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제23장. 전생록(前生錄)/ 1.고수가 하수에게 묻는 이유

작성일
2020-08-20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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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1] 제23장. 전생록(前生錄)


 

1. 고수가 하수에게 묻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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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하게 밝아오는 새벽을 맞는 기분은 항상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이른 시간에 고요한 마을에서 멀리 농가의 닭이 소리를 높여서 날이 밝아오고 있음을 알리는 소리도 정겨웠다. 조용히 앉아서 찻물이 끓는 소리를 들으면서 무한한 기쁨에 사로잡히는 기분이야말로 삶의 환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자기도 모르게 밖으로 나갔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골목을 산책 삼아서 몇 차례나 오가면서 발바닥에 닿는 촉감을 느꼈다.

춘매의 양생원은 어둠에 잠겨있었다. 아직은 곤하게 잠들어있을 모습을 상상하면서 이 모두가 아름다운 인연이라는 것을 느낀 우창은 하늘을 바라보니 붉게 물들어가는 아침의 동녘이 불타오르는 듯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로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반시진(半時辰)을 서성거리다가 싸늘해진 기운을 코끝으로 느끼면서 방으로 들어가니까 찻물이 언제부터 끓었는지 졸아들어서 다시 물을 추가하고서야 한 잔의 차를 우릴 수가 있었다.

홀로 즐기는 이 순간이 하루 중에서도 가장 충만(充滿)된 시간이었다. 이것은 노산에서도 그랬고, 태산에서도 그랬지 싶었다. 저절로 잠이 깬 이른 새벽의 기운은 항상 새로운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었다. 오늘도 오행의 이치를 궁리하면서 즐겁게 보낼 하루를 미리 축복하는 마음도 저절로 생겨났다. 그때였다.

“어? 오빠, 오늘은 일찍 일어났어? 불을 환하게 밝히고 뭘 하는 거야?”

춘매가 방금 잠에서 깨어난 듯이 부스스한 모습으로 우창의 집으로 왔다. 아마도 식전 차가 생각났던 모양이다.

“아, 일찍 일어났구나. 잘 잤지?”

“그러지 않아도 차가 생각나서 왔잖아. 골목에 차의 향이 가득한데 나올만한 집이 연승점술관 밖에 없더라니깐. 호호호~!”

“봐하니 푹 잘 잤구나. 축하해~!”

“에구, 그게 축하할 일이야?”

“물론이지.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은 멀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에게 밤은 긴 법인데, 그렇게 꿀잠을 잤으니 축하를 하고도 남을 일이지.”

“그렇긴 하지? 새벽부터 오빠의 축하를 받으니까 기분이 더 좋은걸. 오늘 아침엔 콩나물국을 끓여 먹을까? 두부국을 끓여 먹을까? 그걸 물어보려고 왔어.”

우창은 춘매가 그렇게 말해도 알고 저렇게 말해도 안다. 밤사이에 보지 못한 우창을 보고 싶어서 핑계를 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지만 그걸 또 아는체하면 민망할 테니까 짐짓 모른 척하고서 말했다.

“두부국~!”

“그럴게, 근데 콩나물이나 두부나 모두가 같은 재료인데, 두부를 선택한 이유가 뭐야?”

“이유가 있어야되나? 그냥 구수한 두부가 먹고 싶어서 선택했을 뿐이야. 얼큰하게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서 해줘. 새벽에 바람을 쐬었더니 그렇게 먹고 싶네.”

“알았어. 얼른 준비할 테니까 조금 있다가 건너와.”

그렇게 말하고는 차 한 잔을 마시고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또 그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비록 이렇게 우연처럼 만나서 사제(師弟)겸 오누이의 인연을 맺고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으나 지금처럼 아무런 부담이 없이 편안했던 적이 있었나 싶기도 했다. 늘 스승님들과 함께 하는 나날이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몸가짐이나 마음이 조심스러웠었는데 곡부에 와서는 이렇게도 마음대로 일상을 보내는 것이 더없이 안락했다.

잠시 후에 정성으로 차려 준 아침밥을 함께 먹고는 한가롭게 오전을 보냈다. 춘매도 일이 있다면서 건너오지 않아서 더욱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다. 오후에는 잠시 놀러 왔던 춘매가 손님이 왔다고 얼른 건너갔다. 우창은 다시 한가로움을 즐기면서 누워서 천정을 보면서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춘매가 손님이 찾는 소리를 듣고서 얼른 나가보니까 웬 중년의 화상(和尙)이 피로에 지친 몸으로 영생안마소를 두드리는 것이었다.

