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반달(16) 해녀박물관

작성일
2021-04-23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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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반달(16) [3일째 : 3월 10일/ 5화]


해녀 공부는 해녀박물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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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방진에서 유채꽃과 더불어 성곽을 둘러본 다음에는 다시 북으로 향해서 출발했다. 다음의 목적지는 해녀박물관이다.

해녀박물관

별방진에서는 2.5km이다. 해안을 따라서 직진만 하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하도리의 해녀체험마을을 보고 난 다음이라서 해녀에 대해서 더 이해하고 싶었는데 박물관이 있으니 이보다 더 다행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름의 여행길이 갖고 있는 여유로움은 이런 일정에서도 그대로 배어나온다. 3박3일, 혹은 4박5일의 일정에서는 이렇게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닐 겨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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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박물관에 차를 대고서 처음 만나는 안내판부터 살펴보는데 해녀 전수관에서는 여인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만약에 코로나 시국이 아니었더라면 공연도 볼 수가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심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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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박물관은 2006년에 열었구나. 어딘가로 여행을 가면 반드시 봐야 할 곳이 박물관인데 시간에 쫒기면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는 여정이기도 하다. 일행들이 답답한 건물 안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에 대해서 탐탁하게 생각지 않을 가능성이 많아서 스스로 알아서 시간을 검열하는 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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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적이라도 개방을 하니 다행이다. 그리고 방문자도 오늘은 한가한 모양이다. 우리 일행만 보여서이다. 사람이 많으면 그런 것도 신경이 쓰이기 마련인데, 예상했던 대로 짧은 일정으로 제주도 나들이를 하는 경우에 여기까지 찾는 것은 여간 정성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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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쓴 해녀상이 나그네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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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용하게 우리 식구들만 입장한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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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는 1,100원이었던 모양이다. 요금표를 못 봤구나. 바빴었나 보군. ㅎㅎ

 

①해녀들의 살림살이


박물관은 잘 정리가 되어 있어서 단계별로 살펴보면서 이해하기에 편하도록 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만나는 곳은 해녀들의 일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구역별로 붙여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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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둘러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서 사진도 한 장 한 장 차분하게 담았다. 이러한 곳에서는 물품 하나마다 사연이 한 바가지씩이겠지만 이렇게 스쳐지나가면서라도 잘 봐두려면 사진으로 기억을 소환하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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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숙 해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구나. 구룡포, 백령도, 남해를 누비고 다녔다니 해녀는 제주도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겠다. 여기에서도 4.3이야기는 빠지지 않는구나. 어쩌면 제주도에서 태어난 여성은 호흡기관이 육지의 사람들보다 다르게 생겼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갈라파고스의 동물들처럼 그 환경에 적응하노라면 신체적으로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는 자연진화적인 이치도 있었을테니까 말이다. 살아남으려면 물속에서 오래 버텨야 할테니까 당연할 수 있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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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들이 사용하던 용품들을 기증받거나 구입해서 마련한 공간인 모양이다. 손때가 묻은 것이 그대로 느껴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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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에 놓은 밥과 반찬들이야 제주도스럽다는 생각을 할 것도 없지 싶다. 그 시대의 한국은 어디에서라도 서민들의 삶을 본다면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밥상이었을테니까 말이다. 낭월의 어릴 적의 밥상도 대략 이랬었지 싶다. 학교에 다녀와서 물때가 맞거나 일요일에는 바구리를 들고 갯바닥으로 뛰었던 시절이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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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환경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챙겨놨구나. 이런 것도 삶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흔적들이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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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럽게 만든 미니어쳐를 보면서 실감나는 풍경을 상상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대대손손으로 그 자리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일하고 또 대를 물려줬을 풍경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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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료도 최대한 활용해서 이해를 돕도록 한 몫을 했다. 누군가 말했다.' 아무렇게 찍은 사진도 100년이 지나면 보물이 된다'고. 과연 그렇겠다는 생각을 이렇게 자료를 보면서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틈이 나면 부지런히 찍어놔야 한다. 예술사진이든 생활사진이든 뭐든 다 좋다. 특히 여행가의 사진은 더욱 그렇다. 그 날 그 순간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기기 때문이다. 여행지의 타임랩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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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리는 없겠지만, 행여라도 박물관이 땅속으로 꺼지기라도 하고 당시의 자료들을 찾는다는 방송이라도 보게 된다면 협조를 할 사진 한 장이 될런지도 모를 일이기는 하다. 사진을 담을 적에는 시간이 흐른 다음에 이러한 풍경을 다시는 만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보이는 대로 최대한 담아보고 싶은 것은 여행하는 낭월의 욕심이기도 하다. 더구나 그렇게 담은 자료가 누군가에게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으로 인해서 가능하면 최대한 이해를 돕는 방향으로 담아야 하겠다는 나름대로의 사명감(?)도 약간은 있지 싶기는 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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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억척스럽게 환경에 적응했었구나. 해녀가 여행지의 구경꺼리에서 삶을 지탱한 중심으로 인식이 변화하는 것은 이렇게 흔적들을 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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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도 사용했을 법한 항아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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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부터 사용했던 뒤웅박 태왁도 있었구나. 망사리도 그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구나. 지금은 스티로폼 태왁에 나일론 줄로 견고하게 엮은 망사리가 쓰이고 있으니 세월에 따라서 용품의 재료는 변화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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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의 한 해는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설명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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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에서는 정월 보름이 되면 원뚝제를 지냈는데, 원뚝은 제방을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서는 뱃고사를 지냈구나. 원뚝제를 보름날 지내는 것은 보름사리에 둑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달라는 원뚝신에게 드리는 정성이었을 게다. 특히 무서운 것은 보름사리보다 백중사리이다. 간척지의 들판에 벼들이 한창 익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들리는 소리.

