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반달(26) 한라산조망

작성일
2021-05-02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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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제주반달(26) [6일째 : 3월 13일(토)/ 1화]


한라산을 조망()하는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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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잠이 깨어 날씨를 살펴보니 오늘은 매우 맑음이다. 그렇다면 어제 아침에 봐둔 곳으로 가서 한라산의 풍경을 담아야지. 어제는 구름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고, 비까지 와서 망했는데 오늘은 하늘도 돕는 모양이다. 곤하게 자는 연지님을 살살 흔들었다.

낭월 : 연지야.... 연지야....
연지 : 일어났어? 왜? 어디 가려고?
낭월 : 3분 거리인데 데려다 주고 와서 더 자...
연지 : 그래?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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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어제 아침에 차를 타고 귀가하면서 삼매봉 앞에서 한라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자리를 봐 뒀다. 더구나 길가에서 봐도 한라산이 잘 보여서 내일 날이 도와주면 전을 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자리를 찾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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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전답사를 하면 겪지 않아도 될 고생을 무턱대고 지도만 믿고 나섰다가 가끔은 헛다리를 짚기도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그렇게 시간이 만포장으로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알면서도 잘 되지 않는 것이지 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도 좋다. 이렇게 어둠으로부터 시작되는 타임랩스도 좋으니까. 가로등 불빛을 의지해서 적당한 자리라고 생각되는 곳에다 전을 폈다. 전이래야 삼각대 펴고 카메라 설치하는 것이 전부이지만서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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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대에 타임랩스를 설정하고 카메라를 얹어놓고 나면 바빴던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주변을 둘려보면서 과연 이 자리가 최선인지를 생각할 겨를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은 이동을 해도 될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것도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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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차에서 빛이 나오는 것도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 타임랩스에는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 있으면 그것도 큰 부조가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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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리번거리다가 어제는 보지 못했던 호텔을 발견하게 되었다. 「선샤인」이란다. 아니, 어제 그 할배로 변신해서 골탕을 먹게 만들었던 그 악마가 말한 호텔이라는 곳이 여기였나? 순간적으로 뭔지 모를 뜨거운 기운이 가슴에서 슝~하고 머리를 때렸다. 그러니까 그 할배가 거짓말을 한 것은 거리였고, 호텔은 여기에 있었구나. 어제는 보지 못한 것이 오늘 보인다면 이것도 인연이라고 봐야지. 그렇지만 남의 영업장을 어떻게 들어간단 말이고. 다음에 와서 방이라도 하나 잡아놓고서 옥상에 올라간다면 또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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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호텔 앞의 밭에다가 삼각대를 설치했다. 그런데 자꾸만 뒤를 돌아다 보게 되는 것은 내면에서 꿈틀대고 있는 탐욕일게다. 자꾸만 어둠 속에서 높다란 건물의 옥상이 손짓을 하는 것만 같아서였다. 그래서 또 생각했다.

'그러니까, 어제 그 악마가 아닌 문수보살의 화신께서 호텔의 옥상에서 보면 전망이 기가 막히다고 했다는 말은 호텔에서 투숙을 하지 않더라도 올라갈 방법이 있다는 말이 아니겠어? 그러니까 일단 카메라 한 대는 여기에 놔두고서 들어가서 부딪쳐보고 안 되면 말지 뭘. 미리부터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할 필요는 없잖여? 뭐 그런다고 잡아가겠어? 욕을 하겠어? 하면 또 어때? 어떻긴 재수없지. 그래도 그냥 이러고 바라만 보는 것은 또 무슨 이익이 있겠어? 이 자리에 만족하고 말껴? 그러니깐 말이야.... 그래서 지금 궁리하고 있잖여. 궁리는 무슨 궁리 그냥 가서 프론터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해 보면 되는 거지 계산하고 말고 할 일도 아니구먼. 어제 그 할배가 말했잖여. 옥상에 가서 전망을 보고 사진도 찍으라고 말이야. 그게 뭐겠어? 가능하다는 조짐이잖아? 어제는 왔어도 구름때문에 볼 것이 없었을텐데 오늘은 하늘도 화창하니 이것이야말로 오늘 일어날 일을 어제 미리 예고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어? 꼭 점을 쳐 봐야 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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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뭐라고 하지?

'수고하십니다. 호텔 옥상에서 사진을 좀 찍어도 되겠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사진가입니다. 옥상에서 한라산을 좀 찍고 싶은데 되겠습니까?'
'저... 죄송한데 잠시 옥상에 좀 올라가면 안 되겠습니까? 경치가 좋아서요.'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좋을까? 약간은 비굴한 듯이 헤헤~거리면서 말하는 것이 좋을까? 그래도 까짓 사진 못 찍으면 말지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잖여? 맞아. 그건 그래. 문을 밀면서도 뭐라고 해야 할지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발걸음은 어느 사이에 넓고 넓은(느낌으로만) 로비를 걸어서 직원이 앉아있다가 벌떡 일어나는 앞까지 갔다. 미안쿠로 왜 벌떡 일어나는 겨. 그냥 앉아있으면 덜 미안할텐데....

