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까이꺼~! ④등반

작성일
2020-09-16 06:47
조회
842

한라산? 까이꺼~! ④등반(登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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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왔구나.....
길은 정해졌다.
이제 부지런히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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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섰다. 숨이 약간 가빠 온다. 아마도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한 압박일 게다. 누구에겐 등산(登山)이겠지만, 낭월에겐 등반(登攀)이다. 등산은 발로만 걸으면 되지만 등반은 손으로도 걸어야 한다. 움켜잡으면서 오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등반이라고 하는 까닭이다. 물론 한라산은 그럴 정도는 아닌 줄이야 안다. 그러나 마음이 그렇다는 말이다. 무사히 해가 지기 전에 두 발로 이 자리에 설 수가 있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입구를 통과했다.

han20200916-002

앗~!
곰방울.....
혼자서 가는 길이라면 챙겼을게다.
다만 한라산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오를 것이고..
그래서 돼지가 달려들 여지는 없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뭔가 쪼매~ 찝찝하기는 했지만 지금에 와서 달리 방법은 없다.
눈썹도 빼놓을 판에 곰방울을 챙기는 것은 더더욱이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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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문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었지만 주의 깊게 읽어보지는 않았다. 화장실을 들렸다 온다던 화인네 부부는 보이지 않는다. 기다리느니 그냥 먼저 출발을 했는데 뒤를 돌아봐도 얼른 오지 않아서 그냥 앞으로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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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입구에서 뚜리벙거리면서 찾고 있을까 싶어서 문자만 보내놨다. 알아서 오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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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다~!
한라산을 올라야 한다는 3년 전의 약속을 지키러 가는 길이다. 백두산에 올랐는데 왜 한라산이 떠올랐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냥 무심코 그렇게 생각이 되었을 뿐이다.

넷이서 뛰기

행복했던 순간이었지. 북파에 올라서 천지를 그대로 마주한 행운이라니....
낭월은 다른 복은 몰라도 사진 복은 있는 것이 확실하다.
아니, 사진 복이 아니라 여행 복인가? 뭐가 되었든 간에 참 좋은 거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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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이 맘에 든다. 깨끗하고 명료하게 표시가 되어 있어서였다. 오늘도 천지에서처럼 물이 있는 백록담을 만나게 되기만을 기대했다. 이제 겨우 600m를 올랐군. 현재 내 위치가 어디인지는 참으로 중요하다. 이것이 중심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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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근만 봐서는 동네 뒷산을 산책하는 느낌이기도 하다. 계속해서 완만한 길이 이어지는구나. 더구나 미끄러지지 말라고 가마니를 깔아놨으니 더욱 여유로워 보이는 길이다. 비단길보다 더 아름다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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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태풍을 겪으면서 얼마나 폭우가 쏟아졌는지 길의 좌우에는 흐르는 물에 씻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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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랄 일이다. 한라산을 오르는데 널빤지를 깔아놓은 길을 만나게 될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런 길을 보면서 문득, 너무 많이 준비를 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뭐야? 이 정도라면 지팡이는 괜히 챙겼잖아...'

계룡산에 살지만 연천봉이 가까이 있지만 절대로 오르지 않는다. 벌써 10여전 전인가? 가족들과 가벼운 마음으로 연천봉에 올랐다가 속된 말로 '죽는 줄'알았다. 대책 없는 돌계단의 높이라니..... 그렇게 연천봉을 다녀온 후로 1년 정도는 무릎에 부담을 느꼈었지 싶다. 그 후로는 절대로 연천봉은 오르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만 바라보는 것이라는 답을 얻었다.

산은 오르는 것이 아녀~!
그냥 바라보는 거여~!

