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9] 제38장. 소주오행원(蘇州五行院)
11. 물상(物象)과 심상(心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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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객실로 돌아온 우창은 오늘 나눈 이야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면서 대략적인 요점을 정리했다. 시간이 지나가면 기억은 사라지기 때문에 가능하면 중요한 점에 대해서는 간단하게나마 적어놓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천계(泉溪)의 표정과 말이 떠올라서 혼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떠났던 사람이 다시 돌아온 것도 고마운데 더구나 감동해서 말하는 것도 들었으니 우창은 그것이 다행스러웠고 마음고생이 많았을 당문약이 얼마나 기뻐했을지도 생각해 보니 더욱 고마웠다.
그러면서 오늘을 열심히 산다는 도락(道樂) 스승님의 가르침을 다시 떠올렸다. 항상 스승의 가르침을 나침반(羅針盤)으로 삼으니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할 일이 많이 줄어들어서 좋았다. 제자들이 특히 염재도 우창의 가르침을 만나서 좋다고 하지만 우창은 이러한 스승의 가르침이 있기에 자신도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떠올리면서 오늘도 지나간 스승님이 잘 지내고 계시기를 마음으로 기원했다.
며칠이 지나고 햇살이 화사한 날의 아침이었다. 우창은 책상에만 앉아있다가 운동 삼아서 숲을 산책하고 있는데 진명이 급하게 달려와서 우창을 불렀다.
“스승님~~!! 어디 계세요~!”
우창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진명에게 대답하자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와서는 말했다.
“스승님, 큰일 났어요~!”
우창은 진명이 숨을 고르도록 잠시 기다렸다. 오행원에서 큰일 날 일이 뭐가 있을지를 생각하면서 잠시 기다리자 진명이 다가와서는 말했다.
“스승님, 소주(蘇州)의 자사(刺史)가 방문했어요. 어쩌죠?”
“아니, 자사라면 소주를 관리하는 최고의 직책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그렇게 높은 분이 오행원은 왜 찾아왔다던가?”
“스승님도 참, 왜기는 왜겠어요. 스승님의 명성이 벌써 자사 나리의 귀에도 들어갔나 보죠. 어서 가보셔야지요. 진명도 내심으로 너무 놀라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허겁지겁 스승님을 찾은 거잖아요. 하필 이런 때에 자리에 안 계셔서 진명을 바쁘게 하실까요? 호호호~!”
진명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기쁜 표정을 지었다. 높은 벼슬아치가 찾아줬다는 것이 진명에게는 일반인과는 다른 의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우창은 이미 예전에 포정사(布政使)와도 이야기를 나눠봤던지라,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자사는 포정사에 비하면 낮은 직급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창이 진명과 함께 접객실에 다다르자 문 앞에서는 관복을 입은 호위무사가 허리에 칼을 차고 서 있다가 우창을 보고는 옆으로 비켜줬다. 그 위세가 자못 당당했다. 우창이 목례(目禮)하고는 안으로 들어가자 의자에 앉아있던 남자가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오행원 원장이시구료. 반갑소이다.”
“귀하신 어른께서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왕림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앉으시지요. 소생의 성명은 진하경이고 아호는 우창(友暢)입니다.”
“명성을 익히 들었소. 나는 소주자사(蘇州刺史) 최도융(崔道融)이오. 식견이 높은 선생을 뵙게 되어 영광이외다.”
주객이 자리에 앉자 진명이 차를 내왔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는 우창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허식적(虛飾的)인 대화는 흥미도 없을 뿐더러 그러한 꾸밈에 대해서는 잘못하는 까닭이었다.
“그런데 자사께서 어쩐 일로 왕림하셨는지요?”
이렇게 물으면서 안색을 살폈다. 나이는 50대 중반이고 체구는 우람했으며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준수(俊秀)한데 탁기(濁氣)는 보이지 않아서 내심 청관(淸官)이겠다는 짐작을 했다.