직원 : (뭘 도와드릴까요? 하는 느낌으로 바라본다.) ....
낭월 : 실례하겠습니다. 
직원 : 안녕하세요~!
낭월 : 실은 옥상에서 한라산을 좀 찍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직원 : 아, 그러십니까? 투숙객은 아니시지요?
낭월 : 아닙니다. (얌마! 투숙객이면 이러고 있겠냐? 바보도 아니고...)
직원 : (머뭇머뭇.....)
낭월 : 아, 곤란하면 안 올라가겠습니다.
직원 : 숙소쪽은 찍지 마시고 바로 올라가셔야 합니다.
낭월 : 그야 여부가 있습니까? 당연히 그렇게 하겠습니다.
직원 : 올라가시지요.
낭월 : 그런데 어디로?
직원 : 이쪽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낭월 : 예, 고맙습니다. ('복 받으실 껴~!'라고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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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남의 호텔 옥상에서 다시 전을 펼쳤다. 아래에 세워놓은 알사(R4)가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괜히 남의 집에 들랑거리는 것도 미안스러워서 옥상에서는 알삼(R3)만으로 놀아볼 요량을 했다. 그렇거나 말거나 잠시 카메라를 가져 온다고 했어도 되었을텐데 이놈의 소심증은 언제나 고쳐지려는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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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랩스를 찍는데는 알삼도 괜찮다. 어차피 화면을 전부 사용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는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본다. 저 멀리 한라산의 정상이 또렷하게 보이면서 오른쪽에는 구름이 한 무리 피어오르고 있는 것도 보였다. 이제는 주문을 외울 차례로군.

"옴 오른쪽구름이 서서히 정상으로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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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세워놓고 폰이랑 놀아야 하겠군. 안개가 살짝 중턱을 감싸는 것을 보면서 계속 그렇게 피어오르라고 염력을 보냈다. 그렇지만 염력이 한라산의 중턱에 있는 옅은 안개까지 도달하기에는 거리가 쪼매~ 멀지 싶기는 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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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따신 방에서 곤하게 주무시나.... 전망도 좋은 이 새벽의 상쾌함을 즐기러 나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한 중년의 여성이 나와서 휙 둘러보고는 얼른 들어가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고요~ 그야말로 오늘 새벽에는 선샤인 호텔의 옥상을 독으로 빌린 셈이로구나. 다른 사진가도 없으니 걸리는 시야의 장애물도 없구나. 누군가도 낭월처럼 이러한 곳에서 한라산을 찍고 싶었을 수도 있겠지만 문수보살의 안내를 받지 못했으면 생각하기도 어려웠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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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옛날 이야기가 떠오른다. 누군지는 잊어버렸는데 한 미녀가 전쟁 중에 쳐들어온 병졸들에게 붙잡혀서 끌려가자 기절을 할 정도로 놀라서 울었는데, 그들이 미모를 보고는 왕에게 데리고 갔고, 왕이 흔쾌히 왕비로 삼겠다고 하면서 부드러운 비단 옷에 맛있는 요리를 먹게 되자 붙잡혀서 울었던 것을 부끄러워했더라는데 내 꼴이 딱 그짝이로군. 어제는 할배가 괜히 거들어서 헛되이 고생만 했다고 푸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오늘 이 자리에 떡하니 서서 활짝 열린 한라산을 바라보니 괜히 악마의 화신이니 뭐니 했던 것이 쪼매 미안해진단 말이지 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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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하늘이 물들어 온다. 이런 시간이야말로 하루 중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기분이 상쾌해지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냥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따름이다. 까짓 구름이야 좀 있으면 또 워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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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도 한 번 바라보고, 바다도 한 번 바라보면서 옥상놀이를 즐긴다. 아쉬운 점이야 어찌 없으랴. 한라산쪽의 하늘이 너무 맑다는 것이 좀 아쉽다는 것이지. 그래도 괜찮다. 이 정도의 한라산을 바라볼 수가 있다는 것도 여간해서 얻기 어려운 산신령님의 배려일테니 말이다. 그저 감지덕지(感之德之)할 따름이다.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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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로 화면을 최대로 했던 폰은 16:9로 넓혔다. 아무래도 새벽의 풍경은 좌우로 퍼지는 것이 좋겠지 싶어서였다. 폰의 성능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분위기를 전하기로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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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는 고근산()이 우람하게 자리하고 있구나. 고근산에서 서귀포 야경을 보는 것도 좋다고는 했는데 언제 시간이 되면 올라가보는 것으로 미뤄둔다. 한라산과 고근산 중간에 있는 오름은 지도상으로는 시오름일 것으로 짐작만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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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솟아오른다. 바다가 금빛으로 물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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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에도 햇살이 번져오른다. 직선거리로 얼마나 되려나? 가까워보여도 실은 무척이나 먼 거리일텐데.....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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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거리는 13km로구나. 여객기의 높이가 보통 10km던데 그보다 더 멀군. 그야 수직높이와 수평높이의 느낌은 사뭇 다르니까 직접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꽤 멀리 있는 한라산이 이렇게 선명하게 보이는 것에는 그제밤에 내린 비가 큰 공을 세웠을 것으로 짐작 된다. 미세먼지도 없다는 말일테니, 그래서 더욱 상쾌한 새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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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간에 혼자서 한가롭게 노닌다는 것이 신선이라도 되었나 싶다. 어제 새벽의 일들은 어느 사이에 화려한 무용담으로 치장되고 있었다. 오늘이 그냥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등등의 이유들 말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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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랩스는 이 정도면 되었지 싶다. 하늘의 구름이 부조하지 않아서 더 찍어봐야 볼만한 그림이 나오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타임랩스는 종료하고 대신에 파노라마를 찍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근산부터 서귀포 앞바다까지 담으면 그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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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라마 사진은 가로로 8장을 찍었다. 하논에서는 세로사진으로도 찍었었는데 오늘은 하늘이 별로 볼 것이 없어서 그냥 가로사진으로만 담기로 했다. 그리고 라이트룸에서 사진병합으로 파노라마를 만들었다.