'산에 왜 오르느냐?'고 물으면 그렇게 답한다지? '산이 거기 있으니 오른다'고 그 의미는 참으로 해석불가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이번 생에 그 의미를 깨닫기나 하려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말은 이치에 타당하지 않은 까닭이다. 주체가 내가 아니고 산이라는 말이지 않은가? 그것도 수십 년을 산만 타고 다닌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더욱 요령부득(要領不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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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해발 800m 표시군. 그렇다면 입구에서부터 해발고도는 50m가 높아졌다는 말이네. 키 작은 조릿대가 융단처럼 깔려진 멋진 모습을 보면서 부지런히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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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랑을 건너는 곳에는 목교(木橋)도 만들어놨다. 고맙다. 같은 국립공원이라도 계룡산과 한라산은 격이 다르다. 저마다 자신의 꿈을 담고서 몸을 이끌고 나선 길이었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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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 레일이 보인다. 아마도 물건을 운반할 목적으로 설치했나 싶다. 긴급한 사고라도 발생하면 사용할 수도 있겠네. 돌들이 깔린 중간에 갱목(坑木)을 박아서 길을 보존한 것도 정성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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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남아있는 꽃잎을 보니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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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어지는 길을 보니 묵묵히 따르는 주현이 안쓰럽기도 하다. 주변에 사람이 없으니 대화를 할 상대가 제한적이다. 심심하면 말을 걸어도 되는 존재이고 어디든 가자고 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데려다주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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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주면 책을 읽고, 카메라를 주면 사진을 찍는다. 참 고마운 녀석이다.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겠지만 오늘도 이렇게 홀로 가는 길에 동행이 되어줌에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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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아 내 말 좀 들어봐라'
문득 옛날 강원에서 열심히도 읽었던 글귀가 생각난다.

 

主人公아 聽我言하라
幾人이 得道空門裏어늘
汝何長輪苦趣中고
汝自無始已來로 至于今生히
背覺合塵고 墮落愚癡하야
恒造衆惡而入三途之苦輪하며
不修諸善而沈四生之業海로다


얌마, 아즉도 내 말을 안 듯고 우짤라카노?
올매나 많은 인간이 도를 깨달았건마는
니는 우째 아즉도 고해중에 헐떡이노
아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정
도를 등지고 어리석어 자빠져가꼬
악도에 빠져서 고통을 끊지 몬 하고
공부도 안 하고 참말로 불쌍하데이~!


열심히도 읽고 외웠었는데.... 이제 다 잊어버렸다. 원래 공부는 잊으라고 배우는 것이긴 하다. 오래도록 기억한다는 것은 아직도 이치를 모른다는 까닭이다. 알고 나면 비로소 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교입선(捨敎入禪)이라고 했겠지. 암~!


han20200916-018

아마도 야운(野雲) 스님 상좌가 어지간히도 공부를 안 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한탄하는 글을 남긴 것을 보면 말이다. 40년 전에 읽은 글귀가 아직도 간간이 기억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자유로운 경지는 요원하다고 해야 하겠군.... ㅋㅋ

han20200916-019

길은 가면 줄고
일도 하면 줄고
공부도 하면 는다
만고불변의 인과법이다.
공부했는데 늘지 않는다고?
착각하지 마라
줄지 않으면 늘고 있음을.

han20200916-020

공부길을 가다가 낭월에게 하소연하는 인연을 만나면 항상 해주는 말이다. 다만 전제(前提)는 있다.

「그 길이 깨달음으로 가는 올바른 길일 경우에 한함」

han20200916-024

얼마 전에 만났던 사람이 문득 떠오른다. 30대 후반의 젊은 친구가 찾아와서 방문 기록에 이름을 적고 마스크를 쓰고 앉아서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문자 : 스님, 사주 공부를 10년을 했는데도 왜 사주가 안 보입니까?
낭월 : 와 그라꼬?
문자 : 아무래도 제가 아둔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낭월 : 짜슥아, 조상님 욕미기지 마라~!
문자 : 그럼 왜 그럴까요?
낭월 : 동쪽으로 간다카미 서쪽으로 간거 아이가?
문자 : 예? 무슨 말씀이신지.....?
낭월 : 방법을 생각해보라 안카나~!
문자 : 용신도 배우고... 운도 배우고....
낭월 : 미친노무자슥~!
문자 :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려 주십시오.
낭월 : 음양이 뭐꼬?
문자 : 그야...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고...
낭월 : 아라~ 치아라~! 쯧쯧쯧~!

