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7] 체면과 욕망의 사이에서

작성일
2015-10-15 07:18
조회
4146

[677] 체면(體面)과 욕망(慾望)의 사이에서.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너무나 좋은, 그러나 순식간에 지나가고 말 계절, 늦가을입니다. 선풍기와 에어콘은 휴식으로 들어가고, 대신에 새벽으로는 바닥에 불을 쪼금 넣고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하는 시월입니다.

 

이런저런 축제는 또 왜 그리 많답니까? 공주부여의 백제문화제를 비롯하여, 논산은 상월의 고구마축제와 강경의 젓갈축제까지~~ 신나는 가을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면들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오늘은 체면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욕망도 함께 생각해 봐야 철학자의 사유겠거니 합니다. 체면만 강조하면 공자님의 가르침이 되겠지만 그 안에서 꿈틀대고 있는 욕망까지도 생각해야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다고 않겠느냐는 생각을 짐직 새 보는 것이지요. 벗님은 체면과 욕망의 사이에서 어디 쯤 머물러 계실까요?

체면욕망

막대표로 나타내면 대략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마다의 심성이 있어서 어떤 사람은 이성적인 부분이 강해서 체면에 손상이 가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감성적인 부분이 강해서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어렵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60억 가지의 서로 다른 균형의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도인은 중간에서 머무를 것이고, 종교인은 이성쪽에 머물러야 한다고 강요를 받을 가능성이 많겠네요. 그리고 아무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사람은 감성쪽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한다는 것이겠군요. 그런데 감성과 욕망은 뭔가 살짝 어울리지 않는 것같은 느낌도 있지요? 비록 감성이라고 하면 시(詩)라도 써야 할 것 같고, 욕망이라고 하면 탐욕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본질로 들어가면 별반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앗,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은 뭐지요.......?

오호라~! 프랑스의 깃발이 갖고 있는 색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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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잘 펄럭이는 깃발입니다.

어쩌면..... 프랑스의 깃발이 갖고 있는 뜻도 이성과 감성과 그 중간을 나타내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냥 설명하다가 보니까 그렇게 생각이 된 것 뿐이니 혹 실제로는 어떤 뜻이 있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프랑스는 감정적인 영역의 예술이 발전한 나라인가 싶기도 하네요. 그리고 균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기도 합니다. 그냥 지나는 길에 생각해 본 것이니 너무 많이 생각지는 말라는 말씀으로 슬그머니 넘어갑니다. 하하~

 

1. 욕망(慾望)의 흔적


실은 백제문화제에서 찍어 온 사진을 정리하다가 이야기의 코드를 찾았다고 해야 하겠네요. 욕망이 이끄는대로 가는 사람과 이성으로 브레이크를 걸고 있는 사람에 대한 차이점을 생각해 봤던 것이지요. 먼저는 카메라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말하지면 오늘은 그와 짝을 이뤄서 사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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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입니다.

새들이 높은 나무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서 새끼를 키우고 있습니다. 저렇게 높은 곳에 집을 지은 이유를 새들만 알겠습니다만. 동물이나 인간의 공격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자리를 찾다가 보니까 최대한 높은 곳으로 올라간 것이겠거니.... 합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서 자연을 느끼고 조화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쩌면 감성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다만 이성의 상대쪽에 욕망을 놓고 이야기를 하려니까 감성은 희생하고 그 자리에 욕망을 넣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성적으로 체면을 구기는 일에 대해서는 범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이러한 사진을 찍었다고 가정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모 프로사진가의 행위에 대해서 비난의 여론이 일어났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사진계에서나 거론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환경을 훼손한 일로 해서 방송에서 보도를 하게 되었던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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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것은 카메라를 든 사람이 갖는 욕망일 것입니다. 그 둥지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가 궁금하고 또 그것을 찍음으로 해서 자신은 남들보다 색다른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는 욕망의 충족감을 즐기려는 마음이라고 한다면 크게 틀리지 않았을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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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비난을 감수(甘受)해야만 합니다. 자연파괴자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고, 이기적으로 자신만 생각한다는 비난도 일어날 수가 있는 것이지요. 낭월이 사진에 대해서 매료되는 것 중에 하나는 사진을 통해서 자신의 본성이 드러나는 것 같더란 말이지요. 감춰진 내면을 사진과 만나게 됨으로 해서 관찰하고 점검할 수도 있는 도구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지요. 언제나 카메라를 손에 들게 되면 욕망과 체면의 줄다리기를 해야만 하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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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본의 아니게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이 사진을 찍은 사진가는 전쟁과 기아의 참혹함을 알려야 하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반전의 발화점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그러한 면을 봐주는 사람도 있지만, 또 다른 사람은 아이가 죽어가는데 사진만 찍고 있었느냐는 비난을 퍼부었다지요.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낭월도 사진부터 찍고 아이를 구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우짭니까?


