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 이젠 전설이 되어버린 『하이텔 역학동』 의 추억

작성일
2015-03-06 07:38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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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 이젠 전설이 되어버린『하이텔 역학동』의 추억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오늘은 경칩이네요. 어느 사이에 묘월(卯月)입니다. 벌써 도로에는 이사하는 나무들을 싣고 돌아다니는 트럭들이 많이 눈에 띄네요. 그야말로 목왕지절(木旺之節)임이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정월 보름이 지났으니 이제 그야말로 설 명절은 모두 끝이 난 셈이네요. 공식적으로는 3일 연휴로 막을 내리는 것이지만 전통이라는 의미에서는 그래도 대보름 밥은 먹어야 설이 끝났다고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문득 달력을 보다가 을미년이라는 연호에서 눈길이 머물면서 옛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겁니다. 가만있거라..... 하이텔의 역학동을 시작했던 시절이 언제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면서도 그 중에 몇몇 얼굴은 생생하게 기억의 한 쪽을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묵은 저장고를 뒤적여 봅니다. 그러다가 뭔가 받아 둔 것이 있을텐데.... 싶어서 창고를 들여다 보니까 눈에 띄는 것이 있네요. 그래서 추억의 티켓 삼아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 봅니다.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이야기이기도 하네요. 하하~

을해년상패

 

 

을해년-1

 

1. 하이텔 한방동(한의사 통신 동호회)


세월은 대략 22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1년쯤 되었나.... 대우컴퓨터 387을 한 대 구입한 다음에 윈도우 3.0에 포함되어 있는 「터미널」이라는 프로그램을 만지작 거리다가 전화선을 연결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천리안 통신동호회에서 대략 PC통신의 구조를 익힌 다음에 음양오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는 곳이 없을까를 기웃거리다가 하이텔에 가면 한의사 통신동아리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지요.

한의사들이 모여서 이야기 하는 곳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명리학 공부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물론이고, 간지(干支)의 이치로 인간의 질병에 대한 예고를 할 수가 있다면 인류의 건강생활에 기여를 할 수도 있겠다는, 참으로 거창한 계획까지도 세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힐 일이겠습니다만 그 당시로써는 대단히 큰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고 말을 해도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1987(丁卯)년에 읽게 된 《적천수징의(滴天髓徵義)》에 나온 질병장을 읽고서는 무한 감동을 받았으니까요.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 뭔가 해답의 실마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01420의 천리안에서 01410의 하이텔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 번호를 보면서 추억에 잠기신다면 벗님의 통신경력도 대략 20년을 헤아리실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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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파란화면......

01410으로 접속한 하이텔은 천리안보다 통신환경이 나빴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모두는 로우텔이라고 불렀지요. 저녁 시간대에는 접속자가 많아서인지 화면을 바뀌기를 기다리기 위해서 라면 한 그릇을 다 먹어야 할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진짜예요(바락바락~) 요즘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힐 이야기이고 그래서 전설이라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환경에서도 산고랑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눈을 모을 수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만 감사를 했지요. 정보의 바다?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지금이야 바다 중에서도 가장 큰 대평양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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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5.3을 기억하시는지요? 맨 아래의 ok를 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횟수의 01410을 눌러야 했는지 모릅니다. 그만큼 통신환경은 나빴다고 해야 하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지금은 산골에서도 광통신으로 웹을 드나드니 격세지감입니다.

여하튼 한방동에 준회원으로가입을 했습니다. 정회원이 아닌 이유는 한의대를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해서입니다. 그래도 일반인을 위한 배려를 했던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그 당시의 대삽의 이름은..... 도순....? 지율...? 뭔가 이름이 기억 속에서 뱅뱅 도는데.... 여하튼 고맙게도 한의사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가면서 오행과 질병의 관계에 대해서 간간히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연관이 있다는 쪽과 의미가 없다는 쪽으로 나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낭월은 연관이 있다에 지지를 보냈겠죠?

2. 셋방 살이


한방동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자연히 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사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서 한방동에서도 귀찮은 존재(?)가 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한쪽에서 니네들끼리 놀라고 게시판을 하나 만들어줬던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당시에도 운영진에게 그러한 요청을 했던 것이기도 하고요. 물론 낭월이 혼자서 한 것이 아닙니다. 열정적으로 메일을 보내고 게시판에 글을 남겨서 운영진의 마음이 동했던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여하튼 공식적으로 게시판 하나를 얻어서 제금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야말로 우리끼리가 형성되었던 것이지요.

