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 제24장. 정업(定業)/ 2.연월(年月)의 과거인연

작성일
2020-10-05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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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0] 제24장. 정업(定業)


2. 연월(年月)의 과거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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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매가 축중신금(丑中辛金)에 대해서 기본적인 것을 이해하자 다시 우창이 점괘의 연주를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259 염재의점괘

“자, 지장간에 대해서 이해가 되었다면 다음으로 과거에 해당하는 연주(年柱)를 살펴볼까?”

그러자 춘매도 점괘에 집중하면서 우창의 말에 대답했다.

“그러니까 연주는 신미(辛未)잖아. 일간(日干)에게는 편인(偏印)인 신금(辛金)과 다시 편관(偏官)인 미토(未土)가 있는 것은 보여. 그런데 이것이 왜 전생이 되는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네. 사실 이게 궁금했단 말이야.”

“다시 생각해 봐, 중등 학자는 뭘 어떻게 한다고 했지?”

“응, 뭐라고 했더라.... 다시 설명해 줘봐. 벌써 잊어 버렸나봐. 호호호~!”

“그야 제자가 못알아 들었다면 열 번이라도 말해야지. 중등 학자는 주어진 간지를 바탕으로 삼고, 주변의 상황을 살핀다고 했잖아? 주변의 상황이 뭐야?”

“그러니까 말이야. 주변의 상황이라니 일주(日柱)의 주변을 말하나? 그게 뭔지 생각해 봐도 모르겠는데? 아니면 그 사람의 지위가 통판이라는 것인가? 그게 무슨 상관이지?”

“꿈~!”

“꿈이라니? 그러면 환상이라는 말이야?”

“아니, 염재의 꿈이 나왔잖아. 염재의 꿈에 대한 이야기가 이미 전생의 조짐으로 해석하라는 암시가 아니고 뭐겠어?”

“아니, 그게 어떻게 연결이 되지? 역시 나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었다는 말이구나.”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었다니 아직 집의 대문간도 벗어나지 않고서 그게 할 말인가? 하하하~!”

우창히 호쾌하게 웃자. 염재와 춘매도 같이 웃었다. 춘매가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오빠가 보기에는 내 공부가 아직 문간도 못 벗어났다는 말이구나. 내 딴은 동네 밖은 벗어난 것으로 여겼는데 말이야. 섭섭해라~!”

“꿈이란 것이 이렇게도 꾸고, 저렇게도 꾸는 것이니까 보통은 별문제가 없어. 그렇지만 수년을 두고 반복적으로 같은 꿈을 꾼다면 그것은 예삿일이 아니지. 그리고 요즘 우리가 전생에 대해서 담론(談論)을 했잖아. 이러한 것이 연결고리가 되어서 필시 전생의 일과 연결되어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거야.”

“아, 그렇구나. 그럼 뭐 별것도 아니네. 난 또 뭔가 대단한 비밀을 하나 얻게 되나보다 했잖아.”

“그랬어? 비밀은 무슨 비밀, 원래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모습들이 모두 진리인 거야. 하하하~!”

“물론 알지, 그냥 농담한 거야 호호호~! 정말 가까운 곳에서 답을 찾는 오빠의 능력이야말로 항상 경이(驚異)로울 따름이니까.”

우창이 미소를 머금고 다시 말을 이었다.

“연간(年干)의 신금(辛金)과 일지(日支) 신금의 연관성(聯關性)을 생각해 볼 수가 있는 거야. 신금은 같은 것이지만 연간에 있으면 전생이 되고 일지에 있으면 현생(現生)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했던 거지. 더구나 전생엔 겉으로 드러난 신금이 금생(今生)에는 일지에 암장되어 있다는 것을 떠올렸지.”

“역시~! 오빠의 통찰력이란~! 이제 비로소 뭔가 느낌이 살아나려고 하네.”

춘매가 그렇게 말하자 우창이 해석해 보라고 넘겼다.

“그렇다면 어디 누이가 풀어볼래?”

