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 제33장. 감응(感應)/ 8.동행(同行)

작성일
2022-06-25 05:32
조회
1036

[384] 제33장. 감응(感應) 


8. 동행(同行)


========================

우창은 밤새도록 뒤척이느라고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정신은 말짱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잘 잤나보다 할 텐데 문득 화맥에서 잠을 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버드나무 지맥봉을 꺼내어서 방안에서 잡고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물론 잘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궁금하니까 그냥 있는 것보다는 해보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광이 알려준 그대로 양손으로 잡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지맥봉에게 부탁했다.

“부탁합니다. 화맥이 있으면 끝이 위로 올라가고, 수맥이 있으면 아래로 내려가 주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방을 두 바퀴 돌았다. 그런데 미미하기는 했지만 계속해서 지맥봉의 끝이 수평이거나 위쪽으로 움직였고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화맥에 가깝고 수맥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여겼다. 다만 그 반응이 미미한 것은 자신이 목 체질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봤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갔다. 문득 대웅전에 가서 절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쩌면 강 낭자의 안부가 궁금해서였을 수도 있지 싶었다. 밖으로 나서자 문득 강 낭자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우창이 대웅전으로 들어가자 강 낭자는 땀을 흘리면서 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창은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한쪽에서 불전에 삼배(三拜)하고는 조용히 나와서 마당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밝아오는 산 아래를 바라보면서 어제부터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변화하는 일들이어서 쉽사리 깔끔하게 정리가 되지는 않았다. 논리적(論理的)으로 정리를 하려니까 가닥이 쉽게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설명되지 않는 것은 또 그런 것도 있다는 것만이라도 정리하려고 하는데 불전에 절을 다 마친 강 낭자가 미소를 지으며 우창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 낭자 편히 쉬셨습니까? 이리 앉으시지요.”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강 낭자는 우창이 궁금하다는 듯이 바라보자 우선 합장하고 허리를 깊이 숙였다. 별로 도움을 준 것도 없지 싶은데 지나친 예의를 차리는 것도 같아서 괜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마주 합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 예. 우창이 해 드린 것은 없으나 어제보다 무척 좋아 보여서 다행입니다. 하하~!”

강 낭자의 표정은 어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어제는 구름이 가득한 모습이었다면 오늘은 화창한 봄날에 백화(百花)가 만발한 가운데에 서 있는 듯이 화사한 자태가 무척이나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보자 또 궁금한 것이 샘솟았지만 너무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내심 참았다. 그러자 강 낭자가 먼저 물었다.

“우창 선생님의 덕분이 큽니다. 왜 해주신 것이 없어요. 제게 길을 알려주신 공이 있으신걸요. 이렇게 가뿐한 새벽을 맞이한 것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마음이 상쾌하답니다. 그런데 동행이신 선생님은 아직 안 일어나셨나요?”

“아, 지광 형님을 말씀하시는군요. 당연히 일어나셨을 겁니다. 같이 가보시겠습니까?”

“그래도 괜찮다면 부탁드려요.”

“당연히 괜찮지요. 같이 가십시다.”

우창은 그렇지 않아도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던 차에 직접 지광을 찾아보고자 하는 말이 내심 기뻤다. 그래서 서둘러서 지광의 침소로 갔더니 마침 지광도 일어나서 마당에 나와 몸을 풀고 있었다.

“형님, 편히 쉬셨습니까? 여기 강 낭자가 형님을 뵙고자 하여 동행했습니다. 들어가시지요.”

우창과 강정민을 본 지광이 미소를 짓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지광의 숙소에는 거산이 미리 와서 차를 끓이고 있다가 우창과 강정민을 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스승님과 낭자를 뵙습니다.”

거산을 본 강정민이 반갑게 인사했다.

“반가워요. 차 한 잔 얻어 마시려고 왔어요. 호호호~!”

이른 새벽에 상큼한 여인의 웃음소리에 공기부터 밝아진 느낌이 든 거산이 차를 우려서 한 잔씩 따랐다. 김과 함께 차향이 감돌았다. 지광이 앉으면서 말했다.

“자, 이리 앉아서 차를 들면서 이야기하지. 그래 아우님은 잘 쉬었는가?”

“예, 잘 쉬었습니다. 새벽에 대웅전에 참배하러 갔다가 강 낭자를 만났더니 형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기에 동행했습니다.”

“잘 오셨군. 하룻밤 사이에 무척 편안해 보이니 나도 즐겁구려. 무슨 말씀이신지 하셔도 좋소.”

