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 제24장. 정업(定業)/ 4.묻고 답하는 이치(理致)

작성일
2020-10-15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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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제24장. 정업(定業)


4. 묻고 답하는 이치(理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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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은 춘매가 문(問)자에 대해서 설명해준 것을 잘 이해한 것으로 보여서 흐뭇했다. 실로 간과(看過)할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물어주니까 그것도 잘 정리할 수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하던 춘매가 다시 물었다.

“근데 문답에 대한 말로 동문서답(東問西答)이 있잖아? 이건 왜 나온 말이지? 뜻이야 질문과 답이 서로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문득 생각이 난 김에 물어보는 말이야.”

춘매의 말에 우창이 미소를 짓고서 말했다.

“가령, 장사하는 사람이 많은 돈을 벌어들일 방법을 내게 물었는데, 나는 마음을 편히 다스리는 법을 말하는 것이지.”

“그럼 안 되잖아? 물어 본 사람을 만족스럽게 하지 못할테니까 말이야.”

“그래서 동문서답이야. 하하하~!”

“아니, 그것은 동문서답이 아니라 잘물못답이잖아~!”

“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잘물못답은 처음 들어보는데?”

우창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다시 뭇자 춘매가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호호~! 그야 ‘잘 물었는데 답을 잘못했다’는 말이지 뭐겠어. 호호~!”

“그래? 그런 말도 있었구나. 하하~!”

“물어 본 사람은 자신이 궁금한 것을 잘 물었는데 오빠가 잘못 답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질문은 잘했는데 답이 잘못되었단 이야기야.”

“아, 그 말이었어? 그러면 그 사람이 다시 찾아와서 또 같은 질문을 할까?”

“그럴 리가 있어? 오히려 욕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맞아.”

“뭐가?”

“그게 내 뜻이란 말이지. 하하~!”

“무슨 뜻이 그래?”

“나는 도를 묻는 사람을 원하지 돈을 묻는 사람은 원치 않거든. 내가 맘에 들지 않으면 다른 곳에 가서 물으란 뜻이지. 하하하~!”

“와우~! 그런 고도의 작전이었어? 놀랄 놀자네. 호호호~!”

“묻는 것도 자유지만 답을 하는 것도 자유니까.”

“근데 왜 ‘도’와 ‘돈’은 왜 소리가 비슷할까?”

“도는 기본(基本)이고, 돈은 응용(應用)이라서 그렇지.”

“아니? 거기에도 설명이 붙는 거야? 놀랍다. 놀라워~!”

“물으니까 답하는 거야.”

“도가 기본인 이유는 알 것도 같아. 자연의 이치가 모두 삶의 기본요소라고 보면 되니까 말이지. 그런데 돈이 응용이라는 것은 무슨 뜻이지?”

“도를 바탕에 두고서 활동하여 밥을 만드니까 응용이라고 할 수가 있지 않겠어? 별다른 뜻은 없지.”

“그런 거야? 그런데 사람들은 도는 잊고 돈만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은 왜 그럴까?”

“정업(定業)이지.”

“어? 정업이 또 나오는 거야? 왜”

“전생의 업연이 그렇게 하도록 자꾸만 바람을 넣으니까.”

“그렇다면 돈을 탐하는 것은 정업이네. 도를 탐하는 것은 뭐지?”

“무업(無業)~!”

“앗, 다시 무업이 나왔다. 그러니까 돈을 탐하지 않으면 무업이 된다는 말이잖아? 어찌어찌해서 답에 접근한 것도 같은걸. 호호호~!”

춘매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그런데 오빠, 도와 돈의 차이를 다른 말로도 할 수 있어?”

“물론.”

“어떻게 말하지?”

“돈은 점점 무거워지고, 도는 점점 가벼워지지.”

“우와~! 오빠의 어록(語錄)에 적어놔야 할 말이네.”

“도에 뭔가가 붙으면 그게 돈이 되는 거야. 사주풀이를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해야지. 그러니까 도를 바탕으로 삼고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삼으려니까 이런저런 설명을 붙이고 비유를 들어서 장황하게 늘어놓아서 돈이 되는 거야. 그냥 도만 말하면 누가 돈을 주겠어.”