“알았어, 힘이 자라는 데까지 해볼게. 말이 안 되면 고쳐 줄 거잖아.”

“물론이지.”

“일지의 신금부터 볼게. 신금은 흑체(黑體)야 그래서 모든 것을 빨아들이지. 어두운 밤조차도 빨아들이는 것이라고 해도 되지않을까? 전생의 기억조차도 빨아들이는데 그것이 밝은 것일 리는 없어. 왜냐면 전생의 기억 중에서 앙금이 남지 않으면 다음 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그렇다면 전생에 풀지 못했거나 마음에 맺혔던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그런데 일지의 축중기토(丑中己土)가 있는 것을 보면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겠네. 어때? 오빠가 듣기에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응, 매우 그럴싸 한 걸. 잘 하고 있으니 계속해서 마음대로 풀이 해.”

우창의 확인을 받고서 춘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연지(年支)의 미토(未土)도 참으로 신기하네. 일지(日支)와 충(沖)을 하잖아. 그러니까 땅속 깊은 곳에 묻혀서 아무도 모르던 일이 겉으로 드러날 조짐이 되는 건데 그것이 연주에 있으니까 아득한 옛날의 일이라는 것으로 봐야지. 다시 일간을 기준으로 본다면 미중을목(未中乙木)은 전생에 먹고살았던 일이고, 미중정화(未中丁火)는 스스로 돈이 되는데, 을목의 식신(食神)을 고려해 본다면 전문적으로 일해서 먹고 살았다는 해석도 가능하겠어. 그런데 여기에다가 꿈속의 기녀가 등장하니까 기녀는 예술(藝術)을 터득한 여성이라고 하겠으니 절묘하게도 부함이 된다는 거네?”

“옳지~!”

우창은 춘매의 이야기 흐름을 끊지 않으려고 간단하게 확인만 해 줬다. 그러자 춘매의 풀이가 계속되었다.

“월주(月柱)는 이번 생에서 여태까지 살아온 것으로 봐야겠네. 갑목(甲木)은 총명함이고, 오화(午火)는 자신이 하는 일이 된다면 어둠을 밝히는 것이니까 일을 판단하는 것에 있어서 공명정대(公明正大)함을 우선으로 삼게 되는 것이니 현재의 임무가 통판(通判)이라는 것도 절묘하게도 부합이 되잖아?”

“누이의 기교(技巧)도 나날이 발전하는구나. 하하하~!”

우창이 흡족해서 칭찬했다.

“그렇게 남의 일을 판단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일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한 것은 오화(午火)가 축토(丑土)를 생하는 까닭이라고 봐. 그렇지?”

춘매가 자신이 없는지 우창에게 거듭 확인을 청했다.

“무리(無理)~!”

“아, 그건 무리구나. 호호호~!”

“아무리 눈치가 백 단이라고 하더라도 이치에 맞는 것을 찾아서 대입해야 자신도 속고 남도 속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 거야. 그러니까 오화를 축중기토(丑中己土)에 연결하고 싶다면, 일이 힘드는 것으로 풀이하고, 그게 아니면 축중신금(丑中辛金)에게 연결시키게 되어 차마 누구에게도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으로 풀어야 하겠지?”

“어? 그건 왜?”

“축중신금이 직접적으로 오중정화(午中丁火)의 극을 받지는 않아. 그렇지만 간접적으로는 극하게 되니까 감히 겉에 드러내놓고 해결법을 찾을 수는 없는 거지.”

“아하~! 알았다. 축중신금이 밖으로 나오면 오중정화에게 극을 받아서 죽으니까 그렇구나~!”

“옳지~! 하하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염재의 표정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변했다. 특히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한다는 대목에서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오랜 시간을 고심하던 것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감동을 했던 까닭이다.

“스승님과 사저(師姐)의 말씀을 들으면서 내심으로 감탄과 감동을 반복하고 있는 염재입니다. 단지 열 개의 글자에서 그렇게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죄인을 문초(問招)할 적에도 그 방법을 사용할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지를 순간적으로 생각하기조차 했습니다. 정말 감동입니다.”