찻잔을 들어서 한 모금 마신 강정민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실은 어려운 부탁을 드리고 싶어서 왔어요. 선생님께서 길을 떠나실 적에 소녀를 데리고 가주셨으면 합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말을 한 강정민이 찻잔을 내려놓고는 고개를 숙이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듯이 합장했다. 그러는 사이에 바람을 쐬러 나갔던 염재도 들어오다가 이상한 광경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거산이 얼른 들어오라고 하고는 차를 따라줬다. 염재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호기심이 동해서 얼른 한쪽에 앉았다. 그러자 지광이 말했다.

“어제는 주지 화상과 통인사에서 출가하기로 약속하지 않으셨소? 갑자기 우리와 동행하겠다니 무슨 뜻인지 천천히 말을 해 보시오.”

지광이 이렇게 말을 하고 있지만 우창을 비롯한 일행 세 사람은 내심으로 지광의 혜안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어젯밤에 이미 이러한 조짐을 이야기했었기 때문이다. 강정민의 출가 문제는 또 무슨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고 했는데 이렇게 날이 밝기도 전에 그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모두 그 내막이 궁금하였는데 강정민이 말했다.

“실은 오늘 새벽에 주지께서 부르셔서 찾아뵈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직 출가하는 것은 급하지 않으니 선생님 일행과 동행하면서 세상 공부를 더 하다가 오도록 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실로 소녀의 마음도 그와 같았습니다. 지혜로운 선생님들과 함께 강호를 유람하고 싶었거든요. 마침 힘든 시기를 다 극복하고 큰 도움을 입어서 장애물도 깨끗하게 제거하고 보니 이렇게도 심신이 가벼울 수가 없습니다. 행여라도 소녀가 불편하게 해 드리거나 하지는 않겠습니다. 부디 데리고 다니면서 세상의 공부를 시켜 주신다면 지혜롭지는 못하더라도 게으르지는 않은 제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어요.”

이렇게 말을 하고는 일어나서 제자의 예로 절을 세 번 했다. 그것을 본 지광은 미소를 지었고, 우창과 두 제자는 얼떨떨했다. 그렇지만 지광이 허락을 하기 전에는 뭐라고 말을 할 수도 없어서 지광을 바라봤다. 잠시 생각하던 지광이 말했다.

“인연의 끈이 이렇게 이어지는구려. 좋소이다~! 하하하~!”

지광이 흔쾌히 허락하자, 강정민은 기뻐하면서 말했다.

“고맙습니다. 절대로 피해를 드리지 않도록 하겠어요. 그럼 우창 스승님께도 인사를 드립니다. 잘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우창에게도 삼배를 올리고 염재와 거산에게도 절을 하려고 하자 염재가 얼른 말렸다.

“아닙니다. 우리는 같은 제자이니 도반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나이로 따져서 누나가 되시니 동생으로 편하게 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거산과 함께 염재는 누나의 경험을 잘 배우도록 할 테니 잘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염재가 공수하자 거산도 따라서 공수했다. 그러자 우창이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정리했다.

“이렇게 동행하게 되었으니 이제 가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말도 편하게 하는 것이 좋겠네요. 이후부터 형님과 우창은 말을 편하게 할 테니 호칭은 형님에게 정 사부로 칭하고, 우창에게는 진 사부로 칭하도록 하면 되네. 염재는 그냥 염재로 부르고 거산도 마찬가지로 거산으로 부르면 되겠지?”

“고마워요. 진 사부~!”

우창이 정리해주자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져서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남자들만 모여서 담소하던 분위기가 훨씬 부드럽고 밝아져서 모두가 마음이 즐거워졌다. 우창이 다시 말했다.

“그런데 혹 아호가 있나? 이름을 부르기도 그렇고 하니 아호가 있으면 그것으로 부르도록 하면 좋겠네.”

우창의 말에 강정민이 말했다.

“예전에 어느 절에서 기도하는데 주지화상께서 보살로 수행하라고 하시면서 불명(佛名)을 지어주셨어요. 그리고 아호로 써도 된다고 하셨어요. 호는 진명(眞明)이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어요. 진 사부께서 해석해 주세요.”

어느 사이에 한결 부드러워진 음성으로 우창에게 말했다. 우창도 기꺼운 마음으로 강정민의 호인 진명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서 풀이했다.