'절골에 원뚝 터졌다~!'

적어도 이런 소리를 1년에 한 번은 들으면서 자랐지 싶다. 지금이야 연장들이 좋아서 제방도 튼튼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못해서 해수가 범람을 하면 둑이 터질까봐 조마조마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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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신인 영등할매가 내려온다는 영등달은 제주에서 지드림을 하는 달이었구나. 바다에서 바람은 파도를 부르고 파도는 풍랑으로 이어지니 그냥 가만히 두고 봐서 될 일이 아님을 잘 알았기에 이러한 풍습이 마련되었겠다. 용왕님의 보우하심이 아니면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가 없으니 이렇게 틈이 날 적에 지극정성을 드려놓는 풍신(風神)보험을 쌓아놔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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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면 양력은 대략 4월이겠지. 미역이 해안에 자라서 너울거릴 적에 채취하는 것은 그야말로 연례행사였겠거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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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긴다고 했는데도 4월이 담기지 않았구나. 원래 없었던가? 그렇진 않았을텐데... 이렇게 열심히 해도 뭔가는 빠지기 마련이라니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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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돔은 유월에 많이 잡히는 모양이구나. 그러니까 여름에 잡히는 생선이라는 말이로군. 자리어의 한자가 재미있네. 작조어(雀鯛魚)란다. 참새만한 도미물고기라는 뜻인가? 그럴싸 하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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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사리에는 바다의 깊은곳까지도 고기를 잡을 수가 있도록 물이 많이 빠지니 그것도 행사가 되었던 모양이다. 야밤에 횃불을 들고 박하지며 꽃게를 주워담을 수가 있었던 기억을 다시 소환한다. 안면도에서도 백중사리에는 양말만 벗으면 한바위로 건너갈 수가 있을 정도로 바닥이 완전히 드러났었는데 주의해야 할 것은 밀물이 들이닥치기 전에 빠져나오지 않으면 사고가 발생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뿐만이 아니라 모든 어촌에서는 이와 유사한 풍경이 전개되었겠다는 것도 미뤄서 짐작을 할 수가 있겠다.

