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 제31장. 생존력(生存力)/ 4.진흙 구덩이

작성일
2022-01-15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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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 제31장. 생존력(生存力) 


4. 진흙 구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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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사주에 대해서 소상하게 풀이하는 제자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왕현재(王玄載)는 감동한 표정으로 사주를 적어놓은 것을 바라보고는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351-2

“이것이 가능한 것이었군요. 단지 네 개의 간지(干支)를 놓고서 이런저런 말을 나누는 것도 놀랍습니다만, 그렇게 해서 나온 이야기에 저는 소름이 돋을 지경입니다. 여러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오행의 이치가 대단하다는 말은 들었으나 오늘에서야 그 진면목(眞面目)을 직접 대하고 보니 더 말을 할 필요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9할은 모두 맞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자 우창이 다시 물었다.

“나머지 1할은 무엇이었습니까?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실은 미관말직(微官末職)이지만 처는 항상 소생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무슨 말이거나 협조하는 편인데 부담을 준다거나 힘들게 한다는 해석은 조금 틀렸다고 생각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자녀는 아들만 셋이 있으나 모두 아직은 어려서인지 부모를 거스르지 않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아까 어느 선생이 두 아들 중에서 하나는 허약하고 하나는 단명하고 딸은 왕성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우창이 이에 대해서 정리삼아서 제자들에게 말했다.

“아, 그러셨군요. 타당한 말씀입니다. 배우자의 인연은 서로 존중하는 것으로 수정해서 정리하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자녀에 대해서는 자녀의 수를 논하거나 아들과 딸을 논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도 이런 기회에 생각하기바랍니다.”

우창의 설명을 듣고 왕현재가 다시 말했다.

“그 외에는 대체로 부정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특히 재물의 인연이 없다는 설명에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실로 부모의 유산이 있었으나 형제들이 모두 차지하고 제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형편이 어려울 때마다 부모님과 형제들을 향해서 원망도 했는데 오늘 말씀을 듣고 보니까 그것도 또한 제 업보였다는 것을 깨닫고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마음이 편해지셨다니 다행입니다.”

“아, 그리고 올해에 들어서 이렇게 주어진 일만 하고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남화경(南華經):장자』을 읽으면서 출세간(出世間)의 의미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게 되었는데 어느 선생이 그것을 정확하게 짚어주셨습니다. 그것조차도 팔자의 운명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왕현재가 자신의 사주에 대한 풀이를 듣고서 느낀 소감을 말하는 것을 다 듣고서 우창이 마무리 삼아 말했다.

“자, 제자들의 열정적인 동참으로 인해서 왕 선생의 사주를 잘 공부했고, 또 조언도 해 준 것이 참고되셨다고 하니 이보다 고마울 수가 없겠습니다. 더욱 열심히 정진해서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익힌 부분은 더욱 숙련시키기 바랍니다.”

그러자 제자들도 모두 흐뭇한 마음으로 우창의 말에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자원이 손을 들고서 말했다.

“싸부~! 점괘(占卦)를 풀어주세요. 그 말씀이 궁금해요.”

자원은 아까부터 사주풀이가 끝나면 오주괘에 대해서 풀이를 듣고 싶어서 이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말했다. 그러자 우창도 때마침 적절한 시기에 질문을 한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이러한 것이 바로 유식한 말로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고, 무식한 말로는 울고 싶은데 뺨 맞는 격이라고 생각했다. 미리 살펴봤던 점괘를 다시 크게 써서 앞에 걸어놓고 말했다.

350-3

“오늘의 일진(日辰)은 갑신(甲申)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갑신의 특성을 설명할 수가 있으면 해도 좋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고 대중을 둘러봤다. 그러자 채운이 손을 들고 말했다.

“스승님, 부족하지만 제자가 말씀드려 볼게요. 갑(甲)이 신(申)에 앉아 있으니 죽을 맛이라고 하겠어요. 왜냐면 바위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이니 그 고통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을 지경으로 보여요.”

우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다시 제자들을 둘러봤다. 그러자 염재가 손을 들고 말했다.

“제자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신중임수(申中壬水)를 고려해야 할 듯싶습니다. 이것은 갑(甲)을 나무로 본다면 자신이 먹을 물은 충분하다고 하겠고, 동물로 본다면 바위를 뛰어다니면서 즐겁게 노는 산양이라서 편안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왕 선생은 비록 환경은 제한적이라서 답답하겠지만 그중에서도 편인(偏印)에 해당하는 『남화경(南華經)』을 통해서 장자(莊子)의 재치와 여유로움을 만나면서 도(道)를 즐기고 있으니 이 소식이 바로 갑신(甲申)이 아닐까 싶습니다.”