“그 호를 지어 준 화상의 안목이 놀랍군. 호의 의미로 봐서는 ‘참된 밝음’이라고 해석하겠네. 그런데 진명의 사주에서 시간(時干)에 있는 병화(丙火)가 갑자기 떠오르는 것은 밝음이 태양과 같은 이유이고, 병화는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봐서 그 화상께서 미래를 내다보고 지어주신 호라고 봐야 하겠네. 태양이 그간 구름 속에서 갇혀 있었는데 오늘 새벽에 구름이 걷히고 나니 본래의 밝음을 얻어서 아호로 거듭 태어나는 이치가 아닐까?”

우창의 풀이에 손뼉을 치면서 진심으로 기쁜 마음으로 말했다.

“진 사부께서 말씀해 주시는 풀이에 그동안 쌓였던 마음의 상처들이 말끔히 치유되는 것만 같아요. 앞으로는 더욱 열심히 정진해서 진정(眞正)한 광명(光明)이 되도록 노력하겠어요. 고맙습니다.”

진명이 이렇게 말하며 기뻐하자 지광도 한마디 했다.

“진명의 동참으로 우리는 오인방(五人放)이 되었군. 하하하~!”

지광의 말에 우창이 물었다.

“형님, 다섯 사람이라서 오인(五人)은 알겠는데, 방(放)은 무슨 뜻입니까?”

“아, 방은 방랑(放浪)의 방이라네. 이제부터 우리의 길에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다섯 사람의 지혜로 해결하면 될 것이네. 원래 네 사람이 싸우면 끝이 안 날 수도 있는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진명이 명쾌하게 해결해줄 테니 더욱 즐거운 방랑이 되겠군. 하하~!”

지광의 말에 우창도 비로소 이해되어서 말했다.

“아, 그런 뜻이었습니까? 그러니까 「다섯 사람의 방랑객」이로군요. 이름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설렙니다. 그동안의 일들도 즐거움이 넘쳤는데 앞으로는 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참으로 궁금하고 그만큼 기대가 됩니다.”

그러는 사이에 다시 예의 공양을 알리는 목탁이 울렸다. 모두 서둘러서 공양간으로 향했다. 저마다 든든하게 죽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나자 주지화상의 시자가 찾아와서 일행을 뵙자고 한다는 말을 전달받고서 다섯 사람은 그를 따라갔다. 주지의 거처는 한쪽 구석의 한적한 장소에 있었다. 문 앞에서 지광이 말했다.

“이것을 보게나. 겉으로는 한쪽 구석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통인사의 터에서 대웅전 다음으로 화기가 강한 곳이잖은가?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광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염재가 대답했다.

“정 사부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까 주지화상은 지맥을 볼 줄 안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그러자 지광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맞아, 이미 지기를 알 가능성도 있겠지?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 땅 눈이 밝은 사람의 조언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아하~! 그렇겠습니다. 어떤 이유든 주지화상의 복은 이렇게 좋은 자리에서 머물 수가 있을 만큼 크다는 것은 확실하겠습니다.”

“맞아, 그게 중요하다네. 자신이 머물 자리가 어떤 곳인지를 알든 모르든 관계없이 그러한 곳에 머무는 자가 주인이니 말이지. 참으로 며칠만 머물러도 몸에 있던 병이 사라지 정도의 길지(吉地)로군. 하하하~!”

밖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주지 화상이 문을 열고 나왔다. 일행도 그것을 보고는 일제히 합장하고 인사를 했다.

“대사님을 뵙습니다~!”

“어서 오시오. 누추한 곳까지 오시라고 해서 결례했소이다. 차라도 한 잔 대접해 드리고자 함이니 어서 드시지요. 허허허~!”

일견 주지화상의 나이는 대략 50대 중반으로 보였다. 영접실로 안내받아서 서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 지광이 먼저 물었다.

“대사님께 무례한 말씀이시오나. 세수(世數)가 얼마나 되셨는지요? 왜냐면 뵙기에는 오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데 중후한 내공은 이미 70대를 넘기신 것으로 느껴져서입니다.”

지광의 말에 주지화상이 웃으면서 말했다.

“과연 시주(施主)의 안목은 예상한 대로이구려. 내년이면 팔순인데도 아직 배워야 할 것은 많고 시간은 물처럼 흐르니 안타까울 따름이외다. 허허허~!”

팔순이 다 되었다는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 그야말로 동안(童顔)도 이런 동안이 없었다. 그렇지만 지광은 미소를 짓고 다시 말했다.

“과연, 명당길지(明堂吉地)에서 기거하시니 전생의 공덕이 무량(無量)하심을 미뤄서 짐작하겠습니다. 범인은 도저히 꿈도 꾸지 못할 곳이니 말입니다.”

지광의 감탄하는 소리에 주지화상도 미소로 화답하고는 말했다.

