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제32장. 장풍득수/ 3.신시(申時)의 조짐(兆朕)

작성일
2022-03-2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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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제32장. 장풍득수(藏風得水) 


3. 신시(申時)의 조짐(兆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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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지광이 우창에게 물었다.

“아우가 한 말이니 당연히 유추(類推)한 이치가 있으려니 싶네. 그 이치를 듣고 싶은데 지금 말을 해 주면 안 될까?”

“왜 안 되겠습니까? 그게 무슨 기밀이라도 된다고요. 하하하~!”

“아니, 그런 말들을 하지 않는가? 천기(天機)를 누설(漏泄)하면 안 된다면서 짐짓 감추곤 하지 않느냔 말이네.”

“천기라니요. 가당치 않습니다. 그냥 조짐이라고 해야지요. 하하하~!”

“생각해 보니까 왜 천기를 누설하면 안 된다고 하는지도 궁금한걸.”

“그야 미리 알면 안 되는 경우가 있을 테니 나온 말이겠지요. 가령 왕의 폭정(暴政)을 견디지 못한 의협지사(義俠志士)들이 모여서 왕을 시해(弑害)하려는 뜻이라면 천기누설을 하면 안 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물론 정확히는 천기(天機)가 아니라 기밀(機密)이라고 해야 옳겠습니다만. 대부분은 나름대로 속임수를 쓰려는 속셈을 상대가 알면 안 되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요. 하하~!”

“아, 그래서 아우가 웃었구나. 그렇다면 어디 그 연유를 좀 들어보세. 봐하니 염재도 잔뜩 궁금한 표정이니 말이네. 자 우선 술 한 잔 들고.”

우창은 지광이 따라주는 술잔을 받고는 지광에게도 한 잔을 채워주고 염재에게도 잔에 가득 따라줬다. 그리고는 시원스레 마시고서 새우를 볶아서 만든 요리를 먹었다. 모두 기분이 흐뭇해졌다.

“형님께서 궁금해하시는 것은 아마도 지학에는 이미 능통(能通)하셨으나 인학(人學)에는 아직 견문이 넓지 못한 까닭이지 싶습니다.”

“맞아~! 내가 알고 싶은 것이기도 하지. 하하하~!”

“이제 명학에 대해서도 멀지 않아서 손아귀에 움켜쥘 날이 오지 싶습니다. 조금만 궁리하면 될 테니까요. 하하하~!”

“그렇게만 된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하하~!”

“우선 이치는 간단합니다. 선천수(先天數)를 응용한 잡술(雜術)에 불과하니까요. 이것을 단시점(斷時占)이라고도 하고 육임단시(六壬斷時)라고도 합니다만 육임단시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려니 싶습니다. 실로 육임점(六壬占)은 전혀 다른 이치로 길흉을 판단하는 것이니까요.”

“아, 무슨 말인지 알겠네. 그러니까 단시점이라고 하는 것을 장식하기 위해서 용한 점술로 정평이 나 있는 ‘육임(六壬)’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는 말인가?”

“맞습니다. 그래서 그냥 단시(斷時)라고 하면 바로 이것을 말한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실로 점술은 대부분 9할이 단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시간으로 인해서 결과를 추론(推論)하는 논거(論據)로 삼게 되니까요. 더러는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간과 밀접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군. 지학(地學)은 공간(空間)에 비중을 두고 논하는데, 명학(命學)은 시간(時間)에 비중을 둔다고 이해하면 될까?”

“그래도 됩니다. 따지고 보면, 천시(天時)요 지리(地理)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늘의 조짐은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변화하나 땅의 조짐은 오래도록 변화가 적으니 그렇게 말하지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천시’라고는 해도 ‘천리(天理)’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반면에 ‘지리’라고는 해도 ‘지시(地時)’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치가 아닐지요?”

“과연 적확(的確)하게 핵심(核心)을 짚었네. 맞는 말이야.”

지광은 우창의 박학다식(博學多識)함에 내심으로 감탄을 했다.