“그러니까 돈을 벗어날 수는 없는 거네?”

“당연하지.”

“그건 또 무슨 이치야?”

“정업~!”

“그것도 정업이야? 왜?”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그렇게 살다가 떠나도록 정해진 것이니까.”

“아하~! 그래서 정업이구나....”

“돈은 돌아다녀서 돈이라고 하던데?”

“그건 경제학자(經濟學者)들이 하는 말이지. 도학자(道學者)가 할 말은 아니네.”

“왜?”

“그들은 돈이 돌지 않으면 나라가 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도학자는?”

“도학자는 도가 돌지 않으면 세상이 망했다고 생각하지.”

“정말 재미있는 비유네. 비유의 달인 오빠~!”

춘매가 감탄하는 것을 보면서 우창도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도를 바탕으로 삼고 돈을 벌면 상도덕(商道德)이 있다고 하잖아. 그리고 도를 벗어나서 돈을 벌면 부도덕(不道德)하다고 하지, 다른 말로는 ‘돈독이 올랐다’고도 하던가?”

“맞아~! 그런 말도 있어. 돈독이 오르면 어떻게 되는 거야?”

“죽는 거지.”

“왜?”

“중독(中毒)이 되면 고치지 못하니까.”

“아하~! 그렇게 되는 것이었구나.”

“그래서 돈을 벌어도 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벌면 아무도 비난하지 않아. 그것을 벗어나면 국법으로 문책(問責)을 하지.”

“맞아. 남을 속여서 많은 이득을 남기면 벌을 받아.”

“그렇게 되면 발에는 무거운 철추(鐵鎚)를 달고 감옥에서 세월을 보내야 하는 거야. 돈은 탐하면 할수록 점점 무거워지는 것이니까.”

“그런가? 돈이 무거워지는 것은 이해가 되네. 그렇다면 도는 쌓일수록 점점 가벼워지는 이치는 뭐야?”

“그야 도가 쌓일수록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져서 아무것에도 걸리지 않고 자유로워지니까.”

“거참 묘한 이야긴데 설득력이 있단 말이야. 호호호~!”

“이제 문(問)에 대해서는 이해를 한걸로 볼까?”

“완전~! 이해가 잘 된 것 같네. 다음엔 답(答)에 대해서 말해 줘봐. 글자가 왜 그렇게 생겼는지 또 무슨 이야기가 그 안에 들어있을지 궁금해.”

“답(答)의 글자는 위에 대나무가 보이지? 이건 무슨 뜻일까?”

“대나무면 대나무지 무슨 뜻이 또 있을까?”

“그럼 그 아래의 글자는 뭐야?”

“아래는 합(合)이네? 대나무가 합쳐지는 것이 답(答)인가?”

“옳지 그렇게만 해도 5할은 이해를 한 거야.”

“정말? 그래도 나머지 5할에는 오빠의 도움을 받아야 이해를 할 수가 있다는 말이네? 어디 우선 대나무부터 설명을 해 줘.”

“대나무로 뭘 만들지?”

“대나무로? 너무 많지. 온갖 가재도구(家財道具)를 만드는데 요긴하게 쓰이는 재료이니까 말이야.”

“맞아, 그런데 답(答)의 뜻과 부합이 되는 대나무의 용도를 생각해 보는 거야.”

“아, 그렇구나. 난 전혀 가늠하지 못하겠어. 어서 설명해 줘봐. 답에 맞는 대나무라니 그런 것도 있나?”

“죽간(竹簡)은 무엇으로 만들지?”

“죽간이니까 당연히 대나무로 만들겠네. 아항~! 옛날에는 글이나 그림을 죽간을 이용해서 쓰고 그렸잖아? 그 용도의 대나무네 그렇지?”

“맞아, 죽간을 엮으면 책(冊)이 되는 거지.”

“맞아, 책(冊)의 글자도 대나무 쪽을 엮어놓은 것에서 나온 것이란 말은 들었던 기억이 나네.”

