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7] 제38장. 소주오행원(蘇州五行院)
9. 함께 하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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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雨水)가 지나자 버드나무에 초록의 기운이 감돌았다. 두껍게 얼었던 강물의 주변의 얼음도 거의 녹아서 밟고 올라갈 수는 없는 정도였다. 강남(江南)의 봄은 다른 곳보다 일찍 찾아왔다. 낮으로는 제법 따사로운 햇살이 대지를 데우고 있는 화사한 날이었다.
우창도 창밖에서 들려오는 물이 흐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진명이 방문자를 대동하고 들어와서 기척을 했다.
“스승님, 방문하신 분이 있어서 모시고 왔어요. 지금 뵈어도 될까요?”
“아, 그래 들어오시라고 하지.”
이렇게 해서 들어온 사람은 40대 중반의 여인이었다. 우창도 어느 정도 사람들과 상대하다가 보니까 나름대로 직관(直觀)과 같은 것이 생겼는지 첫눈에 들어오는 느낌이 있었다. 많이 외로운 여인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진명이 자리를 권하는데도 가슴을 활짝 열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있는 모습이 내심 안쓰러웠다. 진명이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자 먼저 물었다.
“잘 오셨습니다. 어떻게 오행원까지 오시게 되셨습니까?”
우창은 뭐라도 물어야 해서 이렇게 상투적인 물음으로 시작했다. 그러자 여인이 잠시 앉아있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하려는데 말이 안 나오는 모습이었다. 흡사 중심이 흔들려서 제대로 앉아있을 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힘을 내라는 의미로 우창이 손을 잡아주자 비로소 기운을 차렸는지 몸매를 가다듬었다. 우창도 자리에 앉아서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여인이 비로소 진정되었는지 말했다.
“살아가는 나날이 힘들어 마음이 헛헛해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오행원으로 들어오게 되었어요. 남편이 소식도 없이 집을 나가서 생사를 모르고 아들을 의지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아들도 마을의 처녀와 어디론가 가버렸어요. 그래서 마치 줄이 끊어진 연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선생님을 뵙고 보니 고향의 오라버니 같은 인상이라서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러셨습니까? 다행입니다. 아마도 인연이 많았던가 봅니다. 하하하~!”
외모에서 느껴지는 외로운 모습이 가득했다. 그래서 또 마음이 아팠다. 잠시 후에 진명이 차를 들고 들어와서는 여인의 앞에 찻잔을 놓고는 옆에 조용하게 앉았다. 우창이 물었다.
“이름은 어떻게 되십니까?”
“예, 이름은 손사윤(孫思玧)이라고 해요. 올해 나이는 46세인 정해(丁亥)생이에요.”
우창이 보기에 그녀가 말하는 모습에서 글은 좀 읽은 것으로 보였다.
“오행원에는 어떤 인연으로 찾아오시게 되었는지요?”
스스로 말을 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주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우창의 습관이었다. 그리고 궁금한 일이기도 했다. 여기까지 어떤 인연을 따라서 오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하는 것이 이치에도 맞다고 생각되어서 누구에게나 이렇게 물었는데 손사윤이 조용히 말했다.
“혼자서 울적하게 1년여를 지내고 있으니까 이웃의 아주머니가 이대로 있다가는 폐인(廢人)이 되겠다면서 한산사에서 허드렛일이라도 도우면서 지내도록 말해준다기에 그것도 좋을 것으로 생각되어서 따라왔어요. 그런데 지객 화상께서 저를 보시고는 오행원에서 일을 도우면서 공부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셨는데 우선 가보고 생각하겠다고 하고 뵈러 왔어요.”
그러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명이 웃으며 말했다.
“아하~! 그러니까 선을 보러 오신 거네요? 잘 오셨어요. 오행원은 이렇게 생겼답니다. 호호호~!”
그러자 여인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낭자.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만 선생님의 느낌이 참 좋아서 평생을 의지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당황스러웠다. 그 모습을 본 진명이 또 깔깔대며 웃었다.
“호호호~! 스승님 난감하셨네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호호호~!”
이렇게 말하고는 손사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손 언니는 고향에 있는 저의 언니와 닮으셨어요. 외로움이야 함께 하면 아침의 안개가 햇살에 걷히듯이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글은 좀 읽으셨죠?”
“예, 많이는 아니고 조금 읽었어요. 이름 석자나 쓸 수 있는 정도이지만요.”