“우창 선생~! 이렇게 찾아뵙게 된 것은 며칠 전에 한산사에 일이 있어서 들렸는데 주지 화상이 오행원에 대해서 이야기했소이다. 주지화상의 말을 들어보니 신묘한 능력도 있다지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품격이 느껴졌다기에 궁금한 마음이 생겨서 오늘 이렇게 불쑥 방문했으니 결례를 허물치 말아 주시기 바라오. 허허허~!”
“영광입니다. 국사(國事)를 돌보시느라 분주하실 텐데 왕림해 주셨으니 결례일 리가 있습니까? 잘 오셨습니다. 혹 하문하실 일이 있으면 말씀하셔도 됩니다.”
우창의 말을 듣고서 자사가 진명을 바라봤다. 우창이 그 의미를 이해하고는 진명에게 말했다.
“진명은 잠시 춘매에게 가보겠나. 손님을 위해서 점심을 준비해 달라고 하면 좋겠네.”
우창의 말에 진명도 눈치를 채고는 얼른 대답하고 자리를 피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궁금했으나 그것은 또 후에 우창에게 들으면 되기 때문이거니와 관료(官僚)들은 비밀이 많아서 가능하면 주변의 귀가 없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편히 말씀하셔도 되겠습니다.”
객실에 둘만 있다는 것을 보고서야 자사가 말을 꺼냈다.
“봐하니 선생은 꾸미는 말은 잘못하는구료. 나도 그런 것이 좋소이다. 가식적(假飾的)인 말은 시간만 낭비할 따름이오.”
“천성이 고루(固陋)하여 그런가 봅니다. 하하~!”
우창이 멋쩍게 웃자 자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실은 내가 명학에 관심이 무척이나 많아서 말이오. 항상 관내를 순시(巡視)하면서도 이러한 분야에 식견이 높은 선생이 있는지를 살피지 않았겠소. 주지 화상의 말을 듣고서 바로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소이다. 우선 선생의 능력으로 내 명운(命運)을 살펴봐 주시겠소? 그리고 오행(五行)의 깊은 철리(哲理)를 통달(通達)할 그릇이나 되는지도 말씀해 주면 고맙겠소이다.”
자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자신의 사주를 봐달라는 말을 했다. 더구나 공부에 관심이 많다고 하니까 우창은 반가웠다. 누구든 오행의 이치를 묻는 것이 무엇보다도 반가웠기 때문이었다. 그 말을 듣고서 지필묵(紙筆墨)을 준비하고서 자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부족한 능력이나마 최선을 다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생월생시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우창이 명식을 작성하기 위해서 천세력(千歲曆)을 옆에 가져다 놓자, 자사가 말했다.
“명학에 관심을 두다 보니 자명(自命)은 알고 있소이다. 병자(丙子) 임진(壬辰) 정미(丁未) 갑진(甲辰)이오.”
우창인 이렇게 간지를 불러주는 방문자가 가장 편했다. 수고스럽게 절기를 찾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불러주는 대로 적었다.
우창이 명식을 살펴보자 자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정화(丁火)가 매우 허약(虛弱)하지 않소?”
“이미 다 알고 계시니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실로 그렇습니다. 가냘픈 몸에 관모(官帽)는 무거운데, 크고 웅장한 마음은 청산(靑山)에 두셨습니다.”
“과연~! 허허허~!”
우창의 첫 마디에 자사는 흡족한 표정으로 호탕하게 웃었다. 그 한마디에 우창도 이미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친밀감이 느껴졌다. 한바탕 웃고 난 자사가 말을 이었다.
“이 우람한 신체를 두고 가냘프다고 하시니 참으로 놀랍소이다. 허허~!”
“자사께서는 이미 그 마음을 정신에 두셨기 때문에 오히려 몸은 가벼이 여기신 까닭입니다. 관청의 높은 자리에 앉아서 청산을 바라보고 계시니 재미가 없으실까 염려됩니다. 하하~!”
