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 제32장. 장풍득수/ 2.한난조습(寒煖燥濕)

작성일
2022-03-15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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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 제32장. 장풍득수(藏風得水) 


2. 한난조습(寒煖燥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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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 일행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동안에 내부는 다른 사람들이 없어서 호젓했다. 여행객들이 붐비는 곡부의 풍경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기도 했지만 이렇게 길을 가다가 잠시 들려서 요기하는 것이야말로 나그네에게는 무엇보다도 홀가분한 즐거움이 깃들어 있어서 세 사람은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저마다 자신의 감흥에 잠겨서 음식을 모두 먹고 나서야 차를 마시면서 지광의 말이 시작되었다.

“내심 깜짝 놀랐네. 아우의 첫 질문이 지도(地道)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지. 하하하~!”

그러자 우창이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말했다.

“형님께 너무 당돌한 질문을 올렸지요?”

“아닐세, 뭐랄까 가려운 등을 옥수수 속대로 긁는 통쾌함과도 같은 기분이네.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상쾌함인지 모를 일이네.”

“아니,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묻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그들은 항상 알고 싶어서 안달이지. 그것은 바로 어디에 왕후장상(王侯將相)이 태어날 명당이 없느냐고들 묻지. 하하하~!”

지광의 말에 우창도 비로소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다.

“아, 이해됩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미래에 마음을 두고 있는 까닭이로군요.”

“심지어 지금도 이미 최상의 자리인 제왕(帝王)이 되었음에도 미래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열망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헤아리고도 남는다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알고자 하여 추명(推命)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은 되네만 어떤가?”

“맞습니다. 형님의 말씀대로 대부분은 자신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만, 풍수를 묻는 것도 같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인심(人心)이란 다 같다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그렇겠군. 아마도 인간은 누구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까닭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 몸은 여기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십 년 후, 백 년 후에 가 있으니 말이네. 하하하~!”

두 사람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던 염재가 한마디 했다.

“정 사부께서 지도(地道)는 조습(燥濕)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까 문득 진술축미(辰戌丑未)가 떠오릅니다. 술미(戌未)는 조토(燥土)이고, 축진(丑辰)은 습토(濕土)라고 가르침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염재의 말에 화들짝 놀란 사람은 지광이었다.

“아니, 진술축미는 사고(四庫)가 아니었나? 내가 알기로는 축(丑)은 금고(金庫), 진(辰)은 수고(水庫), 미(未)는 목고(木庫), 그리고 술(戌)은 화고(火庫)라고 하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것을 조습(燥濕)으로 나눠서 가르친 우창의 혜안(慧眼)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그러자 우창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형님께서도 사고(四庫)는 아신다는 말씀이시군요. 땅에는 모든 것을 묻으니 그러한 의미도 없다고는 못하겠습니다. 하하~!”

“그렇지? 나는 그렇게만 알고 있어도 간지(干支)의 이치에서 땅에 대한 것은 모두 충분히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염재의 말을 듣고 보니까 지도(地道)를 답할 것이 아니라 지지(地支)에 대해서 내가 먼저 배워야 하겠네. 그 이치를 설명해 주게.”

“아니,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광활한 대지(大地)를 보면서 공부하려고 길을 나섰는데 여기에서 다시 지지를 설명하다니요.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사양하자 지광이 다시 물었다.

“모르는 소리 말게. 도(道)는 사소한 것에서 찾는 것보다 더 의미가 큰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차피 풍수지리를 공부한다고 해도 진술축미(辰戌丑未)가 등장하게 되어 있으니 오로지 간지(干支)를 연구한 아우의 설명을 듣고 난다면 내 안목의 깊이를 더할 수가 있게 될 것이 분명하겠다고 생각을 했다네.”

지광이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묻자 우창도 거절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점원이 다가와서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를 물었다. 다 먹었으면 자리를 치우게 떠나 줬으면 좋겠다는 의미라는 것을 알고서 세 사람도 자리를 일어나서 가던 길을 다시 출발했다.