“물론 글을 몰라도 되지만 어느 정도는 안다면 더욱 좋죠. 오행원은 오행을 공부하는 곳이거든요. 봐하니 마음이 외로운 사람에게 희망의 말을 전해줄 인연을 타고 나셨어요. 오행원에서 5년만 공부하시면 되겠어요.”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손사윤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보였다.
“정말이에요? 저를 받아주신다면 식구들의 음식을 챙기는 곳에서라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요. 물론 공부하게 된다면 더욱 좋고요. 호호~!”
이미 마음은 오행원의 식구가 된 것처럼 처음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음성으로 힘을 주어서 말했다. 그러자 진명이 물었다.
“생일이나 말해봐요. 스승님은 팔자밖에 모르시는 분이라서 팔자를 봐야 인연이 되었는지를 믿으실 테니까요. 호호호~!”
이렇게 해서 여인의 생일을 바탕으로 진명이 사주를 적어서 우창 앞에 놓고는 조용히 기다렸다. 여인도 다소 긴장이 되는 듯이 허리를 굽혀서 자신의 사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진명이 사주를 적어서 우창에게 밀어주며 말했다.
“스승님, 정해(丁亥) 정미(丁未) 임신(壬申) 을사(乙巳)의 간지를 갖고 태어나셨네요. 어떻게 풀이를 해 주실지 궁금해요. 호호!”
사주를 앞에 놓고서도 우창이 아무런 말이 없이 사주를 들여다 보고 있자 진명이 다시 의견을 말했다.
“스승님, 부궁(夫宮)이 용신인데도 남편으로 인해서 상처받을 수가 있네요? 이것은 또 무슨 인연일까요?”
“나도 그 점이 이상해서 지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라네. 물론 모두가 궁(宮)의 인연대로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좀 아쉬운 면이 있었네.”
진명의 물음에 이렇게 답을 하고는 손사윤에게 물었다.
“혹 부군(夫君)이 집을 떠난 이유 중에는 아들과의 문제도 있었습니까?”
그러자 손사윤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맞아요. 제가 너무 아들에게만 관심을 두는 바람에 남편이 화가 났던가 봐요. 남편은 자기만 바라봐 주기를 바랐다는 것을 남편이 떠난 다음에야 알게 되었어요. 그것이 제 팔자의 탓이라는 말씀인가요?”
“그런데 또 아들은 엄마의 간섭을 받기 싫다고 집을 나갔단 말이지요?”
“정말 그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한없이 밉기도 하고 또 제가 너무 욕심을 부렸나 싶기도 하거든요. 아들에게 그렇게도 마음을 쏟았던 것이 도리어 화가 되어서 돌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니까요.”
이렇게 말을 하는 손사윤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회한(悔恨)이 가득한 안타까움이 배어있었다. 그것을 본 진명이 위로 삼아서 말했다.
“그것은 손 언니의 탓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남편은 어차피 언니에게 마음이 가지 않는 인연으로 보이거든요. 더구나 아들에게는 뭔가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이 보였던 것이고요. 다만 잘 되고자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그들도 또한 자신이 타고난 팔자가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저마다 갈 길로 갔으니 언니도 오행원에서 자연의 이치를 배우면서 깨달음을 누리시면 좋겠어요. 호호~!”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손사윤도 다시 얼굴을 펴면서 말했다.
“정말 낭자의 마음씨는 어찌 그리도 곱고 선할까.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따뜻한 말은 들어보질 못했어요. 정말 위안이 되어요. 그리고 이렇게 멋진 스승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부럽기도 하네요. 저도 이러한 곳에서 공부하면서 마음을 다스린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어요. 그것이 가능할까요?”
손사윤이 다시 말하면서 우창을 바라봤다. 그러자 진명이 이미 식구가 된 것처럼 말했다.
“당연하죠~! 스승님은 식구를 들이고 내치는 권한이 없으시거든요. 모두가 진명의 마음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바로 찬간(饌間)으로 가서 춘매를 만나기로 해요. 찬간의 대장이 있어요. 자, 이쪽으로요.”
이렇게 말하고는 손사윤을 데리고 주방으로 갔다. 주방에서는 한참 점심을 준비하느라고 바쁜 춘매는 진명을 돌아다 볼 겨를도 없었다. 그것을 본 진명이 말했다.
“춘매, 여기 봐 춘매의 귀인이 찾아오셨잖아. 그래서 냉큼 모시고 왔지. 오늘부터 춘매의 오른팔이 되어서 뭐든지 도와줄 거야.”
