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 제32장. 장풍득수/ 4.산복(山福)

작성일
2022-03-25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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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 제32장. 장풍득수(藏風得水) 


4. 산복(山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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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은 주인 부부가 잘 알아들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한결 부드러워진 음성으로 말했다.

“제가 한 것이 무엇이 있다고요. 무엇보다도 아들이 돌아올 때가 되어서 돌아온 것이니 아들에게 고맙다고 하면 됩니다. 다만 오늘 이렇게 인연이 되었으니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제 몫인가 싶습니다. 그러니 알려 드린 대로 조금도 착오가 없이 그대로 하면 앞으로는 이러한 일로 근심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지광을 바라보고 말했다.

“형님, 이 터는 어떤 곳입니까? 혹 이사해야 할 문제는 없는지 살펴보신 대로 말씀해 주시지요.”

우창이 넌지시 지광을 끌어들이자 지광도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아우님이 본 그대로네. 부귀(富貴)를 바란다면 좀 부족하겠지만 세 식구가 서로 화목하게 살면서 자손(子孫)이 번창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복지(福地)임이 분명하네.”

지광의 말에 부부는 거듭 머리를 조아리면서 감격했다. 주인이 말했다.

“두 분 도사님의 가르침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저희 부부가 성의를 다해서 음식을 마련하겠습니다. 조금도 사양하지 마시고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아,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고마워하는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전혀 마음을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하~!”

우창이 자상한 모습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주인 부부는 알았다고 하고는 안으로 들어가서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지광은 아들이 어떤 마음으로 귀가했는지를 알고 싶어서 안으로 들어가서 탁자에 마주 앉아서 천천히 물었다.

“그래, 답답한 마음에 집을 떠나 고생이 많았구나.”

“예,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만 집을 떠나서 고생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룻밤을 지내고 온 것으로 알았는데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는 것에 제가 놀랍습니다.”

“그러면 얼른 돌아올 일이지 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나?”

지광은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과 우창의 조짐이 만나게 된 지점이 궁금했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우창과 염재도 마찬가지였다. 지광의 말에 아들이 순순히 말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이미 미시쯤에 집 부근까지 왔습니다만, 스스로 떠났던 집을 밝은 대낮에 들어가기가 못내 쑥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오게 되었지요. 그런데 어르신께서는 제가 밖에서 안 들어오고 기다렸다는 것은 어떻게 알고 계셨습니까?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창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지광이 눈짓을 했다. 그래서 입을 다물자 지광이 웃으면서 아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약간의 특별한 재주가 있었을 따름이네. 그보다도 집을 나가서 어디를 다녔는지 궁금하군. 그대가 겪은 이야기를 해 줄 수도 있으려나 모르겠구나. 아마도 특이한 체험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말이네. 하하~!”

“예? 정말 대단한 기인(奇人)들이시군요. 제가 경험한 것을 누구에게 말하더라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내막까지도 모두 알고 계시는 분들이 집에 와 계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상만사(世上萬事)는 인연(因緣)에 따라 생멸(生滅)하는 것이라지 않는가. 그대가 겪은 이야기를 하나도 빼지 말고 소상하게 들려준다면 또한 좋은 인연의 싹을 키우는 셈이 될 테니까 편안하게 말을 해 주면 되네. 하하~!”

지광이 객잔의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애써 부드럽게 말을 해서 아들이 행여라도 놀라거나 긴장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보면서 우창도 한마디 거들었다.

“형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줄은 우창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대체 무엇을 보셨기에 이렇게 말씀하시는지 궁금해서 좀이 쑤십니다.”

그러자 지광은 우창을 보면서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게. 곧 알게 될 테니까.”

이렇게 잘라서 말하고는 다시 아들을 향해서 물었다.

“그런데 이름이 어떻게 되나? 아직 이름도 모르고 있었구나.”

“아, 소생의 이름은 방악(方岳)이라고 합니다. 올해 스물두 살입니다.”