"자, 또 가던 길을 재촉하겠습니다."
염재의 말과 함께 기분 좋게 흔들리는 마차에서 우창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일생을 풍수지리(風水地理)만 연구한 지광에게 진술축미의 네 글자를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인지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염재는 출발을 하면서부터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면서 천천히 말을 몰았다. 점심을 먹는 사이에 말도 충분히 쉬었는지 말발굽의 소리가 기분 좋게 울렸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우창이 말하기 시작했다. 지광은 이목을 집중했다.

“형님께서 진술축미에 대해서 듣고자 하시니 간략하게나마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실로 우창이 간지학(干支學)에서 득력(得力)을 한 것은 『적천수(滴天髓)』라는 책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적천수? 그런 책 이름은 처음이네. 무슨 내용이며 누가 지은 것인가?”

“송대(宋代)쯤으로 짐작이 되는 시기에 경도(京圖)라는 고인(古人)의 저서라고만 알려져 있을 뿐이고 그의 생전에 대한 삶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내용이기에 그렇게도 훌륭한 저서(著書)라고 말하는지 궁금하군. 명학(命學)에 관련된 것이라면 『연해자평(淵海子平)』이 최상의 책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말이네. 그 내용이 궁금하군.”

“아, 형님께서도 연해(淵海)는 알고 계시는군요. 하하~!”

“그럴 수밖에 더 있겠는가? 지리를 연구하는 사람도 팔자에 관심이 없다면 그것도 거짓말일 테니 말이네. 하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명학(命學)의 연해자평, 상학(相學)은 『마의상서(麻衣相書)』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말이네. 그런데 지혜로운 아우의 입에서 연해자평이 아니라 적천수라는 말이 나왔으니 내가 놀라지 않을 수가 있느냔 말이네.”

“그러셨습니까? 우창의 소견으로는 연해자평을 통달한 경도 스승님께서 핵심 중의 핵심을 남겨놓으신 것이 적천수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호~! 그 정도란 말인가? 참으로 궁금하네. 이번 여행길에 적천수를 반드시 다 듣고야 말겠네. 하하하~!”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미력(微力)이나마 형님께서 천지(天地)의 이치를 참구(參究)하시는 길에 보탬이 된다면 아낄 이유가 없지요. 하하하~!”

“내가 아우를 만난 것도 천우신조(天佑神助)로군. 그런 의미에서 염재에게 감사해야 하겠네. 하하하~!”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지광이 우선 궁금하다는 지도의 이치를 설명했다.

“형님께서 궁금하시다는 조습(燥濕)의 이치는 천도(天道)와 이어져서 적혀 있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지도만이 아니라 천도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단 말인가? 연해자평에는 그런 구절을 본 기억이 없는데?”

“그러실 수도 있습니다. 다만 우창은 연해자평은 거의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잠시 들여다볼 기회는 있었으나 내용을 보면서 마음에 부합하는 부분이 적어서인지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맞는 말이네. 그래서 널리 보지 않으면 작은 우물에 갇히는 수밖에 없다고 하는 말이 나오지 않았겠나. 벌써 기대감에 설레는걸. 하하~!”

“그야 우창의 마음도 같습니다. 형님께서 얻고 깨달은 땅의 이치를 얻게 될 생각을 하니까 말이지요. 하하~!”

“그래, 천도란 무엇이라고 했던가?”

“아, 적천수의 「천도(天道)」를 보면, 「천도유한난(天道有寒暖)」이라고 딱 한 마디로 되어 있습니다. 겸해서 「지도(地道)」에서는 앞에서 말씀드린 「지도유조습(地道有燥濕)」으로 대구(對句)가 되어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니까 천도(天道)란 한난(寒暖)이라고 했나? 춥고 더운 것이 하늘의 이치란 말이지? 그 말은 춘하추동(春夏秋冬)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도 되겠는걸.”

“그렇겠지요?”

“참으로 간결(簡潔)한 내용이군. 춘하추동의 사계절(四季節)의 운행을 담당하는 것이 하늘의 이치란 말이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아마도 그보다 더 간단한 하늘의 이치는 없겠네. 멋진 구절이로군. 그러니까 아우가 지도(地道)를 물었을 적에 조습(燥濕)이라고 한 내 말을 바로 알아들을 수가 있었더란 말이군.”