이런 때마다 원효대사의 말이 떠오른다.

han20200916-025

有智人所行 蒸米作飯
無智人所行 蒸沙作飯 


머리 좋은 사람은 쌀을 쪄서 밥을 짓지만
멍청한 바보는 모래를 쪄서 밥을 얻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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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를 묻는 자는 희망이 있다. 방법을 찾고자 함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정말 행복해지는 낭월이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열정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기 때문이다. 방법이라고 하지 않고 방향(方向)이라고 하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수행은 길이기 때문이다. 어느 방향으로 첫걸음을 떼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전혀 다른 까닭이다. 지금 나는 잘 가고 있는 것이겠지....? 한라산을 가고자 하니까 말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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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을 만났다. 반갑다. 화인은 싱글벙글이다. 이미 몇 차례의 한라산 등산의 계획을 이제야 이루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도착했더니 늦어서 안되고, 다음엔 일찍 왔더니 길이 차단되어서 안 되었더란다. 이번에는 삼세번이라나 뭐라나.... 다행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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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공간이 화들짝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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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밭대피소를 공사하고 있었다.  잠시 화장실에 들렸다가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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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힘 안 드나?
주현 : 참 내, 무신 말을 하고 싶은기고?
낭월 : 나를 만나서 끌려다니느라고 힘들지 싶어서 말이다.
주현 : 그야 딴 놈에게 끌려 댕겨 봤어야 비교라도 할 꺼 아이가.
낭월 : 하긴.... 
주현 : 그러니 무신 원망이 있을 수가 있겠노 말이다.
낭월 : 내가 제일 원망스러웠던 때도 있었던가?
주현 : 당연한 거 아이가.
낭월 : 엉? 언제?
주현 : 행자 한다고 새벽 2시 반에 일나라 칼 때 아이가.
낭월 : 아, 참 까마득한 옛날인데 그걸 기억하나?
주현 : 몸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아이가.
낭월 : 정말 힘들었구나.
주현 : 말인둥~! 자명종 두 대를 켜놓고 일나라카이... 
낭월 : 하하하~! 그랬었지. 미안하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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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그러면 원망 말고 고마웠던 적도 있었어?
주현 : 물론이제.
낭월 : 그래? 다행이다. 언제?
주현 : 이래 말을 걸어 줄 때 아이가.
낭월 : 그래? 그건 몰랐네.....
주현 : 존재감이 있다 아이가. 
낭월 : 아하~! 너는 그게 고맙단 말이냐?
주현 : 가장 슬픈 것은 몸을 종 부리듯 하는 거라 카더라.
낭월 : 자주 말을 걸어 주마.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주현 : 고마 됐다. 어뜩 길이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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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밭대피소로부터 다시 1.5km를 걸었군. A등급이란다. 그래서 길의 표시가 빨간 줄이다. 이제부터는 길도 험해진다는 뜻인 모양이다. 그러려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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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오름.... 많은 사람들이 한라산을 오르면서 목적지로 삼는 곳이기도 하다는 곳이다. 입구에서는 물이 범람해서 출입을 통제한다고 했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그런 표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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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도 된다는 뜻인가? 물론 지금은 앞으로 가야 할 일이 우선이다. 다만 내려오는 길에 혹 시간이 된다면 그리고 체력이 따라준다면 잠시 들려 볼 생각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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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장~ 그만하다. 노랑 길이나 빨강 길이나 별반 큰 차이를 모르겠다. 앞으로 가면 더 험한 풍경이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라면 갈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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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 : 싸부님 쉬었다 가요.
낭월 :  그럴까?

사람들이 모여있으면 반드시 마스크를 낀다.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다만 길을 걸을 적에는 숨이 차니까 아무래도 불편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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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 : 많이 힘들지는 않으세요?
낭월 : 아직은 갈만하네.
호연 : 사람들을 보니까 연령대가 싸부님이 최고령이세요.
낭월 : 원, 그럴 리가? 
호연 : 아닙니다. 한두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젊은 사람들이잖아요.
낭월 : 그렇던가? 그럼 늙은이가 노망이 난 셈이구나. 하하~!
호연 : 대단하신 거지요. 마음은 청춘이시잖아요.
낭월 : 그래서 주현이 고생이지 뭐. 
호연 : 예?
낭월 : 아녀, 그런 게 있어. 하하하~!