“그렇구나. 나이는 내가 훨씬 많으니 조카라고 생각하고 말을 편하게 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 악(岳)은 이레 동안 어딘가 특별한 곳에서 머물렀을 것으로 보이는데 혹시 산중(山中)의 바위굴은 아니었나?”

지광의 말에 방악은 흠칫 놀라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 그 행동으로 봐서 무척이나 놀랐던 모양이다. 우창은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더욱 궁금증이 커졌으나 지금은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지광도 다시 말을 이었다.

“집을 나섰을 때부터 차근차근 말해 봐.”

지광의 말에 안정을 찾은 방악은 비로소 집을 나선 이야기부터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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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악은 그날도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으로 숨을 크게 쉴 수가 없을 정도였는데 더욱 고통이 심했던 것은 아침부터 머리가 깨어질 정도로 아팠기 때문이었다. 물론 부모님께 말을 꺼내 봤으나 멀쩡한 아들이 괴이한 말이나 한다면서 걱정만 끼쳐드린 것도 이미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말을 꺼내 봐야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고통스러운 두통을 어쩔 수가 없어서 무작정 목적지도 없는 상태에서 생각 없이 집을 나서게 되었다.

고통스러움에 못 이겨서 집을 나서긴 했으나 막상 어디로 가야 한다는 목적지도 없었기에 그냥 정신없이 뛰었다. 머리의 통증이 커질수록 더욱 빨리 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뛰었을까? 해가 기울어가는 시간이었는데 자신은 생전 처음 와본 산속에 있었고, 주변은 숲이 울창하다는 것을 겨우 느끼게 되자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인가(人家)는 보이지 않았다. 어둑어둑한 길도 산짐승들이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였다.

달리 방법이 없자 무턱대고 길만 따라서 걸었다. 그러다가 어둠 속에서 바위에 굴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오자 당장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굴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잠시 그대로 서 있었는데, 차츰차츰 주변이 보이자 비로소 다섯 사람 정도가 앉을 만큼의 공간이 있는 동굴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아늑한 느낌이 들자 뛰느라고 힘들었던 상태에서 긴장이 풀리자 그대로 쓰러져서 정신을 잃어버렸던 모양이다.

어렴풋하게 들려오는 산새들 소리에 비로소 잠이 깨었는데 그렇게 깨어질 듯이 아프던 머리는 개운하게 통증이 사라졌고, 가슴도 편안했으며 그로 인해서 마음의 상쾌함이란 하늘이라도 뛰어오를 듯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벌떡 일어나서 밖을 내다보니 여명 속에서 떠오르는 햇살이 동굴 안을 환하게 비추니 마음이 편안해져서 어제의 모든 것은 말끔하게 잊어버리고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잠결인지 꿈속인지 모를 상황에서 자신의 몸이 마치 구름을 타고 있는 것처럼 동굴의 바닥이 느껴지지 않아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을 떴다. 그리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이 땅에서부터 한 척(尺)가량 떠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을 하고 나자 머릿속은 다시 복잡해졌다. 이것이 무엇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도 없고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기에 스스로 적이 당황했으나 기분은 한없이 좋아서 그대로 맡겨뒀다. 그렇게 두어 시진을 떠 있다가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이 마치 누군가 떠받히고 있다가 내려놓는 것만 같았다.

방악은 비로소 일어나 앉아서 굴 앞을 바라보면서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설명을 할 길이 없었다. 이러한 일에는 사전지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문득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이 떠올랐고, 집에는 가기 싫었으나 걱정하실 어머니를 생각하니 들어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집을 향했지만 해가 한낮이라서 해가 지기를 기다려서 들어갔는데, 그사이에 날짜는 이레가 지났다는 것을 알고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껏 하룻밤을 보낸 것으로 생각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자 실로 많이 답답하던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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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마친 방악이 지광에게 물었다.