“이제 절반은 이해를 한 셈이군. 그 글씨나 그림을 쓴 조각조각의 죽간을 서로 합체(合體)해야 제대로 된 문장이나 그림이 되겠지?”

“아하~! 그래서 답에는 합(合)이 들어있구나. 말하자면 공문서(公文書)와 같은 것으로 볼 수가 있겠네. 죽간에 글씨를 쓰고 각자 수결(手決:싸인)을 한 다음에 보관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살펴서 답을 구한다는 말이잖아?”

“오호~! 제법인걸~! 이제 누이도 실력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구나. 하하~!”

“뭘 그 정도를 갖고서 과찬하지 않아도 돼. 그래도 기분은 좋다. 호호호~!”

“가령 임신한 부부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헤어지게 되면 목에 걸고 있던 옥을 나눠서 각자 보관한 다음에 나중에 아내가 자식에게 그것을 지니게 한 다음에 아버지를 만났을 적에 그것을 대조해 보고서 혈육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도 답(答)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거야.”

“그러니까 문답(問答)이란 질문에 부합한 답을 제시하면 제대로 짝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겠네. 그치?”

“맞아. 아까 동문서답도 말했지만, 그것조차도 실은 각자의 생각에 부합할 수가 있다고 했지?”

“맞아. 문답이니까 문(問)이 있어야 답(答)도 있다는 말은 이제 확실하게 이해가 되네. 그러니까 미리 답을 마련해놓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는 것이네? 그래서 내일 염재가 와서 무엇이든 물으면 그때 비로소 그 물음에 맞는 답을 주는 것이라고 했구나. 이제 나도 그런 바보같은 말은 하지 않아야겠다. 호호호~!”

“그래 잘 이해했군, 기본은 물음에 적당(的當)한 답을 하는 것이 옳겠지. 다만 그 물음이 잘못되었거나 그대로 답하면 원하지 않는 결과가 주어질 것으로 판단이 된다면 물음과 다른 답을 할 수도 있지. 그것은 의도된 답이라고 하겠네.”

“의도된 답이라면, 의도되지 않은 답도 있다는 거야?”

“물론이지. 그것은 오답(誤答)이지. 자신도 잘못 알고 있던 것을 질문한 사람에게 전해주게 되면 오답이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겠지. 그리고 그 흐름은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이야.”

“예를 들면 어떤 것이 있을까? 나는 항상 오빠가 예를 들어서 비유로 설명해 주면 이해가 빠르더라.”

“그럴까? 가령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천원지방(天圓地方)을 보고서 땅은 네모지고 끝에는 낭떠러지가 있다고 써놓으면 그것을 보는 사람들도 계속해서 그렇게 전해주고 또 전해 받게 되는 것과 같은 거야.”

“그렇구나. 나도 그렇게 알고 있는 걸.”

“그렇다니까, 그 뜻을 올바르게 해석하게 되면, 지방(地方)의 방(方)은 사방(四方)이 아니라, 지면(地面)이 평평하지 않아서 각(角)이 졌다는 의미라고 알려주게 되면 비로소 그 오류의 흐름을 끊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지.”

“와우~! 그렇구나. 명학(命學)에서의 오류는 그런 것이 없나?”

“왜 없겠어? 가령 갑목(甲木)은 거목(巨木)이고 을목(乙木)은 화초(花草)라고 누가 써 놓은 것을 보고는 자신도 그런 줄로 알고 또 다른 사람에게 말이나 글로 전달해서 여전히 많은 학자는 그렇게 믿고 있잖아. 그러다가 하충(何忠) 선생이 등장해서 ‘실은 그게 아니고, 갑목은 동물(動物)이고, 을목은 식물(植物)이라’고 알려주고 나서야 비로소 그 오류를 멈추게 되는 것도 같은 의미이지. 그러나 그 답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오류에 머물러서 그렇게 알고 살다가 떠나는 것이겠지?”

“와~! 정말 제대로 알고 제대로 묻고, 또 제대로 답한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치가 않은 것이었네. 정말 신기하고 공부의 세계는 광범하다는 것은 확실히 알겠네. 이제 어디 가서 무엇을 아느냐고 해도 결코 안다는 말을 쉽사리 못하겠다.”