호연이 진심으로 걱정을 해 줬던 모양이다. 무거운 삼각대를 대신 짊어지고 카메라도 한 대 떠맡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낭월을 걱정하고 있다. 설마하니 발목이라도 접질려서 짊어지고 하산하게 될까 봐 걱정하는 것은 아닐 테지?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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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이 지켜보고 있다. 다시 장가계의 원숭이가 떠오른다. 장가계에는 원숭이가 있고, 한라산에는 까마귀가 있구나. 뭔가 흘리면 주워 먹으려는 마음이겠지만 우리는 흘릴 것이 없으니 우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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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리의 사람들이 또 올라온다. 우리는 그만 움직이자. 평상도 좁은데 누군가에게 편히 쉬게 하기 위해서 또 비워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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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 움직일 때마다 길은 또 그만큼 줄어든다. 다행히 무릎은 매우 정상이다. 가장 큰 걱정을 했던 것은 옛날에 연천봉을 올랐을 적에 시큰거려서 제대로 딛지도 못했던 고통이 생각나서였다. 또 그렇게 되더라도 오늘의 목적지는 봐야 하겠다는 결심으로 카메라보다 더 먼저 챙긴 지팡이였다. 다만 아직은 꺼내지 않아도 되었는데... 이제는 써야 할 때가 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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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지팡이를 짚은 여인이 낭월의 모습이려니 싶었다. 이제부터는 길도 점점 가파르게 경사가 진 것으로 느껴진다. 입구에서 1km까지는 숨이 차더니 어느 사이에 적응을 한 모양이다. 그러니 몸에게 아니 주현에게 감사를 하지 않을 수가 있느냔 말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크게 말썽을 부리지 않기 때문이다. 가만.... 가장 높이 올라 본 곳이 어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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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에 태로각에서 일월담 넘어가면서 넘었던 무령이 있었군. 3,275m였네. 물론 자동차로 넘었으니 또 다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 정도의 높이에서는 고산증은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ㅋㅋ 그래서 옥룡설산이 궁금하다. 남들은 산소캔을 들고 가기도 한다는데 해발 5,596m라는데 그러한 환경에서도 산소캔을 괜히 샀다고 하게 될지 궁금한데 코로나 땜에 기약이 없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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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同行)

참 좋은 말이다.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서 든든함이라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함께 산을 오르는 맛이 이런 것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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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러가면서 오르느라고 힘의 10%는 여기에 쓰였을 것이다. 어쩌면 조금 더? 여하튼 중간중간에 셔터를 누른다. 마음에만 담아두면 휘발성이라서 점점 사라지고 마는 기억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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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제 저녁을 잘 얻어먹은 것이 다시 고마울 따름이다. 사진으로 남겨놓으면 그 기억이 희미해질 때쯤이면 다시 새록새록 되살아나게 하는 마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추억을 되살라다가 후회하면 이미 늦는다. 다시 이 장면을 담기 위해서 한라산을 오르기에는 너무나 많은 준비가 필요한 까닭이다. 그래서 자꾸만 셔터로 손이 간다. 마지막 1칼로리까지도 모두 소진해야 한다. 몸살이 나더라도 집에 가서 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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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계에서도 그랬다. 사진을 찍느라고 충거리다가 항상 맨 뒤에서 허둥댔었지. 그래서 패키지는 안 가야 한다는 이치를 깨달았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낭월의 걸음이 자꾸만 느려지니 호연의 뒤돌아 보는 횟수도 점차로 늘어난다.

'너무 걱정 말거라 아즉은 개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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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앞이 환해진다. 이제 절반은 온 모양인가? 시간은 출발에서부터 2시간 반이 지났으니 앞으로 남은 시간은 예고한 대로라면 2시간이 남은 셈이다. 아직도.....? ㅠㅠㅠ

han20200916-063

아직 진달래밭대피소까지는 조금 남았구나. 조금만 더 가면 쉴 곳이 나온다는 말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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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진달래밭 대피소다. 이 높은 산에 진달래가 밭을 이루고 있단 말이지? 그런데 괴연 진달래가 맞어? 철쭉이 아니야? 그렇다면 철쭉밭대피소라고 해야 하는 거잖여? 어디....