“잘 보셨소이다. 언제쯤이나 청산으로 달아날 수가 있으려나 묻고자 하오.”
“아마도 당장은 어려울 것입니다. 지위(地位)는 점점 높아만 가게 생겼으니 그런 날을 만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하~!”
“그렇소이까? 억지로 안 되는 것도 인생이려니 하고는 있소만, 몸이야 비록 관복(官服)으로 묶여있더라도 마음만이라도 홍안(鴻雁)에 실려 보내려 하오. 그래서 자연의 이치에 마음을 둔 지도 여러 해가 되었던가 보오. 허허~!”
“이미 다 알고 계셨으니 우창이 얹어드릴 말씀은 따로 없겠습니다. 하하~!”
“실로 놀랍소이다. 관상(觀相)과 명학(命學)이 상통(相通)하는 부분이 있는가 싶은 궁금증을 오늘 우창 선생이 해소(解消)시켜 주셨구려. 과연 학문의 이치는 어딘가에서 회통(會通)하는 것인가 싶소. 허허허~!”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행여 허언(虛言)이라도 드리면 어쩌나 심히 염려되기도 했습니다.”
“아니오. 명학을 연구하는 선생들을 여럿 찾아뵈었으나 우창 선생처럼 일언지하(一言之下)에 핵심(核心)을 짚어내는 학자는 실로 오랜만에 만났소이다. 내 관할(管轄)에 뛰어난 학자들이 많은 것도 복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흡족한 마음이외다. 허허허~!”
우창은 자사의 말을 들으면서 식견이 높은 학자가 소주에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넌지시 물었다.
“말씀으로 들어봐서는 소주에는 학문이 높은 선생이 많이 있으신가 봅니다. 그런 고인(高人)은 찾아뵙고 고견을 청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아, 그야 어렵지 않소이다. 나와 동행하면 될 일이오.”
자사의 말에 우창은 호기심이 동했다. 적어도 보통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관심을 보였다.
“불쑥 찾아뵙는 것이 실례되지 않는다고만 하신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동행할 의사를 밝히자, 자사가 바로 일어났다. 머뭇거리는 것이 없어서 우창도 마음에 들었다.
“가십시다. 밥은 그곳에 가서 얻어먹어도 될 것이오.”
자사가 이렇게 말하자 우창도 머뭇거릴 이유가 없어서 따라나섰다. 진명에게 나들이하게 되었다고 통보는 해주고 자사의 마차에 올라서 별말이 없이 풍경을 둘러봤다. 그 사이에 버드나무에 물이 올라서 싹을 틔우고 있었다. 봄이 다가오는 풍경이 느껴질 정도로 바람도 온풍(溫風)이었다. 그렇게 반 시진(時辰) 정도 달리던 마차가 멈춘 곳은 번화한 거리의 중심부(中心部)였다. 과연 소주는 큰 성도(成都)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자사를 따라서 골목으로 들어가자 어느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문 위에는 「문성명상관(文盛命相館)」이라고 쓰여 있었다. 자사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집이라는 듯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우창에게도 들어오라고 했다.
“다 왔소이다. 이곳이오. 허허~!”
접객실에는 중년의 남자가 앉아있다가 자사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나오면서 인사를 했다.
“아니, 바쁘신 형님께서 오랜만에 찾아주셨네요.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주인이 반가운 표정으로 말하자 자사는 우창을 소개하면서 말했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었네. 오늘은 고명(高明)한 선생과 동행했으니 아마도 아우가 거하게 한턱내야 할 것이네. 허허허~!”
자사가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인사를 했다.
“처음 뵙습니다. 진하경이라고 합니다. 학문이 높은 선생을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며 합장하자 주인장이 우창을 보더니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아니, 우창 스승님 아니십니까? 어찌 이곳에 출현하신단 말입니까? 문성입니다. 백발도사. 하하하하~!”