춘매가 말을 받았다.

“호호호~! 역시 염재는 공인(公人)임에 분명하구나. 그것을 또 어떻게 사용해서 백성의 원한을 풀어줄 수가 있을 것인지를 생각했다니 말이야. 호호호~!”

우창이 다시 춘매를 보고 이어서 설명하라는 듯이 종이에 적힌 오주괘를 가리켰다. 그러자 춘매도 그 뜻을 알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 얼른 이어서 풀이하라고? 알았어. 호호호~!”

“공부하다가 딴소리를 하면 의식이 분산된단 말이야.”

“다음엔 시주(時柱)를 봐야지? 경신(庚申)이라니 정인(正印)이 뿌리를 갖고 있어서 매우 강력하네. 이제 문제가 드러나는 것은 물론이고, 해결까지 말끔히 되겠네. 편인(偏印)으로 암장(暗藏)되어 있을 적에는 검은 동굴 속의 두통거리였지만 이렇게 세상 밖으로 드러나는 데다가 경금(庚金)은 백색(白色)이고 밝은 것이니까 말이야 이제 여태까지 힘들었던 문제는 두통이 아니라 깨달음의 연료가 되어서 해결되겠으니까 말이지. 그리고 분주(分柱)의 경진(庚辰)까지도 아무런 문제가 없이 자신의 길을 잘 갈 수가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겠어. 어때?”

“뭐가 그리 급해서 분주는 얼렁뚱땅 해치우느라고 하하하~!”

“그럼 뭐 더 할 말이 있는 거야? 그게 뭔데?”

“아니 잘했어. 그렇게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사실 분주는 없어도 해석하는데는 무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보면 될 거야. 잘했네. 합격~! 하하~!”

“와우~! 오빠의 가르침이 이렇게 빛을 발하는구나. 점괘를 해석하고 보니까 염재의 상황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없다고 봐도 되겠잖아? 점이란 것이 이렇게도 대단한 것인 줄을 새삼 깨달았네.”

“이제 점괘에서 전생도 나온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겠지?”

“맞아, 난 무슨 신통력을 발휘했나 했더니 주어진 자료와 얻은 점괘를 잘 배합하니까 그 안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나오는 것이었잖아. 이제 나도 조금은 더 확신(確信)하면서 점괘를 볼 수가 있을 것 같아.”

“만약에 처음 만났을 적에 염재가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전생에 대한 이야기도 점괘에 없었던 것으로 보면 되는 거야. 그렇게 점괘(占卦)의 조짐(兆朕)과 해석(解釋)의 계기(契機)가 서로 맞아떨어져서 결과를 도출(導出)해 내는 것일 뿐이지.”

“우와, ‘점괘의 조짐과 해석의 계기’라 정말 기가 막히게 연결되네. 그 두 마디에 모두 다 들어있다고 봐야 하겠어. 염재로 인해서 많은 견문과 공부가 되었으니 염재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겠네. 호호호~!”

염재가 그 말을 듣고서 춘매를 향해서 말없이 공수했다. 해석은 춘매가 하고서 염재에게 감사하는 것이 멋쩍어서였다.

“그런데 오빠~!”

“응?”

“이 점괘에서 염재가 공부하러 올 것이라는 해석도 찾아낼 수가 있을까?”

“왜? 그것까지도 알고 싶어서?”

“궁금하잖아. 모든 것을 다 찾을 수가 있으면 더 좋으니까. 호호호~!”

“뭐, 아직은 이르나 공부의 씨앗은 분지(分支)에 있는 진중을목(辰中乙木)에 심어뒀다고 봐야지.”

“진중을목이면 식신(食神)? 식신이 공부야?”

“아마도 이것이 무엇인가 싶은 마음에 궁금한 것이지.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경금(庚金)의 정인을 통해서 내공을 쌓아야겠지만 언젠가는 진중을목까지도 기운이 전해지면 많은 이치를 깨닫고 난 다음이지 않을까?”

