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반달(10) 소천지

작성일
2021-04-16 06:34
조회
485

제주반달(10) [2일째 3월 9일/ 5화]


소천지(小天池) ? 내게 속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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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이라고 쓰고 싶을 때도 있는 거지 ㅎㅎ) 보말칼국수와 보말죽을 든든하게 먹고는 다음의 행선지로 향했다. 이름하여 '소천지(小天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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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지로 가는 길은 미리 검색을 해서 알아뒀다. 하수처리장으로 들어가서 길가에 차를 세우면 소천지로 가는 길을 만나게 된다는 안내문이었다. 낭월은 가능하면 선험자(先驗者)의 의견을 믿는 편이다. 이번에도 그 글만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정문을 지키는 경비원을 보면서 쫄렸지만 그냥 밀고 들어갈 수가 있었다. 다행(?)히 제지를 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렌트카가 아니어서였을 수도 있었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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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글에서 본 그대로구나. 여기에 차를 대면 되겠다. 그래놓고 바다 쪽을 봤다. 어딘가 내려가는 길이 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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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지~! 과연 내려가는 길이 있구나. 이제부터는 직진이다. 낭월이 앞장을 서고 일행은 뒤를 따라서 앞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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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그렇게 걸었다. 그런데 앞에 나타난 것은? 그렇다. 괜한 고생을 했던 것이다. 여하튼 길잡이가 띠리~하면 일행이 고생한다. 그들이 무슨 죄냔 말이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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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길을 두고서 뭔 짓 을 한 거냐? 그 선험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한 글을 블로그에 남겨뒀더란 말이냐. 이럼 안 되지 않아? 재미로? 그건 아닌 것 같고,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는 허무한 결말에 헛웃음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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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가 멀어서가 아니다. 낭월을 믿고 뒤를 열심히 따라 온 일행들에게 민망했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그 선험자는 올래길6코스를 걷고 싶었을 수도 있었을게다. 그렇게 애둘러 이해를 하자. 악의로 그랬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여서이다. 아무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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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은 우리 집으로 가는 입구가 떠오른다. 멋지네. 올레길의 매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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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이 나타나면 해변으로 내려가는 곳까지 왔다는 이야기로군. 소나무 사이로 뭔가 보이는 것도 같다. 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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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스는 제주불교성지순례길이기도 한가 보다. 뭐라고 쓴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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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사에서 혜관정사까지의 9km구나. 그 도중에 소천지가 있었고.... 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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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갈듯이 잘 지어놓은 정자는 아니고 조망대다. 아마도 소천지를 조망할 수가 있는 곳이려니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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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날이 맑고 바람이 없으면 한라산의 봉우리가 소천지에 비친다고? 말은 참 쉬운 말이다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장면을 얻으려면 제주도에서 얼마를 살아야 한다는 말인지에 대한 주석이 없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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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그럴싸~하군. 영락없는 소천지라고 해도 되겠네. 역시 상상한 모습 그대로잖아. 어서 가봐야지. 그 자리에 발자국을 찍어야하니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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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지로 내려가는 길은 천연적인 모습 그대로이다. 사람이 찾는 것으로 봐서는 손질을 좀 했음직도 한데 그대로 뒀네. 나이가 든 사람은 혹 발을 다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할 겨를이 없기는 했다. 자연도 좋지만 안전이 더 중요하니까. 대체로 편의시설을 잘 해 둔 제주도에서 소천지로 접근하는 길은 그대로 뒀다는 것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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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같이 극성스런 여행객에게는 이 정도라도 있어주면 고마울 따름이지만,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은 사람, 그러니까 노약자에게는 아무래도 위태로운 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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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호연이 길이 위험하다고 조심하시라는 소리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군. 그리고 저 앞에 가고 있는 모녀(?)를 봐도 그렇다. 발을 붙일 곳이 만만치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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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거나 말거나 소천지가 궁금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찜을 했던 소천지였다. 백두산 천지도 봤고, 한라산 백록담도 봤는데 소천지라니 꼭 봐야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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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소천지는?'

갑자기 황당해지는 느낌? 수소풍선을 들고 신나하다가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면서 놓친 풍선을 찾느라고 손을 두리번거리는 아기의 표정이 바로 낭월의 표정이었을게다. 소천지는 간 곳이 없고 선녀탕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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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부부는 마냥 신났다. 첫째는 산으로 올라가지 않아서 좋고, 둘째는 바다와 암석이 재미있어서 좋고, 셋째는.... 그들의 생각에는 낭월이 떠올렸던 바로 그 소천지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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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가마우지들... 어디에서 봐도 항상 같은 포즈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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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잡고 이리저리 소천지를 찾았다. 섭섬의 풍경도 보고, 가마우지도 보면서 허무한 마음을 달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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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또 깨달았다.