“맞습니다. 형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바로 그 의미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풍수학의 이치도 어쩌면 어렵지 않게 이해를 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정말 기가 막히는군. 결국은 우주의 이치는 한난조습(寒煖燥濕)이라는 말이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단지 네 글자로 설명한다면 그것이 가장 적합(適合)한 의미를 나타낸 것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그중에 한 글자라도 뺄 수가 없으니까요. 물론 다른 말로 한다면 더욱 구구해질 따름일 테니까요. 하하~!”

“오호~! 멋진 말이네. 그렇다면 인간의 사주팔자도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은 어떨까?”

마차는 계속 흔들리면서 앞으로 나갔다. 말들이 얼마나 총명한지 일부러 채찍을 들지 않아도 알아서 가고 있으니 염재도 마치에 신경을 쓰지 않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가 있었다. 이번 여행길에서 마차를 택한 것은 참으로 탁월한 판단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염재가 우창에게 물었다.

“정 사부님의 말씀으로 본다면 명학(命學)의 핵심은 한난조습에 있다고 보면 되는 것입니까? 간결하고도 명료한 말씀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염재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우창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아, 물론 크게 보면 그렇다는 말이네. 실로 한난조습에 대해서만 논한 명서(命書)가 있으니까 말이지.”

“예? 그런 명서가 있었습니까? 금시초문(今始初聞)입니다.”

“물론이지, 『난강망(欄江網)』이라는 책이 있는데 저자는 여춘대(余春臺)라고 되어 있으나 언제 누가 지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네. 다만 여춘대도 이전에 난강망(欄江網)이라는 이름의 책을 궁중(宮中)에서 점성술(占星術)을 담당하고 있던 어느 일관(日官)에게 얻었다고 하더군. 물론 저자(著者)의 이름도 없는 문헌이었다네. 내용을 보고서 의미심장하다고 판단한 그가 이 책의 이름을 『궁통보감(窮通寶鑑)』이라고 지었다더군. 내용을 보면 천도(天道)의 변화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네.”

염재가 우창의 말에 감탄하면서 말했다.

“아, 그런 책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천도의 변화를 잘 나타내고 있다면 지도의 변화도 포함되어 있습니까?”

“그런데, 그게 좀 이상하네. 천문(天文)에 대한 사시(四時)의 변화(變化)는 깊이 관찰한 흔적이 보이는데 지리(地理)의 이치는 소홀하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네.”

“예? 그렇다면 난강망이라고도 하고, 혹은 궁통보감이라고도 하는 책에는 지도(地道)의 이치인 조습(燥濕)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것입니까?”

“아니지, 없기야 하겠는가. 다만 세세(細細)한 부분으로 들어가 보면 천도의 이치가 8할이고, 지도의 이치는 2할이라고 할 수가 있으니 적천수의 심오(深奧)한 이치를 따르기에는 다소 아쉬운 감이 있어서 깊이 연구하지 않았을 따름이라네.”

“어쩐지, 스승님께서 평소의 가르침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네요. 그렇다면 적천수에서는 그러한 아쉬움이 없었던가 봅니다.”

“물론이네. 이미 앞에서 말을 하지 않았나. ‘한난조습’이라고 말이지. 이렇게 명쾌한 글을 남긴 경도(京圖) 스승님의 혜안(慧眼)에 항상 감탄할 따름이라네.”

“그러셨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난강망을 쓴 이치도 있지 않을까요? 왜 천도에 비중을 두고 사주를 풀이하는 방법을 택했는지도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쩌면 인간의 정신(精神)은 천도(天道)에 속하는 것이어서 그러한 방법에서 답을 구하고자 함은 아니었을까요?”

“오호~! 염재의 물음이 날로 예리(銳利)해지는구나. 하하하~!”

“그러나, 여전히 머릿속은 구름이 가득합니다.”

“만약에 심리적인 이치를 밝혔다고 하면 내가 그 책을 어찌 아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긴, 그렇습니다. 하충(何忠) 스승님의 말씀을 자주 하시는 것을 보면 심리(心理)의 이치를 담은 책이라면 당연히 깊이 연구하셨을 것임을 미뤄서 짐작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왜 그 책을 누군지 이름도 밝히지 않은 사람이 썼을지를 생각해 봤다네.”