염재의 말을 듣고 있던 채운이 다시 손을 들고 말했다.

“와우~! 감탄했어요. 채운은 아직도 간지(干支)를 깨달으려면 길이 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일지(日支)의 편관(偏官)인 경금(庚金)만 보고서 무척이나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염재 선생의 설명을 듣고 보니까 같은 갑신을 놓고서도 엄청난 시각(視覺)의 차이를 깨달았어요. 그리고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것도 새삼스럽네요. 같은 상황인데도 채운은 매우 부정적으로 관찰했는데 염재 선생은 이렇게도 긍정적으로 판단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워요. 더구나 요즘은 남화경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린다는 말을 그대로 옮겨와서 갑신에 붙여서 풀이하는 것도 뛰어난 응용력이네요. 채운은 왜 그런 것도 활용할 줄을 몰랐을까 싶은 생각에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다는 것을 확연히 깨달았어요.”

채운이 이렇게 말하면서 염재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합장했다. 염재도 그대로 받아서 합장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다 듣고 난 우창이 설명했다.

“채운과 염재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설명한 것이 모두 맞는 내용입니다. 아마도 왕 선생이 채운의 설명을 듣고서도 맞는다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염재의 말을 듣고서는 무릎을 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채운은 겉을 읽은 것이고, 염재는 속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채운의 관점은 전체적인 비율로 봐서 경(庚)은 7할이고, 임(壬)은 3할이므로 비중(比重)이 큰 것에 대해서 말을 했을 따름입니다.”

우창의 설명을 듣고 있던 채운이 말했다.

“스승님,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어요.”

“뭔지 말씀해 보게.”

“어떻게 7할의 어려운 것을 3할의 즐거운 것으로 감당을 할 수가 있을까요? 실로 편관이 있으니 마음에 고통스러운 것이 맞는 것이 아닌가요?”

채운은 여전히 자신이 했던 생각에 대해서도 우창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웃으면서 답했다.

“맞는 말이네. 그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라네. 하하하~!”

“마음이라니요? 어차피 힘이 든 것도 마음이 아닌가요?”

“아, 그게 아니라 희망(希望)을 붙잡으려는 마음이지.”

“희망을 붙잡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어머니가 아들로 인해서 마음고생이 많다고 한다면 이웃의 사람이 아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에 대해서 위로를 하면서 말하겠지? ‘아들로 인해서 고생이 많으시네요.’라고 말이지. 그러면 어머니는 그렇다고 할까?”

“그야 당연히 그렇다고 답을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어머니는 놀랍게도, ‘그래도 그 자식이 희망인걸요. 그 힘으로 살아가요. 언젠가는 토란국을 끓여줬는데 맛있게 먹고는 어머니 덕에 잘 먹었다고도 했어요.’라고 답을 한다면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있을까?”

“아하~! 비록 작은 기쁨이지만 그것으로 큰 고통을 덮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네요? 마음은 비율로 나눠서 이해할 것도 아니라는 말씀인 거지요?”

“옳지~! 잘 이해하셨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이해하는 채운을 보면서 웃었다. 그러자 왕현재가 물었다.

“정말 멋진 스승에 제자의 대화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늘 그려왔는데 오늘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화음(和音)이란 이러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음(知音)만 아름다운 줄로 알았더니 화음도 그에 못지않은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 왕 선생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오늘을 즐긴다면 더 바랄 것이 없으니까요. 하하하~!”

“참으로 부럽습니다. 제가 모시는 어른의 모습과 겹쳐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 잘 사는 것인지를 생각했습니다.”

“어디 무슨 말씀이신지 궁금합니다.”

우창의 이야기를 해 보라고 권하자 왕현재가 물을 한 잔 마시고는 말했다.

“제가 모시는 분은 관찰사(觀察使)의 벼슬을 하는 사람입니다. 지위가 그만하면 대단한데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때론 환멸감(幻滅感)도 들지요.”

“관찰사라고 하면 이미 높은 관직(官職)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가 얻은 관찰사도 전찰사(錢察使)라고 불릴 정도로 돈으로 얻은 자리입니다. 그야말로 엄청난 재산을 바쳐서 뇌물로 얻은 자리라는 뜻이지요.”