이렇게 말하자 비로소 춘매가 고개를 돌리다가 손사윤을 보고는 다듬던 파를 놓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아니, 진명 언니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내가 방금 말 했잖아. 귀한 분이 춘매를 돕겠다고 오셨어. 앞으로 같이 주방에서 일하실 거야. 모르는 것은 가르쳐 드리고 또 배우면서 잘 지내. 호호호~!”
진명이 이렇게 데려다주고는 돌아가자 춘매가 어안이 벙벙해하는 사이에 손사윤은 얼른 앉아서 춘매가 다듬던 파를 자르면서 말했다.
“이렇게 인연이 되어서 고마워요. 앞으로 열심히 할 테니까 잘 가르쳐 줘요. 춘매라고 하셨죠? 나는 손사윤이에요.”
이렇게 서로 인사를 하고는 손 언니가 되기로 하고서 더욱 활기찬 주방이 되었다. 진명이 접객실로 돌아와서 우창에게 말했다.
“스승님, 춘매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서로 잘 어울릴 것같죠? 손 언니는 임수(壬水)이고 춘매는 신금(辛金)이잖아요? 호호호~!”
그 사이에 진명은 두 사람의 일간(日干)까지도 생각해 뒀다는 것을 듣고서 우창도 감탄했다.
“그렇구나. 하물며 서로 용신이니 잘 지내지 싶구나. 그 생각까지는 못 했는데 역시 진명의 판단력은 나도 가끔 놀란다니까. 하하~!”
“그런데 스승님, 손 언니가 일지(日支)에 용신(用神)을 두고서도 배우자 인연이 아름답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은 보면서 참 중요한 것을 깨달았어요. 타고난 것이 좋아도 관리가 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는 뜻이잖아요?”
“상호작용(相互作用)이 있으니까 당연하겠지. 그래서 뭐든 단정(斷定)해서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어? 매사(每事)에는 변수(變數)가 있다고 하겠고, 이 변수는 운수(運數)에도 작용하게 되니까 말이야. 오늘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으니 진명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겠구나.”
“맞아요. 오행원으로 오게 된 것은 잘 되었지 싶어요.”
우창도 미소만 지었다. 그러자 진명이 다시 물었다.
“아 참, 오늘은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는 날이잖아요? 혹 무슨 이야기를 해 주실지 계획은 있으신지요?”
“아니, 그게 내 맘대로 되던가? 그냥 흐름에 따라서 문답(問答)을 나눌 따름이지 않은가?”
“그렇긴 한데 오늘은 진명이 여쭤봐야 하겠어요. 미리 준비해 주세요. 뭐 안 그래도 잘하시겠지만요. 호호호~!”
“그래? 뭘 알고 싶어서 그러나? 언제든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는데 말이지.”
“그것이랑은 사뭇 다르죠. 제자들과 같이 들어보는 맛이 또 특별하잖아요. 스승님의 음성도 다르고요. 진명이 듣고 싶은 것은 촉감(觸感)에 대한 것이에요. 촉감의 의미가 궁금해졌거든요. 오욕(五慾)에서도 촉감이 들어가나요?”
“그래? 촉감이란 말이지. 오욕에 촉감은 애욕(愛慾)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우창이 설명해 주려고 하자, 진명이 바로 막았다.
“잠깐요. 스승님께서 지금 미리 말씀하지 말고 이따가 저녁에 대중의 자리에서 해주시란 말이에요. 혼자만 듣기에는 너무 아까우니까요. 호호호~!”
“아, 그런가? 그럼 그러지. 하하하~!”
하루해가 서산에 기울고 오행원에 어둠이 찾아올 무렵이면 술시(戌時)이다.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제자들은 모두 우창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강당으로 모여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스승님께 인사드립니다~!”
자원의 구령(口令)에 따라서 모두 일어나서 우창을 반겨 맞았다. 우창도 인사를 나누고는 자리에 앉자 제자들도 모두 착석(着席)했다. 그러자 진명이 얼른 손을 들고 질문했다. 혹시라도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다른 제자가 먼저 질문을 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진명이 스승님께 여쭙고자 합니다. 처음에는 식도락(食道樂)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고, 그다음에는 수면락(睡眠樂)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듣고서 곰곰 생각해 보니 식욕(食慾)과 수면욕(睡眠慾)은 모두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본능(本能)이었어요. 그런데 애욕(愛慾)은 서로의 관계에서 느끼는 것이 있잖아요. 연인이 손을 잡거나 아기가 엄마의 얼굴을 비비는 것처럼 말이죠. 오늘은 이러한 것에 대해서도 좀 들어보고 싶어요.”
