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수가 목을 만나면 살맛난다

작성일
2007-09-1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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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아래로만 가는 성분이라고 했는데, 이러한 물도 위로 올라갈 때가 있다. 바로 나무를 만났을 때이다. 물이 아래로만 흐르니까 안목이 좁다. 항상 앞을 내다 볼수가 없는 것이다. 생각이 많은 것도 실은 알고보면 이렇게 앞을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앞을 훤하게 내다볼 수가 있다면 예측이고 공상이고 간에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냥 보이는 자료를 바탕삼아서 뭔가 일을 추진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물은 아래로만 내려가다 보니까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조그만 돌이나 언덕만 있어서 그 너머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히말리야의 깊은 골짜기의 한 종지 정도의 물이 나오는 구멍으로부터 기나긴 여행을 마친 후에 바다에 도달한 물에게 오면서 무엇을 보았는지 물어본다면 뭐라고 말을 할까?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내가 본 것은 물 속을 제외한다면 기껏 양쪽의 강언덕을 본 것이 전부라네, 그 너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무엇이 있는지, 전혀 보이질 않으니 알 수가 없었네.”

이렇게 말을 할 것 같다. 참으로 물로써는 전혀 높은 곳에 올라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안목이 넓지를 못하다. 그래서 궁리만 많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물이 일단 나무를 만나면 문제는 달라진다. 순식간에 나무의 맨 꼭대기로 올라가서 넓고도 광활한 세상을 내려다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물은 나무만나기를 지옥에서 부처님 만난 만큼이나 반가워한다. 사실 물이 나무를 보면 그렇게 열심히 스며든다. 그래서 살아있는 나무는 잘 자랄 것이고, 죽은 나무는 썩어버릴 것이다. 물은 미련하게도 나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구분하지도 못한다. 그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얼른 올라가서 세상구경을 하고 싶은 욕심에 그러한 것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망상을 해본다.

이렇게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간 재수좋은 물은 넓은 세상을 보게되고 그래서 안목이 더욱 커져서 자신의 지혜를 크게 확대하는 계기로 삼는다. 그렇게 세상구경을 하고서는 도로 내려와야 한다.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만도 없다. 다음 물에게 밀려서 스스로는 내려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구경한 세상에 대해서 두고두고 간직을 한다. 물론 다음에 다시 한번 나무를 올라가서 넓은 세상을 봐야겠다는 미련을 간직한채로이다. 그래서 물로 태어난 사주에서 나무를 만나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게 되는 모양이다.

이러한 현상을 일러서 음극즉양생(陰極卽陽生)이라는 말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이 음의 극에 달한 성분이기 때문에 회광반조(回光反照)의 현상으로 양의 기운인 목을 반기고 좋아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음이 극에 달하면 양을 좋아한다는 말이 참으로 의미심장하다고 생각이 된다. 멀리 찾을 것도 없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주변에서 찾아봐도 얼마든지 그 의미가 포함된 자료들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선 노인들을 보자. 세상을 환갑(還甲)이 넘게 살아온 노인은 어린아이들을 특별히 좋아한다. 그래서 늘상 자식내외와 말썽을 일으키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자식들의 이유인즉 ‘어린애를 버릇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노인들이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회광반조의 일종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있으면 참으로 수지 맞는 것이다. 무슨 부탁이던지 막강한 실세의 위에 있는 ‘할’자가 들은 어른들이 척척 해결을 해주시기 때문이다.

이것만 봐도 노인(水)들이 어린아이(木)들을 특별하게 좋아하는 자연의 섭리가 있는 것이다. 혹자는 노인은 앞을 생각해보면 죽음밖에 없기 때문에 탄생의 기억을 되살리는 어린애들을 거의 본능적으로 좋아한다는 말도 하기는 하더라만, 결국 중요한 것은 노인은 어린애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떻던 간에 말이다. 이러한 현상을 낭월이는 ‘물은 자신의 지혜를 나눠주고 오래도록 남아있게 할 목적’으로 어린아이들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보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