“아, 궁금합니다. 저술한 목적이 있다면 무슨 의미였을까요?”

“앞서 그 책은 저자도 밝히지 않은 채로 궁중의 천문(天文)을 잘 아는 점성술가(占星術家)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떠올렸다네.”

“천문점성가라면 땅의 이치보다는 하늘의 이치에 밝은 사람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래서 어떤 답을 얻으셨는지요?”

“아마도 내 짐작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면 그 책을 지은 사람은 분명히 천문학자였을 것이네.”

“예? 천문학자가 명학(命學)을 연구했더란 말입니까?”

“그야 누군들 연구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관심이 있으면 당연히 연구하고 또 결과를 책으로 남길 수도 있는 일이지.”

“물론, 그렇기야 하겠습니다. 진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천도(天道)를 8할이나 적용하여 사주를 풀이한 이치를 알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네. 어딘가에는 그 흔적을 남기게 되니까 말이네. 하하하~!”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렇다면 내용은 당연히 하늘의 관점으로 인간을 살필 수가 있었을 테니까 이치에도 부합이 됩니다.”

“더구나 더욱 놀라운 내용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지.”

“궁금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을 선택(選擇)한다는 의미가 도처(到處)에서 발견되었다네.”

“인간을 선택한다면 어떤 사람을 선택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더 자세히는 인재(人才)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 이것이 개인(個人)의 관점일까? 아니면 왕의 아래에서 사람을 선별하는 사람의 관점일까?”

“그야 물론 왕을 위해서 인재를 등용하는 문제로 골몰(汨沒)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난강망이 그렇다는 뜻입니까?”

“물론 내가 느낀 바이니까 단언(斷言)을 하진 않아야 하겠으나 실로 내용을 보면 과연 이것이 특별한 사람에게 조언(助言)하는 내용인가? 아니면 고민에 가득한 사람을 상대로 이야기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의구심(疑懼心)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네.”

“이제야 무슨 뜻인지 헤아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을 고위(高位)의 공직자(公職者)로 선발(選拔)하고자 하면 가령 열 명의 사주를 놓고서 그 일관(日官:天文官)의 채점(採點)에 따라서 선발되거나 낙방이 되는 것이란 말씀이지요?”

“그렇다네. 아마도 내용으로 봐서는 그랬을 가능성이 매우 많았을 것으로 봐야지. 그러니까 말하자면 진시황추(秦始皇錐)인 셈이지.”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진시황과 송곳’이 무슨 관계인지요?”

“아, 용도가 제한된 도구라는 뜻이라네.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을 적에 수레를 고치기 위한 커다란 송곳이 있었는데 장성을 쌓고 나니 수레도 쓸모가 없고, 그러다 보니 송곳도 쓸모가 없더라는 이야기라네.”

“그렇다면 스승님의 말씀으로는 그 쓸모가 없어진 송곳이 저잣거리로 흘러들어서 여춘대(余春臺)의 손에 들어간 셈인가요?”

“그러니까 나오지 말았어야 할 곳에서 유출(流出)이 된 셈이라고나 할까? 그로 인해서 왕궁에서 비급(秘笈)으로 사용하던 문서라는 이름을 붙여서 전하고 전하다 보니까 아직도 강호에 유전(流轉)이 되고 있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네.”

“그렇게 말씀하시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책을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가 있지. 평범할 뿐이라거나, 쓸모없는 사람, 부귀(富貴)할 사람이라는 등등의 말이 여기저기에 보이는 것으로 봐서 이것은 그 목표가 왕을 위해서 쓸모가 있는 사람인지를 선별(選別)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더란 말이지.”

“그렇다면 그러한 이치를 일반인에게도 적용해서 활용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가령 누군가 벼슬을 할 그릇이 되는지를 알아보는 용도로 쓴다면 또한 활용할 의미가 있을 것도 같습니다.”

“오호~! 염재가 관원(官員)이라서 난강망을 활용할 방법을 생각했나? 하하하~!”

“그게 아니라 일반인도 벼슬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마음이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해 본 생각입니다.”

