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 제23장. 전생록(前生錄)/ 8.전생의 상처(傷處)

작성일
2020-09-26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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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제23장. 전생록(前生錄)


8. 전생의 상처(傷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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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의 말에 홍련이 술꾼이 주정하나보다 싶었던지 그냥 웃어넘겼다.

“홍련은 무슨 띠인지 말해보게.”

“어머? 진짜로 봐주시게요? 점쟁이가 맞긴 한 거죠? 호호호~!”

“아니, 내가 허언(虛言)이나 할 사람으로 보였나?”

“웃자고 드린 말씀이고요. 전 신해(辛亥)생 돼지띠에요. 진짜로 제대로 좀 봐주세요. 술이라도 철철 넘치게 따라 드릴게요. 자, 쭉~!”

우창은 홍련이 따라주는 술을 마시면서 점괘를 요량했다.

‘해(亥)는 4, 오늘 계축(癸丑)이니 계(癸)는 5, 지금은 아직 술시(戌時)이니 술(戌)은 5, 합이 14구나. 이것은 구인괘(蚯蚓卦)로군. 지렁이라.....’

홍련이 다시 우창에게 답을 독촉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으셔도 되니까 그냥 보이는 대로만 간단히 한 말씀 해 주세요. 괜히 손님을 귀찮게 하면 왕언니에게 혼나거든요. 호호호~!”

“어서 집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네.”

홍련이 갑자기 하는 우창의 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예? 무슨 말씀이세요?”

“지렁이가 술만 마시고 웃음을 팔다가는 제명에 못 죽을 테니까 어서 정리하고 귀가해서 조그마하게 주막이라도 하면서 살아가기를 권해 주라고 점신께서 말씀하셨네.”

뜻밖에 우창이 지렁이라는 말을 하자 홍련이 의아해서 다시 물었다.

“지렁이라니요? 홍련이 지렁이만도 못하단 말씀인가요? 징그럽게 웬 지렁이 타령이랍니까? 에그~!”

우창이 홍련의 말에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다.

“이것은 비유라네. 생각해 봐. 원숭이가 있다면 웃음을 팔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이상할 이치가 있겠는가? 그런데 지렁이라니 지렁이는 어두운 땅속의 축축한 곳을 뒤지고 다니면서 자신이 먹을 것을 찾는 것이 본성이지 않을까? 그러한 지렁이를 호화로운 옷을 입혀서 술상에 앉혀놓는다면 얼마나 버틸 수가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나. 아마도 홍련이 겉으로는 웃음으로 살고 있으나 내면의 마음에서는 이런 짓을 빨리 청산하고 흙냄새가 풀풀 나는 전원으로 돌아가서 배운 기술이라면 그것을 살려서 먹고 살 궁리를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행복하겠다는 생각도 해 봤지 싶네마는....?”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홍련의 눈이 더 커졌다.

“아니에요. 홍련은 이렇게 호화롭게 살면서 글방도련님들과 수다를 떠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뭐죠? 혹시 저를 작은 댁으로 삼아서 남들이 보지 못하도록 산골에 숨겨놓고 싶어서 하시는 말씀은 아니죠?”

홍련이 이렇게 반발을 하는 듯한 말에 우창은 전혀 반응하지 않고 묵묵히 홍련의 얼굴만 바라봤다. 그야말로 무심으로 바라봤다. 너의 진심을 열어서 보여주지 않는다면 나도 더이상 어떻게 해 줄 것이 없다는 듯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고개를 푹 숙이는 홍련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것을 보고서 우창도 짐작을 했다. 말못할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살고 있지만 또한 자신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했던 것이다. 잠시 그렇게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홍련이 눈가를 소매로 훔치면서 웃음기 띤 소리로 말했다.

“엄머~! 놀라워라~!”

“나는 점괘만 보고서 한 말이지만 홍련의 표정을 보니까 무슨 사연이 있었던가 보군. 이렇게 나온 점괘의 뜻이 말이야? 홍련은 내막을 알고 있을 테니 내가 이해를 하도록 설명을 좀 해 주시려나?”

“다 아시면서 뭘요. 그러지 않아도, 올가을에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진형에게서 그 말을 들으니까 가슴에 마침표를 찍게 되네요. 어떻게 그리도 잘 아시고, 또 정확하게 핵심을 짚어 주시는지 놀라워요.”

홍련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높여서 말하자, 주변의 사람들이 시선을 모았다. 그러자 얼른 일어나서 두 손을 흔들면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신호를 보내자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자 우창에게 물었다.

“도사님 혹시 연승점술관에 계시는 분이세요?”

“어? 그걸 어떻게?”

