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촉사의 새벽

작성일
2020-08-19 05:52
조회
803

관촉사()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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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에 잠이 깨면 차를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이다. 그런데 가끔은 파르스름한 새벽하늘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래서 주점주섬 사진놀이를 할 살림살이를 챙겨서 멀지 않은 관촉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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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km. 28분이 걸리는거리이다. 새벽은 5시부터 시작이 되니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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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박명이 끝나기 전에만 도착하면 되는 까닭이다. 섬에서는 천문박명이 끝나기 전에 사진놀이를 해도 되는데 육지에서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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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5시 3분에 자리를 잡고 삼각대를 세울 수가 있었다. 새벽의 절간은 조용해서 좋다. 낮에 관람객들로 인해서 부산한 풍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얻을 수가 있다. 관촉사에 대한 이야기는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찾아 볼 수가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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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반야산()에 있는 고려전기 승려 혜명이 창건한 사찰.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968년(광종 19) 혜명()이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 조성한 ‘은진미륵’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한 여인이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꺾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보았더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땅속으로부터 솟아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바위로 불상을 조성할 것을 결정하고 혜명에게 그 일을 맡겼다.


혜명은 100여 명의 공장과 함께 970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006년(목종 9) 불상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불상이 너무 거대하여 세우지 못하고 걱정하던 어느날, 사제총에서 동자 두 명이 삼등분된 진흙 불상을 만들며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먼저 땅을 평평하게 하여 그 아랫부분을 세운 뒤 모래를 경사지게 쌓아 그 중간과 윗부분을 세운 다음 모래를 파내었다. 혜명은 돌아와서 그와 같은 방법으로 불상을 세웠다.


그런데 그 동자들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화현하여 가르침을 준 것이라고 한다. 불상이 세워지자 하늘에서는 비를 내려 불상의 몸을 씻어 주었고 서기()가 21일 동안 서렸으며, 미간의 옥호()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추었다.


중국의 승려 지안()이 그 빛을 좇아와 예배하였는데, 그 광명의 빛이 촛불의 빛과 같다고 하여 절이름을 관촉사라 하였다.


이 밖에도 이 불상에 얽힌 많은 영험담이 전하고 있다. 중국에 난이 있어 적병이 압록강에 이르렀을 때, 이 불상이 노립승(:삿갓을 쓴 승려)으로 변하여 옷을 걷고 강을 건너니 모두 그 강이 얕은 줄 알고 물 속으로 뛰어들어 과반수가 빠져 죽었다.


중국의 장수가 칼로 그 삿갓을 치자 쓰고 있던 개관()이 약간 부서졌다고 하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국가가 태평하면 불상의 몸이 빛나고 서기가 허공에 서리며, 난이 있게 되면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에 쥔 꽃이 색을 잃었다는 등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불상에 기도하면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졌다고 한다. 1386년(우왕 12) 법당을 신축하였고, 1581년(선조 14) 거사() 백지()가 중수하였으며, 1674년(현종 15) 지능()이, 1735년(영조 11) 성능()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관음전과 삼성각()·사명각()·해탈문()·현충각 등이 있으며, 중요 문화재로는 보물 제218호로 지정된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과 보물 제232호인 석등,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인 배례석(),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9호인 석문(), 오층석탑·사적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배례석은 너비 40㎝, 길이 150㎝의 장방형 화강암 위에 팔엽()연화 3개가 연지()에 달려 있는 듯이 실감나게 조각되어 있다.


또 해탈문인 석문은 양쪽에 돌기둥을 세우고 널찍한 판석을 올려놓은 것으로, 창건 때 쇄도하는 참배객을 막기 위하여 성을 쌓고 사방에 문을 내었던 것 중 동문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한 이 절에는 1499년(연산군 5) 가야산 봉서사()에서 개판한 『목우자수심결()』·『몽산법어()』·『심우십도()』 등의 판본이 소장되어 있었다. 이는 범어사의 영명()이 옮겨 보관한 것이었으나, 그 뒤에 해인사로 옮겨갔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관촉사 [灌燭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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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를 하고 있는 목탁소리가 산사에 울려 퍼진다. 흐름으로 봐서 새벽 4시에 예불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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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마친 스님이 동참한 불자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두런두런 들려온다.

