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반달(27) 외돌개

작성일
2021-05-03 05:56
조회
537

제주반달(27) [6일째 : 3월 13일(토)/ 2화]


아침햇살을 받은 외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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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691번 버스기 지나가는데 그것도 나그네에겐 구경거리이다. 제주도는 환경에 투자를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전기버스가 많이 다니는 것을 보여서이다. 작은 나라의 왕노릇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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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 : 난 어제 가봐서, 안 가고 차에 있을테니까 다녀와요.
낭월 : 그래? 어제의 풍경이 아닐텐데....?
연지 : 바위가 하루 잤다고 돌아 앉았겠어? 
낭월 : 그렇긴 하지. 그럼 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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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힐끗 봤던 황우지동굴도 아침햇살에 사진이 달라질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걸음을 옮겼다. 낮에는 어느 쪽에서 봐도 비슷하지만 아침과 저녁에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 그림자와 빛이다. 사진은 빛놀이니까 이렇게 화창한 아침 햇살을 그냥 두면 일광보살(日光菩薩)께 빚지는 일이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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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겠지... 군함도가 떠오른다. 나가사키의 이나사야마(稻佐山) 전망대에서 저 멀리 바라본 군함도였지. 일본에게는 자랑이고, 우리에겐 슬픔인 군함도. 여하튼 일본군의 땅을 파는 재주는 알아줘야 할 모양이다. 탄을 캐든 진지를 만들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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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황우지의 동굴들이구나. 어제 얼핏 봤을 적에는 대여섯개인가 싶었는데 아침에 보니까 수두룩하구나. 세어보면 열두 동굴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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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현장을 겪지 않았으니 어찌 이해가 된다고 하랴. 그냥 짐작만 할 따름이다. 짐작과 이해의 사이에는 엄청 큰 거리가 있겠지만 이렇게라도 공감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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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일본군이 파놓은 진지가 아니라 제주도로 끌려왔던 조선사람들이 굶주려가면서 죽음과 맞바꾼 결과물일테지.... 내부에는 서로 통해져 있다지만 가볼 길은 막혀있어서 상상만 해 볼 따름이다. 그건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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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탕의 아침은 어떨지 궁금해서 85계단을 내려가 봤다. 그런데 어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밀물시간이었구나. 선녀탕도 밀물에 잠겨서 그 형태가 물에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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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들이 재미있게 생겨서 또 궁금했다. 다시 봐도 소천지보다 훨씬 멋있구먼. 둘 중에 하나만 봐야 한다면 당연히 선녀탕이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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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는 빛이 있어야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아무도 없는 이른 시간에 혼자서 느긋하게 둘러보는 선녀탕이야말로 일찍 와야 할 이유가 충분한 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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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짦은 여정이었다면 저녁에 와 본 곳을 아침에 다시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될 게다. 이렇게도 여유가 만만하다는 것은 다음에는 보름이 아니라 한 달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태풍의 언덕이 있는 암벽도 소상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바다도 잔잔할 때는 작은 배라도 하나 있으면 더 좋겠다는 아쉬움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요트를? 요트는 무슨, 작은 덴마라도 하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좋지. 물안경은 필요하겠구먼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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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너무 강해서 선녀탕의 암벽을 보려니까 새연교 쪽의 하늘은 아예 하얗게 되어버린다. 그래도 보고자 하는 곳에만 맞추면 되니까. 아기자기한 선녀탕의 조석(朝夕)을 봤으니 그만하면 다 봤다고 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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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둘려봤다고 이미 지름길이 보인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자 난초의 무리가 아침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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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이 생긴 것으로 봐서는 한란(寒蘭)인가 싶지만 춘란(春蘭)도 긴 잎이 있어서 이것만으로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냥 난초구나 하면 된다. 관리를 잘 하고 난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손을 대지 않지만, 옛날에 야생난초의 가격이 하늘로 치솟았을 시절에는 배낭을 짊어지고 난초를 캐러 다니던 사람들도 많았더란다. 지금은 찾기도 어렵지만, 막상 찾아봐도 상품성이나 감상적인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서는 거의 사라졌겠지만 이렇게 있는 난초도 꽃대가 올라오고 그것이 소심(素心)에 색이라도 입혀져 있는 것을 본다면 갈등이 생길게다. ㅎㅎ

