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화가 금을 만나면 엿쟁이 마음이다

작성일
2007-09-1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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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불이 쇠를 만났다. 불은 금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항목이다. 불이 금을 만나면 통제를 하려고 할 것이다. 강력하게 자신의 의도대로 금이 움직여 주기를 바라겠다. 즉 이러한 현상을 읽을 수가 있는 것은, 모든 금속은 불의 제련을 받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형체를 갖게 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불이 금을 보면 무조건 통제를 하려고 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주물러야 속이 시원하다. 시키는대로 듣지 않으면 따귀라도 오려 부친다. 아무래도 좀 거친 상관인 듯 하다. 원래 불은 인내심이 부족하다. 인내심이 없는 사람은 남이 자신의 말에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속에서 불이 일어난다. 그런데 그 남이 내가 마음대로 할 수가 있는 사람이라면 전혀 참으려고 하지를 않는 것이다. 그래서 강제로 억압을 하는 형태가 성립한다. 불은 금에 대해서 그렇게 군림하는 것이다.

자연계에서는 어떻게 설명이 될 것인가를 살펴본다. 금을 서리라고 보자. 서리는 가을에 금기운이 강화될 적에 발생하는 것으므로 전혀 엉터리가 아니다. 가을에 아직 결실을 다 보지 않았는데, 서리가 내리면 농부들은 큰일이다. 그래서 서리가 내린다는 주의보를 들으면 즉시로 농장으로 달려가서는 밭고랑에 불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이때의 불은 틀림없이 나무를 살리는 불이 되는 것이다. 이를 일러서 명리학의 말로 하면 ‘아능구모(兒能救母)’라고 한다. 자식이 능히 어머니를 구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도 금(서리)은 불의 힘 앞에서는 별 수없이 물러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려본다.

이러한 대목이 실감나는 영화가 있었는데, 제목이 ‘프렌치키스’ 던가 싶다. 그 영화에서도 포도농장에서 서리가 온다는 말을 듣고서는 모두 불을 피우는 장면이 참으로 볼만 했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급기야 그 불이 과해서 농장을 모두 불태워 버려서 딱하게 되었지만... 이렇게 낭월이는 항상 어느 곳에서 오행의 흐름을 읽을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이 관심사이다. 그래서 많은 것을 찾아내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흐름도 무시한채로 오행궁리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