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 제32장. 장풍득수/ 1.지리사(地理師)와의 인연(因緣)

작성일
2022-03-10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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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제32장. 장풍득수(藏風得水) 


1. 지리사(地理師)와의 인연(因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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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향이 물씬 나는 진미(珍味)와 명주(名酒)로 만찬(晩餐)을 즐기고는 다시 오행원으로 돌아왔다. 술과 함께 대화를 나누다가 보면 처음 만난 사람과도 오랜 시간을 함께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품성이 수수한 지광(地廣)을 보니 마치 예전에 태산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자휴(子休)를 본 듯해서 정겨운 감도 들었다. 그리고 어느 사이에 호칭을 형님과 아우로 바뀌게 되었으니 지기(知己)를 만나면 시간은 초월하게 되는 모양이다.

“우선 오행(五行)의 명인(名人)을 만났으니 내 사주부터 봐주는 것이 손님 대접이 아니겠나? 하하하~!”

“그야 당연하지요. 우선 생일을 불러주시지요. 좁은 소견이나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지광이 자신의 사주를 불러주자 염재가 붓을 들어서 받아적었다.

363-1

우창은 지광이 불러준 간지를 다시 적어서 앞에 놓았다. 모두 한 자리에 둘러앉아서 입가심으로 우창이 적어놓은 사주를 보면서 저마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서 사주를 뜯어보고 있었다. 다들 오랜만에 포식(飽食)해서 소화도 시킬 겸으로 모였기 때문이다.

우창은 모두 살펴보게 둔 다음에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았을 것으로 생각하고는 풀이를 시작했다.

“형님은 축지법(縮地法)을 쓰시는 모양입니다. 땅이 동서남북으로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하하~!”

“아니, 그게 사주에 나온단 말인가?”

“예? 그렇다면 참으로 축지를 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다 알고 있으면서 뭘 시치미를 떼는 것은 또 뭔가?”

“그야 월일지(月日支)에 진술충(辰戌沖)이 있는 것을 보고서 농담 삼아 던진 말씀이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대단한 기술을 갖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하하~!”

“아, 원래 그런 것이었나? 만약에 현제(賢弟)가 마음만 먹고 사기를 치기로 든다면 감쪽같이 교주(敎主)의 노릇을 할 수도 있을 것이네. 그것을 숨겨놓지 않고서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말을 하니 교주 노릇은 어렵겠지만 말이네. 하하하~!”

“형님도 참, 여하튼 오늘은 우제(愚弟)의 안목(眼目)을 넓히고 지식(知識)을 깊게 하는 날이 틀림없겠습니다. 부디 그 신기한 축지술의 귀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시시지요.”

“그야 현제가 이렇게 솔직하게 말씀하시니 여부가 있겠나. 그보다도 사주풀이는 해 줄 요량이겠지?”

“아, 그야 당연하지요. 천하를 누비고 다니는 것이 흡사 비마(飛馬)같습니다. 다만....”

“그것참 맘에 드는 풀이로군. 그런데 다만은 또 뭔가?”

“이렇게 말씀드리기가 좀 외람(猥濫)됩니다만....”

“아니, 뭘 망설이는가? 있는 그대로 말해주면 그만인 것을. 그것이 다행인 것이든 혹은 불길한 것이든 결과는 내가 판단하는 것이니 아우님은 조금도 염려치 말고 보이는 그대로 기탄(忌憚)없이 설명만 해 주면 된다네.”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럼 되는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사주로 봐서는 천하를 누비면서 바쁘게 살아오셨습니다만 실로 공허한 마음을 메울 방법은 아직도 찾지 못하셨다고 해석을 해 봅니다. 축지법까지 터득하신 형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조마조마하면서도 말씀을 드립니다.”

“정말 아우의 관명술(觀命術)이야말로 우형(愚兄)의 축지를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네. 참으로 놀라운 능력을 소유하고 있으니 말이네.”

“잔재주를 그렇게나 추켜세워주시니 괜히 우쭐해집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받아들일 수가 없는 과찬이십니다. 하하~!”

“과찬이 아니네. 나는 천하를 누비면서 직접 현장을 목격하면서 깨달은 것이니 그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데, 현제는 가만히 앉아서 단지 여덟 글자를 보면서 지난(至難)했던 내 삶을 핵심으로 직관(直觀)을 한 듯이 파내니 이보다 놀라울 일이 또 있겠느냔 말이네. 참으로 놀랍군.”

“형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실은 간단한 이치에 불과합니다. 연월일(年月日)에 만연(蔓延)한 재성(財星)을 보면서 추론(推論)을 해 본 것일 따름입니다. 그리 대단한 관법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하~!”

