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 제33장. 감응(感應)/ 7.천도재(遷度齋)

작성일
2022-06-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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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 제33장. 감응(感應) 


7. 천도재(遷度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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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모여서 술시(戌時)가 되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주지화상의 명으로 천도재를 위한 상(床)이 차려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오후에 강정민은 주지화상에게 자신의 상황을 전달하고 통인사에서 출가하여 수행하기로 허락받게 되었는데, 자신에게 빙의(憑依)된 영혼을 천도해야 한다는 지광의 말을 전하자 주지화상도 흔쾌히 허락했다.

순식간에 과일과 음식들이 동자승들에 의해서 옮겨졌다. 그리고는 상이 다 차려지고 사방이 어둑해지자 화상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독경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쪽에는 지광 등의 일행이 자리를 잡고 앉았으며 강정민은 가운데에 앉아있다가 주지화상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절을 했다. 그렇게 한 시진이 지났을까? 독경하던 소리가 고조(高調)에 달했다는 느낌이 들었을 적에 절을 하던 강정민이 갑자기 나무막대기처럼 옆으로 쓰러졌고, 그러자 화상들의 독경 소리는 더욱 높아져 갔다.

우창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지광을 바라보자. 지광의 표정도 시시각각으로 변화했다. 때로는 엄숙하고 또 때로는 호령하는 듯한 표정을 보면서 지금 강정민의 빙의령(憑依靈)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쓰러져 있는 강정민은 정신이 돌아오는 듯이 움직이더니 다시 일어나서 바르게 앉았다. 그러자 주지화상이 소리를 질렀다.

“자, 바가지를 쓰시게~!”

그러자 옆에서 독경에 동참했던 화상이 준비된 바가지를 강정민의 머리에 씌워줬다. 그리고는 징 소리와 목탁 소리가 더욱 높아지는 가운데 주지화상의 벽력(霹靂)같은 외침이 도량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해백생원가다라니(解百生寃家陀羅尼)~!”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자. 여기에 맞춰서 동음(同音)으로 주문으로 생각되는 것을 외쳤다.

“옴 아암 악~! 옴 아암 악~! 옴 아암 악~!”

그렇게 세 번을 외울 때마다 주지화상은 곁에 있던 팥을 움켜쥐고는 강정민에게 사정없이 뿌렸다. 마치 귀신을 쫓아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하더니 다시 주지화상의 외침이 들렸다.

“축귀야~! 축귀야~! 축귀야~!”

우창이 들어봐도 축귀(逐鬼)라는 말은 귀신을 쫓는 진언(眞言)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한바탕 성한 사람도 정신이 쏙 빠져 달아날 정도로 난리가 일어났다가 잠잠해졌다. 그러자 한 화상이 강정민을 숙소로 안내하고, 다른 화상은 설치했던 종이로 만든 여러 형태의 장식물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서 불살랐다. 불은 활활 타올랐고, 마침내 염불 소리도 멈춰졌다. 그러자 주지화상이 지광에게 말했다.

“거사님 오늘 수고 많으셨소이다. 덕분에 천도재는 원만히 회향 되었구려. 그만 푹 쉬시오.”

주지화상이 그렇게 말하자 지광도 합장하고 말했다.

“대사님, 근림(勤林)하셨습니다. 외롭고 고독한 한 영혼이 편안하게 극락으로 천도가 되었으니 공덕이 무량하십니다. 성불하십시오~!”

지광의 말에 합장한 주지화상이 돌아가고 차려졌던 상들도 다시 원래의 자리로 옮겨졌다. 그제야 우창 일행도 숙소로 돌아와서는 이미 차려진 과일과 음료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우창의 궁금증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형님, 우제는 이러한 장면은 생전 처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강력한 힘에 놀랐습니다. 상상하지 못한 풍경에 완전히 압도(壓倒)당했으니 말입니다. 하하하~!”