“스님, 어서 오세요~! 안마를 받으시게요?”

“그렇소이다. 족저안마(足底按摩:발마사지)를 좀 받았으면 싶어서 말이오.”

“잘 오셨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물을 준비할게요.”

“괜찮소이다. 천천히 하시오. 여기에 앉아서 잠시 쉬겠소이다.”

춘매가 화상을 보니까 의외로 소탈해 보여서 부담이 적었다. 원래 출가한 화상들은 대하기가 늘 거북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방문한 화상은 그냥 이웃집의 아저씨 같은 느낌이 들어서 편안하게 물을 끓여서 준비하고는 발을 안마할 적에 쓰는 의자에 앉혔다.

“스님이 찾아오신 것은 참 오랜만이네요. 어디에 계시는지요?”

“성운사(星雲寺)를 찾아가는 길이오.”

“아, 그러시면 곡부에 거처하시는 스님은 아니시네요. 어쩐 일로 공자님의 고향에 낯선 스님이 오셨나 싶어서 반가웠어요. 호호~!”

춘매가 너스레를 떨면서 발을 주물렀다. 오랜 시간을 걸었는지 발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 물집까지 생겨서 바늘에 실을 꿰어서 물집도 해결하면서 천천히 피로를 풀어냈다. 그 사이에 화상은 편안했는지 잠이 들었다. 춘매도 더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두 손에 집중해서 발에 내려 쌓인 피로를 씻어내는 것에만 몰입했다. 그렇게 반시진의 시간이 흘렀다. 발을 만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반시진이었다.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자 비로소 잠에서 깨어났다.

“스님, 많이 고단하셨지요? 발을 보니 많이 고생하셨네요. 오죽 힘드셨으면 안마를 받으시려고 했을까 싶었어요. 많이 피곤하신 듯한데 옆에 누워서 한숨 주무셔도 됩니다.”

“벌써 끝났소이까. 덕분에 많이 개운해졌구려. 고맙소. 수고비는 어떻게 되오?”

“보시입니다. 스님~!”

그렇게 말하면서 합장하고 방긋 웃었다. 스님은 주머니로 손을 넣었다가는 춘매의 말을 듣고서 손을 멈췄다.

“낭자는 불자시오?”

“어려서부터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셨어요. 먼 길에 지친 스님께서 탁발을 오시면 두말없이 공양을 베풀어야 한다고요. 오늘 탁발, 아니 탁발안마를 오셨으니까 스님께 보시할 기회를 주시면 좋겠어요. 호호~!”

“나무아미타불~!”

“찾아주신 인연에 감사드려요~!”

“그런데....”

“예, 스님 말씀하세요.”

“아까 왔을 적에 보니까 앞의 점술관에서 나오시던데....?”

“아, 예, 오라버니가 운영하는 곳이에요. 손님도 없고 해서 차나 얻어먹으려고 갔었거든요. 호호~!”

“점술은 영험하오?”

“그야... 제입으로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잖아요. 그냥 좋은 말만 하는 것도 같고 잘 모르겠어요. 호호~!”

“내가 마침 뭘 좀 알아봤으면 싶은 것이 있어서 말이오.”

“그러셨어요? 그럼 이리 오세요. 제가 안내할게요.”

그렇게 화상을 데리고 점술관으로 들어갔다. 마침 우창도 잠에서 깨어나 세안을 하고는 막 자리에 앉았던 참이었다.

“도사님! 손님을 모시고 왔어요.”

“손님? 아, 어서 안으로 모셔.”

우창도 춘매의 뒤를 따라서 들어오는 화상과 눈이 마주치자 의외라는 듯이 살짝 놀랐다.

“스님께서 이 누추한 곳을 찾아주셨습니다. 성불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춘매가 부산하게 움직였다. 화상을 자리에 앉도록 하고는 이내 찻물을 준비했다. 그리고는 화상에게 인사를 하고는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럼 말씀 나누시다 가세요.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고맙소이다. 여시주(女施主)~!”

우창도 춘매를 제지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슨 이야기가 나올 것인지를 알 수가 없어서 가능하면 손님이 있을 적에는 춘매도 자리를 비켜줬다.

“스님, 반갑습니다. 소생은 우창이라 합니다. 어쩐 일로 찾아주셨는지 여쭤봐도 되겠는지요?”