“그러니까 더욱 신묘(神妙)하다는 말이 아닌가. 많은 시간을 투입해서 살펴보고 나서야 한마디를 할 수가 있는 내 지술(地術)에 비한다면 현제의 명술(命術)은 그냥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 소상한 내막을 읽을 수가 있으니 과연 어느 학문이 더 수승(殊勝)한 것인지는 비교할 대상이 없을 지경이 아닌가. 참으로 놀랐네.”

지광이 이렇게나 놀라는 것을 본 우창이 오히려 의아할 지경이었다.

“아니, 그나저나 형님, 여태까지 사주(四柱)를 추명(推命)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실 텐데 이러한 이야기를 마치 여태 못 들어 보신 듯이 말씀하시니 우제는 납득이 안 됩니다. 괜히 그러시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고 그간 어떤 풀이를 들으셨기에 그리 말씀하시는 것인지가 더 궁금합니다. 그에 대한 말씀을 좀 들어 보고자 합니다.”

“물론이네, 나름대로 이런저런 명리학(命理學)에 대한 일가를 이룬 선생들을 찾아서 고견을 청해 본 것이 어찌 한두 번이겠는가. 그런데 어떤 곳에서는 거부(巨富)가 될 것이라고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거렁뱅이의 팔자라고도 하더군. 이렇게 극에서 극으로 해석이 가능한 것도 놀랍거니와 아무도 내 마음에 이렇게도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마음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는 선생은 없었다네. 그런데 지금 아우님의 첫마디에 그것을 말하니까 마치 심장에 화살이 꽂힌 듯이 전율(戰慄)을 느끼지 않을 수가 있겠느냔 말이네.”

“아, 이해됩니다. 다른 선생들은 또 그렇게 풀이를 할 수도 있는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해석을 할 수가 있는데 왜 이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놀랍다는 말이네.”

“아마도 저마다의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까닭이었을 것입니다. 우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왜냐면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생각하기에 물질적인 세상의 겉면보다는 정신적인 내면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까닭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하하~!”

“오호~! 그런 뜻이 있었구나. 그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인걸, 그냥 모두 같은 학문으로 공부하였으니 해답도 같아야 하는데 왜 풀이가 저마다 다른 것인지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오늘에서야 현제의 말을 듣고 보니까 비로소 이해되는구나. 과연 그렇겠군. 맞아~!”

“형님께서 공감하시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또 가슴이 아픈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인생의 절반은 식소사번(食少事煩)이라고 해야 할 풍경인 까닭입니다.”

“엉?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먹을 것은 적은데 일은 번잡할 정도로 많다는 말인가? 그래서 별로 생기는 것이 없어도 산으로 들로 누비고 돌아다녔더라는 말인가? 그야말로 반평생의 내 모습을 네 글자에 모두 담아도 될 듯싶은 생각이 드네. 기가 막힌 풀이라고 해야 하겠네.”

“그러나 형님께서 실망하시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다음의 구절을 듣고 나서 생각해 보시면 되니까요.”

“그건 또 무슨 말인가? 희망적인 조짐도 보인다는 뜻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형님의 나머지 절반에 대한 삶을 네 글자로 말씀드린다면, 점입가경(漸入佳境)이 되겠으니까요. 참으로 절묘한 시주(時柱)를 얻으셨습니다. 그것이 아니었더라면 허랑방랑(虛浪放浪)으로 떠돌이의 삶을 살다가 마무리할 조짐이었는데 천행(天幸)으로 전생의 공덕이 숨어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이제 고난의 삶은 마무리가 되어간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사이에 얼마나 많은 자연의 이치를 궁구하셨을지 기대가 되네요. 하하~!”

“맞아! 물론 많은 시간을 떠돌아다니면서 얻은 약간의 경험이야 없겠는가만 가끔은 그러한 경험을 누군가에게 전해주지도 못하고 이렇게 살다가 떠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네. 그런데 참으로 우연히 염재를 만나게 된 인연으로 현제와도 인연의 끈이 닿았으니 이것이야말로 관음보살의 가호라고 할 수밖에 없겠네. 하하하~!”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우제도 지리(地理)에 대해서 늘 궁금하던 점이 많았습니다. 왜냐면 항상 땅에 발을 딛고 살면서도 정작 땅의 이치가 있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고 실제로 명인(名人)을 만날 인연이 되지 못하여 궁금증을 풀 길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우창은 지광을 만난 것에 대해서 참으로 기뻤다. 더구나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자신이 겪은 것과 깨달은 것에 대해서 조금도 숨기거나 꾸밀 마음이 없이 있는 그대로 툭툭 털어놓는 모습에서 신뢰감이 커졌기 때문에 무슨 가르침을 받더라도 조작된 것으로 인한 낭비는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염재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득한데 오히려 지광이 감사한다니 이보다 더 다행스러운 것이 있겠느냐는 생각조차 들었다. 그야말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갖고 있으니 천생연분(天生緣分)이라고 해야 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염재가 말을 꺼냈다.