“자, 형님과 염재가 궁금해하는 이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처음에 아들의 나이를 물었던 것은 생년(生年)의 간지(干支)를 확인코자 함이었습니다. 경술년(庚戌年)이라고 했으니 경(庚)의 선천수(先天數)를 취하는 것이지요.”

“경의 선천수라고 한다면 팔(八)을 말하는 것인가?”

“맞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일진은 기사(己巳)이니 하늘의 조짐을 보기 위해서 천간(天干)의 기(己)를 취합니다.”

“오호~! 그렇다면 선천수는 구(九)가 되겠군.”

“그렇습니다. 이렇게 해서 천지(天地)의 조짐을 살핀 다음에 인사(人事)의 핵심인 시지(時支)를 살펴보게 됩니다. 지금은 미시(未時)에 해당하니까 그것을 취하게 되지요.”

“아니, 그 가운데에서 이미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가 포함되어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무슨 점술이 그리도 간단하단 말인가? 그 정도라면 나도 응용할 수가 있지 않겠나?”

“물론이지요. 하하하~!”

“그렇다면 미시(未時)의 미(未)는 팔(八)이네. 그래서 어떻게 해석한단 말인가?”

지광은 이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 듯이 우창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형님, 요리도 드시면서 말씀하셔도 됩니다. 식었으니 데워오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멀찌감치에서 아까보다는 훨씬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주인에게 다른 안주도 부탁하면서 식은 음식을 데워달라고 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경(庚)의 팔(八), 기(己)의 구(九) 그리고 미(未)의 팔(八)을 모두 합하면 점괘가 됩니다.”

“그것은 간단하군. 합이 이십오(二十五)가 아닌가?”

“맞습니다. 25가 되면 이것은 단시에서 작괘(鵲卦)라는 것만 알면 됩니다.”

“작괘면 까치 괘라는 뜻인가?”

“그렇지요.”

“오호라~! 까치라면 소식이 온다는 뜻이 아닌가? 그래서 소식이 온다고 해석하는 것은 기본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가능하겠네. 그렇지만 유시(酉時)가 되기 전에 아들이 돌아온다는 것은 해석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여기에서 약간의 기교(技巧)라고 할 수가 있는 관찰력(觀察力)이 동원될 수도 있습니다.”

“기교라니 그것은 논리를 벗어난 곳에 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명리(命理)나 지리(地理)라는 말은 있어도 점리(占理)라는 말이 없는 것이지요. 하하하~!”

“점리? 그런 말은 나도 들어본 적이 없는걸. 대신에 점술(占術)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제보니 아우는 참으로 오묘한 말재간꾼일세. 하하하~!”

“오묘할 것도 없이 간단합니다. 점술(占術)도 기본적으로는 이치에 바탕을 두고 추론하는 것입니다만 여기에 온갖 조짐들이 개입하는 것이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말이네. 여하튼 놀라운 일이군. 그렇다면 까치 괘에 어떤 조짐이 개입되었는지가 궁금하네. 필시 우리가 느끼지 못한 무엇이 그 안에 있었겠지?”

“그렇습니다. 까치 괘를 본 순간, ‘아들이 돌아오겠다’는 것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것이야 이미 형님께서도 파악하신 그대로이니까요. 하하~!”

“어허! 나는 아우가 본 그 조짐이 궁금하다니까. 자꾸 돌리지 말고 어서 말을 해 주게나.”

지광이 흥분해서 말했다. 배움에 대해서는 조금도 양보가 없는 학자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어서 설명하지 않으면 숨이라도 넘어 가지 싶었다.

“실로 우창의 판단력도 그 정도입니다. 까치 괘를 보면서 아들이 오기는 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할 참이었지요. 그런데 그 순간에 하늘에서 매의 울음소리가 두어 번 들렸는데 형님은 못 들으셨지요?”

“그랬나? 웬 매의 소리를 듣는단 말인가?”

그러자 우창이 해삼을 찐 요리와 함께 데운 음식을 갖고 온 주인에게 물었다.

“혹시, 이 부근에 매가 살고 있습니까?”