진명이 이렇게 말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우창이 진명의 질문에 답변했다.
“참 잘 물었습니다. 앞서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필요한 음식과 수면을 이야기 나눴는데 마침 그다음에 나오는 질문이 관계에 대한 것이니 말입니다. 이것을 불가에서는 색욕(色慾)이나 음욕(淫慾)이라고 말을 합니다만, 음욕도 또한 관계에 의한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하고서 대중을 둘러보자 진명이 말했다.
“정말이네요. 음욕이라고 하면 그 느낌은 음란(淫亂)하고 방탕(放蕩)한 것을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스승님께서 관계라는 말로 표현하시니까 더불어서 살아가는 이치라고 하겠습니다. 정말 현명하신 판단이네요. 호호호~!”
“그것은 또 다른 말로 정(情)이라고도 하고 인정(人情)이라고도 합니다. 특히 남녀간에 애정이 생기면 혼인을 하게 되고, 자녀가 탄생하는 것이 어찌 인간사(人間事)에만 국한(局限)되는 것이겠습니까? 삼라만상이 모두 이와 같은 관계를 통해서 종족(種族)을 이어가는 것이니 말입니다. 특히 인간의 오욕(五慾)에서 색욕(色慾)이라고는 것은 그야말로 매우 좁은 의미로 본 것이며 그나마도 매우 부정적으로 대입한 것이니 이것은 아무래도 순수한 자연의 모습으로 관찰을 한 것과는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우창의 말에 모두 공감했다. 진명이 다시 물었다.
“애욕(愛慾)의 의미도 성년(成年)이 된 남녀가 서로 만나서 인연이 되도록 이끄는 힘이라고 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적(自然的)인 현상이고, 그래서 매우 아름다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만 애욕과 애정의 사이에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애욕은 오직 정욕(情慾)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애정은 모든 관계에서 필요로 하고 반드시 있어야만 오래도록 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니까 말이지요. 대표적인 것은 가족입니다. 가족은 애욕의 관계가 아니라 애정의 관계이기 때문이지요. 관계에는 정(情)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 오행원에서 함께 먹고 자면서 공부를 할 수가 있는 것도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니 말이지요.”
“맞아요.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것에는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끈끈함이 있어요. 이것이야말로 관계의 인연이라고 하겠네요. 참으로 깊은 사유를 통해서 얻을 수가 있는 말씀으로 여겨집니다.”
“관계는 접촉(接觸)에서 시작이 됩니다. 접촉에는 눈빛이 접촉하고 말이 접촉하고 몸이 접촉합니다. 이것은 서로 닿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함께하는 인연이지요. 이 단계에서 비로소 남이라는 존재를 인식(認識)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어떤 사람과 접촉했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 접촉은 이어질 수가 없게 되기도 하니까요.”
우창이 이렇게 설명하자 진명이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접촉이라는 생각을 해보니까 막연하게 애정(愛情)이라고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있어요. 더구나 반드시 몸으로만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눈빛과 말로도 접촉한다는 말씀에서 색다른 느낌을 얻었어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스승님과 마음으로 접촉하고 있는 것이네요.”
“맞습니다. 대화(對話)를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그래가면서 더욱 가까워지고 공감(共感)하면서 접촉이 이뤄지는 것이니까요. 말이 통하지 않으면 접촉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눈빛으로 교감이 되지 않으면 그때도 접촉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흡사 나무와 돌이 서로 접촉하더라도 교감은 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애정(愛情)이라고 생각됩니다.”
우창의 설명을 들으면서 모두 공감했다. 더구나 오행을 중심에 놓고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서로를 의지하고 탁마(琢磨)하면서 수행하는 오행원의 사람들에게는 더 말을 할 나위가 없었다. 우창의 말이 이어졌다.
“성욕(性慾)은 종족의 번식을 위해서 조물주가 준 설계도(設計圖)라고 봅니다. 다만 이것도 균형이 있는 것은 식욕이나 수면욕과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정이 너무 없으면 관계가 소원(疎遠)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강하면 집착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진명이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말했다.
“오행(五行)으로 정(情)을 수(水)라고 한다면 문득 물은 서로 만나서 변화를 일으킨다고 생각하게 되네요. 그런데 항간(巷間)에는 사주에 수기(水氣)가 많으면 정이 넘친다는 말도 있는데 이것과도 유관(有關)해 보여요. 서로 만나서 하나로 어우러지는 물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봐도 좋을까요?”