“맞았구나. 어쩐지 풍모를 봐서 그러신가 싶었어요. 다른 날에 조용히 찾아뵐게요. 오늘은 친구분과 긴히 해결하셔야 할 일이 있으신 듯하니까 자리를 비켜드리는 것이 좋겠네요. 인연이 되셔서 고마워요~!”

그렇게 목례를 하고는 홍련도 사라졌다. 그 사이에 염재도 마음에 진정이 되었는지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홍련의 놀라는 표정을 보면서 우창의 도력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해 봤으나 그것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냥 바라보기만 할 따름이었는데 우창과 시선이 닿자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 염재, 이제 우린 그만 나가도 되겠지?”

“그럽시다. 진형.”

우창이 술값을 계산하려고 하자, 염재가 얼른 나서서 해결했다. 다음에 꼭 찾아 달라는 여인의 인사를 뒤로하고서 두 사람은 연승점술관으로 향했다. 잠시 후 점술관에서 마주 앉았을 적에 춘매가 식혜를 들고 왔다. 나들이한 결과가 궁금해서 문밖만 살피고 있다가 연승점술관에 불이 켜지는 것을 보고서 얼른 나왔다.

“오빠, 다녀오셨어? 통판나리께서도 같이 오셨네. 어서 오세요. 여기 시원한 음료를 준비했어요.”

“고마워. 마침 목이 마르던 참이었는데 역시 누이밖에 없네. 하하하~!”

우창은 짓눌릴듯한 청루의 분위기를 떠올리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환한 웃음과 청매의 소박한 웃음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가늠해 봤다. 순진무구한 표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새삼 깨달았다고 해야 할 모양이었다.

“우창 선생의 배려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참으로 수고롭게도 익숙하지 않은 곳까지 나들이를 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뭘요. 그게 일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도통판께서도 익숙한 것은 아니지 싶었습니다만. 하하하~!”

“맞습니다. 그러한 곳은 돈이 많고 부모를 잘 만난 귀한 집의 자제들이나 가는 곳으로 생각하고 공무(公務)를 살펴야 하는 공직자는 더구나 사건이 생기기 전에는 갈 일이 없는 곳으로 알았으니까요.”

“그렇지 싶었습니다. 덕분에 우창도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하하~!”

“오늘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청루에 앉아서 그냥 술이나 한잔 마시면 되는가 보다 했는데 어느 순간에 꿈과 현실이 뒤엉키면서 마치 제가 기녀가 되어서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는 과거에 쌓였던 한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오열(嗚咽)하게 될 줄을 어찌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도대체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참으로 신기한 일이지요? 그러나 실은 도통판의 전생과 연결이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재연(再演)이 가능한 기억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그러한 분위기에서 맺힌 한을 풀어드릴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다행히 제 판단이 주효(奏效)했나 봅니다. 이제 그러한 꿈은 안 꾸게 될 것이니 편안하게 숙면을 이루면 되겠습니다. 하하~!”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느낀 감정으로는 과거의 삶에서 한 기억이 되살아 난듯했습니다. 어떻게 그러한 것을 아셨습니까?”

염재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서 그것이 전생에서 남은 잔상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냈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우창이 설명을 해 줬으면 싶은 마음에서 다시 물었다. 우창이 미소를 한 번 짓고는 말했다.

“그것은 경험에서 온 느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창이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라서 염재도 그러한 인연이 얽혔을 수가 있겠다는 생각해 본 것이었는데 다행히도 문제를 바로 짚었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어떤 이야기였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신기한 일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한 남자가 있었답니다. 그는 겉으로 봐서는 매우 정상적인 사람이었는데, 항상 오른쪽 허벅지와 가슴에 고통을 느끼게 되었더랍니다. 백방으로 의원을 찾아서 치료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해도 백약이 무효였고, 고통은 점점 더 극심해져서 나중에는 정상적으로 활동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더랍니다. 나중에는 죽을 요량으로 인적이 끊긴 산을 찾아갔다가 어느 암자에서 노승을 만났는데, 노승이 말했답니다. ‘왜? 죽으려고? 죽으려고 왔어?’라고 하는 말을 듣고는 소스라쳐 놀랐답니다.”

우창의 말에 춘매가 반응을 보였다.

“우와~! 그 대사님은 도승(道僧)이었던가 보네. 그래서 어떻게 되었지?”

“이 남자는 노승에게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눈물 반 하소연 반으로 이야기를 하고는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노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노승이 법당에서 부처님에게 절이나 1만 번 하고 죽으라고 하더랍니다. 이나 저나 죽을 몸인데 공덕이라도 쌓고 죽으면 다음 생에라도 고통이 없는 몸을 받고 태어날지 누가 아느냐고요. 그 말을 듣고서 그것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는 그 시간부터 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때가 되어서 밥을 먹으라고 하면 배가 고프니까 밥을 얻어먹고는 다시 절을 하면서 자신의 죄업이 지중하니 참회한다고 열심히 기도했답니다.”