우창의 풀이를 듣고서 춘매는 무릎을 쳤다.

“역시~! 오빠의 관점은 아무리 내가 맨발로 뛰어봐야 발뒤꿈치도 따르기가 불가능하다니까. 대단한 오빠야~!”

“그걸 이제 알았어? 하하하~!”

“어? 웃고 떠드는 사이에 점심을 챙겨야 할 시간이네. 두 분은 말씀 나누고 계셔. 얼른 가서 먹을 것을 좀 만들어 놓고 부를 테니까.”

그러자 염재가 얼른 말했다.

“사저, 안 그러셔도 됩니다. 오늘 점심은 염재가 마련하려고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조촐하더라도 입문(入門)한 기념으로 대접하고자 합니다. 어디든 안내만 하시면 됩니다.”

“오호~! 염재가 뭘 아는구나. 그러잖아도 밥을 하러 가기도 싫었거든. 고마워. 그럼 조금 더 있다가 나가도 되겠다. 호호호~!”

춘매가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염재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춘매가 다시 말했다.

“이제 염재의 사주를 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네? 여태 사주도 보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지 뭐야. 호호호~!”

염재가 알려준 생월생시를 춘매가 천세력(千歲曆:매월의 1일, 11일, 21일의 일진(日辰)만 적은 약식 만세력)으로 찾아서 적었다. 우창은 춘매가 적는 것을 말없이 보고 있었다.

260 염재의 사주

춘매가 염재의 사주를 적은 다음에 가만히 들여다 보더니 잠시 후에 우창에게 말을 건넸다.

“오빠, 아무래도 화(火)겠지?”

“그렇겠네.”

“나이가 들어서 대학자(大學者)가 되는 것이 아닐까?”

“왜 아니겠어.”

“월주(月柱)의 경인(庚寅)은 뭐지?”

“환경에 이끌려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살아가는 모습이겠네.”

“그렇다면 중년 이후에는 자유로운 길로 갈 수가 있다는 건가?”

“아마도 쉽지 않을 거야.”

“그건 마음대로 안 될까.... 그럼?”

“아마도 말년에는 손헌 선생이 부럽지 않겠네.”

“정말? 그런데 중년에는 왜 안 되지?”

“내공이 덜 채워지잖아.”

“아하, 일약(日弱)한 까닭이구나. 그렇지?”

“맞아.”

“연주가 병오(丙午)라면 부모의 인연은 무척 좋았다고 봐도 되지 않아?”

“가능하지.”

“그렇다면 약관(弱冠:20세)이후에는 마음고생이 많았다는 것으로 보면 되겠구나. 그렇다면 6년 정도라고 하면 될까?”

“오호~! 그건 일리가 있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염재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

“맞습니다~! 6년 전에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는 참으로 좋았으나 그 후로는 관리로 임명이 되었음에도 내심으로는 불편한 것이 많았습니다. 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시키는 대로만 한다는 것이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지요. 그래도 3년 정도가 지나니까 그런대로 견딜만 했습니다. 오늘에서야 사주의 공부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염재의 말을 듣고는 춘매가 손가락을 접으면서 따져봤다.

“그러니까 올해가 신미(辛未)니까 작년(昨年)은 경오(庚午)가 되고, 재작년(再昨年)은 기사(己巳)네? 그러니까 그 전인 무진(戊辰)부터 차차로 안정이 되었다고 보면 무난하겠네.”

“사저의 말씀이 꼭 맞습니다.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바로 때려치우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거든요. 부모님의 기대가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은, 제게 기대를 많이 걸고 있는 부모님의 마음을 저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렇게 훌륭하신 스승님을 만나게 되려고 그랬나 싶기도 합니다. 모쪼록 열심히 공부해서 밥값이라도 하는 삶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갑자기 숙연한 분위기가 되자, 춘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자, 감동적인 이야기는 앞으로도 할 날이 많을 테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야지? 마침 비도 멎었네.”