“그러셨나? 오늘 강 낭자의 소원이 이뤄졌으니 그것만으로도 보람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네. 하하하~!”

“실로 우제는 영혼(靈魂)에 대해서는 깊이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디까지 이해를 해야 할 것인지도 혼란스러웠습니다. 또한 영감(靈感)의 뿌리로 논한다면 목 체질과 금 체질의 작용이 서로 달라진다는 것도 음양의 이치로 보면 되겠는데 귀신의 작용은 또 어떻게 일어나며 해결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직접 지켜보니 생각할 것도 많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아우님의 궁금증은 옥황상제가 와도 다 풀어주지 못할 것이네. 그렇지만 궁금한 것을 묻지도 못할 이유가 있겠나. 언제나 물으시게. 하하하~!”

“가장 궁금한 것은 강 낭자에게 붙어있던 혼령은 완전히 떠난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까? 그 영혼은 떠난다면 천지간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까? 사라졌다면 그야말로 극락이나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까? 사라진 것이 아니라면 어딘가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접근을 할 수 없는 것입니까? 이렇게 생각하다가 다시 드는 생각도 있습니다. 애초에 그러한 것은 없는 것인데 강 낭자가 스스로 죄책감으로 만든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머릿속이 좀 복잡합니다.”

“당연하겠지. 실로 영혼의 세계도 생각보다 복잡하다네. 그러나 쉽게 이해하면 인간세(人間世)와 똑같은 형태로 존재한다고 보면 되네. 영혼의 세상도 선악(善惡)이 있고, 상벌(賞罰)이 있으며 생사(生死)가 있다고 생각하고 둘로 나눠서 복잡하게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네. 다만 차이라면 영혼은 몸을 잃었기 때문에 피가 통하는 따뜻한 육신(肉身)이 없다는 것일 따름이지.”

“말씀을 들으면서도 상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승과 저승이 있다고 하나 육신의 유무만 다르고 나머지는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고는 하시지만 그것조차도 이해는 어렵습니다.”

“그야 논리적으로 접근할 흔적을 찾지 못하니 그럴밖에. 하하하~!”

“논리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야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면 된다네. 아우님의 두 눈으로 강 낭자의 태도를 보지 않았는가? 순간적으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쓰러지는 모습과 다시 돌아온 듯이 깨어나는 모습이 단순히 연극처럼 보였나?”

“그렇게라도 보였으면 연극이라고 웃어넘길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태도는 분명히 진실해 보였는데 그러한 연유를 형님처럼 볼 수가 없어서 더욱 답답했던 것입니다.”

“굳이 보려고 할 필요가 없다네. 안 보이는 것이 오히려 행복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네. 생각해 보게. 지금 아우님 앞으로 머리에 도끼가 박힌 귀신이 피를 흘리면서 지나간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지광의 말에 우창은 소름이 돋았다.

“아니, 지금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말이네. 모르고 사는 것이 만고에 복 받은 사람인 줄을 알아야 한다니까. 하하하~!”

“에구~ 괜히 놀리려고 하신 말씀이지요?”

“아무렇거나 확인할 길이 없으니 그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로군. 보이지 않는 것은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네. 그런 의미에서 목인(木人)은 행복한 것이라네. 쓸데없는 것으로 인해서 마음고생이 많은 금인(金人)에 비한다면 말이지. 복을 받은 줄이나 알게. 하하하~!”

“듣고 보니 또 그런 것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강 낭자가 쓰러졌을 때와 깨어났을 때의 상황에 대해서 조금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지, 내 말을 믿겠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말이지.”

“당연히 형님의 말씀이야 믿지요.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집니다. 그러니까 보신 그대로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쓰러졌을 적에 그 영혼, 그러니까 총각 귀신과의 갈등이 있어서였네. 강 낭자의 영혼도 엉겨드는 귀신과 결별하기가 쉽지 않았다네. 마치 벌의 독침처럼 자꾸만 파고드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던 것이지. 그런데 주지화상과 독경의 힘으로 대항하게 되었던 것이라네. 비로소 자신감이 생겨서 두려움이 없이 맞붙을 수가 있었던 것이지.”

