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9] 제34장. 인연처(因緣處)/ 5.여행길의 여유(餘裕)

작성일
2022-07-2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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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 제34장. 인연처(因緣處) 


5. 여행길의 여유(餘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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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니 바쁘게 가지 않아도 길은 줄어들었다. 새로 바뀐 마차는 더욱 고급스러워서 흔들리는 것도 덜했다. 모두가 염재의 노력에 의한 덕분이어서 한마디씩 덕담을 던졌고 염재는 미소로 화답하면서 말을 몰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생각도 하면서 이틀을 더 가자, 문상현(汶上縣)의 고을에 다다랐다. 오랜만에 번화한 도시를 만나자 여행에 지친 몸을 쉬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 염재가 의견을 물었다.

“스승님께 여쭙습니다. 문상에서 좀 쉬면서 피로를 풀고 가는 것은 어떨지요?”

염재의 말에 지광이 말했다.

“여부가 있겠나. 그렇게 하세.”

“옙!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적당한 숙소를 찾아보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는 번화한 거리를 지나가면서 거산과 함께 좌우를 살피다가 아담하고 깨끗해 보이는 곳을 발견하자 마차를 세웠다. 이름은 문룡빈관(汶龍賓館)이었다. 마침 강변을 끼고 있어서 주변의 풍경도 시원하게 펼쳐져서 조용히 쉬기에 적당해 보였다.

“오늘은 여기에서 쉬겠습니다. 바쁘지 않으니 며칠 쉬어도 좋겠습니다. 우선 묵어보고 또 의견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염재가 말하고는 마차를 빈관의 문 앞에 세우자 안에서 아이가 반갑게 뛰어나와서 손님을 접객했다. 일행이 아이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자 내부는 상당히 화려했다. 비록 분위기는 상당한 비용을 생각하게 했지만 은자가 넉넉한 염재는 그런 것에 기가 죽을 까닭이 없었다. 왜냐면 통인사에서 주지화상으로부터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한 데다가 거산의 부모님과 소연의 부모님이 챙겨준 것으로 인해서 노자(路資)에 여유가 생긴 염재는 최대한 스승님들을 편안하게 쉬도록 배려했다. 숙소는 조용한 상층(上層)에 저마다 하나씩 배정하고 소연은 아직 어려서 진명과 같이 머물도록 배려했다.

“여정(旅程)에 쌓인 먼지도 씻으시고 잠시 쉬었다가 대청(大廳)에서 유시(酉時)쯤에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혹 일행이 보이지 않으면 식당으로 찾아가시면 됩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 동의하고는 저마다 정해준 객실로 들어가서 점원이 마련해준 뜨거운 탕에 피로를 풀면서 푹 쉬었다. 우창도 모처럼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자 피로가 밀려왔다. 그래서 얼른 씻고는 침상에 누워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잠결에 은은한 범종(梵鐘)을 치는 소리에 잠이 깼다.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는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서 바깥 풍경을 보니 해가 서산마루에 걸려있고, 하늘은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제야 개운하게 잤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옷을 챙겨입고 대청으로 내려갔다. 예의 그 소년이 우창을 발견하고는 지광과 거산이 담소를 나누는 자리로 안내했다.

“아, 형님은 일찍 내려오셨나 봅니다. 우제는 쉰다고 누웠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하하~!”

“잘하셨네. 나도 개운하게 씻고 잘 쉬었지. 아직 염재도 내려오지 않았으니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네. 거산의 공부가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고 있어서 칭찬하고 있었지. 하하하~!”

“열정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흔적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까운 절에서 저녁 종을 치는지 소리가 들리네요.”

“아, 나도 종소리를 듣고서 직원에게 물어봤지. 그랬더니 멀지 않은 곳에 보상사(寶相寺)라는 절이 있다고 하니까 내일은 유람삼아서 천천히 둘러보도록 하세. 하하~!”