정말 그렇게 퍼붓던 비가 어느 사이에 멎고 구름 사이로 간간이 햇살도 비쳐들었다. 비가 내리고 난 다음의 공기가 가장 맑고 상쾌한 법이다. 세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춘매가 이끄는 대로 식당으로 향했다.

「취흥루(醉興樓)」

춘매의 걸음이 멈춘 곳은 취흥루의 앞이었다. 우창도 전에는 지나치기만 했는데 오늘에서야 들어가 보는 곳이다. 그리 크지 않고 아담한 식당이었다. 말없이 뒤따르던 염재가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사저께서 설마 염재의 주머니 걱정해 주시는 건 아니겠지요? 혹시 그러시다면 오늘은 거창하게 대접할 준비를 단단히 했으니 더 큰 집으로 가시기를 권합니다.”

그러나 춘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자, 두 사람도 말없이 따라서 들어갔다. 춘매가 잘 아는 집인 듯이 거침없이 들어가서는 창가의 식탁에 자리하고는 두 사람이 앉기를 기다렸다.

“언니~!”

춘매가 소리치자 주인으로 보이는 여인이 젖은 손을 수건에 닦으면서 나타났다.

“춘매 왔어? 오랜만이네? 잘 지냈지?”

“언니 덕분에 나야 늘 복사꽃이 만발하잖아요. 오늘은 내가 손님이야. 그러니까 이 식당에서 제일 맛난 것으로 만들어 줘요. 호호호~!”

“그래 알았어. 두 분 손님도 처음 뵈어요. 편안하신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예, 고맙습니다.”

우창과 염재는 그렇게 답례를 하고서는 따라주는 물잔을 들어서 목을 축였다. 중년의 여인은 매우 성실해 보이는 모습이었고, 주방에는 남편이 있는지 말을 건네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오늘은 춘매가 손님을 모시고 왔네. 맛있는 것으로 만들어 줘요.”

식당의 규모가 아담했기 때문에 속삭이는 말이 아니라면 모두에게 들릴 정도였다. 부부가 경영하는 식당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제야 우창과 염재도 춘매가 공짜로 밥을 얻어먹는다고 해서 무턱대고 남에게 짐을 지우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지 않으면 남의 것에 대한 소중함은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아서도 궁금한 것이 많은 염재였다. 우창과 춘매를 번갈아 보는 것이 뭔가 물어보고 싶다는 뜻이라는 것을 눈치챈 춘매가 긁어줬다.

“왜? 염재는 또 알고 싶은 것이 생겼어? 어서 말해도 돼.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앉았느니 수다를 떠는 것이 훨씬 나으니까. 호호호~!”

그 말에 말을 할 기회를 얻은 염재가 우창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승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삶이란 무엇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업(業)~!”

우창은 누가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답은 간단하게 하는 버릇이 있었다. 긴 말을 하면 오히려 질문의 뜻이 왜곡될 수도 있다고 봐서 가능하면 단답(單答)으로 해놓고서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면 다시 설명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었다. 당연히 염재가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갸우뚱했다. 그러자 조금 더 친절하게 답했다.

“정업(定業)~!”

“정업이라면 정해진 업을 말하는 것입니까? 사실 업이라는 뜻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설명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춘매도 업에 대해서는 자세히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선업(善業)이나 악업(惡業)은 들어 봤으나 정업(定業)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듣는지라 오히려 춘매가 흥미로워했다.

“업은 선업과 악업이 있는 줄은 알았는데 정업이 있다는 것은 또 처음 듣네? 나도 그게 궁금하다. 어서 설명해 줘봐.”

두 사람이 모두 관심을 보이니 우창은 더욱 즐거울 따름이다. 그래서 물을 한 모금 마신 다음에 천천히 업을 설명했다.

“모든 생명이 지금 행하고 있는 모든 것은 ‘업’이라고 한다네. 이미 진행이 된 일은 정업(定業)이라고 하고, 앞으로 진행이 될 일은 미정업(未定業)이라고 하는 것이 다를 뿐이고, 모든 것은 업(業)이라고 보면 되지.”