“그런데 왜 쓰러진 것입니까?”

“육신을 가진 자가 두려움이 많겠나? 육신이 없는 자가 두려움이 많겠나?”

“예? 그게 무슨 뜻인지요?”

“쉽게 할까? 자식이 있는 여인이 두려움이 많을까? 아니면 자식이 없는 여인이 두려움이 많을까? 이것은 위험한 상황을 만났을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이라네.”

“아, 그렇다면 자식이 없는 여인이 마음도 편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자식을 품에 안은 여인이라면 행여라도 자식에게 해가 다가올까 봐서 두려워할 일은 없을 테니 말이지요.”

“마찬가지라네. 육신을 갖고 싸우게 되면 몸이 잘못될 수도 있기에 마음대로 겨룰 수가 없다네. 그런데 몸을 빠져나가면 대등한 입장이 된단 말이지. 그렇게 된 상황에서 불법(佛法)으로 응원까지 받으니 용기백배가 아니겠나?”

“그야말로 호법신장(護法神將)의 보호를 받는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겠습니다.”

“그래서 낭자도 육신을 빠져나가서 영혼대 영혼으로 일전(一戰)을 겨루게 된 것이라네. 그렇게 해서 놀란 총각 귀신은 화상들이 베푼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고는 멀리 사라진 것이라네.”

“사라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거리상으로 곤륜산(崑崙山)이나 절해고도(絶海孤島)로 갔다는 뜻입니까?”

“아, 영계(靈界)의 편리한 점도 있기는 하다네.”

“그게 무엇입니까?”

“인연의 끈이 닿으면 천만리도 지척이고, 인연의 끈이 끊어지면 지척도 천만리가 되는 것이라네.”

“그것은 또 무슨 의미인지요? 이해가 잘되지 않습니다.”

“그런가? 가령 보이지 않는 끈이 있다고 생각해 보게. 그 끈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네. 끈을 잡고있는 순간에는 동시에 공존(共存)하게 되는 까닭이지. 마치 상대방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보고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라네.”

“정말 논리적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냥 형님의 말씀을 믿겠습니다.”

“그러시게. 그런데 만약에 끈이 끊어지게 된다면 바로 옆에 있어도 서로 간에는 영원히 마주 볼 수가 없는 거대한 옹벽(擁壁)이 가로막고 있는 것과 같다네. 그러니 서로 인식할 수도 없고 당연히 만날 수도 없는 것이라네.”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인연의 끈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겠습니다. 지금 강 낭자는 그 귀신과 얽혔던 인연의 끝이 단절된 상태라는 말씀이지요? 그것이 끊어지게 되면 옆에 있어도 서로 만날 일이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 것처럼 말이지요.”

“옳지~! 잘 이해하셨네. 하하하~!”

“그러면 영원한 단절이라는 의미네요?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화상들이 독경한 것은 인연의 끈을 끊어버리는 일이었단 말씀이지요?”

“맞아~!”

“그렇다면 강 낭자는 이제 일반인들과 같이 혼인도 하고 아이도 낳고 살면 되지 않겠습니까? 왜 고독한 비구니의 길을 가야 합니까?”

“아니, 그것은 아우님이 말해주지 않았나?”

“그렇긴 합니다만, 고통의 끈이 사라진 상태라면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의 생각일 따름이라네. 하하하~!”

“아직도 우제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까? 그것은 또 무엇인지요?”

“금인(金人)~!”

“예? 무슨......”

“금인의 체질로 타고 난 사람은 죽을 때까지 금인이란 말이지 무슨 뜻이겠는가.”

“그래도 이렇게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까?”

“세상에 귀신이 그 총각 귀신 하나만 있다던가?”

“그건 아니겠지요. 그게 무슨 뜻인지요?”