“매라고요? 아 물론 매의 둥지가 저 뒷산 벼랑에 있습지요. 그건 왜 물으시는지요?”

주인이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우창이 문득 매의 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물어보는 것이라고 둘러댔다.

주인이 요리를 놓고 돌아가자, 지광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 매의 소리가 어쨌단 말인가?”

“매의 소리를 듣는 순간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간단한 이치니까요.”

“그게 어떻게 간단한 이치란 말인가?”

“형님도 참. 매가 날면 까치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까치가 매에게 걸리면 밥이 되고 말테니까 깊이 숨겠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돌아오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지요. 그렇다면 언제 돌아오겠습니까?”

“매가 사라지면 돌아온단 말인가? 매는 언제 사라질지를 어찌 안단 말인가?”

“매는 날짐승이니 어둠이 내리기 전에 둥지로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겠군. 아우의 이야기에 취해서 내 판단력이 형편없네. 하하하~!”

“하물며, 까치도 어둠이 내리면 둥지로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유시가 되기 전에 귀가하게 된다고 해석을 했단 말인가?”

“맞습니다. 그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하하하~!”

“아니, 매는 날짐승이니 날고 말고도 자신의 마음대로 할진대 그렇게 말을 했다가 만약에 오늘 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려고 그렇게 말하나?”

“그래서 조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만약에 주인이 말을 하기 전에 매의 소리가 들렸다거나 아들이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 다음에 들렸다면 이미 조짐이 아닙니다. 딱 그 시간에 바로 그 소리가 조짐이지요.”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과 염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짐에 대한 의미를 이렇게 쉬운 말로 설명해 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계기(契機)에 부합(符合)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활연(豁然)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우창이 말했다.

“이렇게 되면 우창도 조짐을 믿을 밖에요. 그 조짐이 빗나가서 주인 내외에게 비난을 받더라도 전혀 염려하지 않을 참이었으니까요. 하하하~!”

그러자 염재가 말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제자는 두려움과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말은 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하다네. 점신(占神)을 믿지 않고서는 그러한 말을 하기가 어려운 까닭이라네. 하하하~!”

우창과 염재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지광이 밖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신시도 중(中)을 넘어서 말로 다가가는 듯한데 감감무소식이니 어쩐다.....”

진심으로 우창을 걱정하는 마음을 섞어서 자신의 걱정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러자 우창이 웃으면서 술을 따라줬다.

“형님, 즐겁게 술만 드시면 됩니다. 돌아오고 말고는 아들에게 맡기고요. 하하하~!”

그 말에 지광이 비로소 근심을 내려놓고 술잔을 들었다.

“하긴,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걱정한다고 될 일은 아니로군. 알았네. 굿이나 보고 떡이나, 아니 술이나 얻어먹으면 될 일이니까 말이지. 하하하~!”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술도 얼큰해지자 우창이 산책을 하자고 했다. 주변에 작은 강도 있고 뒷산도 수려해서 둘러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자 상을 치우라고 하고는 세 사람은 강변을 둘러볼 겸 해거름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가 문득 우창이 지광에게 물었다.

“참, 형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지광은 아직도 우창의 말이 마음에 쓰였는지 생각에 잠겨있다가 우창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들어서 말했다.

“그래? 뭔가?”

“지리학은 묘터만 보는 것은 아니지요?”

“당연하지, 묘상(墓相)과 가상(家相)으로 나눠서 구분하기도 한다네. 묘상은 음택(陰宅)이라고도 하고, 가상은 양택(陽宅)이라고도 하지. 그게 왜 갑자기 궁금해졌나?”

“실은 좀 전에 객잔을 나오면서 봤습니다만, 뜰에 있는 호두나무가 맘에 걸렸습니다.”

우창이 바람 쐬러 밖으로 나가다가 뜰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한 그루 발견했다. 그것을 본 순간 옛날에 스승인 혜암 도인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대추나무에 대한 고사(故事)였다. 자오검(子午劍)과 동행하면서 어느 고택에서 대추나무를 자르게 되었던 이야기였는데 지금 문득 그 생각이 왜 났는지는 모르겠기에 지광에게 물어보고 싶었는데 우창의 물음에 지광이 말했다.