춘매가 감탄을 하면서 말했다.

“절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든 수행인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래도 잘 할 수가 있었겠네.”

“그렇게 7일을 절하다가는 그만 혼절을 했답니다. 너무나 힘들고 지쳤던가 봅니다. 그런데 자신이 순간에 전쟁터에 있더랍니다. 그리고는 상대방을 죽이려고 창을 들어서 적의 허벅지를 찔렀는데, 고통에 사로잡혀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의 가슴을 사정없이 찔러댔답니다. 그것은 어쩔 수가 없었겠지요. 마침내 사람이 죽으면서 자신을 원한이 가득 서린 눈으로 바라보는데 차마 그것을 정면으로 볼 수가 없었더랍니다. 그래서 외면을 했는데, 그 장면이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더랍니다. 스님이 흔들어 깨우면서 기도하다가 말고 잠을 자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는 말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까 꿈을 꾼 것이었더랍니다.”

그러자, 염재가 그 말을 듣고는 공감이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우창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 후로 심장을 후벼 파는 듯한 통증과 다리의 고통이 씻은 듯이 나았답니다. 물론 절은 계속했고, 참회의 눈물도 흘렸답니다. 그렇게 해서 기도를 마치고는 노승에게 감사의 절을 올리고는 집으로 돌아가서 잘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꿈 중에서도 그러한 인연에 의해서 고통을 받을 수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도통판의 말씀을 들으면서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요. 다만 그보다는 쉽게 풀릴 수가 있다고 본 것은 스스로 당한 고통일 뿐이고 남을 해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쩌면 쉽게 해결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참 다행히도 이렇게 뿌리를 뽑아버릴 수가 있었으니 천지신명께서 보우하심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우창 선생은 청루에 가보신 적이 있으셨는지요? 오늘 하시는 모습으로 봐서는 생전 처음으로 가보셨지 않을까 싶었습니다만.”

“잘 보셨습니다. 딱히 갈 일이 없었지요. 오늘 도통판의 일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갔을 리가 없었겠지요. 그래도 해결해 보겠다는 마음이 앞섰지요. 그렇지만 그 화려한 분위기에 참으로 어색해서 어쩔 바를 몰랐는데, 그것을 또 옆에서 알아보셨습니까? 하하~!”

“정말 감사드립니다. 실은 저도 그런 곳은 첫걸음이어서 참으로 난처했었습니다. 물론 전생의 기억이 떠오르기 전까지지만 말입니다. 아마도 우창 선생께서는 반드시 세상에 크게 빛이 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저도 오늘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곡부를 떠나기 전에 반드시 그 소중한 공부를 해보고 싶습니다. 부친의 강요에 못 이겨서 관리가 되기는 했습니다만, 마음에는 산새들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당연하지요. 아마도 전생에 속박되어서 살았던 것으로 인해서 더욱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오행의 공부를 하게 되면 자유를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부디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미력(微力)이나마 보탤 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하하~!”

“수일 내로 찾아뵙고 다시 귀중한 말씀을 듣도록 하고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이만 작별하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모두가 인연법입니다. 다행히 우창이 풀어드릴 고리가 되었으니 또한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도 아닐 것입니다. 앞으로 자주 뵙게 될 것이니 우선 귀가하셔서 편히 주무시고 다음에 또 뵙도록 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수고에 대한 보답을 작은 정성이나마 드리고자 합니다. 받아주시고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은자 한 개를 탁자에 내려놓고는 다시 작별인사를 하고 총총히 돌아갔다. 이제 궁금한 것은 춘매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문제가 말끔히 해소된 것처럼 말하는 것이며, 난데없이 청루가 등장하는 것은 또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얼떨떨했다.

“오빠,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던 거야?”

“응, 간단히 해결했어. 그 꿈이 전생에서 넘어온 잔상(殘像)이었다는 것은 누이도 알았잖아?”

“맞아, 그렇겠다는 생각을 했어. 마침 요즘 전생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바람에 그것도 무슨 조짐인가 싶었어.”

“아마도 도통판의 전생이 청루에서 기생을 했었고, 그 생의 삶이 무척이나 고단했던 것이 이번 생까지 꿈속에서조차도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안쓰러웠잖아.”

“맞아, 그렇지만 오빠가 청루에 가볼 생각을 다 했다는 것은 참 놀라울 일이네. 설마 핑곗김에 가보고 싶었던 거야?”

“원, 내가 그런 곳에 어울리기나 해? 나도 어색해서 혼났다니까. 하하하~!”

“왜, 그것도 처음이라 그렇지 자주 가면 익숙하게 드나들 수가 있을 건데 뭘.”