“온갖 종류의 정령(精靈)들이 물고기를 잡는 낚시꾼처럼 바늘을 드리우고 영 체질의 몸을 낚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단 말이네.”

“그런다고 해서 없는 인연의 끈이 생기는 것일까요?”

“정신의 통로가 열려있다면 기적은 항상 일어나게 되어있으니까. 그렇게 백 년이고 천년이고 바늘을 드리우고 있다가 가끔 정신이 제멋대로 들락거리는 육신을 만나면 바로 낚아 올리는 거라네. 육신이 없는 영혼이 가장 부러운 것은 오감(五感)을 느낄 수가 있는 신체니까.”

“아, 그렇게 될 수도 있네요?”

“아우님과 같은 목 체질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그렇지만 나처럼 금 체질은 상황이 다르다네. 잠시라도 방심했다가는 순식간에 낚여서 구속당하게 될 수가 있으니까 말이네. 그래도 영 체질이 부러운가?”

“부러운 것이 다 무엇입니까. 모골이 송연(悚然)합니다.”

우창은 지광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 체질로 타고 난 사람들이 겪어야 할 위험과 고난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되었다. 그래서 스스로 영기(靈氣)에 둔감한 자신에 대해서 가끔은 품었던 불만도 말끔히 사라졌다. 오히려 이러한 몸이 고맙기조차 했다. 그러나 궁금한 것은 풀어야 했다. 그래서 지광에게 다시 물었다.

“형님께서 그렇게 풀이해서 설명해 주시니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강 낭자는 앞으로도 행여 다른 영혼의 장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말씀은 걱정이 많이 됩니다. 앞으로 안전하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혹 방법은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창이 이렇게 묻자 지광도 예상했다는 듯이 말했다.

“영기(靈氣)의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떠다니는 유령(幽靈)의 기와 불보살이나 사대천왕(四大天王)의 기를 비교한다면 서로 어떻게 다를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겠나?”

“그야 아무래도 힘이 강한 것은 천왕과 같은 신령들의 기가 막강(莫强)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겠지? 이것은 마치 인간계에서도 힘이 강한 것은 관리(官吏)가 될 것이고 일반 백성은 무력한 것으로 그 힘이라고 해봐야 한 가정이나 마을을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말이지.”

“그렇겠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그들의 보호를 받게 된다면 잡신(雜神)들이 개입하는 것을 막을 수가 있지 않을까요?”

“옳지! 이제야 뭔가 알아듣는 모양이로군. 하하하~!”

“그렇다면 잡신이나 조상신의 영향을 차단하는 것은 더 강력한 보호막의 보호를 받는 것이라는 말씀입니까?”

“물론이네~!”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러한 사례(事例)가 있는지도 말씀해 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혹 보거나 들으신 것이 있는지요?”

“그런 사례는 수두룩하니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네. 간단히 말하면, 영 체질로 태어난 어느 여인이 온몸이 아프고 꿈자리도 사나워서 무당을 찾아가서 물어보는 곳마다 신을 받지 않으면 고통을 당하다가 천명도 누리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더라네.”

“오호~! 흔히 있을 수가 있는 이야기겠습니다. 형님은 어떻게 알게 되신 인연이십니까?”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 자기 지인이라면서 이야기하기에 데려와 보라고 하지 않았겠나. 그래서 만나봤더니 자신의 영기(靈氣)는 있으나 정신적인 주체가 허약해서 굿을 하더라도 일시적인 효과밖에 없겠다는 것을 알았지.”

“그야 형님의 능력으로 봐서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어떤 처방이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기가 센 사찰로 데리고 가서 주지화상에게 절에서 머물러서 공양주(供養主:음식을 담당하는 일)를 하면서 건강을 돌보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추천을 했다네.”

“그것은 아마도 절의 호법신장이 그 여인의 약한 기운을 보호해주는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이었습니까?”