1.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2.보인다고 해서 다 믿지 말거라.
3.사진은 사진일 뿐이다.
4.글도 글일 뿐이다.
5.상상은 자유지만 그 결과도 자기 몫이다.
6.현실이 아무리 처참하더라도 남을 탓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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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소천지라고? 아니, 소천지는 백두산의 천지를 미니어처로 보는 듯한 느낌 정도는 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너무 바보 같았던 건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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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천지와 비슷해 보이는 화각을 찾아서 그 후로도 한참을 배회했다. 그 사이에 다른 관광객들이 오고 또 갔다. 그들의 생각에는 여기가 어떻게 보일지도 궁금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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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어떻게 얼버무려 놓으니 그런대로 천지처럼 보이나? 천지는 무슨~! 선녀탕이라니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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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이 물에 비친다고? 산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비친단 말고. 이런 경우를 두고서 '헛바람이 난다'고 하면 될랑강?

'속았다~!'

이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지만 다시 철학자답게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욱~'해봐야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니 결국은 자신에게 속은 것이지 아무도 속이지 않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렇군....

상상을 했던 것이 현실적으로 막상 드러났을 적에 처음에는 누군가 나를 속였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잠시 그 억울함이 진정되고 나면 비로소 실체가 보인다.

'자신의 망상에 속았다.'

맞지. 스스로 지어놓은 상상에 속은 거지 뭘. 며칠 전에 상담을 했던 대전에 살고 있는 남자의 말이 떠오른다.

"퇴직금 포함해서 전재산을 밤의 산지인 공주의 어느 밤농장에 투자했습니다. 과수원의 한 구역을 제 몫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땅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사는 것이지요. 묘목은 아직 어립니다. 그래도 4년차 부터는 추가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수익이 나오기 시작하는 까닭입니다. 관리는 회사에서 해주고 수익의 비율은 제가 70%를 갖는 것입니다. 회사에서는 관리비만을 갖는 것이지요."

언뜻 들어보니 그럴싸 했다. 그러나 낭월이 누군가. 농삿일의 구조에 대해서는 남들만큼 알고 있다는 뜻이다. 밤이 생각대로 수확이 될 것이며, 수확이 된다고 해도 시세가 제대로 될 것이며, 시세가 된다고 해도 관리자들이 제대로 배분을 해 줄 것인지를 어떻게 믿느냐고 물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내심으로 한숨이 먼저 나왔다. 물론 이런 내색을 하면 안 된다. 시종 미소와 흥미와 기대감을 버리지 말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상담자가 해야 할 의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제가 투자를 잘못 한 것일까요? 시작하기 전에 여쭤봤어야 했는데..."

아니, 참 답답하기도 하지.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더니만 꼭 그짝이다. 이미 그 방문자는 10여 년 전부터 인연이 되었던 사람이므로 말하자면 단골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늘 잘 묻다가도 노후의 30년을 책임질 자신의 소중한 전재산을 투자하면서는 왜 묻지를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일일이 묻는 것도 귀찮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일을 벌이기 전에 물어봤다면 최소한 사주나 운은 뒤로 미뤄두더라도 현실적으로 위험한 상황까지도 고려해 봤는지는 조언을 해 줄 수가 있지 않겠느냔 말이지.

"지금에 와서 잘했으면 뭘 하고 못했으면 뭘 하겠어요? 그래서 농장은 수시로 가 보십니까? 나무는 잘 자라고 있고, 관리는 또 잘 되고 있던가요?"

이렇게 묻는 낭월은 또 상상도를 그리고 있었다.
무성한 잡초,
여기저기 뒹구는 약병....
받을 돈을 다 받은 사람들의 무성의한 응대...
뭘 물어도 속 시원하게 돌아도는 답변은 없고....
손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떠올랐다.

"안타깝지만 게임에서 지셨네요."

노름판에는 끼지 않는 것이 상책(上策)이다. 돈을 따는 것이 상책이라고? ㅋㅋㅋ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황홀한 상상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노름판에서 돈을 따는 자는 유일하게 정해져 있다. '하우스짱'이다. 그만 돈을 딴다. 그 나머지는 결국은 거지가 되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거나, 아니면 옛날 고향의 당숙부처럼 부친이 산을 갖고 있지 않아서 팔아서 밑천으로 댈 수가 없음을 원망하고 있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당숙의 형 : 네 놈의 노름버릇은 밑빠진 독이다.
당숙의 제 : 형님도 참 그런 말 마이소. 밑빠진 독을 물에 당가보소.

결국은 노름판은 뒷심 좋은 놈이 따게 되어 있다는 어리석은 환상을 버리지 못한 것을 봤는데. 비록 그것이 어떻게 이것과 같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낭월이 보기에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했다는 말이다. 조언가의 머리는 차가워야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황당한 일을 저질러놓고서는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기도 하니 말이다.