“스승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지광 선생님과 스승님을 모시고 공부에 전념하려고 반년을 휴직(休職)하기로 했습니다. 마침 오늘 승인이 되어서 이제부터 반년은 자유로운 몸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관부(官府)의 일로 인해서 공부에 전념하지 못했으니 그 한을 풀고자 합니다.”

“오호~! 그런가? 축하할 일이구나. 그렇다면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니까 알뜰하게 잘 활용하시게. 하하~!”

“고맙습니다. 관아(官衙)에서 일을 보면서도 마음은 온통 오행원을 배회하고 있으니 도무지 일이 손에 잡혀야 말이지요.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이참에 명리(命理)와 지리(地理)를 같이 공부할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더구나 지금 스승님의 말씀을 들어봐서는 스승님께서도 지리학(地理學)에 대해서도 마음을 두신 듯하니까 어떻습니까? 반년의 시간을 함께 유람하면서 지학(地學)과 명학(命學)을 함께 공부할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스승님의 계획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우창은 거침없이 계획을 말하는 염재의 말에 잠시 당황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이러한 유혹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제자들이었다. 아직 손을 놓을 수는 없는 어린 제자들인데 반년이나 돌보지 않으면 무책임한 까닭이었다. 그러다가 자원을 돌아다 봤다. 자원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자 머릿속에 퍼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자원에게 물었다.

“자원에게 좋은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어디 말을 들어 볼까?”

그러자 자원이 말했다.

“이미 싸부의 마음은 산천으로 떠나셨는데 어떻게 붙잡아 두겠어요? 이곳은 자원이 맡아도 반년 정도는 감당이 되지 싶은데 마음 놓고 유람을 하신 다음에 돌아오셔서 자원에게도 그 소식을 나눠 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만....”

우창은 이렇게 말하는 자원을 안아주고 싶었다. 적당한 시기에 딱 맞는 제안을 해 주는 것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를 일이었다. 자원의 표정을 봐서는 자신도 동행하고 싶다고 말할 줄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오행원을 책임지고 맡아주겠다니 이보다 더 고마울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은 자원도 같이 유람에 나서자고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말을 해 주니 내가 할 말이 없지 않은가.”

이렇게 말하고는 염재를 향해서 결심이 섰다는 듯이 말했다.

“자원의 말을 듣는 순간 결정을 내렸네. 그럼 오행원은 이제부터 자원에게 맡기고 나는 형님과 같이 공부를 하러 다녀와도 되겠어. 자원이 맡아준다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 공부 유람을 하고 와도 되겠어. 고맙군. 하하~!”

그러자 춘매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스승님의 공부가 곧 제자들의 공부이기도 하잖아요. 그 정도의 시간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 더구나 힘든 일이 있으면 오광이 도와줄 거니까 아무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호호~!”

그러자 오광도 거들었다.

“누님의 말씀이 꼭 맞습니다. 스승님께서 공부하러 떠나신다면 전혀 염려하지 않아도 되도록 누님을 보필하고 자원 선생님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제자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다음에 스승님께서 돌아오셨을 적에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릴 수가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오행원에 대한 염려의 마음을 놓으시고 알찬 가르침을 갖고 돌아오시도록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구나. 오광이 지켜준다니 나도 든든하군.”

“제자는 벌써 또 어떤 공부를 하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니까 가슴이 벌렁거립니다. 오늘부터 180일을 헤아리면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지광이 말했다.

“참으로 부럽고도 훈훈한 풍경이로군. 현제는 그사이에 이렇게도 알찬 씨앗을 뿌리고 거두었으니 얼마나 좋은가 말이네. 하하~!”

“그야 형님께서도 머지않아서 멋진 도장(道場)을 마련하게 될 것이니 부러워하실 일이 아닙니다. 물론 이렇게 제자들이 챙겨주고 있는 것은 감사할 따름이지만 말입니다. 하하~!”