“아, 우창 선생이셨구려. 소승은 원명(圓明)이라 하오. 오대산(五臺山)에서 수행하다가 곡부에 인연이 되어서 오게 되었소이다.”

“무척이나 먼 걸음을 하셨네요. 곡부에는 어쩐 인연이셨습니까?”

“곡부의 동쪽에 팔보산이 있는데, 그곳의 사찰에서 주지소임(住持所任)을 맡다 달라는 부탁을 받고서 가는 길이오.”

“아, 축하드립니다. 큰일을 맡으셨습니다.”

“그게 축하를 받을 일인지 회피해야 할 일인지를 잘 모르겠단 말이오. 오대산의 방장(方丈)께서 분부하셔서 가기는 하오만 과연 주지를 맡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 명료한 답을 구하고 싶어서 선생을 찾았소이다.”

“그러시면, 뭔가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게 아니라면 당연히 오랜 수행 중에서 얻은 지혜를 인연이 있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는 일에 걱정해야 할 일은 없지 싶은데 말입니다.”

“맞소~! 그 절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앞의 주지가 문제를 일으켜서 그 뒷수습을 하게 될 모양인데, 그것이 그리 간단치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개운치가 않은 까닭이오.”

“아, 이해가 됩니다. 참으로 알 수가 없는 일이니까 아무래도 점신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며, 지금의 생각에 따라서 변경이 가능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오, 우창 선생의 말씀이 참 맘에 드오. 묻는다고 해서 점괘를 찾는 것이 아니라 묻는 말의 내용을 다시 되짚어서 생각해 본 다음에 결행(決行)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은 일인데 참으로 사려(思慮)가 깊은 판단이구려, 내공의 연마가 잘되신 것으로 보인단 말이오. 내가 잘 찾아온 것 같소이다. 어디 점신의 가르침을 좀 들어 봅시다.”

우창도 느낌이 차분해졌다. 그렇게 많지 않은 방문자와 이야기를 나눴지만 오늘 방문한 화상은 말하는 것부터 자못 수준이 느껴졌다. 오히려 우창보다도 더 내공이 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함부로 판단할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언제라도 함부로 판단하지는 않았으나 지금은 더욱 조심스럽게 살얼음을 밟는 기분으로 점괘를 찾아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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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적고 있는 오주괘를 지그시 바라보던 화상의 표정이 신기하다는 모습으로 관심을 보였다. 우창도 봐하니 오행 공부가 좀 있는 것으로 보여서 잠시 감상하도록 기다렸다. 반드시 서둘러서 해석하지 않아야 할 경우도 있기 때문이고,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음, 아무리 봐도 어떻게 해석이 되는지 모르겠소이다. 역괘(易卦)가 아닌 간지괘(干支卦)는 처음 보는 것이오.”

“오주괘(五柱卦)라고 합니다. 중심의 무토(戊土)를 위주(爲主)로 하고 정황을 살펴보게 됩니다.”

“오호~! 그렇다면 신미(辛未)와 신묘(辛卯)는 연월이구료? 경신(庚申)은 지금이 신시(申時)니까 이해가 되었소이다. 그런데.... 정축(丁丑)은...?”

“숨겨져 있는 비밀의 문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하하~!”

우창은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의 문제가 당장 코앞에 있는데도 그것보다는 점괘의 구조에 관심을 보이는 화상의 모습이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들어서 생소하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화상의 진지함에서 고월이 떠올랐다. 이런 때에 철학자는 서로의 거리가 사라지고 학문적인 이치가 두 사람 사이에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토(戊土)를 빈승(貧僧)으로 보는 것이란 말이오?”

“예, 그렇습니다.”

“그것은 명학의 이치와 부합하니 말이 되는구료. 원래 무토는 산승(山僧)이 되지 않소?”

“예? 무슨 말씀이신지요?”

난데없이 무토(戊土)가 산승이라니 무슨 말인가 싶어서 얼떨떨했다. 그러자 화상이 다시 말했다.

“무토(戊土)는 산이고, 술토(戌土)는 더 높은 흙이니 산 위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는 해석도 가능하지 않소?”

우창은 화상의 풀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절반이나 해석이 되어버린 셈이니 오히려 풀이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더욱 재미있었기 때문에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이미 화상은 자신에게 주어진 점괘에 빠져든 것으로 보였다. 가만히 지켜보던 화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선생, 연월간(年月干)의 양신(兩辛)은 사찰(寺刹)로 볼 수가 있지 않소?”