“도사님께서 그렇게 물어주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실로 제게 일어났던 일이 무슨 일이었는지를 도사님께서 좀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러한 설명을 해 주실 수가 있을 것으로 믿어집니다. 제가 겪었던 일들은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렇게 말을 하면서 간절한 눈빛으로 지광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우창과 염재도 동시에 지광을 바라봤다. 지광은 아까부터 방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을 지그시 감고 명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설명을 해 줄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말을 다 듣고서야 눈을 뜬 지광이 물었다.

“조카가 느낀 것은 매우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생길 수가 있는 일이네. 내가 생각한 것이 틀리지 않았다면 조카는 조상님의 도움으로 죽을 목숨을 건진 셈이니 고마운 줄을 알아야 하겠네. 하하하~!”

지광의 말로 봐서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라는 것을 느낌으로도 알 수가 있었던 방악은 비로소 마음을 놓으면서 그 연유를 설명해 주기만 기다렸다. 방악의 모친은 비로소 정신을 추스르고는 차를 끓여서 따랐다. 향기로운 차향이 감돌자 모두 한 잔씩 마시고는 고맙다는 뜻으로 공수를 했다. 지광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한 대로 몇 가지를 물어보겠네. 악(岳)의 이름은 누가 지었나?”

그러자 방악은 부친을 바라다봤다. 여태 이름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주인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실은 아이가 태어났을 적에 어느 도사가 지나가다가 이름이 뭐냐고 물어서 아직 이름을 짓지 못했다고 하자 큰 산을 의미하는 악(岳)이라고 하면 죽을 고비를 넘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것도 인연이려니 싶어서 그렇게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름에도 무슨 연유가 있었을까요?”

주인의 말을 듣고서 지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우창이 오히려 더 답답해졌다. 무슨 생각을 했기에 이름을 물었는지 우창의 판단으로는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다음의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주인의 말을 듣고 지광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말했다.

“그때에는 호두나무도 어렸겠지요?”

“아, 그렇습니다. 그때는 어른의 키보다 크지 않았을 겁니다.”

“역시....”

“무슨 뜻인지 궁금합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염재가 물었다. 그러자 지광이 염재를 한 번 보고는 다시 주인에게 말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거대한 바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작은 나무 한 그루도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지금 조카에게 일어난 일은 호두나무로 인해서 비롯된 것입니다. 나무의 기운이 짓누르자 항상 가슴이 답답했을 것이고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면 의원에게 물어서 약만 먹었겠지요. 그렇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약을 먹으면 사나흘은 조용했으니까요.”

“그렇게 견디다가 이번에는 도저히 못 견뎌서 뛰쳐 나갔는데 자신도 모르게 암벽의 석굴로 들어갔던 것은 아무래도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혹 이름에 어떤 사연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역시 도사님의 혜안은 예측하지 못하겠습니다.”

“이름이 방악(方岳)이라면 악(岳)은 바위산을 의미하니 혹 미리 그것을 예견(豫見)한 누군가에 의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고서야 이렇게도 교묘(巧妙)할 수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과연 혜안을 갖고 있던 현인을 만나게 되는 바람에 이름의 덕으로 여태까지 잘 버텨왔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그러자 우창이 궁금한 것을 물었다.

“형님, 이름의 효과도 있기는 한 것이었습니까?”

“아, 그야 조짐이라고 해야 하겠네. 그 도사가 미래를 꿰뚫어 보고서 그 글자를 지정해 줬으니 다른 이름이라고 하더라도 이 시기에서 조상이 돕는다면 또한 같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겠지?”

“그런 것이었군요. 참 재미있습니다.”

우창과 지광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방악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도사님들께서는 어디로 향하는 길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소생도 동행할 수는 없겠습니까? 어려서부터 세상의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이와 같은 일까지 겪고 보니까 그 이치를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문득 생겼습니다. 인연이 아니라면 할 수가 없겠으나 혹 인연이 있어서 거둬주신다면 수고로움은 끼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방악의 말에 지광이 우창을 바라봤다. 우창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주인 부부를 향해서 물었다.