“아, 보상사가 있었군요. 좋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다른 일행도 모두 내려왔다. 그러자 염재가 저녁밥을 먹을 식당으로 직원을 앞세워서 안내했다. 별채처럼 된 곳에 매우 넓은 식당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미 식당 안에는 드문드문 밥을 먹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노을이 바라다보이는 자리에 일행 여섯 사람을 위한 식탁이 마련된 곳으로 안내되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음식은 염재가 알아서 주문했다. 그런데 오늘 저녁에는 우창도 느끼한 것이 먹고 싶어서 동파육(東坡肉)을 추가하고 고량주(高梁酒)도 한 근(斤:375g) 주문했다. 잠시 후에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들과 술을 안주 삼아서 저마다의 생각을 꺼내놓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음식을 거의 다 먹고 모두 배가 부르자 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주인이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찾아줘서 고맙다는 정도의 인사겠거니 했다. 우창이 화답했다.

“주방장의 솜씨가 참 좋습니다. 모두 만족스럽게 음식을 즐겼습니다. 하하~!”

“귀한 손님들께서 만족하셨다니 그보다 고마운 말씀이 없지요. 고맙습니다. 혹 여유가 있으시면 둘러볼 곳이라도 안내해 드릴까 싶습니다만.....”

그런데 문상에서 봐야 할 명승지에 대해서 안내하려고 한다는 말에 모두 반기면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우선, 보상사(寶相寺)를 참배하시는 것을 권합니다. 절의 이름은 대보상사(大寶相寺)입니다만 우리는 그냥 보상사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혹 역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치우(蚩尤)의 무덤도 둘러보기를 권합니다. 옆에 보이는 강은 경항대운하(京杭大運河)입니다. 오가는 배들을 보면서 산책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 외에도 볼 것이 많습니다만 대표적인 것만 소개합니다. 천천히 쉬면서 둘러보시기를 권하겠습니다.”

주인이 이렇게 안내하고 돌아가자 주인의 이야기를 듣고서 지광이 물었다.

“그런데 주인장이 아까 한 말에서 치우의 무덤이라고 했나? 어떤 위인이기에 무덤을 소개하는 것인지 모르겠는걸. 혹 염재는 들은 바가 있나?”

지광은 기감(氣感)의 방면으로는 대가(大家)이지만 역사적인 부분은 관심이 없어서였는지 비교적 잘 모르는 분야였다. 그것을 알고 염재가 차근차근 설명했다. 음식을 먹으면서 나누는 이야기로는 제격이었다.

“정 사부께서 혹 삼황(三皇)에 대해서는 들어보셨겠지요?”

“당연히 그야 들어봤지.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를 말하지 않는가. 그 정도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잖나? 하하하~!”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삼황 중에서 마지막으로 거론되는 황제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치우는 황제와 관계가 있는 인물이거든요.”

“오호~! 그런가? 그것참 흥미가 동하는걸.”

지광이 관심을 보이자 염재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옛날에 황제가 혼란스러운 세상을 평화로운 천지로 만들고자 하는 생각을 하고서 어지럽히는 무리들을 정벌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강력한 상대를 만나서 엄청나게 힘든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상대방의 지휘자는 치우(蚩尤)라고 하는 인물이었는데 어찌나 용맹한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아무리 공격해도 물러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더욱 강력해져서 급기야 황제가 그 싸움에서 패(敗)하게 될 지경이었답니다.”

“그런 인물이 있었나?”

“그렇습니다. 일설(一說)에 치우는 동이족(東夷族)이라고도 하고, 묘족(苗族)이라고도 합니다만, 그의 용병술(用兵術)이 신기막측(神奇莫測)했던 것은 사실이었나 봅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도 상세하게 나온 것을 보면 말이지요.”

“오호~! 그렇게 유명한 인물이었나? 나도 배워야 할 것이 많아. 하하하~!”

“세상의 공부는 끝이 없으니, 필요할 적에 인연에 따라서 알아두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하하~!”