4fbef9f3e7f7d[인터넷자료]


앗~!
진달래가 맞네. 이렇게 확인을 해야만 받아들이는 의심쟁이다. 혹시 철쭉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진달래가 핀 사진을 봤으니 믿어도 되겠다. ㅋㅋㅋ

han20200916-070

모두는 달콤한 휴식으로 재충전을 하는 모습이 여유롭다. 그럼에도 중간에서 다리를 절면서 하산하던 영감님과 옆에서 안타까워하는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음만으로 안 되는 것도 있음을.....  언뜻 스치면서 들었다. 무릎 연골을 수술했던 남편과 한라산을 오르고 싶었던 아내의 계획이 이렇게 허물어지는 것에 못내 아쉬워하던 여인의 모습....

han20200916-065

모쪼록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면 안 된다. 반드시 후회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상 즉시 행동이다. 생각나면 바로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가능한 선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말이다. 가능하지 않은 생각은 즉시로 삭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 부부처럼 중간에 좌절을 맞보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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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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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조차도 운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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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방광을 비우고 나오니 저 멀리 정상이 보인다. 날씨는 엄청 맑음이다. 상쾌하다. 지나온 길은 모두 잊히고 가야 할 길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그래도 개안타. ㅎㅎ

han20200916-071

호연 : 싸부님 배낭은 제가 지겠습니다.
낭월 : 왜?
호연 : 혹시 무슨 일이라도 나면 큰일입니다.
낭월 : 아직은 개안타~!
호연 : 저는 힘이 하나도 안 듭니다.
낭월 : 그래 알았다. 그래도 내 짐은 내가 진다.
호연 :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낭월 : 호연이의 그 말이 오히려 피곤하다. 고마해라.
호연 : 옙! 그럼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요~!

han20200916-072

봐하니 호연은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 소주도 두어 병은 마셨지 싶은데 젊음이 좋기는 한 모양이다. 팔팔하게 잘도 오르는 것을 보니 말이다. 낭월은 소주 2잔이면 충분해서 더 마시지 않는다. 주현과 대화하면 더 이상은 별로 원치 않는다고 해서 말이다. 필요한 만큼이 정도(正道)인 까닭이다. 부족하면 아쉽고 넘치면 재앙이 발생한다. 그 중간쯤에 머무르는 것이 상도(常道)라고 믿는다. 낭월이 믿는 것은 단지 이것뿐이다. 아, 오행(五行)도 믿는다고 해야 하겠구나. 그렇지만 오행의 생극이치도 또한 상도인 바에는 결국은 믿는 것이 상도임이 분명하다. ㅋㅋㅋ

han20200916-075

너는 누군가 먹고 남는 것을 기다리는구나. 찾아먹는 것보다 그게 더 편하지? 그래 안다. 그리고 얻어먹을 것이 없으면 찾아먹기도 하겠지. 부리가 참으로 듬직하다. 무엇이든 뜯어먹을 능력을 조상님이 주셨구나.

han20200916-077

자, 쉬었으니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하자. 12시 반이 지나면 이 길도 오를 수가 없는 지점이 여기였구나.

han20200916-078

딱 10시에 진달래밭대피소를 통과한다. 여기까지 3시간이 걸렸다. 내려가는데도 3~4시간이 걸린다는 안내판이 공감된다.

han20200916-079

12시 30분 이후에는 정상으로 갈 수가 없고
14시 이전에는 정상에서 하산을 해야 한단다.
여태, 많이 돌아다니지는 않았지만 이런 문구는 처음 접한다.

han20200916-081

다시 또 한 번의 통과자를 체크하는 문을 지난다. 문득 저녁에 아무 데서나 비박을 하고 내일 새벽에 일출을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카운터기를 보면서 그렇게 되면 실종자를 찾느라고 여러 사람이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뒤를 따랐다. 그래서는 될 일이 아니지 말이다. ㅋㅋㅋ

han20200916-085

끝이 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길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다행히도 계단의 높이가 참으로 적당하다. 다시 떠오르는 연천봉의 무지막지한 높이의 돌계단.... 미쳤지 미쳤어....

han20200916-087

화인이 힘들어한다고 생각되었던지 호연이 대신 짊어졌구나. 그래 각시를 잘 챙겨야지. 평생을 동행할 사람 아이가.

han20200916-089

항상 이렇게 좋은 길만 있을 수는 없다.

han20200916-090

비록 험난한 돌밭언덕을 만날지라도 함께 할 사람은 부부뿐이다. 몸이 땅에 묻힐 때까지는 말이다. 아끼고 챙기고 돌봐야 한다. 자신을 빼고는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아내가 다가올 적에 비로소 사람 사는 맛을 느끼게 된다.