“조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보니 또한 인연인가 싶기는 합니다만 부모의 허락을 받는 것이 순서라고 하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지광의 말에 부부는 기뻐하면서 말했다.

“저희 부부야 물론 환영입니다. 거둬주신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보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진심 어린 표정으로 허리를 굽히면서 공수했다. 그들의 표정을 보고서야 비로소 허락했다.

“그렇다면 때론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잘 견디겠다면 동행할 것을 허락하겠네.”

“고맙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깊은 이치를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제자의 인연으로 절을 올립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는 우창과 지광을 향해서 제자의 예로 절을 했다. 그러는 사이에 저녁이 마련되었다면서 상을 차려왔다. 정성으로 차린 음식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우창도 예전에 들었던 대추나무 이야기[제5편 참고]를 꺼내서 좌중을 감탄하게 했다. 방악도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이치는 홀로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는지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공감을 했다.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지광이 자리를 비우고 일어나는 것을 마음에 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피(所避)를 보러 가는 것이겠거니 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이각(二刻)쯤 되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왔다.

모두 즐거운 저녁을 먹고는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자 지광이 일어나서는 우창의 옆구리를 찔렀다. 우창이 눈을 뜨자 밖으로 나가자는 듯이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켰다. 우창도 조용히 일어나서 말없이 지광을 따라서 밖으로 나갔다. 날씨는 맑고 달은 휘영청 밝았다. 낮에는 더웠으나 해시(亥時)는 되었을 시간인지라 산촌의 밤은 시원했다.

“형님, 무슨 말씀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이제 아우님께 지학(地學)의 이치에 입문할 기회가 왔네. 하하~!”

“예? 이미 형님을 만나서 공부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 그런 일상적인 공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네.”

“그럼 어떤 것을?”

“그깟 공부가 무슨 공부 축에나 들겠는가? 내가 말하는 것은 지기(地氣)에 대한 것을 말하는 것이라네.”

“지기를 어떻게 배울 수가 있습니까?”

“배울 수는 없지.”

“그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체험(體驗)해야지. 하하하~!”

“예? 지기를 어떻게 체험할 수가 있습니까?”

“인연이 되면 그것도 가능할 수가 있다네.”

“궁금합니다. 형님께서 어떤 조짐을 보셨기에 그리 말씀해 주십시오.”

“실은 이것조차도 기연(奇緣)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라네.”

“예? 무슨.....?”

“방악을 만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라네.”

“아, 그 일은 이렇게 일단락이 되지 않습니까?”

“물론이네. 일단락은 다시 이 단락의 시초가 된다는 것도 있다네. 하하~!”

“그야 당연하겠습니다만, 어떤 가르침이신지 말씀해 주셔야지요.”

우창이 거듭 답답해서 말하기를 재촉했다. 그제야 지광도 그 연유를 설명했다.

“아우님이 이번 길에 동행한 것은 두 가지의 목적이 있었지 않은가. 그 하나는 바람을 쐬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지만 또 하나는 아마도 이것이 본심이었겠지만 지학에 대한 이치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텐데 그렇지 않은가?”

“역시 형님의 예리한 통찰력은 입신지경(入神之境)이십니다. 하하~!”

“그 정도야 무엇이 어렵겠는가. 아무것도 아니라네. 다만 지리학(地理學)의 핵심을 어떻게 전해줘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심(苦心)했을 따름이지.”

“아, 그러셨습니까? 우제는 그것도 모르고서 무사태평(無事泰平)이었습니다. 정말로 형님을 만난 인연을 하늘에 감사드립니다. 하하~!”

“괜한 소리는 하지 말고, 그건 나에게도 속셈이 있었으니 말이네. 나는 인학(人學)에 대해서 그 핵심을 얻고자 함이 있었으니 말이네. 하하~!”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창이 형님께 가르쳐드릴 것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혹 실망하시더라도 우제의 능력이 부족한 것을 탓하셔야 하겠습니다. 하하~!”