염재도 스승님들께 배우기만 하다가 뭔가 알려드릴 것이 있어서 즐거웠다. 지광이 염재의 말을 듣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지나는 길이니, 치우의 무덤을 보는 것도 좋겠네. 그러한 호걸은 어떤 땅에서 사후(死後)를 지내고 있는지가 궁금하군.”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바라봤다. 그러자 우창도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당연하지요. 그리고 사마천의 사기에도 나왔듯이 우제가 알고 있는 전설(傳說)에 의하면, 치우를 아무리 해도 이길 수가 없었던 황제는 하늘에 기도했더랍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열 명의 천장(天將)을 내려보냈다고 합니다.”

“그래? 그야말로 신장(神將)이었단 말이로군. 그래서?”

“하늘의 명을 받고 내려온 신장들이 매우 뛰어난 무공(武功)과 신력(神力)으로 마지막 대전(大戰)을 치르는 탁록(涿鹿)에서 마침내 치우를 제압하고는 죽은 치우라도 혹시 되살아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육신을 나눠서 매장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던지 「탁록지전(涿鹿之戰)」이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였나 봅니다. 그 열 명의 천장들은 십간(十干)의 조화(造化)로 전쟁에서 이겼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황당하기는 하지만 이야기를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이 천년을 이어가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하하하~!”

“그런가? 그러니까 아우님도 치우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구나. 더구나 천간(天干)이 생겨나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으니 어찌 보면 아우님에게는 치우가 공로자인 셈이지 않은가? 하하하~!”

“아, 형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것이 또 그렇게 됩니까? 전설과 사실이 뒤엉켜서 흑백을 나눌 수는 없습니다만, 치우라는 인물이 존재했던 것만은 사실인가 봅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기록이 남아있는 것을 봐서 말이지요.”

우창의 말에 지광도 재미있어하다가 문득 물었다.

“아, 그런데 천간(天干)은 탁록의 전쟁으로 인해서 생겨났으면 지지(地支)는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전해지는 말이 있나?”

“물론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세상은 다시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지게 되면서 막상 일이 없어진 천장들이 이번에는 자기들끼리 싸우고 말썽을 부리자 황제가 다시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했더니 이번에는 하늘에서 12명의 천녀(天女)가 내려왔다고 하는데 여색(女色)을 탐하면서 조용히 지내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기도를 했다면 열 명의 선녀(仙女)를 내려보냈어야 할 텐데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치매가 있으셨거나 기도가 꼬였던가 봅니다. 물론 웃자고 만든 이야기임이 분명합니다. 하하하~!”

“그랬군.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더욱 궁금하군. 내일 천천히 둘러보기로 하고 오늘은 모두 푹 쉬도록 하세.”

지광의 말에 모두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서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우창도 편히 쉬고는 이른 새벽에 잠이 깨어서 강을 내려다보면서 풍경을 감상했다. 흘러가는 강으로 알고 봤을 적에는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경항대운하라는 말을 듣고 보니까 달라져 보이기도 했다. 오가는 배들이 많았던 이유는 항주(杭州)에서 북경(北京)까지 오가는 여객선(旅客船)이며 화물선(貨物船)이라는 것도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제야 문상(汶上)이 번화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래서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말이 나왔겠다고 생각하면서 밝아오는 풍경에 푹 빠져들었다. 그 사이에 보상사의 종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마음이 한가로워지자 문득 오행원에 있을 식구들이 떠올랐다. 춘매와 오광이 떠오르고 이어서 자원의 모습도 생각이 났다. 집을 떠난지는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반년은 된 것만 같았다. 이렇게 상념에 잠겨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강변에 서성이는 여인이 낯이 익었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까 진명이 잠이 깨어서 산책을 나온 것이었다. 우창도 옷을 챙겨 입고는 밖으로 나갔다. 아직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새벽의 공기는 상쾌했다.

“스승님 기침하셨어요? 강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이 너무 아름다워요. 이렇게 멋진 풍경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 만인가 싶어요.”

진명이 밝게 인사하면서 이렇게 말하자 우창도 반갑게 말했다.