“물론 인생사(人生事)의 전부가 벼슬을 하느냐 마느냐로 구분을 한다면 또한 일리가 있기는 하겠지.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럴까? 그대와 같이 벼슬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은 벼슬을 묻기보다는 자신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찾아서 추길피흉(趨吉避凶)을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니 이 격차(隔差)를 어떻게 좁힐 수가 있을까?”

“이제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그래서 진시황의 송곳이라고 하셨네요. 과연 적천수는 사람을 위한 학문이라면 난강망은 왕을 위한 학문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스승님께서 관심을 두지 않으셨다는 것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염재가 말을 마치고 마차가 잘 가고 있는지를 살피자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던 지광이 말했다.

“그야말로 균형(均衡)과 편중(偏重)의 싸움에서 난강망이 버림을 받았다는 말이로군. 참 재미있네. 하하하~!”

“버린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매우 중요한 내용이겠습니다만, 우창에게는 별 소용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을 따름이니까요. 하하하~!”

“그 말이 그 말이지 않은가? 하하하~!”

“그나저나 형님의 말씀은 언제 듣습니까? 여태까지 우창의 졸견(拙見)만 떠벌였으니 말입니다. 하하하~!”

“그게 무슨 지나친 겸손인가. 참으로 귀중한 가르침을 줬네. 실로 지리(地理)를 연구하는 관점도 명가(命家)의 세계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보면서 내심 놀라고 있었다네.”

“아, 그러셨습니까? 그것이 궁금합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이 염재에게 이렇게 말했다.

“염재, 아우가 여태 이야기하느라고 목이 컬컬할 테니 어디 주막이 나오거든 마차를 멈추고 술이라도 한잔 대접해야 하지 않겠나. 하하하~!”

그러자 염재가 마침 저만치에 보이는 객잔을 가리켰다.

“정 사부님 저 앞의 객잔에서 좀 쉬었다 가겠습니다. 이랴~!”

잠시 후 마차는 객잔 앞에 멈췄고, 염재는 두 사람이 내려서 안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려서 마차를 대어놓고 말에게도 먹이를 주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객잔은 한가했다. 주인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뭔가 심각한 이야기라도 나눴던지 굳은 표정으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왔다.

“어서옵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나는 길에 목이 말라서 들어왔으니 마실 것과 요기할 것을 좀 챙겨 주시기 바랍니다.”

염재의 말에 주인 남자는 얼른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하고는 바삐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창이 말했다.

“주인 부부에게 뭔가 큰 고민이 생긴 모양인데 우리가 도와주면 어떨까요?”

우창의 말에 지광이 흥미롭게 말했다.

“정말 명학은 그런 것이 참 좋군. 언제라도 문제를 만나고 또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모색할 수가 있으니 말이네. 그에 비하면 지학(地學)은 제한적으로 사용하니 그것도 아쉬운 점이라고 해야 하겠는걸 하하하~!”

“형님도 참, 원래 큰 함지는 가끔 쓰이는 법이고, 작은 종지는 수시로 쓰이는 것이잖습니까? 도토리가 백 번을 굴러 봐야 황새의 한 걸음만 못한 것을 말이지요. 하하하~!”

“그런가? 아우도 참. 하하하~!”

지광도 우창의 말이 싫지는 않은지 밝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러는 사이에 술과 안주가 나왔다.

“나리님들~ 천천히 드시면서 편안하게 담소하십시오~!”

주인이 요리를 놓고는 말하는 것을 듣고는 우창이 물었다.

“주인장 뭣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예~!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이거, 좀 주제넘은 것도 같습니다만, 아까 봐하니 주인 부부에게 무슨 고민이 있어 보이던데 혹 이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털어놓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창의 말에 주인 남자의 표정에 의아함과 함께 기대감이 스쳤다. 그는 할 말이 있다는 듯이 침을 삼키고는 말하려는데 아내가 우창의 말을 들었는지 급히 나와서 남자의 곁에서 우창에게 대신 말했다. 역시 말은 여인의 말이 빠른 법이다.

“위기에서 구해줄 귀인께서 나타나셨네요. 정말 고민이 있어요.”