“그건 또 어떤 해석으로 인해서 그렇게 보셨습니까?”

“신(辛)은 절간의 불탑(佛塔)이 되기도 하고, 석불(石佛)이 되기도 하는 것이니 규모로 본다면 상당히 큰절이라고 할 수가 있겠소이다. 참 재미있는 점괘요. 허허허~!”

우창은 화상이 그렇게 해석하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가 동했다. 여느때 같으면 애써서 풀이를 해줘도 듣는 사람은 긴가민가하고 반응하여 답답하기 마련인데, 이렇게 자신의 점괘를 자신에게 맞춰 풀이하게 되니까 그야말로 날로 먹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논리적으로 풀이하는 장면이 흥미진진했다.

“잘 이해하셨습니다. 연월(年月)은 과거지사(過去之事)를 살피는 통로입니다. 월지(月支)의 묘목(卯木)은 어떻게 대입하면 좋겠습니까?”

이번에는 아예 우창이 배우자는 마음으로 화상의 의견을 물었다. 물론 분위기가 그렇게 해도 될 정도이기 때문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화상이 우창을 보면서 생각한 것을 말했다.

“빈승의 판단으로는 묘목(卯木)이 정관인 것은 오대산 방장께서 빈승에게 맡긴 역할인 듯싶소. 방장도 조용히 공부하고 있는 빈승에게 차마 시키고 싶지는 않았겠으나 월간(月干)의 신금은 사찰의 여건에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주지직을 명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오. 어떻소?”

“스님께서는 이미 명학(命學)에도 정통하셨군요. 일목요연하게 풀어내시는 것을 보니 오히려 우창이 한참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 말에는 아무런 답도 없이 시주(時柱)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혀를 찼다.

“쯧쯧~! 어차피 귀찮은 일을 피할 수는 없겠소이다.”

“왜 그렇게 해석을 하셨습니까?”

“시주의 경신(庚申)은 식신(食神)이 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오? 일간의 힘이 넘친다면 오히려 멋지게 해결을 하겠는데, 일간도 묘월(卯月)이라서 겨우 자신을 지키기에도 급급한 상황에서 다시 식신(食神)을 만났으니 빈승에게 주어진 책임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겠소이다.”

“과연~!”

“선생이 공감해 주시니 내 판단이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겠구려. 그렇다면 마지막의 암시가 문제인데.... 비밀의 문이라고 했소이까?”

“편의상 분주(分柱)라고도 합니다. 어떻게 결말이 날 것으로 보이십니까?”

“그야말로 천만다행(千萬多幸)으로 보이는데 맞게 풀이한 것이오?”

“잘 보셨습니다.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원만하게 해결을 하시고 오히려 그로 인해서 새로운 경험까지도 추가로 얻게 될 것이니 결코 헛된 일이 아니라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정화(丁火)는 식신(食神)인 경금(庚金)의 난동을 무마하고, 축토(丑土)는 미력이나마 일간을 도와줄테니 그렇게 해석하면 되려나 싶었소만 과연 그렇게 된다면 마음을 놓고 주지를 맡아도 되겠소이다. 허허허~!”

비로소 웃음기를 띤 화상의 모습을 보면서 우창은 감동했다. 학문의 길은 하나로 통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기도 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의아(疑訝)한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왜 자신에게 앞으로의 일을 묻고자 했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스님께 궁금한 것을 여쭤봐도 되겠는지요?”

“아, 뭔지 말씀하시오.”

“이미 역학의 이치에 두루 밝으신 분께서 어찌 점괘를 얻고자 하셨는지가 궁금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 정도의 혜안이시면 득괘를 하기 이전에 공법(空法)의 관찰만으로도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길은 매우 쉽게 찾아낼 수가 있을 것인데 어인 일인가 싶어서 여쭙습니다.”

“공법은 또 무엇이오?”

“아, 일전에 어느 고인에게서 들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무안계(無眼界:눈의 영역을 벗어난 경지)에서 무의식계(無意識界: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경계)로 흐르게 되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무심으로 관찰하게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혹 그러한 관법을 사용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오, 이제 보니 우창 선생의 학구열이 대단하시구려. 과연 젊은 사람이 점술관을 차렸기에 처음에는 좀 의심스러운 마음도 없지 않았소이다. 그런데 지금 묻는 것으로 봐서는 이미 주객의 개념은 오래전에 사라졌겠다는 것을 알겠소이다. 그래서 또 유쾌하게 되었구려. 허허허~!”