“아하, 품성(品性)이 목민관(牧民官)의 자질은 갖추지 못했던가 봅니다.”

“상사(上司)에게는 입안의 혀처럼 아부(阿附)하면서 아랫사람에게는 황제(皇帝)라도 된 듯이 거들먹거리는 것을 보면 저렇게 살아도 되는가 싶을 정도입니다. 참으로 가관(可觀)이지요.”

“많은 벼슬아치 중에는 그러한 사람도 있겠습니다.”

“차마 입으로 말하기 곤란할 정도로 음탕(淫蕩)한 침소(寢所)의 정황을 전해 들으면서 한탄(恨歎)이 절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부하 관원의 아내도 불러들여서 겁탈을 즐기면서 탐닉(耽溺)하다가 관원이 반발하자 뇌물을 먹었다는 죄명으로 처형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것도 보면서 어찌 벼슬해서 백성을 돌보겠다는 생각이 들겠습니까.”

“과연 맞는 말씀입니다. 그게 관모(官帽)의 힘이지요.”

우창의 말에 왕현재가 물었다.

“그건 무슨 뜻인지요?”

“아, 가령 배운 것도 없이 머슴살이나 하던 사람에게 주목(州牧)이라는 벼슬을 머리에 씌워주면 그는 돌변(突變)해서 어제의 머슴이 아니라 오늘의 주목으로 변한다는 뜻입니다. 지위는 주어졌는데 아는 것은 없으니까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오욕(五慾)을 채우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관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항상 눈을 보면 충혈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불안하다는 의미지요. 그래서 과연 말직(末職)의 제 마음보다 관찰사의 마음이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남들은 부러워하는 자리입니다만 제가 봐서는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기조차 합니다.”

“하하하~!”

왕현재의 말에 우창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대중이 우창의 웃음과 그 속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잠시 후에 우창이 말을 이었다.

“아마도 알고 계시겠지만 마약(痲藥)이 있습니다. 사람이 병으로 인해서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었을 적에 약으로 적당한 만큼을 사용하는 것인데 이것을 과다하게 사용하면 육체를 마비시키고 정신까지도 사유하는 것을 막아버리는 무서운 독약(毒藥)이지요. 그래서 중독(中毒)이라고 합니다. 특히 권력의 마약에 중독이 되면 이성을 상실하고는 가렴주구(苛斂誅求)르 일삼게 됩니다. 가련한 인생들이지요. 갑자기 『남화경(南華經)』의 돼지에 대한 비유가 떠올라서 웃었던 것입니다. 하하하~!”

“아, 마침 어제 그 대목을 읽었는데 왜 웃으셨는지 느낌이 바로 전해집니다. 과연 오행의 이치를 깨달으신 분이 맞으시네요.”

우창은 왕현재가 그 의미를 알고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되어서 던진 말이었는데 바로 알아들어서 그것도 즐거웠다. 그러자 채운이 다시 물었다.

“스승님, 돼지 이야기가 궁금해요. 귀가 어두운 제자를 위해서 조금만 들려주세요.”

“아, 그럴까? 초왕(楚王)이 장자에게 재상(宰相)의 자리를 줄 테니 와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사람을 보냈더라네. 물론 귀중한 선물 보따리를 가득 싣고 와서 권력의 위대함까지 말하면서 말이지.”

“왕이 장자를 불러서 재상을 시켜 준다고 하면 사람을 볼 줄은 알았던가 봐요.”

“그러자 장자가 왕의 선물을 그대로 돌려보내면서 신하에게 일러 보냈다고 하네. ‘나는 비단옷을 입고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보다 진흙 바닥을 뒹구는 돼지가 더 좋으니 그냥 가지고 가서 그리 전하시오.’라고 말이지.”

“어머, 그 좋은 자리를 거절했어요? 아까워라. 그런데 왜 존귀한 자리를 버리고 돼지가 되기를 원했을까요?”

“그야 권력에 취하면 본성(本性)을 잃고, 재물에 취하면 두려움만 커질 테니까 그 싹을 잘라버린 것이겠지.”

“권력도 잘 쓰면 되잖아요? 재물도 마찬가지고요. 돈이 많으면 빈민에게 나눠주면 되고, 권력으로 탐관오리를 모조리 없애면 또 얼마나 좋을까요?”

“아하~! 채운은 정치를 하고 싶은가 보구나. 하하하~!”