처음에는 사주와 질병에 대해서 공부를 할 것이 없을까... 하고 시작한 한방동에서 게시판을 따로 얻어서 본격적으로 사주학 동호인들이 둥지를 틀었지요. 물론 질병에 대해서도 연구를 했습니다만 이야기는 점점 본론으로 파고 들어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용신과 운세를 논하고, 각종 신살에 대한 검증을 진행시키고 있었으니까요. 참으로 오붓했던 시절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렇게 두어 해를 보냈나.....?

당시 참여 인원은 불과 몇 십 명이었을 겁니다만 열정은 대단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글빨로 큰 힘을 실었던 동호인들의 이름과 얼굴이 떠오릅니다만, 현재의 상황이 오랜 세월에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 수가 없어서 언급하지는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직도 수시로 연락하고 있는 늘찬과 500cc도 매우 열성적인 맴버였다고 기억됩니다. 물론 지금은 모두 가장이 되었겠습니다.

한방동의 역학게시판으로 인해서 한방동인지 역학동인지 모르겠다는 불만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정회원들의 목소리였겠지요. 그 무렵에 우리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지요. 우리도 동호회를 정식으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던 것이지요. 당시에 동호회를 하나 만들려면 발기인의 인원에 대한 제한이 있었던가 싶습니다. 그게 몇 명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처음에는 하고 싶어도 인원이 충족되지 않아서 못하고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다가 필요한 인원을 채운 다음에서야 비로소 독채로 이사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게 1994(甲戌)년 쯤 되었겠습니다. 기억이란 사건만 저장하고 시간은 잊어버리는 속성이 있음으로 인해서 시간적인 오차는 양해 바랍니다. (기억력 나쁜 사람의 도망가는 방법입니다. ㅎㅎㅎ)

3. go ohaeng [하이텔 역학동호회] 개설


아마도 처음에 동호회를 인가하면서 조건부로 하지 않았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홍보하고 광고를 해서 가입인원을 늘리려고 애를 썼던 생각이 새록새록 나네요. 그 당시에는 20시간 채팅은 예사였습니다. 가장 좋은 미끼는 예나 지금이나 "무료로 사주를 봐 드립니다~!" 였지요. 그러한 미끼에 혹~해서 가입하는 회원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허가취소가 되는 것은 막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통신망에 최초로 생겨난 역학동호회(易學同好會)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후로 천리안과 나우누리에도 역학동호회가 생겼고, 그래서 후세의 사람들은 하이텔 역학동호회를 다른 통신망의 동호회와 구분하기 위해서 하역동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만 최초라는 타이틀은 변함이 없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오리지날~~

처음에 이름의 영문 표기에 대해서도 토론을 많이 거쳐서 오행으로 결정이 난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이름들이 많이 거론되었습니다만 최종적으로 오행(ohaeng)으로 허가를 받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때부터 처음 방문하는 신입들을 위해서 끝없는 채팅이 시작되었지요.

밥그릇을 끼고 키보드 앞에 앉았다가 혼나는 것은 예사로 여기면서 신입이 하나 들어오면 마냥 반가워서 혼갖 수다를 떨었던 시절입니다. 그리고 들어온 회원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 강의를 시작했던 것이 씨앗으로 발아한 것이 『왕초보사주학』의 원고였습니다. 입문편의 초판이 나온 때가 1995(乙亥)년이었는데 어느 사이에 2014년으로 31쇄가 나왔으니 나름 많은 사람을 받았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최초의 원고는 한방동에서 시작되었는데 역학동을 개설히면서도 계속해서 이어진 강의였습니다. 당시에 이미 저명한 번역가로 활동하셨던 회원께서 도서출판 동학사를 소개하는 바람에 책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하겠으니 또한 좋은 인연임에 틀림 없다고 하겠습니다. 아직도 낭월학당을 방문하시는 손님들께서는 왕초보사주학을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시는 것을 보면 참 책의 영향력은 질기다고 해야 하겠네요.

4. 온라인 오프라인의 활발한 모임


한국PC통신에서는 회원들의 활동이 왕성한 동호회에는 장려금을 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수회라는 이름으로 신청을 해서 지원금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액수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당시의 순수한 회원들에게는 충분히 마약과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데 손색이 없었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렇게 만남을 통해서 결혼을 하게 된 인연들도 하나 둘 생겨나면서 2세까지 회원으로 가입시키겠다는 열정들로 불타는 나날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당시에 정팅(정기적으로 모여서 대화방을 열던 것)을 열게 되면 인원제한으로 인해서 누군가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기다리는 회원들을 배려해서 방을 나가면 비로소 들어와서 동참하였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지금도 그렇게 할 수가 있는 열정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지 싶습니다.