“과연, 혜안이 비범(非凡)하시구려. 어제 천도재를 지내는데 심검(心劍)으로 잡귀와 진명 낭자의 얽힌 인연 줄을 쳐내는 것을 보면서 예사 분이 아니라는 것을 보고서 오늘 담소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오. 허허~!”

“역시 대사님의 법력은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높으십니다. 독경에 전념하시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주변 견불견(見不見)의 상황을 손바닥처럼 보고 계셨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귀한 가르침을 청합니다.”

지광이 진심어린 마음으로 말하자 주지화상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자, 차부터 드시면서 천천히 이야기 나눕시다.”

이렇게 말하고는 차를 마시면서 일행을 죽~ 훑어봤다. 우창도 차를 마시면서 무슨 이야기를 해주려나 싶은 마음에 기대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화상이 말했다.

“앞서 진명 낭자와는 이야기를 나눴소만 지광 선생이 잘 인도해 주실 것을 알고서야 빈승(貧僧)도 마음 놓고 보내드릴 수가 있겠소이다. 저마다 머물 인연처는 있기 마련이니 멋진 곳에서 공부를 완성하게 될 것이오.”

주지화상의 말에 진명도 합장하고 허리를 굽혀서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다시 우창을 보면서 말했다.

“그래, 우창 선생은 삼장법사(三藏法師)의 용모를 타고 나신 것으로 봐서 불가에 귀의(歸依)하셨더라면 고승(高僧)이 되었을 것이나 세간의 자유로움을 택하셨으니 마음껏 도리(道理)를 펼치게 될 것이외다. 그래 지금은 어떤 수행을 하고 계시오?”

이야기만 듣고 있던 우창이 갑자기 질문을 받자 어떤 답을 해야 할지 언뜻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되리라고 생각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예, 대사님의 덕담에 용기(勇氣)가 샘솟습니다. 안타깝게도 천성이 아둔해서 뛰어난 공부는 못하고 겨우 오행(五行)의 궁리로 세월을 보내고 있을 따름입니다. 부디 한 말씀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어쩐지~! 뭔가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은 했소만, 그러셨구려. 보통은 무엇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삼천대천세계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 잠도 아껴가면서 정진한다’는 등의 거창한 말을 하는데, 과연 빈승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는 답이외다. 허허허~!”

주지화상은 참으로 흡족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염재가 궁금한 것이 생겼는지 합장하고는 물었다.

“대사님께 외람되이 여쭙습니다. 오행을 연구하는 것이 그렇게나 대단한 것인지요?”

염재가 묻자 주지화상이 염재를 보면서 물었다.

“그렇다면 젊은 시주는 무엇이 대단한 것이오?”

그러다 염재가 다시 답했다.

“아, 오행의 이치가 대단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만, 대사님께서 그렇게도 흡족하실 답변이었는지 의아해서 여쭸습니다.”

그러자 주지화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세상의 이치는 딱 두 가지뿐이오. 그 하나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생멸(生滅)하는 이치이고, 또 하나는 영혼불멸(靈魂不滅)의 불성(佛性)인데, 이름만 다를 뿐, 성주괴공은 음극양생(陰極陽生)의 도리와 같은 것이고, 영혼불멸도 또한 오행이 주유(周遊)하는 이치와 같은 것이란 말이오. 그런데 변화의 이치를 꿰뚫었다는 것을 알았으니 어찌 칭찬하지 않을 수가 있겠소이까? 허허허~!”

그제야 염재는 우창의 내공이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내친김에 다시 물었다.

“다시 여쭙겠습니다. 만약에 오행의 이치가 아니라 음양의 이치를 연구한다고 했으면 어떻게 달라지는 것인지 궁금해서 무례한 질문을 드립니다.”

주지화상이 이번에는 답을 하는 대신에 지광을 바라보자 지광이 그 의미를 알고는 대신 답을 했다.

“만약에 음양을 공부한다고 했으면 아직은 핵심(核心)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셨겠지. 나처럼 말이네. 하하하~!”

지광의 말에 염재가 깜짝 놀랐다. 그래서 엉겁결에 지광에게 물었다.

“아니, 정 사부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혼란스럽습니다.”

“혼란스러울 것이 전혀 없네. 나는 음양의 변화에는 조금 자유로우나 아직 오행의 요지(要旨)를 얻지 못해서 아우님을 찾지 않았겠나. 그러니 약간의 잔재주를 피울 따름이지. 그런데 아우님은 오행을 파고 들어가도 너무 깊이 파고 있으니 내가 아무리 좇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소식을 염재가 아직은 모를 걸세. 지금 대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그 뜻이라네. 하하하~!”