“물론 여인의 몸으로 언감생심(焉敢生心)입니다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못된 인간들을 없애고 빈곤한 사람들을 편안하게 살도록 해주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요. 실행의 길은 없더라도 생각은 가능하니까요.”

이렇게 자못 비장한 느낌까지 드는 말로 진지하게 말하는 채운에게 우창이 다시 말했다.

“채운의 그 마음이야 얼마나 아름다운가 말이네. 그런데 중독이 무슨 뜻인지는 알까?”

“중독(中毒)은 독에 맞았다는 뜻이잖아요?”

“처음에 독에 맞으면 바로 치료하면 된다네. 그렇지만 서서히 중독되면 약도 없다는 것이 문제라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처음에는 누군가 밥을 차려 주는 것만으로도 떠돌이 걸인에게는 천국의 재미가 되겠지만 그것이 익숙해지면 밥상의 반찬이 부실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그러다가 구운 오리로 만든 밥상을 차려 주면 처음에는 그 느끼한 맛에 취해서 천상에 있는 것같지만 점차로 그것도 심드렁해지면 점점 더 자극적인 것으로 옮아가서는 마침내 어느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심신(心身)은 중독이 되어버리는 것이라네. 권력(權力)과 재력(才力)의 맛이란 바로 그것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무서운 존재라는 것이지.”

“아, 그렇게 되는 것이네요.”

“그렇게 더 높은 자리와 더 풍요로운 재물에 맛을 들이게 되면 백성의 굶주리는 고통보다는 자신의 손톱 아래에 박힌 가시가 더 고통스러운 법이지. 밖을 향하던 맑은 인식은 사라지고 내면의 오욕을 향해서 치달리는 걸인이 되고 만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지만 이미 늦었다네. 장자는 그것을 미리 깨달아서 알았기 때문에 진흙의 구덩이에서 뒹굴면서 행복한 돼지를 원했으니 고량진미와 미녀에 둘러싸여서 환락을 즐길 마음이 애초에 있었을 리가 없지 않았겠나?”

“이제 무슨 뜻인지 알았어요. 그러니까 최고의 상거지는 왕이라는 말씀이잖아요? 왜 이렇게 통쾌하죠? 호호호호~!”

그러자 왕현재가 말했다.

“지난봄에 뜰앞의 작은 밭에 참외를 몇 개 심었더니 싹이 나고 잎이 피더니 마침내 참외가 달렸습니다. 그래서 자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해서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면서 즐거웠습니다.”

그러자 채운이 말했다.

“화초를 가꿔보면 그 마음을 알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잘 자라더니 얼마 전에는 참외가 꽤 커졌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마음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아십니까?”

왕현재가 채운에게 물었다. 그러자 채운이 얼른 말했다.

“그야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향긋한 참외를 먹을 수가 있겠다고 생각하셨겠네요. 키워서 먹는 것은 저잣거리에서 사다가 먹는 것과는 또 다르니까요.”

“그것이 밖에서 본 것과 안에서 느끼는 차이라고 하겠습니다. 갑신(甲申)을 보면서 밖에서 보면 고통스럽게 보이지만 안에서 보면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다는 것과도 통한다고 하겠습니다.”

“예? 참외가 자라는 것을 보는데도 고통이 있나요?”

“저도 씨앗을 뿌리고 물을 줄 때 만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지요. 참외가 점점 차라서 초록색이 옅어지면서 노란색을 띠게 되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행여 누군가 지나가다가 참외를 발견하고 따가면 어쩌겠느냐는 생각이지요.”

“아, 그럴 수도 있겠어요.”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문득 만리장성(萬里長城)을 떠올렸습니다. 시황제(始皇帝)는 얼마나 큰 두려움으로 떨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지요. 크면 큰 대로 얻은 것을 잃을까 싶어서 두려움이 커지고, 작으면 작은 대로 이 한 알의 참외로 인해서도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아하~! 그런 생각은 못 했어요. 듣고 보니까 과연 그럴 만하겠네요.”

“나라를 가진 자는 나라를 잃을까 봐 두렵고, 많은 재산을 가진 자는 강도가 들어 올까 두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벼슬이 높은 자가 왜 그렇게도 윗사람에게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려고 온갖 아첨(阿諂)을 다 하면서 아랫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넘볼까 봐서 두려워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장자가 말했다던 진흙탕 속의 돼지에 대한 의미도 이해하겠네요.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도요. 과연 갑신(甲申)을 통해서 이렇게 귀중한 법문을 깨닫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귀중한 말씀 감사드려요.”