이야기가 순탄하게 진행이 되자 기뻐하는 사람은 염재였다. 모든 일이 생각한 대로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기쁨에 가득한 마음으로 말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제자도 그 점에 대해서 약간 염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만, 이렇게도 자원 선생님께서 걱정하지 말도록 흔쾌히 맡아주신다고 하니까 일말의 근심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스승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공부하는 동안에 숙식(宿食)에 대한 모든 비용은 제자가 조달하겠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소중한 두 분의 스승님께 작은 정성이고 수업료라고 말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행여 불편함이 없도록 공부하고 돌아올 테니까 오행원에 계시는 가족들께서는 아무런 염려를 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그러자 춘매가 얼른 말했다.

“정말로 염재가 계획을 다 세워 뒀었구나. 만약에 스승님께서 오행원을 비울 수가 없다고 했다면 어쩌려고 그랬어? 호호호~!”

“그야 춘매 누님을 믿었으니까요.”

춘매가 농담을 하면서 염재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스승님께서 세상의 구경을 잘하시고 귀한 공부도 하신 다음에 돌아오실 동안에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도록 할게요. 더구나 염재가 호위무사(護衛武士)로 동행을 한다니까 마적(馬賊)이나 도둑을 만나더라도 걱정할 일이 없겠어요. 오랜 시간을 여행하게 되면 그것도 걱정스러운 부분인데 말이에요. 관원이 동행하니 언제라도 응원군을 부를 수가 있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그러자 염재가 서둘러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럼 오늘은 이만 갔다가 준비를 한 다음에 내일 아침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그사이에 푹 쉬시고 내일 뵙겠습니다. 지광 선생님 이만 가시지요.”

염재가 서둘러서 일어나자 지광도 따라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럼세. 오늘 여러분을 뵙게 되어서 즐거웠습니다.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아우님도 잘 쉬시게.”

“형님께서도 편히 쉬시고 내일 뵙지요.”

이렇게 모두와 작별한 염재는 지광과 돌아갔다. 춘매가 배웅하고는 들어왔는데 갑자기 적막(寂寞)이 감 돌았다. 저마다 생각이 많아진 까닭이었다. 그렇게 잠시의 침묵을 깬 사람은 자원이었다.

“싸부! 좋으시겠다~! 자원도 마음으로 동행할 거예요. 호호호~!”

“자원도 가끔은 쉬면서 지도하도록 해. 너무 무리하지 말고.”

“알았어요. 동생이 잘 챙겨줄 테니까 아무 걱정도 말고 바람 잘 쐬고 오세요. 오늘은 늦었으니까 이만 쉬어요. 싸부는 맘이 설레서 잠도 오지 않으시겠지만요. 호호~!”

 

다음날.

염재가 예정대로 진시초에 쌍두마차(雙斗馬車)를 끌고 지광과 함께 오행원으로 왔다. 이어서 제자들도 삼삼오오 나타났다. 그렇게 해서 모두 나타나기를 기다려서 우창이 저간의 상황(狀況)을 설명하고 자원에게 모든 것을 맡기니까 열심히 공부하라는 당부의 말을 했다. 그러자 채운이 아쉬운 마음과 기대 섞인 마음으로 말했다.

“축하드려요. 자원 스승님의 가르침을 잘 따라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테니까 이곳은 조금도 걱정하지 말고 즐거운 여정(旅程)이 되시기만 바랍니다. 자원 스승님의 자상하고 사려가 깊은 말씀은 이미 많이 들었으니까 어쩌면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시지 못한 것까지도 가르침을 받을 수가 있을 거예요.”

우창은 채운의 이와 같은 말에 약간의 근심도 사라졌다. 혹 자신이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이라도 나오면 어쩌나 싶었는데 평소에 진중하게 문답을 나눴던 자원의 실력에 대해서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그럼 모두 열심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예~! 스승님 잘 다녀오십시오~!”

제자들의 환송(歡送)을 받으면서 우창의 여장(旅裝)을 마차에 싣는 오광을 따라서 문을 나섰다. 자원과 춘매가 함께 우창이 마차에 타고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줬다. 우창도 돌아보고 손을 흔들어주고는 앞을 바라봤다. 길을 떠나는 설렘은 언제나 같은 심경이었다. 약간의 불안감(不安感)을 바탕에 깔아놓고서 그 위로 기대감과 설렘을 장식한 모습이었다.

마차가 기분 좋게 흔들리면서 대로(大路)에 나오자 우창은 어깨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이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제자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압박감이 알게 모르게 상당히 컸던 모양이었다. 그때 염재가 말했다.