"뽀빠이~! 도와줘~!"

아니, 낭월이 뽀빠이도 아니고 어쩌란 말인가. 가끔은 참으로 위로도 할 수가 없는 난감한 지경에 처할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도 포함이 된다.

"지금이라도 빠질 방법을 찾아야 하겠지요...?"

그제야 마음 속에서 차마 꺼내기 싫었던 말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고 싶었던 말임을 낭월이 왜 모르겠느냔 말이지.

"늦었지만 현명하십니다~!"

호랑이 다리는 빨리 넘겨주고 튀는 것이 상책이다. 그것을 붙잡고 어떻게 요리를 해야 호랑이 가죽도 팔고 살도 팔고 뼈까지도 팔 수가 있을지를 상상하다가는 호랑이 밥이 되고 만다는 것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얼마나 상처를 받을까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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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신나는 현공풍수』를 쓰면서 터가 나쁘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그려넣었던 삽화인데 이렇게 써먹기도 하는 구나. 왜 난데없이 그 생각이 나서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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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지를 찾으려고 이렇게도 헤매고 다니는 낭월이다. 그러나 제한된 공간에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자신의 상상에 속았다는 것만 점점 깊이 각인이 될 뿐이다. 이렇게 어리석은 낭월은 수시로 자신의 상상력에 속아서 헛걸음도 많이 한다. 남을 탓할 주제가 못되는 것을 이렇게 현실에서 확인하면서도 또 속는다에 100원을 걸어도 된다. 그리고 속는 것도 인생이잖은가?

멋지게 잘 살아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결국은 자기를 속이는 꼴이니까 말이지. 문득 8비트 게임이었던「코스모」가 생각나서이다. 죽자고 가 봐야 상어의 아가리로 떨어지는데 피할 길도 잡을 풀뿌리조차 없는 상황에서 느꼈던 그 난감함이라니... 그나마도 낭월이 유일하게 돌파한 게임이었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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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험자의 글을 믿는 것도 좋았지만 지도를 먼저 믿었어야 했던 것이다. 지도를 보라. 어디에 백두산의 천지를 연상할 만한 건덕지가 보이느냔 말이지. 허나, 이것도 여행이다. 때론 생각보다 출중한 풍경에 압도되어서 감동하기도 하고, 아마도 장가계의 풍경이 그랬지 싶다. (장가계를 생각하니 또 괘념한 것이 떠오르네. 일정표에는 있고, 가지 못하고 왔던 천자산(天子山)이 떠올라서이다. 다음엔 꼭 가봐야지. 암.) 그런가 하면 또 이렇게 상상에 많이 못미쳐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여행이니까. 모쪼록 조심해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곳에서 자칫 발목이라도 삐게 되면 얼마나 억울하겠느냔 말이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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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가자~!
연지 : 다 놀았어요?
낭월 : 응,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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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탕(소천지는 무신....)에 배회하는 구름이나 한라산 대신 담고 가자. 아니, 그냥 소천지를 영판 닮았더라고 우겨나 볼까 싶기도 하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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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거나 말거나 화인은 자신의 유튜브에 올릴 영상꺼리를 많이 찍었다고 싱글벙글이다. 다만 여기에서 유튜브를 링크하지 않을 요량이다. 아직 볼 것이 없어서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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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나오니까 이렇게 떡하니 소천지 입구라고 푯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말이지. 때론 자기의 꾀에 넘어가기도 하는 것도 인생임을 깨달았으니 잃는 것이 절반이면 얻는 것도 절반이라는 음양의 이치를 다시 느끼면 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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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월 17일에 다시 찾았다. 왜? 너무 억울해서이다. 만약에 한라산 봉우리가 선녀탕에 담기는 사진이라도 한 장 얻는다면 모두 용서가 되지 싶다는 눈꼽만큼의 미련을 떨쳐버릴 빌미를 찾고 있었던 셈이기도 하다. 한라산을 보니 쾌청이다. 그렇다면..... 바람도 이 정도면 혹 한라산을 물에 담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그 사이에 일주일 전의 실망감을 잊어버리고는 다시 새로운 희망으로 허둥대는 낭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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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물결은 이미 시간이 지났다고 알려 준다. 7~8시경이라면 또 몰라도 이미 10시가 지났으니 바람이 일어나고 말고지. 머리가 나쁘면 부지런하기라도 하던지 말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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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소천지는 전망대에서 보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오늘도 또 누군가는 소천지를 찾는다. 그리고 내일도, 또 내일도. 저 앞의 문섬과 더 멀리의 범섬도 선명하게 보이니 또 찾아도 좋은 곳이었다. 그런데 다음에 제주도에 또 머무르더라도 바람기가 없는 날 아침이면 꼭 한 번은 달려오지 싶다. 그 이유는 아는 자만이 알 것임을. ㅎㅎ

(여행은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