채운이 왕현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자 우창도 한마디 했다.

“아무래도 왕 선생은 우리 학당에서 함께 공부하실 인연이 되시려나 봅니다. 입신양명(立身揚名)에 연연하지 않고 소요자재(逍遙自在)를 누리고자 하신다면 세상에서는 노장(老莊)의 가르침만 한 것이 없을 것이고, 학문으로는 오행보다 즐거운 것도 없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얻고자 했더니 잃을 것이 너무 많고, 버리고자 했더니 가득 차오르는 이 이치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가 있을까 싶습니다.”

“그것이 바로 음양의 이치지요. 겉을 얻고 속을 잃거나, 겉을 잃고 속을 얻는 이치이기도 하고. 그것이야말로 갑신(甲申)의 이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점괘에서 갑신보살(甲申菩薩)이 출현하신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그러자 채운이 얼른 말했다.

“아니, 스승님? 갑신은 알겠는데 보살이라니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러나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어디 갑신보살 뿐인가? 갑자보살 을축보살도 계신걸. 하하하~!”

“예? 그러니까 육갑(六甲)에 보살을 붙이신 것이죠? 그건 알겠는데 숭고한 보살의 명칭을 붙이신 의미가 궁금해요.”

“지장보살(地藏菩薩)과 관음보살(觀音菩薩)이 계시듯이 육갑보살(六甲菩薩)도 계시다네. 결국은 육갑으로 중생을 교화(敎化)하니 오행원은 보살을 만드는 보살공장이라고나 할까? 하하하~!”

“와우~! 그런 뜻이었군요. 멋져요~! 호호호~!”

“오늘은 갑신보살이 세상의 덧없음을 설법하시고, 내면으로 들어가면 마음이 평온하여 근심이 없다는 무진법문(無盡法門)으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계시니 이 또한 어찌 보살이 아니라고 하겠느냔 말이네.”

“정말이에요. 완전히 공감되네요. 때로는 탐욕을 부리면 무서운 고통을 당한다는 편관(偏官)인 경(庚)으로 경계(警戒)를 주시고, 또 때로는 상처를 다독여주시는 편인(偏印)인 임(壬)으로 위안(慰安)을 해 주시니 과연 보살이 맞아요. 정말 나머지 59분의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의 가르침도 빨리 배우고 싶어요. 호호호~!”

“아무렴. 서두르지 않아도 차차로 다 만나게 될 것이네. 다만 주의할 것이 있다면 조바심이라네. 조바심은 마음을 지치게 만드니까 말이네. 하하하~!”

그러자 왕현재가 다시 말했다.

“참으로 놀라운 가르침이십니다. 오행의 공부에 이렇게나 심오한 뜻이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갑신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제 사주와는 무관한 것입니까? 아니면 사주에서 찾아내신 것입니까? 문득 그 출처가 궁금해졌습니다.”

“아, 그건 우리 학당에서 활용하는 점술(占術)에서 나온 것이랍니다.”

“점술이라시면, 육효(六爻)와 같은 것입니까? 그것은 전에도 두어 번 본 적이 있습니다만, 오늘의 말씀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서 놀라고 있습니다. 귀찮으시겠지만 궁금한 마음을 조금만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이 궁금증은 비단 왕현재만의 것은 아니었다. 기문도사에게서 찾아온 제자들도 모두 궁금하기 짝이 없었는데 마침 물어줘서 내심으로 고마웠다. 우창도 그들의 궁금증에 대해서 약간은 설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매우 간단합니다. 왕 선생을 만난 순간에 또 하나의 아이가 태어난 것으로 생각하면 되고, 그 아이의 사주를 풀이함으로써 왕 선생의 현재 상황을 읽는 방법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아하, 그렇습니까? 그것이 제 운명을 들여다보는 조짐이 된다는 뜻입니까?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찾아오다가 중간에서 다른 일을 보고 왔더라면 또 다른 해석이 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오행을 공부하면 그러한 조짐도 볼 수가 있다니 저도 스승님으로 모시고 그 깊은 조짐을 읽어내는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함께 자연의 이치를 궁구(窮究)해 보십시다.”

우창은 왕현재가 진심으로 오행의 이치를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인 것을 보고는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제자들이 일제히 박수로 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