“이제부터 두 분의 의식주는 모두 염재가 책임지겠습니다. 도중에라도 피곤하면 마차에서 쉴 수가 있도록 넓은 육인교(六人轎)로 준비했습니다. 만약에 산중에서 숙소가 여의치 못하면 마차에서 휴식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우창은 염재의 배려가 고마웠다. 젊은 사람의 용의주도(用意周到)함이 감탄할 지경이기 때문이었다.

“알겠네. 참으로 호사(豪奢)스러운 탐험(探險)이 되겠네.”

우창의 말에 지광도 웃으면서 말했다.

“과연 ‘호사스러운 탐험’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네. 하하하~!”

그러자 염재도 관직의 부담에서 벗어나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길을 떠나는 흥겨움이 배어있는 음성으로 말했다.

“이제부터 우창 스승님은 진사부로 호칭하고 지광 스승님은 정사부로 칭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해도 좋겠는지요?”

그러자 두 사람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 호칭의 정리는 항상 대화의 혼란을 줄여주는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었다. 일행을 태운 마차는 곡부의 중심지를 벗어나서 어귀까지 나오자, 노변(路邊)에 공자열국행(孔子列國行)의 동상이 나타났다. 공자가 제자들과 천하를 떠돌던 장면을 묘사해 놓은 동상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우창이 말했다.

“형님, 공자님은 열국을 마치고 돌아오셨는데 우리는 지금 열국을 떠나는 것인가요? 하하하~!”

“그렇게 되나? 춘추전국(春秋戰國)의 시대에는 열국(列國)이지만 지금은 주씨(朱氏)의 대명천하(大明天下)이니 열국이 아니라 주유천하(周遊天下)라고 해야 하겠지? 하하하~!”

“아, 그렇군요. 역시 형님께서도 천생 학자십니다. 바르지 않은 것을 즉시로 바로잡으시니 말입니다. 하하~!”

그러자 염재가 마부석에서 말을 몰아가며 물었다.

“정사부님, 말의 방향을 어디로 향하면 좋겠습니까?”

염재의 말에 지광이 우창을 바라봤다. 어디로 향하고 싶은지 의향을 묻는 눈빛이었다. 그러자 우창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형님, 참으로 즐겁습니다. 꼭 가야 할 곳도 없는 여행길이야말로 방랑자에게는 최상의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우선 남향(南向)을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목표를 굳이 잡아야 한다면 서주(徐洲)로 잡아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산천이 있으니 어디로 향하더라도 공부를 할 자료는 넘쳐나지 않겠습니까?”

우창의 말에 지광도 웃으면서 말했다.

“과연 아우의 방랑하는 기질이 발동을 걸었다는 느낌이 드네. 하하~!”

“실로 새장에서 놀다가 우연히 열린 문으로 탈출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어디든지 갈 수가 있다는 것으로 인해서 마음은 벌써 들뜹니다. 하하하~!”

우창이 마차의 창문을 열었다. 상쾌한 바람이 불어와서 볼을 스치면서 지나갔다. 풋풋한 초원의 풀 향이 싱그럽게 들어왔다. 그렇게 두어 시진을 남으로 달리자 어느 사이 점심을 먹어야 할 오시(午時)가 되었다. 염재가 작은 마을이 나타나자 비교적 괜찮아 보이는 찬관(餐館)을 찾아서 마차를 세웠다.

“우선 여기에서 점심을 해결하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도 염재를 따라서 들어갔다. 특별한 요리를 먹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염재가 무엇을 주문하던 내버려 두고 우창이 궁금한 것에 대해서 지광에게 물어보려고 정리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그러한 모습을 미소로 바라보는 지광도 희색(喜色)이 만면(滿面)했다.

“형님, 땅의 이치는 무엇입니까?”

우창은 궁금한 것에 대해서 핵심(核心)을 물었다. 우창의 물음에 지광도 간단히 답했다.

“그야 조습(燥濕)이지!”

이 말을 들은 우창은 지광의 답변이 얼른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 시간은 많았다. 천천히 공부하면 되었기 때문에 조바심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이 가르치는 자의 입장과 배우는 자의 차이였다. 가르칠 적에는 이 말이 제자들에게 어떻게 전해질 것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수용하면서 핵심을 바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하며, 자칫 오해하고서 엉뚱한 방향으로 헛된 시간을 보내게 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면서 용어(用語)를 신중(愼重)하게 선택해야 했으나 이렇게 질문할 적에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마침 요리가 나와서 잠시 생각을 멈추고 시장기를 메꿨다. 염재도 우창의 질문에 호기심이 동했으나 천천히 설명을 듣게 될 것이므로 우선은 든든하게 먹어두는 것이 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