“진명도 잘 쉬셨구나. 운하를 오가는 배들을 보면서 뭘 생각하셨나?”

“그야 진사부를 생각했죠. 언제나 공부해서 스승님의 절반의 절반이라도 따라가 보나 싶은 생각도 하고요. 호호호~!”

“그랬구나. 공부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고 봐. 그냥 묵묵히 오늘 하루도 게으르지 않으면 어제보다 발전할 테니 빨리 이루고자 하는 조바심만 없으면 된다네. 하하하~!”

“아항~! 공부에는 조바심이 병이네요? 이렇게 상쾌한 새벽부터 또 가르침을 받았으니 오늘도 수지맞는 하루가 되겠어요. 호호호~!”

진명이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을 보는 우창도 즐겁기는 매한가지였다. 낭랑한 진명의 웃음소리가 강변을 치고 메아리가 되는 소리를 들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 정도야 가르침이랄 것도 없지. 그나저나 요즘 진명의 심신(心身)은 편안하신가?”

“그럼요~! 하루하루가 얼마나 알차게 흘러가는지 시간조차도 붙잡아 두고 싶은 심정이에요. 옛날에는 오늘도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지를 걱정했었는데 말이에요.”

이렇게 말하면서 잠시 지난 시절이 떠올라서 허공을 바라봤다. 비록 제령(除靈)은 되었으나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하는 데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 우창이 말했다.

“그러고 보면 어린 소연이는 복이 많은 셈인가? 영혼의 장애로부터 빨리 벗어났으니까 말이지. 하하~!”

“물론이에요. 아이가 심성도 착하고 또 총명하기까지 해서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잘 가르치면 큰 복전(福田)이 될 거예요.”

“진명도 그렇게 생각했구나. 이렇게 인연이 된 것도 참으로 다행이지?”

“다행뿐이겠어요? 어떤 일이라도 척척 해결하시는 두 스승님을 뵈면서 항상 경이로움을 느껴요. 함께 한 날은 비록 오래지 않았지만, 그사이에 너무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겪으면서 제자도 행복이 충만 된 하루를 시작하니까 그 새록새록 솟아나는 마음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에요. 호호호~!”

우창이 봐도 처음에 통인사에서 봤을 때의 진명이 아니었다. 마음이 달라지니 모습도 변한다고 생각하면서 내심으로 흐뭇했다. 남의 삶에 개입하고 싶지는 않으나 이렇게 좋은 인연이라면 개입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조용한 시간이 되면 스승님께 제 팔자에 대해서 추명(推命)을 받아보고 싶은데 항상 바쁘셔서 말을 꺼내지 못했어요. 이렇게 오붓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다시 생각이 나네요. 스승님께서 조용히 쉬는데 진명이 또 방해되었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진명을 보면서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방해랄 것이 뭐가 있나? 공부 삼아서도 연구하고 궁금해서라도 대화하는 것인데. 어디 생일을 말해보시게. 아니 그보다도 들어가서 차라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눌까?”

우창은 만세력이 방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진명과 함께 방으로 올라갔다. 햇살이 사방을 밝게 일깨우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운하의 풍경은 살아서 움직이는 그림과도 같았다. 탁자에 앉자 진명이 말했다.

“스승님, 진명의 생일은 경자년(庚子年) 시월 초엿샛날 인시(寅時)에요. 하도 제 팔자가 기구해서 길을 가다가도 유명하다는 곳을 만나면 들어가서 물어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해주는 이야기가 달라서 항상 혼란스럽기만 하기에 나중에는 아무 곳에서도 물어보지 않게 되었어요. 그런데 스승님께는 제대로 답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호호호~!”

진명의 밝은 웃음소리에 옆방에서 쉬고 있던 염재가 방문을 두드렸다. 무슨 공부인가 싶어서 동참할 마음이었다. 그러니까 공부를 좋아하는 벌레는 공부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 모양이었다.