마음이 급한 춘매가 얼른 그 말을 받아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이미 저지른 모든 행위인 정업(定業)에 의해서 삶은 결정된다는 말씀이네?”

“맞아.”

“아마도 전생의 일도 정업이 되는 건가?”

“당연하지.”

이번에는 염재가 물었다.

“그렇다면 어제의 일도 정업이 됩니까?”

“물론~!”

“혹시 업(業)이라는 글자가 왜 그렇게 생겼는지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런지요? 제자는 항상 글자의 생긴 모양에 유난히도 관심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이런 것은 쓸데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궁금해지거든요.”

“그게 왜 쓸데없겠는가? 명(明)은 일월(日月)이 동시에 있는 것만큼 밝다는 뜻이지 않은가?”

“맞습니다. 제자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른들께 물으면 뜻이나 생각하지 않고 그딴 것에 시간을 허비한다고 꾸중도 많이 들었습니다만 그래도 궁금한 것이 해소되지 않으면 자꾸만 생각이 납니다. 참 못된 버릇이지요?”

“학자에게는 매우 좋은 버릇이지, 그리고 나도 그러한 버릇이 있다네. 아마도 우리는 잘 만난 것 같군. 하하하~!”

“여태까지 자형(字形)에 대해서 질문해서 칭찬을 듣기는 처음입니다. 역시 저마다 인연은 따로 있나 봅니다. 고맙습니다.”

우창은 감동하는 염재의 표정을 보고서는 춘매에게 지필(紙筆)을 얻어오라고 했다. 이야기가 재미있어진다고 생각한 춘매는 우창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얼른 일어나서 주방으로 가더니 지필과 묵연(墨硯)을 챙겨들고는 부리나케 와서는 물을 조금 붓고는 부지런히 먹을 갈았다. 잠시 후에 먹물이 마련되자 우창이 붓을 들어서 글자를 썼다.

260 업의 파자

염재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창의 붓을 따라 가다가 붓을 멈추자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읽었다.

“지금 쓰신 왼쪽에 업(業)이라는 글자와, 오른쪽에 배(业), 양(羊), 인(人)을 쓰셨네요. 아마도 뒤쪽의 세 글자는 앞의 업(業)자를 파자(破字)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렇게 보는 것이 맞습니까?”

“염재가 잘 봤네. 어떤 글자라도 그 글자의 구조를 봐서 여러 글자의 조합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그 조합을 원래대로 나눠놓고서 살펴보면 또 의외로 많은 뜻이 드러나는 법이지.”

“정말 ‘업’자가 왜 이렇게 생겼을까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여인이 김이 무럭무럭 나는 요리가 준비되었다는 신호를 춘매에게 보냈다. 아마도 열심히 토론하고 있는 중이라서 음식을 내놔도 될 것인지를 묻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일단 늘어놓은 필묵을 치워놓고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음식은 깔끔했다.

“역시, 누이의 말만 들으면 해로울 일이 없다니까. 집에서 항상 해 주는 것도 그렇고, 오늘 먹는 것도 그렇고 모두가 맛이 깔끔해서 좋군.”

“내 그럴 줄 알았어. 오빠의 입맛은 내가 잘 아니까. 그렇지만 또 어느 때는 느끼한 음식이 먹고 싶을 때도 있지. 그런 때는 또 그런 입맛에 맛는 집으로 가면 만족하게 되니까 때에 따라서 선택하면 되는 거야. 보통은 낮에는 담백한 것이 좋고, 저녁엔 조금 느끼한 것이 좋기도 하잖아.”

그렇게 세 사람은 서로 뜻이 맞는 좋은 인연을 엮어가는 음식을 즐기면서 저마다의 마음에 흡족함을 느꼈다. 우창은 이곳이 극락세계려니 싶었다. 맛있는 음식이 있고, 뜻이 통하는 벗이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