우창도 주인을 보면서 어쩐지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백발도사라는 말에 기억이 번쩍 떠올랐다. 어찌 그 이름을 잊겠느냔 말이다. 이미 아득한 옛날처럼 시간이 흘렀으나 백발도사라는 이름은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태산에서 헤어진 후로 잊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 그렇다면 추 선생이 바로?”
“그렇습니다. 태산에서 헤어진 후로 늘 뵙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누추한 곳에 몸소 찾아와 주시다니 말입니다. 하늘이 도와서 형님이 안내하셨습니다. 하하하하~!”
추문성은 여전히 호쾌했다. 우창도 반가워서 손을 잡고는 말했다.
“상호(商號)를 백발명상관으로 했더라면 바로 알아봤을 텐데 말입니다.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태산에서는 언제 내려왔습니까?”
“태산에서는 스승님도 안 계시고 더 배울 것도 없고 해서 강호를 유람하기로 하고 이내 떠났습니다. 도처를 유람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다가 소주(蘇州)에 다다라서는 수려(秀麗)한 풍경에 취해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또 어쩐 일로 소주에 납시게 되셨는지요? 혹 유람 중이셨는지요?”
“제발 그 스승님 소리는 하지 마시고요. 부끄럽습니다. 하하하~!”
“스승님 무슨 말씀을 그리 서운하게 하십니까? 실로 자칫했으면 작은 마을에서 경쟁자와 신경전이나 하면서 자기가 무척이나 잘난 줄로 생각하고 살아갔을 제게 큰 세상의 넓은 지혜와 깊은 이치를 보여주셨는데 이러한 분을 스승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누구를 스승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니 당연합니다. 날마다 스승님의 인연에 감사함을 잊을 수가 없었는데 이렇게 찾아오시다니 인연이란 참으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두 사람이 나름대로 쌓인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자사는 신기하다는 듯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번갈아 봤다. 그렇게 한참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추문성은 비로소 자사 최도융(崔道融)을 보면서 말했다.
“형님께서 오늘 큰 공덕을 지으셨습니다. 자손만대에 복락을 누리시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하하~!”
우창이 봐하니 성격이 활발한 백발은 자사가 소탈한 것이 맘에 들어서 호형호제(呼兄呼弟)하기로 했던 모양이다.
“아우의 그 허풍은 여전하군. 이렇게 우연히 우창 선생을 대동했는데 두 분은 또 오래전의 지기(知己)라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잖은가. 허허허~!”
추문성이 빠르게 과거의 일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했고, 자사는 재미있어하면서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말했다.
“오호~! 과연 우창 선생은 이미 그때부터 오행의 이치를 연마하셨구려. 진리의 깨달음이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닌 것이 맞나 보오. 오늘 또 인연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소이다. 허허허~!”
우창은 백발(百發)의 공부가 어떻게 진전되었기에 자사(刺史)조차도 명성(名聲)을 높이 평가하는지가 궁금했다. 주객이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자 우창이 물었다.
“그런데 백발 선생은 어떤 기인(奇人)을 만나서 비법을 배웠기에 이렇게도 소주(蘇州)에서 대가(大家)로 인정받으셨는지가 궁금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우창이 궁금해서 이렇게 묻자 백발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스승님, 처음에는 태산에서 공부하면서 넓은 학문의 세계를 섭렵(涉獵)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다가 결국은 상술(相術)로 방향을 잡고서는 천하를 유람하기 시작했습니다. 온갖 사람의 형상을 보면서 직접 부딪쳐야만 답을 얻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지요. 그러다가 어느 고을에서 변변찮은 능력으로 까불다가 기인을 만나서 혼이 났지요. 그렇게 인연이 되어서 기서(奇書)를 갖은 은자(隱者)를 만나게 되었지요.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합니다.”
“기서라면?”
“태산에서 공부한 책은 『신상전편(神相全篇)』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스승님은 『태청신감(太淸神鑑)』이라는 책을 보여주셨지요. 그때까지도 그러한 책이 있다는 말을 듣지도 못했는데 스승님은 그런 이름을 들어보신 적은 있으신지요?”