당연히 이 사진을 찍은 사진가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비난의 압박에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가 안타깝게 전해 졌습니다. 또한 스스로의 선택이려니 싶으면서도 너무 남의 일에 깊이 간여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해 보네요. 요즘 인터넷에서 여론몰이로 연예인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어보이기도 합니다. 욕망과 보도성, 욕망과 체면, 욕망과 재미.......


그냥 마음 속으로 갖고 있는 욕망이야 아무도 알 수가 없으니까 비교적 안전하다고 하겠습니다만, 그것이 사진으로 드러나게 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저녁에 부엉이 둥지에 조명을 설치하고 부엉이가 둥지에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촬영을 한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놀랍다는 충격을 받게 되지요. 처음 보는 이미지의 놀라움이라고나 할까요? 욕망의 전달은 이렇게도 빠릅니다. 그리고 점점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됩니다. 밤새에게 이 조명은 어떤 피해를 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해 보고, 그야말로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각에서 찍히는 피사체의 입장으로 바뀌어가는 마음의 흐름이라고 할까요?


혹, 너무 밝은 조명으로 인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새끼들을 해코지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순간적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어서 나무를 들이받고 떨어져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가는 것은 너무 넓은 오지랍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냥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보면 점점 그 이미지는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욕망의 죄악이 무엇인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지요.


부여에서 백제문화제가 있었습니다. 폐막식을 앞두고 거리행진을 하더군요. 평상시에는 보기 어려운 행렬인지라 사진이라도 남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순서대로 진행하는 모습을 담고 있었는데.....

한담용

갑자기 이러한 장면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낭월도 얼굴을 조금 찌푸렸을 것입니다. 내가 여기에 서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은 행렬을 찍기 위함인데 장애물이 나타났으니 즐거울 리는 만무한 까닭이지요. 얼른 떠오른 문구는 '진상'이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신의 목적만 달성하려는 사람에게 붙여주는 속어겠지요?


그런데 그 장면이 지나가고 잠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분노의 이면에는 자신의 욕망이 잠자고 있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게 되자 문득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뭐... 반성이라고 보다는 이해를 하게 되었다고 해야 하겠네요. 왜냐하면 어느 사이에 낭월의 마음도 그러한 장면을 담고 싶다는 충동이 있었다는 것을 잠시 후에서야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 어르신의 나이는 70대 중반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삼각대며 카메라 살림살이를 보면 여간 많은 투자를 한 것이 아니란 점도 이내 알 수가 있겠습니다. 사진을 찍는 것이 인생의 모든 재미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의 장비들입니다. 아마도 나이 들어서 즐길 수가 있는 취미로 사진 만한 것도 흔치 않을 것이란 생각도 해 봅니다.


나름대로 자중을 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으셨습니다. 그러다가 선녀들이 나타나자 욕망이 체면을 눌러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어르신은 분명히 아니셨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선녀들의 모습에 셔터를 누르다가 보니까 어느 사이에 행렬 속으로 빠져들어버린 것이라고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한 것을 확실히 느낄 수가 있는 것은, 자신의 모습이 행렬을 가로막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한 순간, 얼른 뛰어나오는 황망함에서 충분히 전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카메라에는 낭월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 담겼겠지요. 미모의 선녀들이 정면에서 방글방글 웃으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걸어오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 순간에 배터리가 나가버리거나, 메모리가 다 차버리는 불상사가 없었다면 말이지요. 하하~


그러면서 낭월은 팔자에 정관(正官)이 버티고 있는 바람에 감히 그 어르신처럼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 예, 아쉬움이 물결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반성했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정면에서 찍으나 옆에서 찍으나 결국은 백제문화제의 행렬일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자신의 내면에서 웅크리고 있는 체면을 탓하면서 어르신의 모습이 이제는 진상이 아니라 솔직함으로 생각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완전히 죽솥입니다.



2. 도인의 감정이란.....


문득 수행자의 마음을 떠올려 보게 되는 것도 그와 동시였습니다. 그러면서 영화배우 안성기 씨와 철학자 도올 선생의 이미지가 겹칩니다. 벌써 수년 전이었는데, 패션쇼를 하는 곳이었지 싶습니다. 미녀들이 멋진 걸음걸이로 자신의 매력을 뽑내고 있는 장면이지요.