han20200916-091

잠시 땀을 들이고 가잔다. 그래서 또 쉬었다. 쉬는 횟수가 점점 잦아짐을 느낀다. 몸이 원하면 들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란이라도 일으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주현아 얼마 남지 않았단다. 조금만 힘내자~!

han20200916-094

미리 준비한 간식도 하나 먹었다. 자유시간이다. 편의점에서 6개를 샀는데 화인도 뭔가를 준비했는지 하나 건네준다.

han20200916-092

에너지바란다. 이름 한 번 유혹적이군. 봉지가 빵빵하다. 기압변화가 있는 모양이다. 천지에서도 과자봉지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었는데 여기에서도 그럴 줄이야....

han20200916-096

또 가자~!

han20200916-098

오르고 또 오른다. 그러다 보면 더 오를 곳이 없겠지.... 아직은 계속 올라야 한다.

han20200916-101

'쉼'은 그래서 좋다. 노래를 해도 쉼표가 있고, 문장을 써도 쉼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길을 걷는데도 쉼표는 반드시 필요하다. '쉼'은 '쉬엄'일까? 서두르지 말고 쉬면서 가야 오래도록 갈 수가 있다는 뜻일까? 누가 그랬노? 쉬지 말고 가라고. 아, 토끼와 거북이에서 그랬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고. 길은 자고로 쉬엄쉬엄 가야 하는 기라. ㅋㅋㅋ

[추가]
이때만 해도 몰랐다. 이 T자형 스틱은 평지용이었다는 것을.
하긴 한라산에 오르겠다고 길을 나선 주제에
운동화를 신고 왔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ㅠㅠ

산을 다녀와서야 바로소 스틱을 공부하게 되었고.
그래서 제대로 된 스틱을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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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문제 없어~!
두랄루민이 뭔지도 알게 되었고
사용법까지도 이해하게 되었으니까
다음엔 또 어디론가 가봐야 스틱값을 뽑을텐데... ㅎㅎㅎ
아니, 산에 살면서 등산용품에 이렇게도 무지할 수가~!


아마도.....
물고기가 물을 잊고 살듯이
산에서 살다보니 산을 타는 도구에 무심했던 걸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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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방을 받아서 졌구나. 그래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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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 옆으로 해발표지석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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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안내판이 있으니 덜 지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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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나무들이 점점 고산증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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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 1km가 남았다고? 얼마 안 남았다는 말이군.... 벌써 시간은 11시가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40분을 더 가야 한단다. 12시에 카메라를 설치하더라도 2시까지는 두 시간의 여유가 있기는 하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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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아이다 아즉도 개안타.
뭐, 이까짓 걸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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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말한다. 아휴~ 언제 저기까지 간담...
입이 말한다. 놔둬라 가다 보면 도달하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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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무거워진 만큼 마음은 가벼워진다. 만고불변의 질량보존의 법칙이다. 고통 후에는 희열이 다르고 안락 후에는 후회가 따르는 법이다.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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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뭐 할라꼬?
화인 : 영상을 좀 찍어 보려고요.
낭월 : 힘들지 않겠나?
화인 : 험한 길은 벗어난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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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설 적에 현피디가 당부했었지. 제발 사람들은 나오지 않게 찍어와요. 그래서 이번에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게 찍을 요량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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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자꾸만 줄어들고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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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환경을 잘 만났다면 아름드리나무가 되어서 어느 궁궐의 기둥이 되고도 남았으련만.... 이렇게 옹이로 철갑을 하고 살아가고 있구나. 그래도 너무 신세한탄을 하진 말거라. 장자가 그카시더라 쓸모없는 나무가 오래 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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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반갑지도 않다. 얼마 안 남았다는 박수소리로 보이기는 한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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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 보니 서귀포는 안개 속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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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세 번이나 발목을 접질렸단다. 그래서 한라산과는 인연이 없나 보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면서 웃는다. 그랬구나. 그래서 뒤처졌던 모양이구나. 그것도 모르고 뭐 하느라고 못 따라오는가 싶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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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이 사라지는 곳에 바위들이 자리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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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구름과 계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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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참말로 다 와가는 모양이다. 실제로 정상은 백록담 맞은편에 있을 테니 50m의 언지리는 길이 아니라고 봐야 할 게다. 그래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되겠다. 시간도 그럭저럭 11시 51분이다.

"다 와간다~~!!"

낭월이 주현에게 주는 희망의 외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