“아니, 아우의 눈썰미도 보통이 아니로군. 하긴 조짐에 대해서 밝은 안목을 갖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이미 지리학의 절반은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세. 하하하~!”

“어쩐지.... 분명히 길상(吉相)은 아닌 것이 맞습니까?”

“나는 풍수를 알다 보니까 그러한 것을 봐도 못 본 채로 넘어가나 아우에게는 또 그것이 보였으니 그 나무의 운명도 오늘까지인가 싶네. 하하하~!”

“아니, 그 나무로 인해서 가정에 문제가 생길 조짐인데도 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우창은 언뜻 이해되지 않아서 다시 물었다. 그러자 지광이 말했다.

“생각해 보게 그렇게 눈에 보이는 대로 일일이 간섭하다가 정작 자기의 일은 언제 하겠는가. 하하하~!”

“아, 그 말씀은.... 묻지 않으면 답하지 않는 이치입니까?”

우창의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우창도 익히 알고 있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유문필답(有問必答)이요 무문부답(無問不答)이라는 것은 항상 제자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한 까닭이었다. 그래서 만법(萬法)은 하나로 통하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그렇다면 호두나무는 아직 더 살려둬야 할까요?”

“이미 아우의 마음에 점을 찍었으니 그냥 남겨두면 그것도 마음이 편치 않을 일이잖은가?”

“그렇긴 합니다. 그래서 일단 애초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네요. 이런 것이 주제넘은 짓인가 봅니다. 하하하~!”

“맞아. 그렇긴 하지.”

지광이 담담하게 말하자 우창이 다시 물었다.

“그 나무로 인해서 아들이 마음을 못 잡고 자꾸만 밖으로 나가는 것으로 보면 이치에 부합할까요?”

“아우는 이미 그 경지까지 도달했구나. 대단하군.”

“말이 된다는 뜻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경지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만, 느낌은 그랬습니다.”

“그런데 오래된 나무를 베는데,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는 아는가?”

우창은 처음 듣는 말에 의아해서 다시 물었다.

“예? 나무를 베는데도 절차가 있습니까?”

“당연하지. 하나의 생명을 끊는 일인데 나무에도 신이 있다면 얼마나 서운하고 또 분노할 일이지 않겠나?”

“아하~! 사물(事物)에 탈(頉)이 난다는 동토(動土)는 그래서입니까?”

“그렇다네. 오래된 집을 헐거나, 집안 가까이에 있는 큰 나무를 베게 될 때는 그에 따른 절차를 밟아서 결행해야 한다네. 무엇보다도 그렇게 해야만 주인 부부의 마음이 편안할 테니까 말이네. 여러 가지로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네.”

“아, 그렇군요. 또 귀한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만 들어가 보지요. 시간도 그럭저럭 유시가 다가오고 있으니 혹, 그 사이에 무슨 변화가 생겼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럴까? 실로 나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라네. 염재도 아마 같은 마음이지 싶은데 어떤가?”

지광이 염재를 돌아보면서 말하자 염재도 기다렸다는 듯이 앞장을 서면서 말했다.

“물론입니다. 어서 결과를 봐야만 마음이 놓이겠습니다.”

세 사람이 객잔의 입구에 다다르자 안에서 여인의 통곡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다.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서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머뭇거리자 우창을 발견한 남자 주인이 밖으로 뛰어나오면서 기쁨에 가득한 표정으로 우창의 손을 부여잡고 말했다.

“나리께서 참으로 신묘한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신통력으로 아이가 돌아왔습니다. 정말 이 은공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해드릴 수가 있는 것이라고는 음식과 잠자리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부디 편히 머물리 주신다면 신명을 다해서 모시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주인의 말투로 봐서는 아들이 돌아온 모양인데, 안주인의 통곡하는 소리가 어리둥절해서 우창이 눈만 껌뻑이면서 주인을 바라봤다. 그제야 주인도 무슨 뜻인지 이해를 했는지 웃으면서 말했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잃었을까 싶어서 노심초사(勞心焦思)하던 차에 돌아온 아들을 보고는 너무 기쁘고도 놀라워서 통곡하는 것이니 걱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그제야 세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웃을 수가 있었다. 우창이 마차에서 필묵을 챙기면서 주인에게 물었다.