카메라가 도올 선생을 비췄을 적에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아마도 그 방송을 보셨던 시청자는 모두 같은 장면을 보셨을 것입니다. 검색을 해보니 여전히 그 장면은 인터넷에 살아있구먼요. 가져와봅니다. 재미있으니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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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장면을 봅니다. 그리고 또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순간적으로는 노인네가 색을 밝힌다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자연스러운 마음의 흐름이겠거니....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옆에 앉아있는 안성기씨의 모습이 참으로 대조적입니다. 어떻게 보이십니까? 체면을 잘 지키고 있는 모습이네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부여에서 저 사진가를 보는 순간 도올선생이 오버랩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일까요? 도인스러움이란 또 무엇일까요? 이런 생각을 해보면서 체면과 욕망의 사이를 가늠해 보게 됩니다. 이 사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1) 주책이셔~~!!! 체통없으시게~~~
2) 본능과 체면 사이에서 갈등하셨구먼....
3) 마음이 이끄는대로 나타난 모습이니 솔직하시잖여~
4) 위선자와는 다른 모습이라고 봐야지....


어느 것이든 모두 이유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낭월의 생각은 3번입니다. 왜냐하면 비난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에 대고 비난하는 것일테니 말이지요. 물론 이러한 경지를 벗어났다면 그냥 빙그레~ 미소를 짓겠지요. 누구나 오욕칠정의 지배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을 얼마나 드러내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그렇다면 도인은 욕망을 다 벗어난 존재일까요? 뭐, 그럴 수도 있습니다. 다만 낭월이 이해하기에는 도인은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라고 하는 말에 믿음이 갑니다. 그러니까 보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아서 항상 가만있지 못하는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이해를 해 보자는 것이지요. 이렇게 놓고 보면 도올 선생의 시선에 대해서 순수한 느낌을 받기도 하네요.


그렇지 않은 경우는 옆의 안성기 씨를 보면 됩니다. 요지부동이지요. 그가 입산하여 수도를 한 다음에 애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인이 된 사람이라면 그렇겠거니.... 하겠습니다만 일반인이라는 것을 전제로 봤을 적에는 체면이 눈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며, 오랜 시간을 카메라에 익숙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잘 알고 있는 배우임에 틀림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훈련이 된 것이지요.


그에 비해서 도올 선생은 순수합니다. 훈련도 되지 않았지요. 그리고 백제문화제의 어르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훈련이 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잠시 사람들의 눈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또한 철학자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순수한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감정폭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모습에서 엄숙하기조차 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니까 안성기 씨의 모습에서는 위의 그림이 떠오르고, 도올 선생의 모습에서는 아래의 그림이 떠오른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좌우로 열심히 구경하는 모습에서는 천진한 어린 아이의 자유로운 감정이 느껴지네요. 패션쇼를 하는데 뭐하러 갔겠어요? 당연히 미녀들의 늘씬한 몸매를 구경하러 가는 것도 한 몫이 된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냔 말이지요. 그렇다면 즐겁게 보면서 욕망의 출렁임을 느껴보는 것이 무슨 허물이 되겠느냐는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저마다 느낌은 다를 수 있겠습니다. 서산대사에게 누가 물었습니다.


객승 [도인의 삶은 어떠합니까?]
서산 [주리면 먹고 졸리면 잔다네!]
객승 [그야 누구나 그러지 않습니까?]
서산 [행동은 누구나 그렇게 하지만 도인은 무심으로 한다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고 공부가 조금 더 되어가는 듯 싶은 상태에서 다시 생각해 보니까, 과연 도인의 삶은 어린 아이의 삶과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겠네요. 어린 아이는 밥을 먹다가도 졸리면 숱가락을 들고 자거든요. 긴장된 사람은 절대로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니 명료한 가르침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욕망입니다.


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에게도 만족감을 줄 수가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나이가 들어가면 이성적인 기능이 약화되고 감정적으로 반응한다고도 합니다. 쉽게 말하면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녀들은 노망이 났느니, 하면서 호들갑을 떨기도 합니다만 이러한 것이 체면과 욕망의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기가 되어 있느냐에 따른 차이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은 강경에서 젓갈축제가 있다고 합니다. 연지님은 난타의 팀원으로 출연하신다는 군요. 그래서 또 카메라를 챙겨서 귀경갈까 싶습니다. 그리고 어떤 욕망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이렇게 매일매일 자신의 존재와 만나는 나날이 즐겁네요. 벗님도 이 가을에 사진의 즐거움을 누려보시라는 권유를 살짝 드려 보면서 마무리 합니다. 고맙습니다.


2015년 10월 15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