원본대로

이렇다니까, 수평에 신경을 제대로 쓰지 않으면 이렇게 제멋대로의 사진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집중하지 않으면 금새 잊어버리곤 한다. 가장자리를 채우기로 하면 대략 얼버무려 주기는 한다.

가장자리

언뜻 봐서는 그럴싸 하지만.... 오른쪽의 구름에서 그만 탄로가 나고 만다. 같은 구름이 이중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구름을 없애면 또 그것대로 어색할테지.... 그나마 대충 보면 그런가보다 할 것도 같다. 자동자르기를 하면 하얗게 된 부분은 모두 잘라내고서 사각으로 만들어 주지만....

자동자르기

이렇게 한라산의 봉우리가 같이 날아가버린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니까 원판을 잘 만들어 놔야 라이트룸에서도 원하는 그림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을 항상 알면서도 또 막상 현장에서는 뭐가 급한지 이러한 짓을 반복하고 있으니 참 한심하기도 하지.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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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거나 말거나 봉우리를 날려버릴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해서 파노라마 한 장을 만들 수밖에 없다. 구름이야 그렇게 겹칠 수도 있다고 우기는 것으로. ㅋㅋㅋ

여하튼 가로길이를 8,000픽셀로 저장했으니 클릭해서 한라산의 전경을 감상하시는 것은 벗님의 자유인 것으로 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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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랩스를 끝냈으니 카메라가 한 대 생겼다. 그래서 망원놀이에 들어간다. 한라산 봉과 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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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24-105mm로 최대한 당겨놓고 본다. 이것이 105mm이다. 워낙 품이 넓어서 그렇게 당겨도 넓은 장면이 담긴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감동을 할 수가 없다. 낭월에게는 100-400mm가 있기 때문이다. 렌즈를 바꾸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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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mm로구나. 특별히 무슨 의미가 있어서 232밀리로 찍은 것은 아니다. 그냥 봉우리 주변을 잘라내고 보니까 그렇게 담겼을 따름이지. 봉우리 앞의 두두룩한 모습이 예쁘구나. 계곡도 있었군. 절벽 앞의 하얀 눈은 여전히 그대로 녹지 않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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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mm가 되니까 맨 위의 봉우리가 담긴다. 정상의 바위들 실루엣도 보이고... 이런 장면에서 사람이 그 위에 서 있으면 기가 막힐텐데 이 시간에 정상에서 사람을 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 물론 사람이 있다고 해도 제대로 구분이 될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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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있는 곳은 햇살이 들지 않아서 좀 어둡구나. 그래서 선명하지는 않다. 여기는 시간이 더 흘러야 볕이 들어오지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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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에 동쪽면에 쌓인 눈은 선명하게 자태가 들어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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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래쪽으로 실루엣으로 보이는 오름은 아마도 입석오름 일 수도 있겠지 싶다. 그 부근으로는 오름이 많아서 어느 것인지는 분간하기 어렵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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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눈이 잇는 곳에 햇살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선샤인 호텔의 옥상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이만하면 충분히 놀았다. 비로소 아래에 두고 온 카메라의 안부가 궁금해 진다. 누구 말마따나 돈이 얼만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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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도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자칫했으면 이렇게 앞이 답답한 채로 한라산을 담고 말 뻔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야말로 하늘과 땅차이라고 해야 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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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샤인 호텔~!
낭월이 빚졌네~!
언젠가 갚아 주기로 하지. 고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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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을 나와서야 집으로 전화를 했다.

"다 놀았다. 나온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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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리에 꾸며진 꽃동산은 생일날 받은 케잌같군.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니 영롱하기조차 하다.
오늘 새벽은 또 이렇게 잘 놀았음을.

(여행은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