우창이 이렇게 부담스럽다는 듯이 말하자 지광도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그런 것에 대해서는 염려 말게. 그런데 지형(地形)부터 가르치려고 했는데 그것을 뛰어넘을 인연을 만났다는 것이 나는 신기할 따름이라네. 아무래도 아우님은 전생에 공덕이 많아서 학문의 인연이 주렁주렁 달린 것만 같단 말이네.”

“아까부터 그리 말씀하시는데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내일 날이 밝으면 알게 될 것이네. 나는 너무나 기뻐서 이대로는 잠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아서 언질이라도 주려고 불러낸 것이라네. 하하~!”

“그러셨습니까? 아무래도 형님의 말씀으로 봐서 나쁜 일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만 정말 말씀해 주시지 않을 요량이십니까?”

“아까 잠시 자리를 비웠었는데 알고 있었는가?”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비로소 우창도 지광이 자리를 비웠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워낙 신경을 쓰지 않아서 이내 잊어버렸는데 말을 하니까 생각이 났다.

“예, 기억이 납니다. 그냥 잠시 측간(廁間)에 가시나 했는데 혹 다른 곳을 다녀오신 것입니까?”

“맞았네. 방악의 말을 들으면서 그 장소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래서 잠시 가서 둘러보고 왔던 것이지.”

“예? 그 짧은 시간에 말입니까?”

“아니, 아우님은 내게 약간의 재주가 있다는 것을 잊었나 보군. 하하~!”

“아, 축지법(縮地法)을 발휘하신 거군요. 정말 그 짧은 시간에 산속의 동굴을 둘러보고 오셨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정말 말씀을 듣고 보니 참으로 궁금합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오신 것인지요?”

“자, 그만 잠자리에 들도록 하세. 지금 이야기를 해봐야 궁금증만 커질 따름이니 내일 아침이나 든든하게 먹고 가도록 쉬는 게 나을 것이네. 하하~!”

“예, 형님의 말씀에 마음이 설렙니다. 궁금한 것이야 많으나 내일 풀어보도록 하고 오늘은 이만 쉬도록 하겠습니다. 형님도 편히 쉬시고요.”

우창은 비로소 지광의 심기(心機)가 얼마나 깊은지를 느낄 수가 있었다. 단순하게 특별한 기술만을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살피는 통찰력까지 있는 것을 알게 되자 존경하는 마음이 깊은 곳에서 우러나왔다. 내일은 또 어떤 경험을 하게 될 것인지 설레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음날 일찍 눈을 뜨자 벌써 지광은 방악에게 챙겨야 할 것에 대해서 지시하고 있었다.

“형님 벌써 기침(起寢)하셨습니까? 우제는 늦잠을 잤나 봅니다.”

“아닐세. 나도 조금 전에 일어났지. 일찍 가봐야 할 곳이 있으니 서둘러서 준비하세.”

“예, 알겠습니다.”

우창은 이미 어젯밤에 지광이 귀띔을 해 줬기 때문에 어디로 향할 것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설레는 마음을 진정하면서 대략 여장을 챙겼다. 염재도 마차를 대령했다. 마차가 가는 곳까지 이용하고 그다음에는 걸어야 한다는 것도 짐작했다. 먹을 음식과 마실 물을 준비하자 주인 부부가 정성으로 차려준 아침을 먹고서 서둘러서 출발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지광이 다녀오겠다고 하는 말에 주인 부부도 아들이 당장 떠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위안이 되었던지 활짝 웃으면서 다녀오라고 했다.

이제 겨우 동녘에 떠오르는 태양이 어둠을 몰아내고 있을 시간이었다. 길은 방악이 안내하는 대로 맡기고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기분 좋게 흔들리는 마차에 몸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