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서 하룻밤

작성일
2020-02-24 07:52
조회
934

순천에서 하룻밤


(여행일: 2020년 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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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향했던 노선이 갑자기 바뀌게 되었고, 그래서 고속도로의 눈보라를 피해서 내린 곳은 승주IC이다. 승주의 주변에는 숙소도 보이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서 차를 세운 다음에 폰을 들고 하룻밤 머물 곳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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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가 봤던 곳이라면 나름대로 자신의 경험이 담긴 정보가 포함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경우에는 별 많은 곳이 장땡이다. 중요한 것은 맨 처음으로 나온 곳이 별을 독보적으로 받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모두 다 믿을 것이 아닌 줄은 잘 안다. 그냥 참고할 적에 모두를 다 거짓이라고 할 필요까진 없다는 이야기이다. 리뷰까지는 읽어 볼 겨를이 없다.

"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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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바위한옥펜션을 목적지로 삼고 살금살금 진행했다. 9분 거리로군. 어둡기 전에 잘 자리를 찾아서 다행이다. 묵묵히 운전하던 연지님이 말했다.

연지 : 방이 있는지 전화를 해 봐.
낭월 : 그럴까? 방이야 많겠지 뭘.
연지 : 그래도 모르잖아. 문을 닫았을 수도 있고.
낭월 : 맞아, 조수가 할 일이 그런 거잖아. 하하~!

전화는 바로 연결이 되었다.

낭월 : 덤바위지요?
주인 : 예, 맞습니다.
낭월 : 하룻밤 묵으려고 하는데요.
주인 : 몇 분이십니까?
낭월 : 두 사람입니다.
주인 : 그런데 한옥은 추워서 안 되는데요?
낭월 : 그럼 어디가 됩니까?
주인 : 양옥이 있습니다. 방도 바로 데워집니다.
낭월 : 좋습니다. 잠시 후 뵙겠습니다.
주인 : 예.

일단, 입방이 허락되었다. 연지님은 눈보라 속에서 머물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푸근해 지는 모양이다. 낭월의 계획은 다시 0점에서 출발하기 시작했다. 계획을 세우는데는 3분이면 족하다. 덤바위에 도착하기 전에 내일아침까지의 일정표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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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다 왔다. 우회전~!
연지 : 금방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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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언덕 위에 있어서 조금 염려가 되기는 했다. 밤에 눈이 내리게 되면 내일 새벽에 선암사를 가는데 차를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뒤를 따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행은 직진이다. 이미 평가에서 별을 봤기 때문에 내일 새벽은 내일 걱정하는 것으로 빠르게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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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도착해서 바라본 조계산은 눈구름 사이로 옅게 보였다. 저 산 자락에 선암사가 있겠구나.... 내일 새벽에 찾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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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바위펜션이 아무래도 오래 된 모양이다. 지도에 표시되는 것을 봐서이다. 어쩌면 검색을 한 곳을 위주로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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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버스승강장 기준으로 '괴목'이로군. 눈발은 다시 쏟아지고 있다. 눈 속의 선암사 풍경을 상상했다. 살아있는 것은 정치 만이 아니다. 여행가의 일정도 항상 살아서 꿈틀댄다. 일단 우리에겐 잠을 잘 곳이 있다. 내일 새벽에 어둠 속에서 골마루 기와에 눈이 자욱하게 쌓인 모습이 보고 싶구나. 10분 전 마음과 10분 후 마음이 이렇게도 달라진다. 그래 자꾸 쏟아져라 펑펑~!!

마당에 차를 대니까 기다리고 있었던지 주인장이 얼른 나와서 객을 맞는다.

주인 : 어서 오십시오.(아마도 전라도 사투리였겠지만..)
낭월 : 하룻밤 묵겠습니다.
주인 : 조금 있으면 방도 따뜻해 질 겁니다.
낭월 : 참, 비용은 얼마입니까?
주인 : 5만원만 내시지요.(라는 뜻에는 평소에는 더 되었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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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 : 배 고파~!
낭월 : 그래 밥부터 먹고 쉬자.

멀리 갈 것도 없다. 덤바위에서 내려오니 바로 나타나는 덕정가든이란다. 이름도 좋군. 덕정이면 배를 든든하게 불려주는덕(德)과 따뜻한 마음정(情)이겠거니. 나중에 알았지만 이 일대는 숙박단지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산골에 숙소와 음식점이 많았으니 읍내에서 괜히 서성이지 않은 것도 오늘 잘 한 것중에 하나였던 셈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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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산마루에 걸린 시간에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4시 50분이다. 어둡기 전에 자리를 잡았다는 안도감으로 시장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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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뭘 드실쳐?
연지 : 닭은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
낭월 : 아무래도 그렇겠지.
연지 : 흑돼지떡갈비로 할까?
낭월 : 그러렴. 염소는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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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판 옆에서 고기가 잘 익도록 챙겨주는 아지매는 동남아에서 온 모양이다. 왜 그렇게 조용한가 했더니 연지님이 귀뜸을 해 준다. 외국인이라고. 정성스럽게 구워주는 것을 보니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잘 구워줄 것 같은 마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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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새벽에 움직이려면 든든히 먹어야 한다. 불에 탄 부분이 신경쓰였지만 숯불에 구우려면 어쩔 수가 없다. 그 정도는 감안하고 수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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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했던 차에 든든하게 먹고는 숙소로 올라왔다. 주인장이 부지런히 보일러를 돌린 덕분에 안의 공기는 벌써 온기가 돌았다.

연지 : 깨끗하고 좋아요. 잘 찾았네.
낭월 : 그 사이에 바닥도 따뜻해 졌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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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눈이 쏟아져도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도 따끈따끈하다. 보일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방은 두칸이다. 돌아다녀봐도 5만원 이하로 따뜻하게 머물 곳은 발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5만원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10만원을 받겠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는데 다행이고 말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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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내일 꽃구경도 갈까?
연지 : 이 눈 속에? 
낭월 : 아무래도 좀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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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누워서 뉴스를 보면서 담소하는 시간도 여유로워서 좋다. 집에서 출발하면서 챙겨갖고 온 믹스커피도 한 잔 하면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담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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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뉴스에서는 역시 사매터널의 사고에 대한 소식이 주요 뉴스로 등장을 한다. 까스차량이 있어서 사상자도 더 생겼을 것이란다. 오히려 코로나19는 추가확진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뉴스(이때까지만 해도)가 다행스럽기도 하다. 이대로 조용히 마무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안고 하루를 마무리 했다.

선암사 이야기를 쓰려고 시작했는데
수다가 길어져서 나눠야 하겠다.
누구 맘대로? 낭월 맘대로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