진명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우창의 답변을 기다렸다. 그것을 본 우창이 설명했다.
“그것도 일리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고서(古書)에서는 수(水)를 윤하(潤下)라고도 했습니다. 아래로 흘러가는 윤택한 성분이라는 뜻이려니 합니다. 그리고 만나는 것에 생동감을 불어넣기도 하니 과연 정으로 어루만진다는 말도 가능하겠습니다. 다만 사주에 수가 많다고 해서 음란하다는 식의 단견(短見)은 지양(止揚)하는 것으로 보라는 말도 덧붙여야 하겠습니다. 하하~!”
“스승님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면 서로의 관계는 음욕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지 않아요? 그러니까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정(情)이고 정이 있으면 원활(圓滑)한 인연이 이어진다고 하는 말씀이시네요. 그런 면에서 폭넓은 의미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겠어요. 이것이 십성(十星)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진명이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십성의 관점에서 설명을 부탁했다. 그러자 우창이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 말했다.
“관계는 살아가는 방법이 됩니다. 세상을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이것은 수단(手段)과 연결되면서 십성에서는 식상(食傷)으로 대입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식신(食神)은 스스로 자신의 그릇을 만들어서 관계를 끌어들입니다. 또 상관(傷官)은 자신이 타인에게 다가가서 관계를 만들게 됩니다. 이것은 관계의 음양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우창의 말을 듣고서 진명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와우~! 스승님~! 정말 예리하고도 멋진 통찰이시네요. 식신은 내면에서 자신을 다듬어서 흡입(吸入)하는 능력을 키운다는 말씀이잖아요? 또 상관은 발산(發散)하는 힘으로 밖에서 관계를 찾게 되니 참으로 오묘한 십성의 이치라고 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겠어요. 호호호~!”
우창은 진명의 순발력과 총명함에 항상 감탄했다. 우창이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대신해 주는 것으로 인해서 이야기의 핵심이 항상 두 배로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진명이 말을 하면서도 생각이 정리되는지 다시 이어서 말했다.
“그렇다면, 스승님의 말씀대로 음식은 십성이 인성이고 오행은 토(土)가 되는 것이네요. 음식 중에서도 밥은 기토(己土)가 되어서 정인이고 약(藥)은 무토(戊土)가 되어서 편인이라는 뜻이잖아요?”
“맞습니다. 잘 정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수면의 오행은 금(金)이 되고 십성은 비겁(比劫)인데 숙면하는 것은 비견이니 경금(庚金)이 되고, 꿈이나 번뇌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면 겁재가 되니 신금(辛金)으로 보면 된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대로 정리하시면 됩니다.”
“이제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해 본다면 인정(人情)의 오행은 수(水)가 되는 것이니 물은 사방으로 흘러 다니며 서로 잘 어우러지게 되는 것과도 통한다고 하겠어요. 물론 십성은 식상(食傷)이니까 자신의 존재감을 키워서 남들이 찾아오게 만들면 식신(食神)의 임수(壬水)가 되고, 남들과 어우러져서 자기의 능력을 뽐내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상관(傷官)의 계수(癸水)가 되는 것으로 정리해도 될까요?”
“오호! 완전히 한 줄로 꿰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정리하면 만무일실(萬無一失)이겠습니다. 하하하~!”
우창은 진명이 깔끔하게 정리해 주자 통쾌한 마음이 들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특히 식욕(食慾)이나 수면욕(睡眠慾)이나 색욕(色慾)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지혜롭게 적용할 방법을 찾아냈다는 것도 고마웠다.
“오늘은 인정(人情)을 생각해 봤습니다만, 여러분의 생각은 또 어떠셨는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오행을 배우면서 자연의 이치를 궁리하는 것도 알고 보면 관계에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할 것이니 식상(食傷)의 능력을 함양(涵養)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닐 것입니다. 모쪼록 열심히 정진해서 저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스승이 되시기만을 간절히 염원할 따름입니다.”
우창이 마무리 삼아서 이렇게 말을 마치자 모두 감동의 박수를 우레같이 쳤다. 우창이 합장하고 감사를 표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가 되었고, 모두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서 숙소로 향했다. 우창도 모처럼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제자들이 있어서 흐뭇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할 수가 있었다. 이것은 사제지정(師弟之情)이겠거니 싶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