“혹 경면주사(鏡面朱砂)를 구할 수가 있습니까?”

“아, 주사는 있습지요. 가끔은 급하게 필요할 경우가 있어서 구해놓고는 쓰지 않았는데 찾아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잠시랄 것도 없었다. 안으로 들어간 주인이 얼른 주사를 들고나왔기 때문이다. 행여 무슨 술법이라도 부리려나 싶었던지 호기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참기름도 조금 필요합니다.”

그렇게 말을 한 우창이 덩어리로 된 경면주사를 곱게 갈아서 가루로 만들었다. 우창이 혹시나 몰라서 챙겨뒀던 『만방길흉서(萬方吉凶書)』에 간단한 부적의 도안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기 때문에 책을 펼쳐서 나무에 사용할 부적을 찾았다. 그리고는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사각(四角)의 황지(黃紙)에 부적을 그렸다.

우창이 부적을 그리는 동안에 염재와 지광도 숨을 죽이고 우창의 붓끝만 따라서 눈이 움직였다. 도대체 어서 아들을 만나서 자초지종을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고 이렇게 뜬금없이 부적을 그리고 있는 우창의 속내를 짐작할 수가 없어서 의아한 마음도 함께 품었으나 설명은 듣기로 하고 지켜보자 잠시 후에 부적을 다 그렸는지 우창이 붓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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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우님. 이것은 무슨 부적인가?”

완성한 부적을 보면서 지광이 우창에게 물었다. 그러자 우창은 지광과 염재에게 미소를 짓고는 주인을 향해서 말했다.

“부인도 같이 들으셔야 합니다. 이리 오라고 하시지요.”

우창의 말에 주인은 얼른 들어가서 아내를 데리고는 다시 탁자로 다가왔다. 아내는 그사이에 눈물을 흘려서인지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그렇지만 감사의 인사를 하느라고 고개만 연신 조아렸다.

“주인장께서는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이 가정에 발생한 문제의 원인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뜰의 호두나무입니다. 처음부터 그 나무가 마음에 걸려서 여기 계신 지사(地師)께 여쭈었더니 그것이 맞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이레 동안 이 부적을 나무의 서쪽에 붙여놓고 비에 맞지 않게 해 주면 됩니다. 그리고 이레가 되는 날에 나무를 베고 부적은 그 벤 나무의 등걸 위에 그대로 붙여놓고 100일간 큰 돌로 완전히 덮이도록 한 다음에 100일째가 되는 날에 부적을 동쪽으로 100보 걸어가서 불태우시면 됩니다. 그러면 가정도 평안하고 아들의 미래도 창창하게 열릴 것이니 근심은 모두 사라지고 희색(喜色)이 가득한 나날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시키는 대로 꼭 지켜서 시행하시기 바랍니다.”

우창의 엄숙한 말을 들으면서 주인은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러지 않아도 그 나무를 베자고 아내에게 여러 차례 말을 했는데 해마다 비싼 호두를 두세 가마니를 생산해 주는 아까운 나무를 왜 베느냐고 하도 반대를 하는 바람에 감히 손을 못 대고 있었는데 오늘에야 나그네 도사가 그 나무로 인해서 가정에 불화(不和)가 생겼다고 이야기를 해주자 내심 쾌재(快哉)를 불렀으나 내색은 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우창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던 여인도 놀라서 말했다.

“아니, 세상에 어쩌면 그럴 수가 있어요~! 정말 그러한 원인이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애들 아버지가 나무를 베자고 하는 것을 호두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절대로 안 된다고 했으나 오늘 도사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진작에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워요. 얼른 처분대로 해야지요.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주인 부부가 진심 어린 우창의 말에 감동한 듯이 연신 고마움을 표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우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