“우창도 처음 듣습니다. 원래가 상서(相書)에는 문외한이나 다를 바가 없어서인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실 만도 합니다. 그 책을 저술한 분은 왕박(王樸)이라는 고인인데 그 책을 배우느라고 꼬박 3년이 걸렸습니다. 스승님은 오로지 그 책만 가르쳤지요. 그리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형상(形相)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공부하다가 보니 「심술(心術)」편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겉으로 보이는 것에 매달리는 것은 하수(下手)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그렇게 공부하다 보니까 면상(面相)을 보거나 음성(音聲)을 듣게 되면 그 사람의 내심(內心)을 어느 정도는 느낄 수가 있는 단계까지 도달했습니다.”
“오호~! 과연 학복(學福)입니다. 축하합니다. 하하하~!”
우창은 마음에 대해서 말하는 백발을 보면서 감탄했다. 명학(命學)만이 아니라 상술(相術)에서도 마음을 논한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우창이 말하자 백발도 기쁜지 환하게 웃으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고맙습니다. 스승님은 항상 이법(理法)을 중시(重視)하셔서 보이지 않는 오행을 추구하신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다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형(無形)의 간지(干支)에 유형(有形)의 인생(人生)을 본다는 것이 도무지 막연해서 감이 잡히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공부의 인연이 없나보다 했는데 유상(有相)을 통해서 무형의 심성(心性)으로 들어가는 문을 발견하고서야 결국은 만나는 곳이 같겠다는 이치를 깨달았던 것이지요. 하하하하~!”
“말씀을 듣고 보니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고인의 가르침이 옳았습니다. 하하하~!”
“옛날의 명인(名人)은 이발사를 3년간 하면서 면상(面相)을 연구하고, 목욕탕에서 때를 밀면서 골상(骨相)을 3년 연구하고 마지막으로 화장장(火葬場)의 화부(火夫)를 하면서 인생의 마지막까지의 모습을 연구했다기에 성급한 백발은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이발사와 때를 미는 일은 1년씩 했습니다. 물론 그로 인해서 이제는 겨우 그 사람의 선악(善惡)은 가릴 수가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사 형님을 만난 인연으로 허명(虛名)을 얻게 되었으니 이것조차도 감사한 인연이지요. 하하하~!”
우창은 백발의 말을 들으면서 그의 학문은 이미 깊은 통달(通達)의 경지(境地)에서 노닐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하물며 겸손함까지 보면서 내심으로 감탄했다. 학문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끊임없는 열정을 발산시키고 있는 백발의 진지함에 대해서는 다시 감탄했다.
“그런데 아호는 어떻게 사용합니까?”
“아호는 이미 스승님께서 지어주시지 않았습니까? 백발(百發)이지요. 그보다 더 좋은 호를 아직껏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하하하~!”
백발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서 우창도 미소를 짓고는 또 물었다.
“그런데 혼자 지냅니까? 문하생(門下生)이나 가족은 있습니까?”
“문하생은 귀찮아서 두지 않습니다. 가족은 남매를 두었지요. 스승님은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다 했다고 생각했는지 우창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자 우창도 잘 지내고 있으며 곡부를 거쳐서 한산사 옆에 둥지를 틀게 된 이야기까지 말했다. 그러자 더욱 반가워하면서 말했다.
“그러셨군요. 인연입니다. 앞으로 소주에서 크게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재덕(才德)을 겸비한 배필(配匹)도 만나게 될 것이고 옥동자까지도 얻게 될 것이니 미리 축하드려도 되겠습니다. 스승님. 하하하~!”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얼굴에서 언뜻 스쳐 지나가는 빛을 잠시 읽었을 따름입니다. 스승님의 학문으로도 올해 여인을 만날 인연이 되지 않습니까? 아마도 생각조차도 해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미 주변에는 여인들이 애정(愛情)을 담뿍 담고서 챙겨주고 있으므로 음기(陰氣)의 허전함을 느낄 수가 없으실 테니 말입니다. 참으로 복이 많으신 스승님이십니다. 하하하~!”
