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십우도(十牛圖) <곽암화상>

작성일
2010-01-24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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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도] 심우(尋牛): 소를 찾아 나서다
 
 
 
 1 尋牛頌:

 茫茫撥草去追尋,水闊山遙路更深


 力盡神疲無所覓,但聞楓樹晚蟬吟。


     우거진 풀숲을 헤치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찾아서 헤매니
      강은 더욱 넓어지고 산은 점점 깊어질 뿐


아무리 애써서 찾아다니건만


들리는 것은 단풍나무에 매달린 해질녁의 매미소리

 
 


[2도] 견적(見跡): 자취를 보다



 
 


2 見跡頌:




 水邊林下跡偏多,芳草離披見也麼


 

   縱是深山更深處,遼天鼻孔怎藏他   

         



개울가의 수풀 아래에 어지러이 흩어진 것은?



 

그렇게도 찾아헤맨 소 발자욱여기 저기 널려 있구나



 

비록 산이 깊고 또 깊다고 한들



요천비공(遼天鼻孔)을 어찌 숨길 수 있으랴.


 
 
[3도] 견우(見牛): 소를 발견하다



 

 


 
3 見牛頌:



 黃鸚枝上一聲聲,日暖風和岸柳青


 只此更無迴避處,森森頭角畫難成。




노란 꾀꼬리가 꽃가지 위에서 노래하니


 

따뜻한 봄 바람에 갯버들이 춤추네





다만 여기에서 피할 곳도 못찾을 곳에서



수풀 속에 보이는 것은 소머리의 뿔 아닌가.

 
 


[4도] 득우(得牛)
 


 
 
4 得牛頌:




 竭盡精神獲得渠,心強力壯卒難除


 有時纔到高原上,又入煙雲深處居。



온 힘과 정신을 다해서 코뚜레를 뀄건만



힘이 넘치는 녀석은 아무리 잡아 당겨도 움직일 맘이 없네



가끔은 이끌려 오는 듯도 하건만 잠시 후엔 도로 제자리
 

다시 또 안개 자욱한 깊은 골까지로 파고 들어가는구나.
 



 


 


 

[5도] 목우(牧牛)
 


 



     5 牧牛頌:

   鞭索時時不離身,恐伊縱步入埃塵
   相將牧得純和也,鞭鎖無拘自逐人。


채찍을 곁에두고 때대로 휘둘러 보는 것은




혹시라도 저 녀석이 먼지 속으로 들어갈까 경계할 뿐




비로소 길들여서 서로를 받아들이니


 


고삐를 잡아채지 않아도 저절로 따르는구나.



 
  [6도] 기우귀가(騎牛歸家)
 
   
 



    6 騎牛歸家頌:

   騎牛迤邐欲還家,羌笛聲聲送晚霞
   一拍一歌無限意,知音何必鼓唇牙。

       소의 등에 올라앉아 이리흔들 저리흔들 집으로 오는 길에


       피리소리도 낭랑하게 태평가를 빗겨불며 저녁노을 보내니


       한 곡조 한 가락의 한없는 깊은 뜻을

       그 아무도 몰라준들 무슨 필요 있을까-나 홀로 즐거울 뿐.




 
  [7도] 망우존인(忘牛存人)

 


 
 
 7 忘牛存人頌:

 騎牛已得到家山,牛也空兮人也閑
 紅日三竿猶作夢,鞭繩空頓草堂間。



얻은 소를 타고 산속으 내 집에 돌아오니 
 

소는 이미 없어지고 사람 또한 한가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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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도록 늦잠자고 늦으막에 한바땅 꿈속인듯
 

채찍과 꼬삐는 이미 쓸모없이 마당가에 버려졌네.



 

[8도] 인우구망(人牛俱忘)
 


 
 
 8 人牛俱忘頌:




 鞭索人牛盡屬空,碧天遼闊信難通


 紅爐燄上爭容雪,到此方能合祖宗。



채찍과 꼬삐와 사람과 소를 모두 잊어버렸으니


 

푸른 하늘만 광활한데 무슨 소식인지 알기 어렵네





타오르는 불꼿 위에 백설이 난무하니
 

이 경지에 도달하여 비로소 조사의 뜻과 부합되네.

 



 
[9도] 반본환원(返本還源) 
 


 


 
 9 返本還源頌:




 返本還源已費功,爭如直下若盲聾

 庵中不見庵前物,水自茫茫花自紅。



어차피 본래로 돌아올 것을 공연히 애썼구나


눈 멀고 귀 먹었어서 괜히 싸움을 벌였구나



 

집 안에 앉아서 뜨락의 한 물건을 보지 못하였던고?


물은 은 저절로 흐르고 붉은 꽃은 그 위로 아득히 흘러가네.


 


 


[10] 입전수수(入廛垂手) 
 


 


 
 10 入廛垂手頌:





 露胸跣足入廛來,抹土塗灰笑滿腮


 不用神仙真祕訣,直教枯木放花開。  
 


가슴을 드러내고 맨발을 한 채로 저자거리에 들어가니


흙먼지와 재를 덮어써도 얼굴에는 한 가득 웃음일세



 

신선이 되는 비결인들 무슨 소용 있으랴


곧은 가르침 한 마디에 마른 나무에 백화가 만발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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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규모가 있는 절의 벽화를 보면 십우도가 그려 있습니다.


 

그만큼 벽화의 베스트셀러라고 할만 하겠네요.


 

그림이 앙징맞아서 찾아다 넣었습니다.


 

작아도 표현이 잘 되어 있네요.



수행자가 깨달음의 단계를 열 가지로 나눠서 이해하도록


 

그림으로 설명을 한 것인데


 

여기에서 사람은 마음이 되고


 

소는 몸이 된다고 해석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좀 더 높은 단계로 본다면


 

사람은 의식이고 소는 무의식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그것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네요.
 


원래는 이 그림이 8단계까지 되어있었고, 


 

도가(道家)의 깨달음에 대한 과정으로 표현이 된 것이었는데,


 

곽암화상이 가져다가 불가(佛家),


 

특히 선가(禪家)의 깨달음 과정으로 인용을 했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원래의 그림에다가 9도와 10도를 추가했다고 합니다.



도가에서는 우화등선하여 신선이 되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반해서 불교의 수행은 다시 보살의 행위로


 

중생을 구제하러 마을로 내려간다는 의미로 묘사가 되어 있는데,


 

어쩌면 당시의 도가와 불가의 경쟁적인 느낌도


 

조금은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마지막 구절에서 '不用神仙真祕訣'이라는 것은


 

과연 선도의 수행을 좀 깎아 내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왜 그랬는지는 본인만 안다고 하겠네요.


 

아마도 극우파에 속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용히 음미를 하면서 살펴보노라면


 

수행의 진행이 단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어서


 

가끔은 생각이 나는 그림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담아 봤습니다.
 


대만 사이트에서 옮겨와서 편집을 했더니 

줄간격 등이 정확하지 않네요. 참고셔서 봐 주시기 바랍니다.







 


             2010년 1월 25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