스님 : 아니, 깜깜한데 뭘 찍고 있는 거래?
불자 : 부처님을 찍으시나 보네요.
스님 : 뭐가 보이나?
불자 : 보이니까 찍겠지요.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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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스님은 깜깜한 것만 알고, 카메라가 30초에 사진 한 장을 찍을 수도 있다는 것은 모르셨나보다. 장노출로 담는 새벽의 풍경이 좋아서 길을 나선 것인데 사진은 낮에만 찍을 수가 있다는 상식에다가 새벽에 어두워도 찍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는다. 원치 않는 지식전달은 소음에 불과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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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가는 스님의 모습이 찍히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법당에 있는 모습은 잠시 합장하는 1초의 시간을 이용해서 사진을 담았지만 바깥은 아직도 어두워서 1초로는 그림이 되지 않겠기 때문이다. 13초에 담길 인물은 없었다. 그래서 화면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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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끝난 법당의 밝고 풍요로운 모습이 좋다. 가득하게 쌓아놓은 과일들의 공양물의 모습도 여유로워보인다. 그나저나 올해 과일농사는 우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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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로 시작한 사진놀이는 13초까지 줄어들었다. 그 사이에 날이 많이 밝아졌다는 말이겠군. 시민박명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딱 좋은 시간이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풍경의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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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졸졸 흐르는 수각에는 동자와 거북이 놀고 있다. 동자는 관람객들을 구경하기 바쁘고 거북은 어떻게든 밖으로 나와 보겠다고 안간힘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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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박명이 시작되면 동녘에 어둠이 물러가는 빛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른바 '음양상봉시간(陰陽相逢時間)'이다. 음(一)과 양(丨)이 만나니 도(十)의 시간이기도 하다. 도는 항상 아름답다. 한밤중을 지나서 한낮이 되기 까지의 그 중간에 불과 잠시 진행되는 음양의 교체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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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새벽안개와 구름이 뒤섞여서 예쁜 모습은 아니지만, 뭐 그럼 또 어떠랴. 이 시간의 이 풍경이 좋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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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아오면서 어둠이 완전히 사라지고 있었다. 뱀이 보일 정도로 밝아져서야 오솔길을 걷는다. 언제 봐도 넉넉한 불상이다. 미륵보살이라고도 하고, 관세음보살이라고도 한다. 이름이 불분명한 불상으로도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이마위의 보관에 황금불상이 있었다는 말도 있어서 관세음보살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런데 그 불상은 독립운동의 자금으로 쓰기 위해서 떼어졌다는 설도 있는데 그렇다면 관세음보살이 분명하지 싶다. 그리고 또 다른 전문가의 글을 보니까 일제시대에 일본 사람이 그물을 타고 올라가서 떼어갔다는 말도 있는데 오히려 이 말이 더 그럴싸 하게 들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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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불균형한 형상이지만 옆집 아주머니 모습을 닮은 후덕한 모습은 누가 봐도 마음을 푸근하게 해 준다. 그리고 이 얼굴은 타로 카드 한 장을 볼 때마다 떠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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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바 파드마가 은진미륵의 얼굴을 본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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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각으로 오르는 길은 한 여름의 아침 풍경을 장식하는 배롱꽃이 곱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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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촉사의 전경이 꽤 짜임새가 있어졌다. 대광명전이 들어서면서 허전했던 터가 꽉 찬 느낌이 들었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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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참배를 하러 온 여인이 운장대로 향하는 것을 기다리면서 셔터속도를 8초로 조정했다. 이미 날이 밝아져서 조리개는 F22로 조여야 했다. 여인의 실루엣과 함께 회전하는 운장대를 담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해서 멋진 그림을 얻을 수가 있었다. 마침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도 인연이려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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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불과 5초 후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운장대는 멈췄고, 운장대를 딱 한 바퀴 돌리고 난 여인은 운장대를 떠났다. 그야말로 딱 한 장의 사진을 찍을 시간만 주어졌던 셈이다. 그래서 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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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뒤를 따라서 입구로 향했다. 매표소에는 입영장병은 무료입장이라고 써붙여 놨다. 논산다운 문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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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는 메뉴판을 찍고 사찰에서는 매표소를 찍는다. 요금에 대한 정보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할 수가 있고, 개방시간도 유익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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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관촉사를 방문하게 되면 이러한 길을 걷게 될 게다. 표를 사고 나면 천왕문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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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이 있으니 나름 구색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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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를 든 천왕은 북방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이고, 검을 든 천왕은 동방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 이다. 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라는 말인가? 너무 많은 일을 맡겼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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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용을 들고 있는 천왕은 남방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인데 오른 손엔 용을 들고 왼손에는 여의주를 들고 있다. 그 옆에서 보탑을 들고 있는 천왕은 서방의 광목천왕(廣目天王)이다. 옛날에는 딸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면 절로 데리고 가서 사천왕상을 대하게 했다는 말도 있는데 가녀린 어머니의 염원이었으려니... 싶기도 하다. 사천왕상의 용모를 보고서 놀라서 아기가 태어나지 않기를 바랬던 모양이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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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얼마 되지 않는 거리지만 계단으로 깔끔하게 만들어 놓은 계단이 꽤 경사가 있는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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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이 보이는 길 왼편에는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이승만박사추모비란다.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만 왠지 불편해 보이는 것은 사념이려니 싶기도 하다.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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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촉사로 오르는 옛길이라고 해야 할랑강.... 사찰의 출입문으로는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는 석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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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을 생각하면서 해탈문으로 들어가 본다. 그리고 해탈문을 프레임삼아서 미륵전의 사진도 한 장 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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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기도하던 대광명전의 모습도 밝은 날에 다시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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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도 포함시켜 줘야지 싶어서 또 한 장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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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전에서 바라보는 미륵불의 모습도 관촉사의 진기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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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기도를 할 적에는 사진을 찍지 말라는 안내문이 입구에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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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날이 완전히 밝았다. 그만 귀가해야 할 시간임을.... 마지막으로 가장 상투적인 관촉사의 사진도 한 장 담아 놓는다. 누군가 관촉사의 자료를 찾는다면 이러한 풍경도 도움이 될 수가 있으려니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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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설모 한 마리가 아침예불을 하러 쪼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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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너도 다음 생에는 인도환생(人道還生)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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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에는 아이들이 장난으로 돌을 놓고 불탑이라고 기도해도 성불한다고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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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구~! 절도 잘 하네. 그래, 기도 많이 하고 가거라. 나도 그만 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