“동생도 일찍 일어났구나. 차를 내가 준비하려고 했는데 동생이 챙겨왔네. 고마워. 호호~!”

“그렇지 않아도 스승님과 누나가 밖에서 대화하시는 것을 보고는 공부의 이야기를 하시겠거니 싶어서 내려가려고 하다가 들어오시기에 차를 준비해서 올라왔습니다. 차를 드시면서 천천히 말씀 나누시면 옆에서 열심히 귀동냥하겠습니다. 하하~!”

“마침 잘 왔네. 염재를 부를까 생각했는데 아직 시간이 일러서 잠자고 있으려나 했는데 말이네. 진명의 명식(命式)을 살펴보려던 참이었거든. 하하하~!”

“그렇다면 참으로 제자가 복이 많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누나의 사주는 어떻게 생겼을 것인지가 궁금했거든요. 오늘 귀한 가르침을 듣게 되었으니 마음을 비우고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고는 자기의 찻잔을 들고 조용히 우창을 바라봤다. 그것을 본 우창이 진명에게 물었다.

“그만큼 사주를 보고 다녔으면 본인의 팔자(八字)는 알고 있지 싶은데? 간지는 기억하고 있겠지?”

“아, 그건 겨우 기억해요. 경자(庚子), 정해(丁亥), 기축(己丑), 병인(丙寅)이에요. 서로 풀이하는 내용은 달라도 사주는 항상 같아서 기억하게 되었어요.”

우창은 진명이 불러준 대로 종이에 명식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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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은 평소에도 염재가 얼마나 공부를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염재는 말을 몰면서도 항상 오행의 이치를 대입하면서 공부하고 있는 것을 알다 보니까 알게 모르게 간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기에 우선 진명의 사주를 염재 앞으로 놓으면서 말했다.

“어디, 진명의 사주는 오행(五行)의 균형(均衡)이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 살펴보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생각하고 있다가 느낌대로 말했다.

“제자가 살펴보기에는 오행이 골고루 있어서 좋은 팔자로 보입니다. 다만 겨울의 한기(寒氣)가 심해서 온기(溫氣)로 균형을 맞추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

“옳지, 그것을 균형(均衡)이라고도 하고, 중화점(中和點)이라고도 하고, 용신(用神)이라고도 한다네. 마침 진명의 간지에 대한 이해도 염재와 엇비슷해 보이니까 같이 공부하면 향상에 큰 도움이 되겠네.”

우창의 말에 진명이 말했다.

“동생도 아직 공부하는 중이었구나. 그럼 더 반갑네. 같이 공부하면 더 좋으니까. 그런데 용신이 화(火)가 된다면 병화(丙火)도 있고, 정화(丁火)도 있는데 어느 화가 좋은 걸까?”

진명이 염재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염재가 말했다.

“에구~ 누나도 참, 급하기는 염재보다 더하시네요. 스승님께서 금방 실력이 비슷하다고 하셨는데 누구에게 물으시는 건지. 하하하~!”

“아, 그랬나? 내가 좀 급하긴 하지? 호호호~!”

이렇게 말하면서 두 사람은 우창을 바라봤다.

“맞아, 잘 판단했군. 이 사주의 구성에서는 당연히 화(火)가 필요한 것으로 살펴보면 되겠네. 그리고 병화는 스승이고, 정화는 호법신(護法神)이라네. 그러니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을 가릴 필요가 있을까?”

“아, 그런가요? 그렇다면 가릴 필요가 없겠어요. 그런데 호법신도 사주에 나오는 것인가요? 여태 많은 술사(術士)로부터 온갖 말을 다 들었지만 그런 말씀은 처음 들어요.”

진명이 신기하다는 듯이 묻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그야 편인(偏印)은 영혼의 세계와 연관이 많은 글자인데 내가 필요한 오행이므로 선신(善神)이 되는 것이고, 선신이라면 조상신이나 불보살과 같은 신이 되니 당연히 호법신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라네.”