“행여 그런 말은 다시 하지 말아. 다시는 가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 곳을 왜 가느냔 말이지. 하하하~!”

“그건 오빠가 이상하지. 남정네라면 당연히 그런 분위기에서 흥청거려보는 것도 바라는 것이잖아. 호호호~!”

“천인천색이고, 만인만색인 것을 몰라서 하는 말이야? 저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즐기고자 하는 것이 다른데 내게는 청루의 인연은 없었던 거야. 다만 도통판으로 인해서 잠시 구경만 한 셈이야. 그리고 그곳에서도 또 하나의 인연을 맺고 왔지 싶네.”

“무슨 인연을?”

“아, 옆에 앉았던 낭자의 점괘를 봐준 것이 인연이 되었어. 언제 조용한 날 찾아온다니까 다시 보게 될 거야.”

“그래? 어떤 낭자인지 궁금하네. 나보다 더 예쁘겠지?”

“예쁘기로 말한다면야.... 뭐... 그럴 수도 있겠지.”

“또 다른 것으로 말하는 것도 있어?”

“아름답기로 말한다면 당연히 누이가 아름답다고 하려고. 하하~!”

“입에 발린 말은 하지 않아도 돼.”

“그냥 내 느낌을 말하는 거야. 입에 발린 말을 할 사람인지 아직도 모르는 건 아니지?”

“그냥 해본 소리야. 기분이 좋아서. 호호호~!”

“전생의 인연을 만나는 과정도 참으로 다양하고, 전생의 업연을 해소하는 방법도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오늘의 공부도 새로운 경지를 맛본 것이라고 해야 하겠네. 그리고 그 과정에 누이가 함께해서 더 즐겁잖아. 앞으로 도통판이 자주 찾아오게 될 테니까 같이 공부하는 인연으로 잘 가르쳐줘.”

“내가? 내가 어떻게 가르쳐? 아는 것이 뭐가 있다고. 안돼.”

“그건 다음에 해결할 문제이고, 도통판의 전생에 대해서 해결한 것이 신기해서 앞으로도 이러한 문제로 잠을 못 이루고 고통받는 사람을 만난다면 매우 요긴하게 활용을 할 수가 있을 테니 너무 좋단 말이지.”

우창이 약간은 상기된 표정으로 말하자 춘매도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오빠는 천생 보살이네. 무엇을 하나 깨달음은 그것으로 돈벌이가 될 수는 없을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남에게 도움을 줄 생각이 앞서는 것을 보니 바보가 틀림없어. 호호호~!”

“어? 춘매가 제대로 보긴 했네?”

“순진해서 자신은 늘 손해만 보는 사람이잖아. 오빠야말로 틀림없는 바보야. 호호호~!”

“그야 내 팔자려니 해야지. 저마다 좋은 일을 찾아가는 것이 즐거우면 되는 거니까, 누이는 뭐가 즐거워?”

“나? 나야 오빠가 배고프다고 할 적에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그것을 투정하지 않고 맛있게 먹는 것이 즐겁지. 그 외에는 새로운 공부를 하나씩 배워갈 적에도 즐겁고. 그러니까 나는 그릇이 주발(周鉢)도 못 되는 간장 종지야. 나만 생각하고 사는 것을 보면 말이야. 호호~!”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자신을 위해서 마음을 쓰는 것만으로도 이미 보살인 거야.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은 남을 잘 보살필 수도 없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러고 보면 우리는 보살남매인가? 하하하~!”

“고마워~! 오빠가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나는 춤이라도 추고 싶네. 그러면 오빠에게서 칭찬을 들을 적에도 행복한 것으로 하나 더 추가해야겠네. 호호호~!”

우창이 식혜를 마저 마시고서 말했다.

“나도 누이가 하나씩 깨달아 가는 것이 즐거우니까 큰 보람이라고 해야 하겠네. 더구나 진심 어린 마음을 씀에 대해서는 뭐라고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할 정도라는 것도 말해 주고 싶네. 하하~!”

“알았어. 오빠의 말은 다 믿을 거야. 그러면 늦었으니까 푹 자고 또 밝은 날에 봐.”

춘매가 돌아가고서도 우창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오늘의 일은 갑작스레 생각하고 실행한 것이었지만 다행히 결과가 좋았으니 보람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홍련의 우수에 잠긴 표정이 떠올랐다. 이렇게 인연은 또다시 인연의 고리를 만들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겠거니 싶기도 했다. 전생의 인연은 어떻게 해서라도 연결이 되어서 그 흔적을 드러낸다는 것도 깨달았다. 전생이 있다는 것은 후생(後生)도 있겠다는 논리도 생각해 봤다. 이렇게 살아가는 결과는 다음 생에 또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게 될 것인지도 궁금했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스스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겠거니 싶은 생각을 하면서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멀리서 부엉이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