“그래서 ‘익은 벼가 머리를 숙인다’고 하잖아.”

“맞아~! 딱 그 마음이야. 문답(問答)이라는 두 글자를 잘 이해하고 보니까 과연 이제까지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도, 어쩌면 실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잖아. 그리고 점점 깊은 경지(境地)로 들어가게 되는 것도 같아.”

“당연히 그래야지. 하하하~!”

우창이 흐뭇해서 웃자 춘매가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같은 말을 들어도 예전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오빠를 만나서 공부하고부터는 그 연유(緣由)가 궁금해지고, 과연 그것이 맞는 것인지도 알고 싶어지거든. 그래서 생각이 점점 복잡해지는데 즐거움은 또 그만큼 커지니까 재미있다고나 할까?”

“그렇지. 그래서 공부하고 궁리하고 또 이해를 깊이 하는 거야. 매우 바람직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봐야지. 하하하~!”

춘매가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한 표정으로 문밖을 바라보고 있기에 우창은 춘매가 생각을 정리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할 동안에는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도 가르치는 자의 몫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의문이 생기면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이윽고 춘매가 말을 꺼냈다.

“오빠가 업에 대해서 말을 하니까 잠시 생각해 봤는데, 정해진 업은 정업(定業)이라지만 정해질 업도 정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왜냐면 그렇게 생긴 대로 살아간다면 10년 전과 10년 후가 다를 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만약에 개나 소나 돼지라면 그렇겠지.”

“그렇다면, 사람은 안 그런 거야?”

“아니지, 안 그런 것이 아니라, 안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야 그 말이 그말이잖아? 내가 듣기에는 같은 말로 들리는데?”

“이제 점점 이러한 구분도 가능하게 될거야. 말하자면 처음에는 쌀가마니를 다는 저울을 사용하다가 실력이 높아지게 되면 나중에는 황금을 다는 저울을 사용하게 되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다시 어려워지려고 하네. 쉽게 말해줘.”

“혹, 쌍둥이를 본 적이 있어?”

“당연히 본 적이 있지. 고향에 살 적에 친구가 있었는데 똑같이 닮은 쌍둥이였어. 그래서 우리는 항상 누가 언니고 누가 동생인지 구분하지 못했어.”

“그것은 대충 봤기 때문이야. 무엇이든 대충 보면 세밀한 구분은 할 수가 없지. 그래서 처음에 공부하기 시작하면 대충대충 이해하게 되니까 깨닫는 것도 거칠지만, 점차로 공부가 익어가면 정미(精微)롭게 된다고 하는 거야. 그 쌍둥이의 엄마도 아이들을 구분하지 못했을까?”

“그건 아니지. 어쩌다 놀러 가보면 정확하게 알아보시더라. 난 그게 또 신기했어. 호호호~!”

“지금 누이의 공부가 쌍둥이 친구를 보는 것과 같은 수준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거야. 그러다가 점점 실력이 연마되어서 쌓이게 되면 미세한 차이에 대해서도 확연하게 구분을 할 수가 있는 거야.”

“아, 그런 것이었구나. 이제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줄까?”

“그야 대환영이지 물어서 뭘 해~!”

“백정은 알지?”

“소나 돼지를 잡아서 매달아 놓고 파는 푸줏간의 주인장이잖아?”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여하튼 서로 연관이 있겠지.”

“근데, 갑자기 웬 푸줏간을 말하지? 고깃국을 끓여줄까?”

“그게 아니라, 「포정해우(庖丁解牛)」라는 이야기를 해주려고 하지.”

우창의 말을 듣고서 춘매가 손뼉을 쳤다.

“와~! 재미있겠네. 어서 들려 줘봐.”

“옛날에 소를 잡아서 해체(解體)하는 백정이 있었더란다. 이름은 포정(庖丁)이었다지. 얼마나 유명했으면 이름까지 전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런 이야기가 있어.”

“그래서?”