안면도와 제주도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모두 야생란의 자생지라는 것이겠다. 어려서 뛰놀다가 심심하면 산기슭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난초포기에서 자라고 있는 아가다리를 뽑아먹으면서 놀았었지. 달달한 즙이 찔레보다 맛이 좋았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가다리는 일본말로 난초꽃대라는 뜻이겠거니... 그렇게 여기고 찾아보니 일본어에는 그런 뜻이 없단다. 그렇다면 우리말? 아가는 아기이고, 다리는 그냥 그 다리? 그래서 아기의 다리처럼 통통한 것이라고? 어? 그것도 말이 되네? 지금으로는 그것을 알아 볼 방법이 없으니 또 나중의 숙제로 미뤄놔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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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춘란은 제주도에서 살아야지. 동물은 떠돌아다녀도 되지만 식물은 태어난 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아무리 사람이 영양제와 사랑을 준다고 한들 자연에서 바람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면서 사느니만 하겠느냐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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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해금강이라고? 혹 무엇인가를 빠트렸나 싶어서 깜짝 놀랐다. 거리를 따져 보니까 어제 놀았던 태풍의 언덕이로구나. 그러니까 태풍의 언덕에서 외돌개쪽을 바라보는 풍광이 남주해금강이라는 말이지? 해금강(海金剛)은 거제도에 있고, 외금강(外金剛)은 고성에 있으나 북한이라서 갈 수가 없고, 소금강(小金剛)은 오대산에 있으니 이것이면 금강이 전부 갖춰졌으려니 했는데 이번에는 남주해금강(南州海金剛)이란다. 그냥 남금강(南金剛)이라고 하기에는 5%가 부족해서 남주해금강이라고 했나 싶기도 하다. 제주말로는 '동너븐덕'이라고 하는 모양이구나. 그건 오히려 소박하니 좋다. 바위가 넓어서 마당바위이니 그래도 되지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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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돌개의 안내판도 다시 살펴본다. 돌기둥이 홀로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구나. 그래서 한자로는 독립암(獨立岩)이군. 높이는 20여 미터에 조면안산암(粗面安山巖)이라니, 조면이야 겉이 거칠다는 뜻으로 이해가 되는데 안산암은 또 처음 본다. 안산암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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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백과에 자세히 그림을 그려서 설명했구나. 염기성과 산성의 중간에 중성암이 있고, 안산암은 그 부분에 해당한다는 말이로구나. 안산(安山)에 대한 의미는 모를 일이다. 현무암은 알겠고, 유문암은 또 뭐지? 안산암은 지금 봤으니까 알게 되었다고 치더라도 암석은 참 복잡하기도 하지. 안산암에 대해서 좀 더 알아 보겠다고 자료를 찾다가 그냥 덮었다. 때로는 조금만 아는 것이 편할 때도 있는 법이니깐. 아, 정리는 해야지.

'외돌개는 안산암인데 면이 거칠다'

최영장군이라고? 원나라 목호가 범섬으로 달아났었구나.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다. 크고 넓은 바위는 노적가리로 만들어서 적을 속이고, 길쭉한 바위는 장군으로 만들어서 적을 속인다. 적이 바보들이란 말인가? 싶기도 하고. 그냥 그렇다니까 그런 줄 알고 지나가면 되지 뭘 따지느냐는 생각도 든다. 장군바위라.... 원나라 사람들은 원근법도 몰랐더란 말인가? 여하튼 전설은 전설로 남겨두면 된다니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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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쟌~!"

어제 먼발치로나마 봤다고 했으면 외돌개가 안산암인 줄도 몰랐을테고 사진에는 검은 빛의 외돌개만 남겼을테지. 그런데 오늘 아침에 해맑은 햇살에 반짝이는 조면안산암의 외돌개를 보니까 비로소 외돌개의 속살을 봇듯 하다.