그때에 찍어 놓은 사진들을 좀 찾아 봐야 하겠네요. 이미 2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만으로 말이지요. 한방동부터 따지면 더 오랜 역사입니다만, 그냥 역학동으로만 따져도 대략 21년은 되었네요. 갑술년이 1994년이고 올해가 2015년이니 말이지요. 적지 않은 시간이라고 해도 되겠고 그래서 전설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6개월 단위로 주기가 바뀌는 디지털 시대에서 20년이 넘은 컴퓨터통신의 이야기는 참으로 오랜 전설일 수 밖에 없겠습니다.

얼마 전에는 오랜만에 옛날 회원 한 분을 만났더니, 한국의 명리학은 왕초보 사주학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나 뭐라나... 그러시더군요. 물론 과찬이겠습니다만 어쩌면 역학동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당시 열성적이던 회원들의 협력으로 인해서 왕초보 사주학이 탄생되었다고 하는 것은 조금도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모두들 젊은 혈기로 모였던 당시 대부분의 회원들은 20세 초반들이었는데 그것도 당연한 것이 컴퓨터를 할 수가 있는 연령층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리고 역학동의 전설을 이야기하면 다들 떠오르는 추억들이 많은가 봅니다. 낭월의 친구라고 한다면 그 당시에 만남을 가졌던 회원들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니까요. 그렇게 3년여를 활동하면서 나눴던 많은 이야기들로 인해서 간지와 오행의 이치가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서로 밤을 지새우면서 채팅하다가 화면이 전환되지 않으면, 또 로우텔을 욕하면서 그렇게 열렬히 토론했던 시절이 새삼 그립기도 합니다.

5. 추억의 조각들.....


만감(萬感)이 교차한다고 하지요? 문득 잊혀졌던 얼굴들이 하나 둘 떠오르네요. 그리고 언젠가 또 인연이 되면 만나기도 하겠지요. 더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러한 기억들도 점차 사라질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생각을 떠올려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노인들이 추억이 깃든 고물들을 버리지 못하고 끼고 있는 것처럼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거든요. 혹 이 글을 보게 될 당시의 인연들이시라면 메일이라도 주시기 바랍니다. 잘 지내고 있노라는 안부도 무척 반가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전설의 역학동』이라는 타이틀로 밴드라도 하나 만들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드네요. 그리고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다음의 생각들이 모여서 또 뭔가 큼지막한 사건을일으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망상도 해 봅니다. 간간히 들리는 소식에는 이미 역학의 분야에서 자신의 몫을 당당하게 하고 계신다는 이야기에도 잠자고 있던 추억이 떠오르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곤 하네요.

그 사이에 도를 닦으러 간 사람도 있고,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또 세상을 먼저 떠난 사람도 있네요. 살아가는 여정에서 모였다가 흩어지고 흩어져서는 추억을 되새기는 것도 또한 인생의 여정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도 이름을 적어보라면 최소 50명은 적을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더러는 이름으로 기억에 저장되고, 또 더러는 닉네임으로 저장이 되어있습니다만 어느 것이든 당시의 활약한 맴버들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해묵은 사진첩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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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고 나면 남는 것은 사진 뿐이라고 하더니만 사진의 편린들에서 기억을 일깨우는 코드들이 고스란히 들어있었군요.

열정적으로 공부하던 모습들....
그리고 신나게 놀던 모습들....
또 진지하게 밤새워 토론하던 모습들.....
때로는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하던 모습들까지....

그러한 기억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사진입니다. 다만 기억만 살리고 얼굴은 가렸습니다. 아마도 세월이 흘러서 얼굴들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또 그 사이에 다른 인연들로 인해서 만에 하나라도 자신의 모습이 나오는 것을 원치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렇다면 괜히 본의아니게 부담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 양해 바랍니다. 그래서 전설인 것이지요. 원래 전설에는 얼굴이 없잖아요. 하하~