감바닥

안면도에서 육지를 걸어서 건널 수가 있는 유일한 곳이 창기리 먼재골에서 남면 당암리의 한바위였다. 연육교가 놓이기 전에는 가끔 이용했던 길이었는데 다리가 놓이고 나서는 아무도 이용하지 않았지 싶다. 그렇게 드러난 바닥을 감바닥이라고 했고, 건너가는 것을 '감 건넌다'고 했다. 여기에서 '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물을 건넌다는 의미에서 팔괘의 감괘를 말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강바닥이라고 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창고에 저장되어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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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가득하면 큰 강처럼 되지만 사리때 하루 이틀은 맨발로 건널 수가 있었다는 것은 아마도 안면도의 전설로 남게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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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을 모시기 위해서 벌초하는 것이야 같다고 하겠고, 윗대의 묘소까지 하는 것은 육지에서는 10월에 하기 마련인데. 제주도에서는 8월에 모두 해결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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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돔은 가을에 잡히는 어종인 모양이구나. 이름은 들어봤는데 행사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가을을 대표할 어종이겠거니 싶기도 하다.  중국어 이름은 방두어(方頭魚)라는 군. 그렇다면 머리가 각이 졌다는 뜻인가? 어디....

옥돔[인터넷자료: 옥돔]


형태가 일반적이지는 않게 생겼구나. 낚시를 물고 누워있는 것을 보니 바다에서 놀다가 바로 올라온 녀석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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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과 11월의 자료도 담지 못했네. 겨울의 모진 강풍이 불어대는 것을 방비하기 위해서 지붕을 손질하는 것도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행사로 보면 되겠다. 육지의 농가에서는 볏짚으로 이영을 엮어서 올렸는데 제주도에는 벼가 없으니 새를 이용해서 지붕을 이었던 모양이구나. 새나 띠풀이라고 하는 것이 혹 억새와 같은 것인가 싶었는데 검색을 해 보니까 삐삐라고 하는구나. 맞아 그것이 띠라고 했지 싶다. 이삭이 올라와서 패기 전에 뽑아서 까먹으면서 놀았던 풀이다. 안면도에서는 원뚝에 무진장으로 많았는데 제주도에서 만큼 크게 자라지는 않았지 싶은데 이것으로 지붕을 해 인다고 하니까 조금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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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성이라고 해서 의상이 별다를 것은 없겠거니 싶기는 한데, 장소가 해녀박물관이니까 해녀들이 입었던 옷으로 이해하면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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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로구나.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렇게 입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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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옷은 특징이 아닌가 싶다. 땡감을 염료로 삼아서 옷에 물을 들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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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 무명이지 싶다. 무명 옷에 감물을 들여서 갈옷을 만들어 입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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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주로 먹던 음식이 무엇인지도 전시를 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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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구이, 전복죽, 해삼토렴. 모두 제주도스러운 음식들이로구나. 소라를 제주도에서는 구젱기라고 하는 구나. 구젱기라....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소라와 연결이 되는 느낌은 아니로구나. 소라는 구젱기라고 하고 작은 고둥은 보말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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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오분자기, 톳, 깅이 콩 볶음도 있구나. 형태를 봐서는 작은 참게를 콩이랑 볶아서 먹었던 모양이네. 이름이 '깅이'라니 새롭게 들린다. 안면도 사람들은 게를 '거이'라고 하고, 개를 '가이'라고 하는데 전형적인 서산 태안 지방의 늘어지는 말이라는 느낌이 든다. 경상도에서는 게를 '끼'라고 했지 싶은 생각이 아른아른.... 그런데 깅이라.... 참으로 제주도의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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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냉국은 우무로 만든 냉국인 모양이고, 톳으로도 냉국을 만들어 먹는 것은 미역냉국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그리고 성게국은 어딘가에서 먹어봤음직 하군. 모두 바다에서 얻은 식제료들이로구나. 물론 밭이나 산에서 얻은 것도 있겠지만 주제가 해녀인지라 바다에서 얻은 것으로 상을 차리는 것이 가장 쉬웠을 것으로 짐작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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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둘러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사진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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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하나하나가 모두 매력적이로군. 항상 먹는 사람은 일상이겠지만 외지에서 여행을 온 사람에게는 어느 것이라도 모두가 별미라고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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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바구니는 아무래도 엄마가 물질을 해야 하니까 어디로 굴러가지 못하도록 담아놓았떤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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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용기 중에서도 물을 길어나르는 물허벅이 제주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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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으로 따라서 돌아보니까 용출수가 많던데 그러한 곳에 집을 짓고 살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마당에 우물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물을 길어와야 했던 것은 당연하겠고, 그러기 위해서 질그릇으로 만든 항아리에 물을 담아서 대바구니에 넣고 짊어졌겠다. 낭월이 어려서는 수왕이라고 부르던 함석물통에 우물을 길어서는 지게작대기로 꿰어서 동생이랑 물을 길어 날랐던 추억이 되살아 난다. 작대기의 중심점을 최대한 동생쪽으로 해서 가볍게 들겠다고 잔꾀를 부렸던 기억도 솔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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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허벅과 물구덕은 천생연분이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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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물을 길어다가는 지세항아리에 가득 채웠겠지. 주로 어린 자녀들의 몫이었을 수도 있었지 싶다. 구멍이 뚫린 항아리에 물을 퍼다 붓는 동화가 있었는데....? 두꺼비가 구멍을 막아줘서 물을 채웠다던가? 별게 다 생각나는 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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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도 놀리지 않고 그림으로 알뜰하게 채워넣어서 볼 것이 많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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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말이 있었구나. 삶이 얼마나 목숨과 직결되었다는 것을 실감나게 해 주는 속담이다. 선원은 '사자밥을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비슷한 말이지 싶다. 그래서 주역팔괘에서도 감괘(坎卦)는 매우 조심해야 하는 괘라고 하니 예로부터 물은 생명을 위협하는 곳으로 여겼던 것은 공통인 모양이다. 해신당은 용왕당이라는 말과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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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잠수굿이라서 물속에 들어가기 전에 안전을 비는 굿인가 했더니 잠수(潛嫂)였구나. '물에 들어가는 형수?' 아마도 잠녀의 다른 말이겠거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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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을 하는데 필요한 도구들은 육지와 별반 다르지 않은데 북과 장구 사이에 있는 설쇠가 좀 특이하구나.