이름이 왜 외돌개지? 누군가 써놓은 것을 보니까 '외롭게 서 있는 바위'라서 외돌개라는데... 그건 선뜻 공감이 되지 않는군. 외롭긴 뭐가 외로워? 이렇게 친구들이 주변에 가득한데? 그 사람이 외로웠던게지. 오히려 중국식으로 독립암이 더 와 닿는 이름이구먼. 차라리 외돌개(外突個)는 워뗘? '밖으로 돌출된 바위 하나'라는 뜻 말이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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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까이 보려고 또 움직인다.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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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물빛을 살리려니까 하늘이 멋없이 되어서 그라데이션 효과로 하늘의 넘치는 빛을 살짝 낮췄다. 지나치게 어두우면 살짝 밝게 하면 되고, 지나치게 밝으면 살짝 어둡게 하면 된다. 라이트룸이 하는 일이 그것이니까 말이지. 예전에 사진사부님께서 말씀하셨지.

"내가 봤던 것을 찾아내는 것이 포토삽이다."

남이사 뭐라고 하거나 신경쓰지 말라는 뜻이었다. 맞아. 그래서 사진을 찍어다 컴퓨터에 담아 놓고서 보정할 적에는 가장 보기 좋은 장면을 찾는 것이 일이다. 때론 덜 어두워서 더 어둡게 해야 할 경우도 있다. 주로 폰으로 찍은 사진들이 그렇다. 전자동의 부작용이라고나 할까? 내가 본 것보다 더 밝게 담아야 한다고 우기는 폰의 고집도 참 대단하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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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카메라는 이렇게 봤다고 우기고 있다는 말이다. 소위 말하는 원본이다. 그런데 내가 본 것은 이것이 아니거든. 찬란하게 부서지는 햇살을 찾아야만 한다는 이야기지. 그래서 그것을 찾아줬을 뿐이지. 사진을 찍는 것은 카메라 놀이가 되고, 사진을 찾는 라이트룸은 사진놀이가 된다. 그래서 카메라 놀이에 미치게 되면 보정하는 것에 대해서 진저리를 치지만 옛날에도 암실에서 사진놀이를 했던 작가들의 안비밀은 모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한 셈이다. 사진놀이의 절친인 라이트룸이 항상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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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돌개의 증명사진도 찍어줘야지. 45도의 얼짱각도가 제대로군. 왠지 무릎을 꿇고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제주도의 여인을 보는 듯하다. 머리카락도 풍성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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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런데 낯이 설지 않은 이유는 뭘까? 어디에서 봤더라..... (뒤적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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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건곤주(乾坤柱)였지. 2019년 5월에 장가계에서 만났던 기둥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정말 우물쭈물하다가는 하마트면 기약없는 장가계가 될뻔 했는데 기적적으로 2019년에 길을 나섰던 것도 지나고 보니 천지신명께서 도우셨다는 것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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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곤주는 바위틈에 있고, 외돌개는 바다속에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로구나. 그래서 자리를 잘 잡아야 하는 것이다. 건곤주는 수많은 바위들 중에 하니일 뿐이지만 외돌개는 이렇게 홀로 우뚝하게 있으니까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겠느냔 말이지. 그나저나 장가계를 한 번 더 가야 천자산을 볼텐데 그 날이 내년에는 올랑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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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을 봐서는 아마도 저 석벽과 원래는 하나였을 외돌개였지 싶다. 그러다가 150만년의 세월을 바다의 파도와 함께 지내다가 보니 홀로 살아남은 외돌개가 되었던 모양이다.

혼자서 조용한 마음으로 찬찬히 둘러봤으니까 이제는 다 본 것으로 쳐도 되겠다. 그 말은 미련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음에 유람선을 타고서 바다에서 볼 일이 있으면 그것은 좋겠군. 그러니까 오늘의 외돌개는 이렇게 둘러본 것으로 충분하다.

갑자기 시장기가 느껴진다. 다 봤으면 몸도 좀 생각해 달라는 뜻인 모양이다. 그렇지 그대가 아니면 이렇게 멋진 풍광인들 접할 수가 없잖은가. 고맙고 말고지. 어서 가자. 오늘도 새벽부터 수고가 많았네 친구~!

(여행은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