“맞아, 여인도 이미 얼마간의 재물은 모두 무당(巫堂)이나, 퇴마사(退魔師)에게 탕진하고 난 후라서 자신을 돌볼 여력도 없던 상황인지라 그대로 제안을 따르기로 했는데 나중에 전해 들으니까 건강은 물론이고 나날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더라니까 이러한 현상을 본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아니겠나? 하하하~!”

이렇게 지나간 이야기를 하면서 유쾌하게 웃는 지광을 보면서 우창은 참으로 좋은 일하는 것도 여러 가지인 것을 깨달았다. 그야말로 저마다 타고난 능력대로 세상을 누비면서 공덕(功德)을 쌓고 있는 모습이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된 셈이기도 했다.

“형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참으로 신기하고도 복잡한 세상입니다. 학문만 열심히 하면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학문 외에도 놀라운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세상 밖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아는 만큼만 누리다가 가는 것이라네. 하루살이는 내일을 모르고, 여름 매미는 가을을 모른 채로 그렇게 살다가 가는 것이려니. 하하하~!”

“맞습니다.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이 전부일 줄로 알았는데, 오늘은 영계(靈界)도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 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왜? 지맥(地脈)은 이제 새롭지도 않은가? 하하하~!”

“아, 맞습니다. 지맥과 화맥의 이치도 있었네요. 수맥에서 우물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이치를 모두 다 알아서 무불통지(無不通知)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깨달았네요. 하하하~!”

“그래서 알면 알수록 겸손해진다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겠나?”

“과연 그렇겠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강 낭자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내일부터는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야 모르지.”

“예? 이미 그렇게 하기로 약속이 된 것이잖습니까?”

“근데, 알면서도 아우님이 묻는 의미는 뭘까?”

“그렇네요.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 왜 궁금할까요?”

“아마도 미련이 남았는가 보군. 그런가? 하하하~!”

“미련이랄 것이야 무엇이 있겠습니까? 잘 되어서 마음에 안락함을 얻는다면 그것으로 이미 다행스러운 일이지 않습니까?”

“내가 보기에 여기가 머물 곳은 아닐 것으로 생각이 되네.”

“그러면 떠나가게 됩니까?”

“주지화상의 영안(靈眼)이 보통이 아니었다네. 그러니까 아마도 출가를 허락하고자 했으나 천도재를 지내고 나서 다시 방향이 바뀌었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이 문제는 내일 날이 밝으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니 그만하고 오늘은 쉬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하하~!”

“형님,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이미 약속한 것이 하룻밤 사이에 바뀌기도 합니까?”

“그게 무슨 대수인가? 천지(天地)의 운수(運數)도 수시로 바뀌는데 하물며 인간사의 일이야 시시각각(時時刻刻)마다 바뀐들 무슨 문제가 있겠나?”

“아니, 그래도.....”

“왜? 점괘는 수시로 바뀌지 않나?”

“예? 갑자기 점괘는 왜?”

“점괘는 하루 만에 바뀌나? 아니면 일각(一刻)마다 바뀌나?”

“일각도 이미 긴 시간입니다.”

“그것 보게 수명을 다할 때까지 바뀌지 않는 사주팔자도 있는가 하면,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바뀌는 점괘도 있으니, 오늘의 약속이 내일 바뀐다고 해서 무엇이 대수겠느냔 말이네. 이것이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라네. 하하하~!”

우창은 지광의 말이 선뜻 수용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박할 부분도 보이지 않아서 그냥 듣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내일 어떤 일이 생기는지 두고 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정리했다.

“형님, 정말 많은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공부가 넘쳐났습니다. 그만 쉬시지요.”

“그래, 아우님도 잘 쉬시게. 염재와 거산도 내일 보고.”

그러자 염재와 거산도 인사를 하고는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다. 우창도 숙소에 누워서 잠을 청했으나 정신이 더욱 또렷해져서 잠이 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뒤치락거리다가 겨우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