도 그 길만이 유일하게 마을로 내려갈 수가 있는 길임을 산길로 다녀본 사람은 대충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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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하면 안 된다. 새벽길은 이슬이 덮여있어서 미끄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치를 보다가 쭈~울~떡 미끄러졌다. 미끄러지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실랑강?

시누대를 자른 그루터기가
여기저기 뾰족뾰족하게 남아있는데
지금 미끄러지고 있다.
그리고 엉겹결에 손으로 바닥을 짚었을 적에
그 자리에 하필이면 그 아래에 죽창같은 대나무 뿌리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손바닥에는 참혹한 상처가 날 것이고,
피는 줄줄 쏟아질게다. 

물론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일은 없었다. 그냥 손바닥에 작은 찰과상만 입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서 이내 툭툭 털고 일어났다. 다행히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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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이다. 여기는 어제 새벽에 머릿등을 켜고 올라왔던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도처에서 만났던 그 사나이가 텐트를 거두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설마... 낭월이 꾸당~! 하는 걸 못 봤겠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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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쉼터지만 전망대라고 해도 좋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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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로 샤워를 하고 있는 오징어들로 인해서 어촌이라는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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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제부터 가는 길이 서방파제인 셈이다. 거울같이 맑은 물위로 갈매기떼가 아침먹이를 찾는 중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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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로 가득한 항구는 다시 원래의 고요함으로 돌아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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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특히 활동이 왕성한 갈매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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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파제가 다가오면서 옛방파제가 제모습을 드러낸다. 돌로 쌓은 방파제가 잘 보인다는 뜻이다. 아마도 처음에 어청도항이 열렸을 적에는 동서방파제는 없었을 것이니 유일한 방파제였을 것으로 봐서 그 당시에 얼마나 소중한 방파제였겠는지를 생각해 본다. 돌로 파도를 막는 방파제를 쌓았던 것은 1933년부터 일본군들이 다이나마이트로 산을 폭파하고 그 돌을 날라다가 축대를 쌓은 것이 시초였더란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력을 잘 정리한 자료가 있어서 링크한다.

어청도의 내력에 대한 기록(클릭하세요)

이렇게 링크만 하면 되지 뭐하러 길게 쓰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혹시라도 링크가 사라지면 이렇게라도 써놓는 것이 참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네이버도 언젠가 뿌셔질지 알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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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어청도 일정의 마지막인 서방파제이다. 동이 시작이고 서가 끝이기도 하므로 여정을 잡은 것도 잘 했지 싶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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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은 붉은색이고, 서방은 하얀색이다. 이건 오방색과는 무관하다. 오방색으로 본다면 동방은 청색이지만 등대에 청색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바다의 색과 같기 때문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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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파제의 난간도 그 기능을 잃은지 오래 된 모양이다. 사실 없어도 되었더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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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파제에서 전경을 보면 서방파제가 걸리는데, 서방파제에 서니까 걸리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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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바닷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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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스키인가? 두 사람이 항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그림에 감초가 되어준다. 다만 너무 작다. 좀더 컸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욕심은 끝이 없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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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끝까지 둘러보고서야 아침의 일정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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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파제 뿐만이 아니라 서방파제에서도 열린화장실은 자리잡고 있다. 급하다면 사용을 못할 일도 없지 싶기는 하다. 사방팔방의 조망이 최고일 듯.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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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담아보는 풍경을 마지막으로 서방파제를 향해서 걸었던 길을 마무리 한다. 이제 아침을 먹으면 길떠날 채비를 해야 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