“어느 날 글을 읽던 선비가 아내의 심부름으로 푸줏간으로 고기를 사러 갔더라지. 마침 포정이 소를 잡아서는 살을 바르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된 거야. 원래 선비는 호기심이 많거든. 그래서 잠시 서서 구경하는데, 포정의 칼이 소의 몸을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면 고기의 살점 덩어리가 뭉텅뭉텅 잘려 나오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었지.”

“그럴 만도 하겠네. 원래 남들이 하는 것은 다 쉬워보이잖아. 그래서?”

“포정이 소를 모두 해체하고 자신을 돌아다 볼 적에야 정신이 들었던 선비는 물었어. ‘어쩌면 그대가 소를 해체하는 동작이 운율(韻律)에도 맞고 마치 춤을 추는 듯한 아름다움을 봤는데 이것이 어찌 된 일인가? 백정의 칼끝에도 도가 있다는 말인가?’라고 하자, 백정이 선비를 쓱 훑어보고서는 말을 했더라지.”

“그래 무슨 말을 했대?”

“백정이 다가와서 말하기를, ‘보통의 선비들은 글이나 좀 읽었답시고 거드름을 피우면서 천(賤)한 것들이 하는 일이라고 쳐다보지도 않는데 귀하는 그래도 뭘 좀 아는 모양이구려. 껄껄껄~!’하고 웃으면서 설명을 했다네.”

“궁금하네. 백정에게도 도가 있다는 것은 말이 되는 건가?”

“그 백정이 하는 말인즉, ‘하등(下等)의 백정은 소를 잡아서 해체(解體)를 할 적에 칼을 들고서 뼈를 자르오. 마구 칼로 두들겨 패서 뼈가 거의 부서질 지경이오. 그러니까 매일 칼을 갈아도 칼날은 항상 무디어져서 온몸으로 힘을 쓰기 때문에 밤에는 지쳐서 골아 떨어지기 마련이오, 그런데 중등(中等)의 백정은 뼈와 뼈의 사이는 구분할 줄을 알아서 뼈를 난도질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살을 바를 적에는 제대로 하질 못해서 살이 잘리고 흩어지곤 한다오. 그런데, 상등(上等)의 백정은 살과 살의 틈을 보면 마치 커다란 동굴처럼 넓어 보일 뿐이오. 그래서 뼈와 뼈의 사이는 물론이고, 살과 살의 사이조차도 바람처럼 누비도 다니게 되오. 이렇게 해서 분리한 살은 오래도록 상하지 않아서 식당에서는 내가 잡은 고기를 사려고 항상 줄을 서기 마련이오. 그리고 이 칼은 19년을 사용하면서 한 번도 숫돌에 갈지 않았지만 방금 숫돌에 갈았던 것처럼 칼날이 시퍼렇게 살아있지 않소? 이것을 글을 읽은 사람은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으니 내가 도를 어찌 알겠소. 껄껄껄~!’하면서 웃었더래.”

“와우~! 그가 바로 도인이었네. 그러니까 도가 높으면 미세한 틈도 거대한 동굴만큼이나 넓어 보인다는 거잖아. 그치?”

“맞아~!”

“가만, 아까 오빠가 뭐라고 했는데 내가 못 알아들은 거지? 그러니까 오빠 말이 ‘안 그런 것이 아니라, 안 그럴 수도 있는 거지.’라고 했지? 그 말은 개나 소나 돼지와는 다르게 사람은 정해질 업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잖아? 이렇게 이해하면 되는 거야?”

“옳지~!”

“뭐 별 이야기도 아니었네. 그걸 내가 못 알아들었다는 거잖아? 에구 나도 참 갈 길이 한참 멀었구나. 호호호~!”

“그래가면서 공부하는 거야. 누이는 매우 잘하고 있어. 하하하~!”

“나도 알아. 그런데 사람은 정해질 업이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은 듣고 싶네.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하지?”

우창은 춘매가 궁금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전해주고 싶었다. 결정업(決定業)과 미정업(未定業)에 대한 차이를 다시 설명해줘야 하겠다고 생각하고는 어떤 이야기로 춘매를 쉽게 이해시킬까 싶은 생각에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