그러자 염재가 얼른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만약에 여름에 태어난 토(土)라서 화(火)가 전혀 필요 없을 경우라고 가정한다면 편인은 어떻게 됩니까? 혹 흉악한 귀신(鬼神)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오호~! 제대로 잘 이해했네. 그렇게 되는 것이라네. 그러니 선악(善惡)이 어찌 정해졌다고 하겠느냔 말이네. 하하하~!”

이렇게 설명해 주자 진명도 눈빛을 반짝이면서 물었다.

“아하~! 사주는 오행의 균형을 보는 것인가요? 그동안 들었던 이야기들과는 사뭇 달라요.”

“그야 저마다 깨달은 영역이 서로 다르다 보니 당연히 그럴 수도 있겠지. 나는 오행의 균형을 최상(最上)으로 놓고 사주를 볼 따름이라네. 하하하~!”

“진명의 생각에도 그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승님의 가르침이 오히려 이해하기에 매우 쉬워 보이기도 해요. 그렇게만 공부하면 머지않아서 사주를 본다고 하겠는걸요. 호호호~!”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나? 오행을 이해하면 되는 것이니 하등(何等) 사주의 풀이가 어려워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말이네.”

우창의 말에 합장하며 다시 물었다.

“또 하나의 궁금증에 대해서 여쭙겠어요. 진명의 팔자에서 부모인연이 없는 것은 어떻게 보면 될까요?”

그러자 우창은 말없이 연주(年柱)의 경자(庚子)를 가리켰다. 그러자 염재가 가만히 보고 있다가 다시 물었다.

“화(火)가 용신이라면 동화(冬火)를 생(生)하는 목(木)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어떻게 대입하더라도 경자(庚子)의 금수(金水)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으니 부모의 인연은 부운(浮雲)과 같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염재의 말에 진명이 화들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니? 그렇게 간단하게 인연법을 적용하는 거야? 이제 보니까 동생의 공부도 상당하잖아. 그렇다면 연주(年柱)는 부모의 암시를 본다는 말이지?”

“맞아요. 누나도 이내 알게 될 겁니다. 연지(年支)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은 어머니의 의미가 조금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을 끄는 자수(子水)가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아쉽다고 하겠습니다.”

“그래? 하나를 듣고 보니 또 하나가 궁금해지잖아. 그렇다면 월주(月柱)는 어디에 대입하는 거야?”

“월지(月支)를 가족관계로 볼 적에는 형제(兄弟)나 자매(姊妹)로 대입합니다. 누나의 월지(月支)도 해수(亥水)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부모의 인연과 함께 형제의 인연도 모두 뜬구름이라고 해야 하겠어요. 그러니 집을 떠나서 유랑 길에 올랐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와우~ 정말이네. 팔자의 해석이 이렇게 간명(簡明)할 줄 이야~!”

진명이 거듭 감탄하면서 말했다. 그러자 염재가 다시 이어서 설명했다.

“일지(日支)는 배우자를 대입하고, 시지(時支)는 자녀(子女)를 살피게 되는 통로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러고 보니까 누나는 중년 이후의 삶은 여유롭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젊어서 힘든 날을 보냈다고 하면 당연히 나이가 들면서 풍요로운 삶도 가능할 것으로 봐야 합리적일 테니까요.”

“아하~ 그게 또 그렇겠네? 그렇다면 희망이 보이는 거잖아? 앞으로의 길은 과거의 길보다 평탄하다면 참으로 다행이네. 호호호~!”

잔뜩 우울해 보이던 진명이 중년부터 나아진다는 염재의 풀이를 듣고서 다시 쾌활하게 웃었다. 다시 사주를 살펴보던 염재가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께 여쭙습니다. 시간의 병화는 인목(寅木)을 의지하는데 이것은 자녀의 자리가 됩니다. 그렇다면 자녀는 도움이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일간(日干)이 기토(己土)이기 때문에 목극토(木剋土)가 되어서 자녀는 고통을 주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까? 이것이 좀 어렵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묻자 우창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좀 더 생각해 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