“항상 부족함이 많아서 누구나 스승으로 생각하고 배우는 마음입니다.”

“용한 무당도 자기의 점은 치지 못한다는 말은 들어보셨소이까?”

“아예. 스님은 자기의 머리를 깎지 못한다는 말과 같은 것인가요? 아차~! 하하~!”

우창이 문득 나온 말이 민망했는데 화상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그것은 결이 다른 의미이기는 합니다만, 여하튼 자기의 일을 하기에는 확신이 들지 않는 경우가 있는 법이라오. 그런 경우에는 작은 부추김이라도 해주는 타인의 도움을 힘입어서 풀이하기도 하오. 때로는 스스로 잘 안다고 하더라도 아는 길을 묻는 것처럼 확인하게 되는 때가 있는 것이오.”

“아, 그렇군요. 방향을 잡아주는 촉매(觸媒)와 같은 역할이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보겠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자기 머리를 못 깎는다는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원래 승가(僧伽:절집)는 사제지간(師弟之間)의 인연으로 전승(傳承)되는 것이오. 그러므로 누군가 스승이 되는 스님이 있어서 그 휘하에서 출가(出家)하게 되면 비로소 출가승이라고 하게 되오. 그런데 만약에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서 스스로 자기 머리를 깎고서 법복을 입고 스님이 된다면 그것은 돌중이라고 하고 가화상(假和尙)이라고 하는 것이오. 그러므로 스님은 자기 머리를 스스로 깎으면 안 되는 것이지 손이 안 닿아서 못 깎는 것은 아니외다. 허허허~!”

“아하, 그러니까 처음에 출가할 적에 스스로 깎을 수가 없다는 것이고, 그 후로는 얼마든지 자기 손으로 깎는다는 뜻인가요? 그것도 배워야 하겠습니다.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하~!”

“맞소, 스승이 없이 중이 되면 그것을 가짜 화상이라고 하는 것이오. 그리고 속칭 돌중이라고 부르고, 이것을 잘못 알고서 땡중이라고도 한다오.”

“땡중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땡중의 뜻을 보면 크게는 계율에 자잘하게 신경쓰지 않는 화상을 말하니까 가짜라고만 할 수는 없소이다. 다만 자기 손으로 머리를 깎은 화상도 배움이 부족할 수가 있으니 크게 보면 땡중의 범위에 들기도 하는 것이오. 다른 말로는 땡땡이중이라고도 하는데, 중이기는 한 셈이니 그래도 돌중보다는 땡중이 낳을 것이오. 허허허~!”

“그렇다면, 땡추중도 같은 뜻입니까? 죄송합니다. 어디 물어볼 데가 없어서 궁금하던 것을 스님을 뵌 김에 다 여쭙습니다. 하하~!”

“땡추와 땡중은 같은 말이외다. 보통 화화상(花和尙)이라고 하는데 『수호전(水滸傳)』에 등장하는 노지심(魯智深)의 별명이 바로 화화상이었소이다. 계율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막행막식(莫行莫食)으로 닥치는 대로 먹고 마셔서 붙은 이름이니 쉽게 풀이하면 땡추라는 뜻이기도 하오이다. 허허허~!”

“아하~! 이제 궁금했던 것들이 모두 해소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후학의 작은 안내가 스님의 행로에 방향타(方向舵)가 되었다니 이보다 보람이 있을 수가 없겠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렇지 않소이다. 영감(靈感)이라는 것은 사람은 고사하고, 심지어 풀 한 포기와 마른 막대가 하나에서도 얻게 되는 것이니 이러한 것을 계기(契機)라고 하는 것이오.”

“아, 계기는 들어 봤습니다. 그러니까 후학이 계기가 되었네요. 그런데 스님께서는 오대산에서 어떤 수행을 하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필시 보통의 수행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만....”

“오늘 우창 선생을 만나고 보니까 묻는 대로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발동하는구려. 빈승은 육신통(六神通)을 수행하고 있소이다.”

“육신통이라면....?”

우창은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여섯 신과 통한다는 뜻인가 싶기도 했지만 설마 수행승(修行僧)이 귀신과 무슨 놀음을 할 것으로 생각이 되진 않아서 그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화상을 붙잡고 더 물어야 할 것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숯불을 피워서 찻물을 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