우창은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백발의 말을 듣고서야 잠시 생각해 보니까 무진(戊辰) 일주에 올해는 편재인 임수(壬水)가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생각했다. 그렇다면 없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인하게 될 것이라는 말에는 오히려 생소하게 느껴졌다.
“아니, 면상(面相)의 경지(境地)는 참으로 신기합니다. 간지(干支)를 보지 않고서도 바로 목격도존(目擊道存)이니 그보다 속효(速效)도 없겠습니다. 과연 신기(神技)라고 하겠습니다. 하하하~!”
“스승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더욱 신명이 납니다. 여하튼 스승님의 주변에 있는 여인들이 한둘이 아닌데도 배필의 인연은 아직 만나지 못하셨는데 이제야 그 시절이 무르익고 있으니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우창은 백발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춘매(春梅)와 자원(慈園)을 떠올려 봤다. 진명(眞明)과 유하(遊霞)의 모습도 뒤따라 떠올랐다. 과연 가까이에서 이렇게 적극적이고 성실한 여인들이 있어서 혼인에 대해서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녀들의 알뜰한 보살핌으로 인해서 아무런 장애도 느끼지 못하고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자 그녀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샘물처럼 솟아났다. 우창의 표정을 본 백발이 다시 말했다.
“옛날의 스승님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제 다시 오늘의 모습으로 바꿔야 하겠습니다. 도(道)의 깊이가 생각했던 그대로입니다. 스승님의 도장(道場)은 어디입니까? 이제 자주 찾아뵙고서 깊은 가르침을 받아야지요. 스승님의 오묘한 절기(絶技)도 배우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은 간지술(干支術)의 이치는 무엇일지를 생각해 보곤 했습니다. 아마도 스승님을 만날 때가 되니까 그랬나 봅니다. 하하하~!”
그러다가 이야기를 듣느라고 말이 없는 자사를 보면서 백발이 말했다.
“형님, 스승님께서 한산사 옆에 계신다니 걸어서 가기는 좀 멀지 않습니까? 자사를 형님으로 뒀으니 그 덕을 좀 봐야 하겠습니다. 도와주실 거지요?”
이야기에 빠져있다가 갑자기 백발이 이렇게 묻자 자사가 무슨 말이냐는 듯이 물었다.
“내가? 도울 일이 있다면 당연히 도와야지. 허허허~!”
“다른 것이 아니고 백발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마부(馬夫)를 붙여주십시오. 언제라도 스승님께 달려갈 수가 있게 말입니다. 다만 그의 잠자리나 금전에 대해서는 형님께서 알아서 해주시면 됩니다. 마음이 동하면 바로 이동을 할 수가 있도록 말이지요.”
“아, 그 정도야 내가 할 수 있으니 아우는 걱정하지 말게. 그리고 우창 선생도 거동에 불편함이 없도록 마부를 옆에 두도록 할 테니 소주의 생활이 즐거우시기만을 바랄 따름이오. 허허허~!”
자사의 배려가 진심임을 생각하고는 우창도 그냥 받기로 했다.
“세심하게 살펴주시니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할 필요도 없소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지 않소이까? 나도 필요할 적에는 언제든지 오행원으로 달려가서 가르침을 청할 테니 서로 상부상조(相扶相助)할 따름이외다. 허허허~!”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자 가까운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서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자사도 나이를 더 먹었다는 것만 빼면 동년배라고 해도 될 정도로 열린 정신세계를 갖고 있어서 부담이 없었다. 그래서 우창도 백발의 제안으로 호형호제하기로 하고서 헤어졌다. 자사가 바쁜 일이 있어서 급히 관청으로 돌아가게 되자 마부를 불러서 우창이 귀가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