“그래도 제자가 생각하기에는 정 사부께서 발휘하시는 음양의 도리가 더 신기해 보입니다. 이건 왜일까요?”

“사탕발림이라네. 상대적인 세계를 벗어나야 절대적인 존재를 깨닫게 되는데 아직 그 언저리만 배회하고 있는 꼴이라니. 하하하~!”

염재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주지화상이 다시 우창에게 말했다.

“우창 선생에게 물어보겠소. 오행에도 선후(先後)가 있는 것이오? 아니면 모두가 대등(對等)한 것이오?”

“대사님은 훤히 알고 계시면서 괜히 질문하십니다. 그래도 물으시니 답변을 드려야지요? 때론 선후가 있고, 또 때론 대등합니다.”

“역시~!”

“죄송합니다. 하하하~!”

이렇게 우창이 말하자, 주지화상은 다시 지광을 보면서 말했다.

“지광 선생도 머지않아서 진리의 꼭대기에서 태평가(太平歌)를 부르실 날이 오겠으니 미리 축하드려도 되겠소이다. 허허허~!”

“과연 대사님의 안목은 탁월하십니다. 아무래도 정모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 중의 하나가 우창 아우님을 만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이렇게 확인시켜 주시니 더욱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하하하~!”

“석존(釋尊)께서도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음양(陰陽)을 보시고 발심하셨으나 영원불멸(永遠不滅)의 오행(五行)을 깨닫고서야 대각(大覺)을 이루신 것이오. 오늘 이렇게 진객(珍客)을 만나서 차 한 잔을 나눌 인연을 주신 것에 대해서 넘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소이다. 그럼 인연처를 찾아서 자유인이 되시기 바라오. 허허허~!”

그러자 지광이 주지화상에게 물었다.

“어디로 향하면 길지(吉地)를 만나겠습니까?”

“그야 발길이 안내하겠소만 괜히 군더더기를 보탠다면 건방(乾方)에 멋진 인연처가 있을 것이오. 허허허~!”

“참으로 고마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반드시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인연처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공부처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활용처(活用處)는 어떻겠습니까?”

“아니, 왜 그리 급하시오. 우선 공부처에서 공부가 이뤄지고 나면 다음에는 저절로 활용처도 나오지 않겠소이까? 허허허~!”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진명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주지화상이 진명을 보면서 한마디 했다.

“진명 낭자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서 더욱 기쁨으로 충만(充滿)된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니 미리 축하해도 되겠소이다. 그래서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하는 말이 있었던가 보오. 허허허~!”

그러더니 시자를 불러서 말했다.

“시자야, 준비한 것을 갖고 오너라.”

잠시 후에 시자가 상자를 하나 무겁게 들고 왔다. 주지화상이 그것을 진명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내가 보기에 진명은 앞으로 스승을 모시고 공부하는 대가로 아마도 살림을 꾸려야 할 소임(所任)이 주어졌으니 이것으로 보태도록 하시오.”

그렇게 말하면서 상자를 열자 안에서는 은자가 자그마치 50개는 됨직하게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진명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이게 웬 것이옵니까? 그간 기도를 한 것만으로도 이미 빚을 졌는데 다시 또 이렇게 거금을 주시는 것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도로 밀쳐놓자, 주지화상이 웃으며 말했다.

“아, 이것은 진명 낭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여기 수행자들이 공부터를 마련할 적에 필요한 것이오. 그러니 열심히 공부해서 중생들에게 빚을 갚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소이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을 만났을 적에만 요긴하게 사용하는 것은 허락하니 그리 알고 사양하지 마시오. 허허허~!”

이렇게 말하자 모두 합장으로 고맙다는 표시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멀리 안 나가니 나중에 지나는 길이 있거든 다시 와서 차 한 잔 나눕시다. 오늘 함께 해서 즐거웠소이다. 나무아미타불~!”

“대사님의 법체(法體)도 강령하십시오.”

모두 이렇게 작별하고는 마차에 올랐다. 첫날 만났던 화상이 배웅을 나왔다. 모두 긴 말이 필요 없었다. 마음으로 감사하고 진심으로 환송했다. 합장하고 수행에 장애가 없기를 서로에게 기원하고는 마차에 올랐다. 통인사의 산문을 빠져나와서 거산의 집까지 도착하는 동안에 모두 저마다 깊은 생각에 잠겨서 아무런 말이 없었다. 객잔에 도착하자 거산의 부모가 기다리고 있다가 반가워했다. 소식도 없이 오지 않아서 많이 기다리다가 반가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