설쇠[인터넷자료: 설쇠]


아, 이렇게 보니까 얼기미에다가 꽹과리 비슷한 것을 올려놓고 두드리는 도구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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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칼과 요령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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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칼에는 일월(日月)을 음각으로 새겼구나. 심방은 무당을 부르는 제주도 말인 모양이다. 심방은 신방(神房)에 어원을 두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니까 고개를 끄덕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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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굿을 하는 장면을 그럴싸하게 만들어서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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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만 봐도 무슨 행사를 하고 있는지 짐작을  할 수가 있을 만큼 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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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계와 신계 특히 용궁계와 연결하는 무녀의 역할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열길 물 속을 손바닥처럼 뒤지고 다니는 해녀도 항상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고, 그것을 용궁의 신령에게 맡겨버리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고 바다를 들어가게 될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그녀들에게는 생명줄을 쥐고 있는 절대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었겠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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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을 마치고는 마지막으로 바다에서 회향을 하는 장면이겠다. 바다에 계시는 용왕님께서 이 공양을 기쁘게 받아 주시고 올 한해도 사고없이 많은 해산물을 얻을 수가 있도록 보살펴 달라는 간절함이 용궁까지 도달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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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장면을 직접 보면 더욱 감동적이겠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이렇게 만들어 놓은 모형을 통해서 그러한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좋다고 하겠다. 제물들이 참으로 소박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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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신과 소통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이러한 장면을 통해서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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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리라면 아침에 거쳤던 곳이로구나. 상담하러 와서 운이 약한 사람이 뭘 하면 되겠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단호하게 말을 해 준다.