그냥 분위기만 느껴주시면 되겠습니다. 혹 당시에 함께 했던 인연들이라면 또한 추억이 새록새록 날 법도 하네요. 이미 오랜 옛날의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오늘의 이야기이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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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이야기를 그리도 열심히 했던지..... 하이텔의 사옥을 제공받아서 모임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창립총회라고 거창한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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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소박했지만 진지했던 순간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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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역학동의 메카(ㅋㅋ) 서니암입니다. 좁아터진 오막살이 암자였지만 후끈후끈한 열기로 밤을 세워가면 토론하던 곳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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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을 할 공간이 따로 없어서 부처님의 법당을 빌려서 소란을 피우기도 했었습니다. 다들 열정적으로 강의하고 귀를 기울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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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는 귀신 이야기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어느 회원에게는 이웃에 살았던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타나는 바람에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도 토론을 해야만 했었지요. 그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즐거울 수가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전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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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조만 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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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서 사진을 보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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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야기든 꺼내놓으면 이야기꺼리가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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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무창포였나....? 장소를 안 적어놔서 알 방법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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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을 빌려서 연수회도 했었지요..... 이렇게 뿌려놓은 씨앗이 결실을 많이 맺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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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모여서 토론을 합니다. 궁금한 것도 많고, 그래서 알고 싶은 것도 많았던 시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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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의 낭월 모습입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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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잘 했는지.... 시상식도 있었던가 보네요. 누군가 찬조로 들고 온 양주를 받은 낭자는 누구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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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몽산포였지... 싶습니다. 아릿따운 여인들입니다. 이젠 누간가의 아내가 되어서 아기 엄마가 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만 해 봅니다.

아무래도 아기들 사주를 놓고서도 열심히 풀이를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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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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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경보 선생을 초청해서 풍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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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기마전인가요? 원기왕성한 젊음의 한 때였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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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라도 찍어두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 했느냐는 생각도 드네요. 아름다웠던 순간들이기에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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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였다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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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만 바라보고 있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얼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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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에서 총회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던 장면인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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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모임이 있을 때마다 처음으로 참석하는 회원은 있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또 자신의 삶을 팔자로 소개하면서 분위기에 동화되는 시간들도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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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아름다웠던 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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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추억의 사진들을 보면서 전설을 완성시킵니다. 그 순간에 함께 했던 벗님들께 또한 삶의 한 조각으로 함께 해 준 것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낭월이 학문을 완성시켜가던 밑거름이기에 더욱 그렇다고 하겠습니다.

6. 그렇게 함께 한 순간들이 흘러갑니다.


1995(乙亥)년에 이어서 1996(丙子)년까지 대표시삽을 맡았던가 봅니다.

병자년

감사패가 남아 있는 것을 보니 그랬지.... 싶네요.

모든 모임이 다 그렇습니다만, 세월이 흐르고 덩치가 커지면 또 서로의 생각이 갈리고 그래서 가끔은 소란도 일어나곤 합니다. 간간히 갈등도 있었고, 마음이 상한 회원이 탈퇴를 하기도 해서 또 안타까웠던 기억도 납니다만 그것도 모두 인연법으로 돌리고 흐르는 강물에 띄워 보내는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후로도 역학동호회가 지속되었습니다만,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서 참석을 제대로 못하다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하이텔도 사라지게 되었고, 잠시 파란닷컴으로 인터넷망에서 통신동호회의 느낌을 유지한다고 했습니다만 그 후로의 이야기는 또 다른 전설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낭월의 전설은 여기에서 막을 내린다고 해야 하겠네요.

아직까지도 간간히 소식을 들려주는 오랜 인연들이 있어서 또 흐뭇하기도 합니다. 가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또 몇 시간의 이야기꺼리는 저절로 이뤄진다고 해도 되겠네요. 어느 벗님은 '하루종일 직장에서 일을 하고는 퇴근하자마자 채팅방에 접속하면 방이 가득해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안타까워하다가 겨우 자리가 나서 끼여들면 이야기는 파장분위기여서 너무나 안타까웠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당시의 벗님들 중에는 오랜 시간이 흘러 갔어도 기억의 한쪽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추억들을 되새기면서 옛날의 한 순간을 회상하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낭월이 이렇게 가끔 떠올리듯이 말이지요......

그리고 오늘은 또 내일의 전설이 되겠지요?

그래서 앞으로 또 20년이 흐른 다음에 낭월은 오늘의 이야기를 보면서 다시 과거를 추적하는 순간으로 삼는 웜홀이 되기도 하겠지 싶습니다.

어느 사진가는 자신이 찍었던 모델을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 다시 찾아가서 처음에 찍었던 사진을 본인이 들게 하고 다시 찍는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만, 누구나 그렇게 추억이 추억의 꼬리를 물고 세월을 이어가는 열차의 행렬로 삼는가 싶은 생각을 해 보면서 추억의 페이지를 접습니다. 함께 했던 모든 인연들께 더욱 풍요롭고 즐거운 을미년이 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2015년 3월 6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