“봐하니 이야기가 길어질 모양이군요. 이리 앉아서 천천히 들어봅시다. 마침 우리 일행도 바쁜 일이 없으니 어디 재미있는 이야기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여인은 우창이 권하는 대로 자리에 앉자마자 한숨부터 쏟아냈다.

“휴~! 저희 부부에게 하나뿐인 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지금 사라진 지 이레가 되었는데도 백방으로 알아봐도 소식이 없어서 이렇게 걱정만 하고 있습니다. 행여 험난한 세상에 무슨 봉변이라도 당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요. 에휴~!”

여인의 말을 듣고 있던 우창이 문득 물었다.

“아들의 나이는 몇 살입니까?”

“나이요? 아, 올해 스물두 살입니다. 생일도 말씀드릴까요?”

눈치가 빠른 여인은 이 도사 일행이 예사롭지 않다고 여겼는지 생일을 말해 주랴고 물었다. 여인은 그야말로 물에 빠진 사람의 꼴로 허둥대는 것을 보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우창이 여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용히 단시점(斷時占)을 운용해 보니 까치 괘가 나왔다. 그러자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아까부터 주인 부부는 우창의 일거수일투족에 온통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차에 우창이 미소를 짓자 그 연유가 궁금해서 안달이 났지만 잠시 기다렸다.

“두 분은 근심을 내려놓아도 되겠습니다. 신시(申時:15시~17시)가 되면 돌아오겠습니다. 유시(酉時:17시~19시)까지도 가지 않을 것이니 아무런 근심을 마시고 편히 기다리면 되겠습니다. 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을 했음에도 부부는 반신반의(半信半疑)했는지 얼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이 남자가 지나는 길에 위안이나 주고 가려고 덕담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교차 되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헤아렸는지 지광이 말했다.

“아우, 산천의 경계도 괜찮으니 오늘은 여기에서 유숙(留宿)하고 내일 또 길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실로 지광은 우창의 내공(內功)을 볼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대로 훌쩍 떠나버리면 결과를 알 수 없기에 하룻밤 묵자는 말을 했는데 마침 우창도 그 결과가 궁금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지광의 말에 여인이 얼른 말을 받았다.

“그러문입쇼! 마침 깨끗한 방도 비어있으니 편히 머물러 주시면 됩니다요.”

우창이 염재를 바라보자 염재도 좋다는 동의를 표했다. 그러자 여인에게 말했다.

“그것도 좋겠습니다. 그럼 하룻밤 머물도록 할 테니 침소를 마련해 주시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여인은 큰 소리로 대답하고는 얼른 쉴 자리를 마련하러 총총히 떠났다. 그러자 남자가 우창이 행여라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가 싶어서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음식을 먹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 했다는 것을 알고는 얼른 일어났다.

“나리의 귀한 말씀에 정신을 잃고 앉아있었습니다. 어서 요기하시고 편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음식이 식었으니 따뜻한 것으로 마련하겠습니다.”

주인이 자리를 떠나자 지광이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아니, 나는 또 아우가 신중한 줄로만 알았는데 아우에게도 그렇게 감당하기 어려운 말을 할 줄도 안다는 것이 놀랍네. 하하~!”

“형님도 참, 우창을 과대평가하셨던가 봅니다. 경망스럽기로 논한다면 메뚜기보다 더하면 더할 것입니다. 하하하~!”

우창의 말에는 답을 하지 않고 궁금했던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무슨 조짐을 봤기에 그렇게 불과 한두 시진(時辰)이면 드러날 말을 거침없이 했는지가 궁금하네.”

“재미있지 않습니까? 여행길에 이렇게 심심하지 않은 일도 생기면 또한 즐겨야 할 일이지 싶습니다. 하하~!”

“아니? 조금도 결과에 대해서는 걱정이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원래 군자는 내일을 염려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여유를 부리자 지광은 더욱 궁금해졌다. 이것은 염재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는 회중시계를 보고서 오주괘를 찾아서 풀이하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지금은 시계도 꺼내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나이만 묻고는 이렇게 과감하다 못해서 낭패를 당할 수도 있는 말을 쉽사리 하는 것을 보면 혹시 귀신의 도움이라도 받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조차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빗나가기라도 한다면 실망과 함께 분노할 주인 부부의 표정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