"기도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대부분은 알았다고 하지만 가끔은 기도를 하면 이뤄지느냐고 다시 묻는다. 그러면 준비된 2탄이 발사된다.

"지극정성으로 하시면요~!"

낭월도 알고 있다. 세상에는 인간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님을. 그래서 일이 막히거나 힘들거나 맘대로 안 되면 기도를 하시라고 권한다. 듣고서 열심히 기도한 다음에 뜻이 이뤄지면 선생님 덕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낭월의 덕이랴~ 스스로 지극한 정성을 기울여서 감천(感天)한 것이지. 그래서 그러한 고마움의 말은 듣는 즉시로 하늘로 회향한다. 결코 낭월의 덕이 아닌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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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도 했으니 이제 일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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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가족이 없다면 그렇게 열심히 물속으로 뛰어들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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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리에서도 만났던 불턱이다. 무얼 하는 곳인지 잘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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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휴식도 하고 물속의 정보도 나누면서 삶의 순간을 누리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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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가 입고 바다에 들어가는 옷이다. 물소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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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추웠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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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가 되어서야 제대로 된 고무옷으로 바꾸게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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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를 재단하는 도구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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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오래도록 안전하게 활동을 할 수가 있었다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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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경은 20세기에 보급이 되었다니 그 전에는 맨눈으로 보고 다녔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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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도 참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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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경을 아예 눈이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그만큼 소중한 도구라는 뜻이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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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까지도 그대로 사용하는 도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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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가 채취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림으로 살 설명해 놨다. 영상도 많이 있었는데 영상보다는 사진이 더 이해하기 좋아서 영상은 대체로 그냥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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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과 소라만 따는 것이 아니라 고기도 잡는구나. 그래서 그제 섭지코지 입구에서 작살을 든 해녀도 있었다는 것이 퍼뜩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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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얻는 것은 자연이 허락해야 취할 수가 있는 것이니 시기적으로 나오는 것이 달라서 계절별로 제주도 여행을 해야 할 이유가 된다. 아무렴. 철마다 놀러 다니면 좋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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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만 출가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해녀도 출가를 한다는 것은 여기에서 명백하게 이해할 수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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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충청북도와 경기도만 빼고 안 가는 곳이 없다는 말이네. 충북이야 바다가 없으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경기도에는 해녀가 물질하기에 환경이 적당하지 않은 모양인가 싶기도 하다. 경상남도에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 이러한 자료를 통해서 알게 된다. 제주도 해녀가 가지 않는 곳은 없군. 물만 있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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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로 활동하러 다니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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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칭다오와 따렌으로 진출을 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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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일본으로 많은 출가를 한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나저나 일본에서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한다는데 앞으로는 아무래도 일본으로 출가하는 것은 주의해야 할 모양이다. 안전제일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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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블라디보스톡까지도 해산물을 채취하러 가는구나. 놀랍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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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의 중앙에서 물질하는 해녀상. 해녀의 이야기도 마무리가 되어 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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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불턱은 예전과 달라졌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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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도 있고 확실히 현대식이라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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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바닷가에 있는 불턱은 유물이 된 셈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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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에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구나. 내친 김에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좋지 싶군.

인류뮤형문화유산

해녀문화는 마지막으로 2016년에 등재가 되었네. 가봐야 할 곳이 많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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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서가 있어야지.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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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우표까지 만들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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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녀 헌장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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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물질하는 해녀의 조형물을 본다. 이제 단순히 조형물이 아니라 심장이 뛰는 해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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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맞은편 구석에 배가 두 척이 출항을 재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주호와 해녀호구나. 해녀의 역사를 잘 살폈다. 정성으로 마련한 전시공간이 있어서 고맙기도 했다.

(여행은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